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백] 언제까지나 | 인스티즈](http://file2.instiz.net/data/cached_img/upload/9/7/d/97dcc1267f3137e0014351a2d50dba2b.jpg)
(부제: 그대가 좋아하는 꽃)
그래. 아마 작년 이맘때였지, 아마. 중간고사 점수에 충격받으신 엄마가 네가 있던 학원으로 날 보내셨던 그 날이.
만약 그때 엄마를 말렸다면 나는 네가 있는 그 곳으로, 혹은 지금 우리의 집으로 오지 않을 수 있었을까.
"백현아, 나 옷 어때? 이상해?"
"아니, 별로. 괜찮은데."
"진짜? 다행이다."
"왜, 어디 나가?"
"응, 나 지금 은혜씨 만나러가."
부끄러운 듯 붉어지는 네 볼이 밉다. 한껏 올라가 기분 좋음을 표현하는 네 입꼬리도 밉다.
부드럽게 접히는 네 눈이 밉다. 거울이 있는 현관과 옷장이 있는 네 방을 몇 번이나 오가는 네 다리도 밉다.
하지만 웃는 네 얼굴이, 기뻐보이는 표정이, 한껏 들뜬 네 발걸음이 너무 좋아서 난 그냥 웃고만다.
"내가 데이트하는데 너가 왜 웃냐."
"내가 뭐. 너 눈 사시야?"
장난스런 네 물음에 마음이 붕 떴다가 데이트라는 말에 다시 추락한다. 너는 알까, 네 행동 하나하나에 이렇게나 영향을 받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갑자기 몰려오는 허망함에 눈물이 날 것 같아 괜히 틱틱거리며 방으로 들어왔다.
뭔지도 모르고 날 따라 방문 앞까지 따라온 네가 안절부절 못하는 목소리로 왜그러냐며 물어온다. 미안해, 찬열아. 너한테 추한 질투심을 보여주기 싫어.
몇십분을 그러고 있었을까, 약속시간이 다 됐는지 한숨 섞인 다녀온다는 네 인사가 들리고 문 닫히는 소리가 들린다.
그제야 마음이 놓여 침대 시트 위로 눈물방울이 떨어진다.
*
[금방 들어갈게 조금만 기다려!]
느낌표를 몇개나 쓰는 네 평소 말투와는 달리 바쁜지 조금 짧아진 네 문자에 입 안이 써진다.
차려놓은 저녁상을 다시 정리했다. 이럴거면 나도 경수 좀 만날걸. 대충 상을 치우고 쇼파에 앉아 습관처럼 네 문자를 다시 읽었다.
기다린다.. 찬열아, 나 계속 기다리고 있는데 언제쯤 올거야?
네가 오지 않을걸 알고 있다. 하지만 자연스럽게 드는 기대감은 어쩔 수가 없다. 너에게 변백현은 6년지기 친구였고, 나에게 박찬열은 6년된 짝사랑 상대였다.
우린 출발선부터가 다른 거야.
티비를 틀었다. 시간을 안 보고 틀어서 그런지 재미있는 프로그램을 하지 않는다. 뉴스나 봐야겠다.
"나 왔어, 백현아! 으, 밖에 완전 추워."
"밖에 많이 추워? 따뜻한 거라도 줄까?"
그러게, 옷 좀 따뜻하게 입고 나가지. 멋부리다가 얼어 죽어, 바보야. 옷을 갈아입을동안 나는 빠르게 부엌으로 가 따뜻한 코코아를 준비했다.
편한 옷으로 갈아입은 너에게 코코아를 쥐여주고 다시 쇼파에 앉았다. 다른 생각을 하고있어 자세히 못봤던 티비에는 아직도 뉴스를 하고있었다.
"고마워. 근데 너 지금 뭐 봐? 뉴스? 안어울리게."
"뒤진다. 조용히하고 코코아나 마셔."
[하나하키병으로 22살 김모양이 숨져 네티즌의 안타까움을 자아내고 있습니다.]
하나하키 병, 짝사랑이 깊어지면 꽃을 토해낸다는 병. 심하면 꽃이 목에 걸려 사망까지 간다는데, 왠지 모르게 본 적도 없는
숨진 김모양의 마음에 걸려 인상을 찌푸렸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조금 바보같다. 고백하면 될텐데."
".. 그러게."
가만히 널 올려다봤다. 부럽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마음껏 고백할 수 있는 네가 부럽고, 그 고백을 받을 수 있는 은혜라는 분도 부럽다.
티비에는 끝없이 김모양의 소식이 전해졌다. 나도 언젠가, 저렇게 되려나. 농담이지만 웃을 수 없는 말을 뱉으려다 다시 삼켰다.
"찬열아, 넌 무슨 꽃 좋아해?"
"나는 코스모스. 그건 왜?"
"아냐, 그냥. 나 들어갈게."
오늘따라 너와 함께 있기 힘든 마음에 방으로 도망치듯 들어왔다.
코스모스라, 만약 내가 병에 걸린다면 꼭 코스모스가 나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작게 웃었다.
침대에 누워 의미없이 익숙한 내 방을 훑어보는데 책장에 내가 널 좋아하는 마음을 담아 쓴 일기가 눈에 띄었다. 이사올 때 혹시라도 네가 볼까 다른 책으로 꽁꽁 숨겨뒀는데, 까먹고있었네.
책장으로 걸어가 일기를 꺼내 읽었다. 오글거리긴해도 너에 대한 순수했던 마음이 담겨있는 일기를 읽으니 부끄러우면서 서러워졌다. 왜 나는 발전이 없을까.
책을 넘기면 넘길수록 늘어나는 눈물자국이 내 마음을 후벼파는 기분이다. 지금은 많이 무뎌진 일들에 상처를 받았던 내가 보여 그 때는 참 여렸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윽!"
그렇게 한참을 읽었을까, 갑자기 안에서 뭔가가 올라오는 느낌이 들었다. 아까 먹은게 소화가 안됐나? 빠르게 방에 딸린 화장실로 뛰어가 변기를 붙잡았다.
"우, 욱! 켁, 큽!"
몇 번의 헛구역질 끝에 쏟아져 나온 것은 토사물도, 위액도 아닌 꽃이였다.
꾳?
변기 주변에 마구 흩어진 꽃들 중 하나를 집어들었다. 흰 꽃잎에 빨갛게 피가 묻어있는 코스모스였다. 나는 얼른 주변의 코스모스 중 피가 제일 묻지 않은 몇개를 집어들었다.
거실로 조심스럽게 나가보니 널 피하는 나에 빈정상했는지 네가 방으로 들어간 것 같았다. 난 들고온 꽃을 네 방 앞에 내려놓았다. 내 속에서 나왔지만 꽃은 꽃인지 생각보다 예쁘다.
"어, 은혜씨. 아직 안자죠? 나랑 얘기할 수 있어요?"
방 안에서 네 다정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가만히 네 통화내용을 듣고있는데 다시 욱하고 토기가 올라왔다. 화장실까지 가지 못해 침대 위에 토해버렸다.
희미하게 보이는 희고 붉은 코스모스들에 입가에 작게 미소를 띄우며 눈을 감았다.
코스모스라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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