체대생 연하 남친 13
w.누 나
평소 내가 알던 느낌과는 사뭇 다른 촉감이 내 입술 위로 느껴져 왔고, 너무 갑작스럽게 맞춰진 입에 몸이 굳어 도무지 그를 밀어낼 수 없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내 머릿속은 그를 밀어내야 한다고 말하고 있었지만, 내 가슴속 깊은 곳에서부터 우러나오는 본능이 그를 받아내고 있었다.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하는 입 맞춤인지라 나는 테이블 끝에 가슴을 기대고, 이재환은 일어서서 몸을 숙인 채 하는 불편한 자세였다. 내 손목을 으스러질 만큼 힘주어 잡고 있던 그는 서서히 내 손목을 놓아주었고, 손목을 놓은 손을 그대로 내 목뒤로 옮겨 뒤로 물러나지 못하게끔 단단히 붙잡았다. 고개를 비틀며 점점 깊게 파고드는 그의 부드럽지만 강렬한 키스에 나도 모르게 그의 목뒤로 팔을 둘러 감싸 안았다. 미세하게 그의 입꼬리가 올라가는 게 느껴졌고, 뒤이어 따뜻한 그의 혀가 무작정 내 입안으로 치고 들어왔다. 서로의 혀가 닿자마자 은은하게 입안으로 퍼지는 알코올 향이 우리 둘 사이를 더욱 달아오르게 하였고, 분위기를 더욱 묘하게끔 만들었다.
하지만 그럴수록 내 가슴 깊은 곳에는, 내 머릿속에는 김원식을 더욱 간절히 원하고 있었다. 지금 내 앞에서 나와 진하게 혀를 섞어가며 입을 맞추고 있는 이 남자가, 이재환이 아닌 김원식이었으면. 숨이 차올라 거친 숨을 내쉬면서도 김원식 생각을 멈출 수 없었다. 그를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가슴 한구석이 아려왔고 그 아픔이, 그 고통이 눈물로 변해 뚝뚝 떨어졌다.
이재환과 하나가 된 듯 입을 맞추고 있다 보니 그의 볼과 내 볼 사이에는 어느 틈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게 두 볼을 딱 붙이고 있는데 내가 눈물을 흘리니 자연스레 눈물이 처음에는 내 볼을 타고 흐르다 그의 볼 위, 그리고 내 볼 위에 두 갈래로 나누어져 서로의 피부를 적셔갔다. 내 눈물을 느끼자 내 목뒤를 붙잡고 절대 놓아주지 않을 것 같던 손에 힘이 빠지면서 입술과 함께 그는 나에게서 떨어져 제 자리에 앉았다.
그와 키스를 하며 옆으로 돌아간 모자를 바로 쓰고 내 얼굴 반쯤을 가릴 만큼 푹 눌러쓰며 그에게 얼굴을 보이지 않기 위해 고개를 숙여 내 무릎을 쳐다보았다. 그가 내 앞으로 휴지 몇 장을 내밀었고 떨리는 손으로 앞에 놓인 휴지를 한 장 집어 들어 얼굴을 다 덮고선, 눈 위를 지긋이 눌러 눈물을 훔치기 시작했다.
"괜찮아?"
"......"
"미안해."
"네가 왜 미안해. 미안해 할 필요 없어. 괜찮아."
때마침 안주로 시켰던 치킨과 감자튀김이 나왔고, 그는 옆에 놓인 포크로 감자튀김을 하나 찍어 내 쪽으로 내밀었다.
"먹어."
"안 먹을래, 너나 많이 먹어."
내 입 앞으로 감자튀김을 가져다 대고 벌리지도 않은 입에 감자튀김을 강제로 밀어 넣은 그였다. 맛있네. 먹기 싫어 버티던 사람은 어디 갔는지, 하나를 먹고 나니 식욕이 돋아 쉴 틈 없이 앞에 놓인 감자튀김과 치킨을 꾸역꾸역 입에 넣기 시작했다.
"안 먹는다며, 존.나 잘 먹네."
잘 먹는다는 그의 말에 멈칫하며 입에 가득 넣어 두 볼이 빵빵해진 채로 씹어먹는 내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천천히 입에 담긴 음식물을 씹어 삼키며 포크를 내려놓으니 소리 내서 웃어오는 그였다. 방금 날 비웃는 건가?
"더 먹어. 많이 먹어."
"너도 좀 먹어, 나만 먹으니까 개돼지 같잖아."
"돼지 맞잖아."
"이 새끼가 진짜."
사귀는 사이도 아니고 별 특별한 관계도 아닌 두 남녀가 술을 마시고 취해 키스를 했다면 제법 어색할 만도 한데, 다행히 이재환과 내 사이에는 전혀 어색한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더 가까워졌으면 가까워졌지, 멀어지지 않았다. 워낙 친했던 사이라 그런가, 입 맞췄던 것도 하나의 추억이었다며 장난으로 넘겼고 서로 끊임없이 말장난을 주고받으며 우울했던 감정을 다 치유해주었다. 내가 필요했던 것은 술이 아닌 말동무였다.
어느새 바닥을 들어낸 두 접시를 내려다보며 그가 또 한 번 입가를 닦으라고 휴지를 내 쪽으로 내밀었다.
"이제 갈까? 뭐 더 먹고 싶은 거 있어?"
"아니, 배불러."
"집에 데려다줄게."
"괜찮아. 나 혼자 갈 수 있어."
혼자 갈 수 있다는 말이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끝나기가 무섭게 평소 주량을 훨씬 넘어선 탓일까, 다리에 힘이 빠져 제 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그러고도 혼자 가려고?"
"혼자 갈 수 있다니까 그러네."
"고집 부리지 마. 치마 입고 술 취해서 혼자 비틀 비틀 거리는 여자 보면 감사합니다 하고 냉큼 데려가려는 남자가 요즘 얼마나 많은데. 얘가 요즘 세상이 얼마나 위험한지 모르나 보네?"
"내가 네가 그런 남자인지 아닌지 어떻게 알아. 집에 데려다 주는 척하고 다른 수작 부리는 거 아니야?"
"야, 날 그렇게도 못 믿어?"
"김원식이 자기 말고 다른 남자 아무도 믿지 말랬단 말이야. 자기 말고 다른 남자들은 다 짐승새끼라고."
"그럼 나 남자 안 할래. 나 오늘부터 여자다, 여자."
여성의 목소리를 따라 한답시고 제 목소리를 몇 톤을 높여 얘기하는 그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에 목젖이 보일 만큼 소리 내어 크게 웃었다.
내 앞으로 손을 내미는 그의 행동에 자연스레 내 손을 그의 손 위에 얹었고, 그의 손을 꼭 잡은 채로 자리에서 힘겹게 일어나 금방이라도 발목이 꺾여버릴 것 같이 비틀거리며 한 발짝 한 발짝 발을 앞으로 내디뎠다. 내가 한 발짝 앞으로 내밀 때마다 그는 혹여나 내가 넘어질까 봐 더욱 세게 내 손을 잡아오면서 나를 자신에게 기댈 수 있도록 몸을 내주었다. 그에게 겨우겨우 부축을 받아 가며 단 한마디의 말도 오고 가지 않은 채로 내 집 앞에 도착하였다.
"여기서부터는 나 혼자 갈게. 데려다줘서 고마워."
아파트 단지에 들어서자 내가 집에 들어가는 모습까지 보고 가겠다며 고집을 피우는 그를 겨우 말려 세웠다.
"집에 들어가면 문자 보내."
"네가 내 남친이냐? 들어가면 연락하라고 하게?"
"그럼 김원식한테 하던지. 어서 들어가."
"알았어, 하면 되잖아. 고맙다 이재환."
"넘어지지 말고 조심해서 가라."
아까 영화관 복도에서 혼자 슬픔에 빠져 울고 있을 때 슬쩍 씌어준 모자를 돌려줘야겠다는 생각에 모자 챙을 잡으니, 잽싸게 내 머리 위를 모자와 함께 꾹 누르며 '너 가져.' 라고 하며 내 등을 떠밀며 집으로 빨리, 조심해서 들어가라고 재촉하는 이재환이었다. 내가 엘리베이터를 탈 때까지 내 뒤에서 가만히 날 지켜보고 있던 그는 엘리베이터 문이 닫힐 때까지 제 자리를 지키며 내게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엘리베이터가 올라가는 순간에도, 현관문을 여는 순간에도, 내 방까지 가는 순간까지도 내 머릿속에는 김원식과 이재환의 모습이 번갈아가며 그려졌다. 내가 그리워해야 할 사람은 김원식, 딱 그뿐이어야만 하는데 이상하게도 이재환의 모습이 김원식과 함께 겹쳐 나타났다.
'이재환과 입 맞춘 것 때문에 잠시 그런 걸 거야. 내일이면 원상태로 돌아가겠지.' 알코올에 흠뻑 취해 내가 술을 마신 건지, 술이 나를 마신 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애써 자기 합리화를 해갔다.
나도 모르는 새 나는 침대 위에 누워 있었다. 화장도 지우지 않고, 옷도 갈아입지 않은 모습으로 무작정 내 두 다리가 향하는 대로 따라가다 보니 침대 위였던 것이었다. 화장을 지우고, 편한 옷차림으로 갈아입어야 하는데 도저히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아, 이재환에게도 잘 도착했다고 문자 남겨야 하는데. 생각과는 달리 내 몸은 점점 힘이 빠져갔고, 무거워진 눈꺼풀을 이겨내지 못해 그대로 깊은 잠에 취해버렸다.
꿈속에서 이재환과 달콤한 데이트를 즐겼다. 슬픔에 가득 찬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우리 둘만 활짝 웃고 있었다. 그들이 어떠한 이유로 왜 그렇게 슬픔에 잠겨 있는지는 모른다. 어떻게 보면 나와 이재환이 너무 행복하게 웃고 있어서 그들의 표정이 더욱 어두워 보였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와 손을 꼭 마주 잡은 채 앞뒤로 흔들며 끝도 없이 길고 긴 길을 걷는 꿈.
***
깨질 듯이 아파오는 머리를 붙잡고 끊임없이 울려대는 핸드폰을 향해 손을 뻗었다. 발신자가 누군지도 확인하지 않은 채로 전화를 받자 뭐하다 지금 받냐며 툴툴거리는 말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김원식, 그의 전화였다.
"빨리도 받네. 지금이 몇 신데, 아직까지 자고 있던 거야?"
"미안, 너무 깊이 잠들었나 봐. 전화 오는 지도 몰랐다."
"됐고, 우리 집 와. 10분 준다. 빨리 튀어와."
"뭐? 야, 나 지금 못 가."
"10분. 끊어."
"야, 잠깐만. 나 진짜 지금 준비 하나도 안 하고 완전 추하단 말이야. 못 가."
"보고 싶으니까 빨리 와. 끊는다."
이게 진정 어젯밤 그토록 나에게 차갑게 굴었던 김원식이 맞는 건가? 통화가 종료되자 보이는 핸드폰 화면 속으로는 부재중 전화가 12통, 그리고 카톡이 9개가 와 있었다.
[누나 뭐해?] 오전 9:18
[잠깐 우리 집 올래?] 오전 9:18
[보고싶다] 오전 9:37
[자?] 오전 9:37
[전화 좀 받아] 오전 9:48
[야] 오전 9:48
[진짜 자냐?] 오전 9:49
[일어나] 오전 9:49
[죽었어 너] 오전 9:55
그가 보낸 카톡을 다 읽은 후 뻐근한 몸을 풀기 위해 한 번 기지개를 쭉 핀 후 침대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향하자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을 보며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이 메이크업이 다 번져 얼굴 꼴이 말도 아닌 건 물론, 헝클어진 머리에 이리저리 구겨진 옷. 한마디로 거지 같았다. 잽싸게 화장을 지우고 스킨로션을 바른 후 피부에 흡수시킬 겸 입고 있던 옷을 벗은 후 후드티와 짧은 반바지로 갈아입었다. 김원식이 얘기한 10분은 이미 지난 지가 오래였지만 도저히 이 상태로 그를 보러 가는 것은 자살행위와 다름이 없었다. 최대한 가볍게 화장을 한 후, 머리 감을 시간은 없다고 느껴 대충 똥 머리로 질끈 묶었다. 짧은 시간 내에 준비한 것치곤 나름 괜찮은 모습이었다. 꾸민 듯 안 꾸민 듯 자연스러운 모습.
시간을 보니 거의 30분이 지나 있었고, 더 늦으면 그가 단단히 삐쳐버릴 것 같자 그 상태로 핸드폰과 지갑만 들고 잽싸게 그의 자취방을 찾아갔다.
***
그의 집 앞 문에 서니 막상 전날 있었던 일이 파노라마처럼 머릿속을 스쳐지나 가자 용기가 나질 않아 초인종 바로 앞에서 손이 머뭇거리고 있었다. 몇 분이 지났는지도 모를 만큼 꽤 긴 시간 동안 고민하고 있는데, 문이 벌컥 열리고 상의를 탈의 한 김원식이 내 눈앞에 나타났다.
"왔으면 벨을 눌러야지. 들어 와."
상의를 탈의하고 있던 그가 갑작스레 내 앞에 나타나는 바람에 얼굴을 보기도 전에 그의 상체에서만 눈이 맴돌아 뒤늦게 그의 얼굴을 올려다봤더니, 누구와 시비가 붙어서 싸운 건지 입술이 다 터져 입 옆으로 피가 굳어 있었고, 볼은 시퍼렇게 멍이 들어 꼴이 말이 아니었다.
"뭐야, 너 얼굴 왜 이래?"
"별거 아니야. 이리 와봐, 좀 안아보자."
"이게 별거 아니라고? 지금 안는 게 중요한 게 아니고, 너 얼굴.."
두 팔을 활짝 벌리며 안아보자,라고 얘기하는 그를 보면서도 그의 얼굴을 보니 어떻게 하다가 그렇게 됐는지 아는 게 더 중요한 것 같아 제 자리에서 무슨 일이 있던 건지 물었다. 기다리다 못해 지친 그는 내 얘기가 끝나기도 전에 내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와 나를 제 품 안으로 쏙 넣었다. 키 차이 때문에 나의 얼굴은 자연스레 그의 가슴팍에 기대게 되었고, 그의 심장 소리가 내 귀로 전해지자 신기할 만큼 어제부터 불안했던 감정이 사르르 녹아내렸다.
내 등허리를 부드럽게 쓸어내리는 그의 손길에 그의 허리에 팔을 두르며 더 꽉 그를 끌어안으니 그는 내 정수리 위로 짧게 입을 맞췄다 떼었다.
"누나, 어제 화내서 미안해."
"......"
"진짜 미안해."
"나도 미안해."
나를 품에서 떼어내더니 그는 허리를 숙여 나와 눈 높이를 맞추고 눈꼬리가 휘어지도록 방긋 웃어주었다. 천천히 내 쪽으로 얼굴을 들이미는 그의 행동에 두 눈을 꼭 감으니, 달콤한 입 맞춤 대신에 내 볼을 힘주어 꼬집는 그였다.
"아, 아파."
"이것 봐라, 아침부터 밝히기는."
"이거 놔라."
"싫은데?"
"죽는다 너?"
"알았어, 알았어. 해줄게."
볼을 꼬집던 손을 놓자마자 그는 내 두 볼을 양손으로 감싸며 입술을 부딪혀왔다. 마치 내가 그의 장난감이 된 것처럼, 놀림감이 된 마냥 내 감정을 이리저리 갖고 노는 그였다. 입술이 다 터져서 상처투성이가 된 입술은 상당히 거칠었다. 부드러웠던 평소의 그 입술과는 너무나 다른 느낌이었지만, 그게 뭐가 중요한가? 내 앞에, 나와 입 맞추고 있는 사람이 그인데. 큰 손으로 포근하게 내 두 볼을 감싸고 있던 손은 내 뒷목과 허리로 사이좋게 나누어져 내려갔다. 그의 혀와 내 혀가 한 번씩 얽혀 질척한 멜로디를 만들 때마다 내 가슴속에 남아있던 그를 향한 배신감과 우울했던 감정들이 하나씩 하나씩 떨어져 나갔다. 평소보다 더 거친 입 맞춤에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지만 떨어지기는커녕, 서로의 입안을 더욱 깊이 탐하였다.
*
독자님들, 안녕.
최대한 빨리 온다고 왔는데 급하게 쓴 티가 팍팍 나는 것 같아요. 망했어ㅠ_ㅠ
여주는 이 남자 저 남자랑 입이나 맞추고 점점 나쁜 여자가 돼가는 것 같..
아무튼, 오늘은 좋은 소식 하나를 들고 왔어요.
텍스트 파일 공유를 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손봐야 할 부분이 한 두 군데가 아닌 거 알지만, 이번 텍스트 파일 공유는 수정하지 않고 하려고 해요.
수정한 텍스트 파일은 나중에 '체대생 연하 남친' 연재가 마무리를 짓게 되면, 그때 1편 부터 끝 편까지 손 보고 하나로 합치려고 생각하고 있어요.
이번에 하는 텍스트 파일 공유는 그동안 썼던 1편부터 이번 편까지 다 따로. 총 13개를 공유할 거예요.
합치기에는 어색한 부분이 너무 많아서.
내 독자님들은 이해해주실 거라고 믿어요 :D
텍스트 파일 기차는 이번 주말에 올 예정이에요!
암호닉: 포로리님 귤님 택구나님 보일라님 당근님 안녕님 배꼽님 피노키오님 사랑님 윤슬님 설탕님 별레오님 망고님 루시님 탐레인님 까까님 바밤바님 후다닭님 찰진목소리님 빅쮸잉님 바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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