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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매트 전체글ll조회 2012l 3





너가 차오르는 시간 - 1







아침 저녁으로 피부에 띄는 공기가 참 찼다.

유난히 짧은 여름과 뒤이은 찬 공기에 상태가 좋지 않던 태연은 가디건을 들쳐입고 복도로 나왔다.

대충 기억나는 벤치로 향해 걷다가 우뚝, 멈춰섰다.

그 때문에 뒤따라 나오던 미영과 툭, 하고 부딪혔다.


"발 밟을뻔 했어."

"미안. 왜 나왔어?"

"그냥. 꼴배기 싫어서."


뒷문으로 슬쩍 보이는 교실. 그리고 아이들 틈에 껴 태연 쪽을 슬금거리며 바라보는 수연도 보였다.

태연은 수연과 미영을 번갈아 보다가 먼저 가버리는 미영의 뒤를 따랐다.


"쟤 좀 어떻게 해봐."

"뭘?"

"자꾸 신경쓰인다고. 니 말은 들을 거 아냐."

"뭐라구 그래? 나 훔쳐보지 말라구?"

"아니, 음.. 그냥 쟤가 너무 신경쓰여서 사리 나올거 같아."

"왜, 쟤가 뭐라구 그래?"

"아니 그건 아니지만.. 너 소원대 수시 썼지?"

"응."

"쟤도 거기 따라쓰더라구. 모의면접때도 짜증났고."

"그래? ...몰랐지 나는."

"가끔 보면, 니도 쟤한테 마음 있는거 같아."


퍽, 태연은 장난스레 미영의 엉덩이를 걷어찼다.

미영은 이 사이로 원망스런 바람빠진 소리를 내었다.


"씨이.. 진짜 내 느낌이 그래!"

"됬어. 여자잖아, 쟤는."

"하긴. 쟤 성병 있을지도 몰라."

"왜?"

"그냥. 여자 좋아하면 그렇잖아."


그렇다고 다 성병 있는거 아닐껄?

진짜? 


입시 앞에 선 고3과 무의미한 대화.

어쩌면 가장 큰 문제를 두고 애써 외면하려는 것일지도 모른다.



-


엥간히 공부를 안해 지방에 있는 대학에 수시 접수를 하기로 했다.

헬륨가스가 든 풍선을 놓친 애마냥 시무룩한 태연 뒤에 수연도 함께 원서접수 봉투를 들고 걸어나왔다.

알아서 오겠지. 미영의 걱정스런 눈을 뒤로하고 태연은 허겁지겁 먼저 교문을 나서버렸다.


머얼리 떨어져 걸어오는 수연이 신경쓰여 차츰 속도를 늦춘다.

뒤이어 이름같이 태연하게 옆에 섰건만 옆 사람 사정은 그렇지 않은 듯 하다.

 긴장한 기색이 역력하고 계속 가자미 눈으로 힐끔댄다.

그래도 바로 옆에서 느끼는 수연은 그다지 밉게 보이진 않았다.

못나게 생긴 얼굴도 아니고, 몸매가 볼썽 사나운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따지자면 꽤 괜찮은 여고생 쪽... 태연은 씨익 웃었다.


"너도 공부 징하게 안했지?"

"...응?"

"여기 넣는거 보면. 나도 징하게 안했거든."

"아..."

"그 학교랑 할머니 집이 되게 가까워서, 거기서 통학하려구."

"그렇구나.."

"무슨 과 넣어?"

"모기향 포장과..."

"으음. 나는 오징어 먹물과."


하찮구나, 둘 다.. 

태연은 장난스레 한숨을 쉬고, 수연은 이루 말하기 힘든 간질거리는 느낌에 입을 씰룩거린다.

뭔가 하찮은 대학에 그지같은 학과를 나와도 그저 함께라면 좋을 것 같아. 

작은 키이지만 느껴지는 다부짐에 수연은 코를 긁적거린다.


한시간 여 동안 지하철을 타고 가는 동안 둘은 핸드폰으로 게임을 했다.

리듬게임을 하는데 리듬감은 커녕 열아홉이 맞나 싶을 정도의 기력으로 손을 움직이는 수연 탓에 태연은 계속 웃겼다.

그렇게 둘은 학교 몰래 서로 가까워졌다.


"미영이 어때? 황미영."

"음.. 예뻐. 웃는것도 귀엽고."


황미영이 들으면 기절할 소리구나.


"너가 좋아하는 타입이야?"

"응? 아, 아니. 그런... 건 아니야."


수연은 자신이 태연을 짝사랑 한다는 걸 태연이 눈치 챘을 것만 같기도 했다.

그냥, 늘 그렇듯 지레 짐작이었을 뿐이다.

태연은 그것을 알고있음과 함께 수연이 동성애자라는 결론은 내린 것 같았다.


"나, 여자.. 를 좋아하는 건 아니야."

"정말?"

"응, 그냥.. 누굴 좋아하긴 하는데.."

"..."

"그게 어쩌다 보니 여자애인거지."


뭐지. 뜬금없이 얼굴이 붉어졌다. 예상치 못했던 솔직함에 태연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수연을 쳐다봤다.



-


"음료수 먹을래?"

"응, 뭐.."

"기달."


태연은 서류봉투를 쥐어 주며 맡기곤 편의점 안으로 들어갔다.


좋은 애라고 생각했다.

그냥, 느낌 자체가 썩 나쁘다고 생각되진 않았다.

그래도 사귀고 싶다거나.. 이런건 아닌 것 같았다.

그저 고등학교 끝자락에 생긴 새로운 인연이 반가운 것만 같았다.


편의점에서 나와서 둘러보는데, 수연이 없었다.

분명 길을 잘 아는 것 같은 얼굴은 아니었는데...

십 분 정도를 기다렸어도 보이지를 않아 짜증이 났다.


전화 해보고 싶은데 번호를 모르네. 아이씨....


찾아나서야했다. 

음료수 하나를 따 벌컥대고 마시며 사람이 드문 변두리 거리를 따라 걸었다.


빗방울 갑자기 톡톡대며 부슬거리기 시작했다.

내릴거면 시원하게 내리던가, 짜증나게 핸드폰 액정만 더럽힌다.

핸드폰을 가방에 넣고 뛰어 골목 앞 노래방 간판 밑으로 숨었다.


옷을 털고 욕을 씨부렁 거리던 찰 나, 

들었다.

읍읍, 하고 소리지르는 걸 애써 틀어막는 소리.

심상찮음을 본능적으로 느끼게 되는 소리가 태연에게 들렸다.


그리고 그 틀어막힌 소리가 누군가의 목소리와 비슷하다, 뒤이어 똑같다 라는 생각이 들자마자 손이 떨려왔다.


오싹한 느낌에 소리가 들리는 곳을 탐사하듯 찾아가자 소리의 진원지인 듯 한 비좁은 골목 코너 앞에 다다랐다.


흐느낌, 울부짖음, 아주 짧지만 억센 비명소리가 틀어막힌 소리. 

별에 별 소리가 코너를 돌아 들려왔다.

그리고 들리는 굵직한 남성의 무자비한 목소리도 들렸다.


"입, 다물어. 썅. 다리 벌려."


충격에 빼꼼 고개를 내밀 힘도 없이 반 쯤 튀어나와 본 광경은,

다리를 힘껏 모아 저항하는 수연의 허벅지를 

뻑 소리가 날 만큼 주먹으로 내려치는 모습이었다.


근육질이 우락부락한 체격도 아니었고, 그저 거리를 돌아다니면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의 남자였지만.

저 상황에선 아니었다.

태연은 몸을 움찔거렸다. 무서웠다.


수연이 거의 기절한 듯 싶을 때 쯤 정신이 번뜩했다.

뭔가를 해야했다. 뭐라도 해야했다. 

경찰에 신고를 할까, 하는 생각을 하는 와중에도 태연은 무기를 찾고 있었다. 

이런 동네에 경찰이 와봐야 얼마나 빨리올까, 하는 생각과 함께 두려움을 넘어선 분노가 태연을 움직이게 했다.


우먼 파워? 여자들의 힘?

전혀 아무것도 떠오르는 것 없이 그저 공격을 하기로 했다.

인간으로써의 도리를 다하기로 했다.

인간 대 인간으로써의 도리와 함께 수연을 향한 저의 도리였다.


내가 갈게, 기다려, 내가 갈게. 좀만 버텨.


문 닫은 철물점에서 버려 놓은 듯한 각목 하나와 형광등을 발견하고 앙 손에 들었다.


벌벌 손이 떨리고 무릎 뒤가 쓰려와도 어쩔 수가 없었다.


화가 났다라는 것 보다.. 무언가의 감정이 저를 움직일 수 밖에 없게 했다.




몰라, 몰라. 나 죽을지도 몰라. 씨발, 어떡해...






작가의 말

태연이와 수연이의 마음이 생기는 과정

그것뿐만이 아니라 성범죄라는 상황을 좀더 사실적으로 그리고 그것으로 인해 일상이 붕괴되는 과정 등을 담아내고 싶네요

조금 취향에 맞지 않으시거나 해서 반응이 좋지 않다면  연재 중지하겠습니다 

댓글부탁드려요~


사곤으로감춰둘 내용을 여기에 입력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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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2
ㅠㅠㅠㅠㅠㅠㅠㅠㅠ♥♥♥♥♥♥
9년 전
독자3
....엄청난 소재네요......작가의 말 을 보면서 이 팬픽의 전개가 여러 영화들을 떠오르게합니다. 작가님이 어떻게 가지고 가실지 쭉 보겠습니다
9년 전
독자4
2편 올라온거보고 다시보네요ㅠㅠㅠㅠ 연재계속해주세요ㅠㅠㅠㅠ
9년 전
비회원도 댓글을 달 수 있어요 (You can write a comment)
작품을 읽은 후 댓글을 꼭 남겨주세요,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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