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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L 

추억으로 점철된 관계 

 

 

 

 

 

A. 

 

 

 

1. 

아무리 특별하고 소중했다 해도 잊혀지면 의미가 없는 거라는 걸 깨달았다. V는 이미 반쯤 잊혀진 존재였다. 그 속에서 나는 V를 기억해내려 애 쓰고 있었다. 

 

2. 

이별을 늦춘다는 건 쓸데없는 고집이었던 것이다. 결국 해야 할 이별을. V를 보내 준 후엔 조금 울었던 것 같기도 하다. 이유는? 나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V가 잘 되는 꼴이 배 아파서 그런 건 아니었다. 

 

3. 

V는 그런 아이였다. 사람을 편하고, 즐겁게 만드는 재주가 있는 아이. V가 조금 이기적인 인간이었다면 나는 어땠을까. 아마 견디지 못하고 진작에 자릴 박차고 나와버렸겠지. 

 

4. 

V를 통해 꽤 많은 것들을 배웠다. 사랑하면서 구속하지 않는 법과 놓아 줄 줄도 알아야 한다는 걸 배웠다. 서로 지치지 않게 적절히 행동해야 한다고, 느끼고, 생각하고, 표현하면서 점점 사랑을 배우고 사람을 배웠다. 

 

5. 

멍하니 V의 얼굴을 되짚어 봤다. 생각이 나질 않는다. V의 본명도 자주 불렀는데 이젠 성밖에 기억이 안 난다. 선명한 건 오로지 V가 아파하는 모습, 그리고 우리의 이별. 

 

6. 

V에 의해 몇 번인가 감정 소모를 하고, 또 V에게 사랑 받으며 V를 사랑하던 때가 떠올랐다. V를 잊고 싶지 않았다. 참을 수 없을 만큼 머리가 어지러웠다. 보고 싶은 V에게. 

 

7. 

꿈에 V가 나타났다. 잘 지냈어? 묻는 말에 대답도 못 했던 것 같다. V가 웃으면서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온기가 전혀 없었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 없었다. 꿈을, 오래 꿨다. 

 

8. 

V는 그 치사한 꼴에 대해 별 말 꺼낸 적 없었다. V는 정의로웠고 나는 그러지 못했다. V의 본명이 가까스로 생각났다. 김태형. 이건 분명했다. 하지만 이번엔 내 이름이 생각나질 않았다. 

 

9. 

지나가는 TV 쇼 프로그램에 출연한 남자를 보고 V가 떠올랐다. 꼭 저렇게 생겼던 것 같기도 했다. 그가 TV속에서 부드러운 배경 안에 갇혀 내게 손을 흔들었다. L, 보고 있어? 로 시작하는 n개의 단어의 향연에 나는 그 편지 영상의 주인공이 나라는 것을 깨달았다. 

 

10. 

김태형은 내게 L이란 이름을 붙여 줬고, 자기 자신에겐 V라는 이름을 붙였다. 왜냐고 물었더니 우린 너무 닮아서 서로 이름을 돌리기만 해도 닮은 줄 알 거라고 했다. 나는 그 소리에 웃었던 것도 같았다. 모든 게 희미해졌다. 

 

 

 

0. 

안녕, L. 보고 있어? 내가 너를 떠나온 건 사실이지만 너를 떠나보낸 건 아니야. 우린 너무 닮아서 내가 너한테 L이라고 불렀고, 나는 V라고 했던 거 기억나? 나는 네가 아직도 L이란 사람으로 행복하게 살고 있을 거라 믿어. 이미 10년도 더 된 얘기지만 그래도 나를 아예 잊진 않았을 거라고 생각해. 넌 내 꿈에 아직도 자주 나오는데, 내가 먼저 찾아 갈 용기는 없더라. 난 너를 통해서 많은 걸 배웠고 네가 날 통해서 배운 것도 있을 거라고 확신하거든. 한때 이기적이던 나를 용서해 줘. 지금이라도 난 네게 한달음에 달려갈 수 있으니까, 가끔 보고 싶으면 내 생각이라도 해 줘. 아, 이거 너무 길게 뽑았는데요. 죄송합니다. 다시 할게요. 근데 이거 꼭 방송에 내보내 주셔야 돼요. 

 

 

 

 

 

B. 

 

 

 

오사카 밤은 꽤 상쾌했다. 건조하지만 신경 쓰일 정도는 아니었고, 밤거리는 한적했다. 명수는 한 번도 제 선택에 대한 후회를 한 적 없었다. 비행기를 타고 오는 동안에도, 공항에서 모자를 고쳐 쓸 동안에도 오직 태형의 사진을 되뇌이는 것밖에는 하지 않았다. 태형의 얼굴을 완벽하게 외운 후에는 다시 태형의 이름을 기억해 냈다. 

 

태형은 제 그 무식한 선택에 대해 하루에 골백번도 더 넘게 후회했다. 여린 존재의 무지함이 제 자신에게 어떤 영향을 줬는지 알면서도 그랬다. 명수는 보통의 존재들과는 달리 유약하고 여렸다. 그 의미가 남에게는 어떨지 몰라도 명수가 세상의 전부와도 같았던 태형 자신에겐 확실한 것이었다. 

 

꽃도 열매도 아무것도 없이 잎만 피워낸 나무들을 지나다 태형은 무심결에 뒤를 돌아봤다. 처음처럼 아무것도 없었다. 사람이란 게 애정이 없으면 죽어가는 건지 그랬다. 원숭이가 그려진 휴대폰 케이스 플립을 열었다 닫았다를 반복하던 태형이 셔츠를 단정하게 여몄다. 

 

가는 길에 꽃이라도 살까 고민하던 태형이, 조금 더 번화가에 가까운 곳에 도착하자 밝아진 배경에 눈을 찌푸렸다. 아마도 잘 찾아 왔더면 지금쯤 태형의 위치는 명수가 묵고 있다던 꽤 좋은 호텔 근처였다. 

 

 

[ 몇 층이에요? ] 

 

 

태형은 명수에게 문자를 보냈다. 몇 년이 지났는데도 아직 번호가 그대로다. 11층이란 답문에 태형은 엘리베이터로 향하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오랜만에 보는 명수는 어떨까. 아마 그대로겠지? 태형은 은근한 설렘을 안고 있었다. 11층에 도착해 엘리베이터가 열리자 보이는 그 인영을 태형은 제대로 보지도 않고 와락 끌어안았다. 

 

 

"형, 형은 아직도 그대로네요." 

"이거 좀 놓고 말하지." 

"싫어요. 내가 어떻게 형을 다시 만났는데. 형 다 봤죠? 내가 형한테 뭐라고 했는지." 

"뭐……." 

 

 

말꼬리는 늘이는 명수의 볼을 잡고 꾹 늘린 태형이 이가 훤히 드러나도록 웃었다. 야, 이거 놔라. 명수의 은근한 어조에 태형은 다시 명수의 등을 두 팔로 끌어안았다. 

 

 

"형, 우리 다시 만난 거 되게 운명 같지 않아요? 그런 의미에서 다시 사귀는 건 어떨까 합니다만." 

"내가 너랑 사귀느니 할복자살을 하겠다." 

"형도 여전하시네요." 

 

 

10년 만에 본 명수의 얼굴은 여전히 말갛고 예뻤으며 소년의 티가 났다. 형, 우리 맥주 한 잔 할래요? 그러던가. 오사카의 건조한 밤은 그렇게 익어갔다. 회전목마는 돌고 세상도 돈다. 

 

 

"근데 너 방송에서 나한테 반말하더라." 

"역시 다 본 거 맞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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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으ㅓ어어ㅓ엉ㅇㅇ어어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좋다 좋아 얼씨구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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