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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짐 Suga Daddy 

 

 

 

 

 

 

 

 

 

 

윤기는 머리를 탈탈 터는 소년을 유심히 쳐다봤다. 방금 샤워를 마치고 나와 침대에 걸터앉은 소년은 촉촉한 눈을 하고 윤기를 쳐다보고 있었다. 아저씨, 저녁 안 먹어요? 소년의 물음에 윤기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나이를 서른하고도 세 살을 더 먹었는데 윤기는 아직도 밥을 제대로 차려 먹을 줄 몰랐다. 집에서 제대로 반찬 챙겨 먹은 게 일 년도 더 된 일인 것 같은데, 이 발칙한 소년은 매 끼를 꼬박꼬박 챙겨 먹는 것으로 윤기를 괴롭히고 있었다. 

 

 

"먹어야지. 뭐 시켜 줄까?" 

"또 배달 음식이에요? 나 밥 먹고 싶은데." 

"정 먹고 싶으면 차려 드세요. 난 입맛 하나도 없다." 

"에이, 아저씨가 그러니까 여자도 못 사귀고 다리도 그렇게 얇은 거에요. 있는 걸로 대충 차릴 테니까 같이 먹어요." 

 

 

무슨 엄마도 아니도 한바탕 잔소리를 퍼부은 소년이 종종 걸어 부엌을 향했다. 소년은 소년이었지만 가끔은 엄마 같았고 가끔은 연인 같았다. 또 가끔은 친척 동생 같았으며 가끔은 질척하게 안겨드는 매춘부 같았다. 물론 소년이 그들처럼 진한 화장을 했다거나 특정 부위가 노출된 끈적한 옷을 차려입는 건 아니었지만, 소년 특유의 분위기가 윤기를 그렇게 매도한 것이었다. 

 

밍기적거리며 식탁 의자로 기다시피 해 온 윤기는 앞치마까지 하고서 부엌을 쏘다니는 소년을 지켜봤다. 냉장고에서 계란이나 별 좋지도 않은 고기를 잔뜩 갈아넣은 소시지를 꺼내 프라이팬에 올리고, 가끔 석진이 사다 주는 젓갈이나 엄마가 가져다 준 김치 같은 밑반찬을 꺼내 식탁에 펼친 소년이 찬장에서 햇반 두 개를 꺼내 전자레인지에 넣었다. 

 

물론 찬장에 있는 햇반을 사게 한 것도 소년이었다. 보통 때의 윤기는 끼니를 라면으로 대충 때웠으면 때웠지, 밥에 반찬까지 차려 먹을 대단한 위인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새삼스레 소년이 많은 것을 바꿔 놓았다는 걸 실감한 윤기가 눈으로 소년을 좇았다. 바삐 식탁에 밥을 올려놓고 또 저까지 뛰어가 수저를 챙기는 꼴이 영 주부 같다. 

 

소년의 동선을 쭉 그려내던 윤기의 앞에 마지막으로 젓갈 그릇이 놓였다. 앞에 한 앞치마를 벗어 옆에 접어 놓은 소년이 먼저 숟가락을 들었다. 아저씨 빨리 먹어요. 저를 살 찌워 잡아 먹기라도 할 셈인지 소년은 유독 제 일상에 관심이 많았다. 덕분에 전엔 담배도 자주 피웠는데 이젠 베란다가 쓰게만 느껴졌고, 생전 가본 적 없는 헬스 클럽도 가 봤다. 

 

그것들이 꽤 오래 지속되고 있다는 점이 가장 윤기답지 못한 점이었다. 윤기는 평소에 당구 치는 걸 좋아했지만 귀찮아서 자주 나가진 못 했고, 술을 좋아했지만 다음날 숙취에 찌들어 한 발짝 움직이기도 싫어하는 전형적인 아저씨였다. 물론 새해 다짐과 같은 다른 요인들도 있었지만 가장 큰 건 역시 소년의 탓이었다. 

 

 

"밥 안 먹어요?" 

"먹어야지." 

"아저씨 자꾸 굶고 그러지 마요. 어디 아픈 사람 같아요." 

"별로." 

 

 

윤기가 어깨를 으쓱하고 숟가락을 집어 들었다. 별로 믿기진 않았지만 소년은 요리 솜씨가 꽤 좋았다. 고등학생 주제에 김치찌개에 안 찢어진 달걀말이도 할 줄 안다. 윤기는 꼭 석진의 어린 시절을 보는 것 같아 감탄이 절로 튀어나왔다. 석진도 어렸을 때 요리를 꽤 좋아했었던 것 같았다. 

 

달걀말이와 소시지를 번갈아 깨작이는 윤기의 밥 위에 멸치 대가리 몇 개가 불쑥 얹어졌다. 소년의 짓이었다. 아저씨 반찬도 많이 먹어요. 말머리마다 붙는 아저씨란 단어가 굉장히 거슬린다고 윤기는 생각했다. 하지만 별 내색 않고 소년이 손을 댄 숟가락을 입으로 밀어넣었다. 

 

한 차례 폭풍 같던 식사를 마치고 나서 윤기는 거실로 나와 앉았다. 아저씨는 티비 안 보고 신문만 볼 것 같다던 소년의 말이 무색하게도 윤기는 스포츠 채널 애청자였다. 밤에 해 주는 야구 경기 정리 프로그램을 야근이나 회식 때문에 놓치기라도 하면 돈을 주고 다시 보거나 뉴스를 일일이 살피는 정도로 윤기는 야구를 좋아했다. 

 

그러고 보면 윤기가 야구는 꽤 재미있어 했지만 축구에는 영 관심이 없는 것 같다고 소년이 생각했다. 농구나 배구 프로그램에도 몇 번 채널을 고정 시킨 적이 있었지만 유독 축구만 하면 심드렁한 얼굴을 하고 티비를 끄는 것이었다. 그 까닭은 윤기가 어렸을 때 축구를 질리도록 해서도 있었지만, 피지컬이 따라주질 않아 축구를 그만 둔 탓도 있었다. 

 

윤기는 한참 야구 경기에 집중하다 문득 소년과 함께 산 지도 일 년이 넘어가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처음엔 마냥 수줍어만 하던 소년이 변한 것도 그 가운데 쯤이었던 것 같다. 이젠 가끔 제 등짝도 막 내리치지만 첫날밤 치르는 처녀 마냥 얌전하던 시절이 있었단 걸 떠올리곤 윤기는 자기도 모르게 웃었다. 

 

처음 소년과 만난 건 꽤 추운 날이었던 것 같다고 윤기는 기억했다. 집 근처 편의점에서 윤기는 손님, 소년은 알바생으로 몇 번 마주쳤던 것도 같았다. 조금 더 회상적인 말투를 하자면 그 날은 그 해 첫눈인가 두번째 눈인가 구분할 수 없는, 어쨌든 눈이 내리던 날이었다. 

 

담배를 사러 편의점에 간 윤기에게 금연하라며 발칙하게 말하던 소년은 새벽부터 윤기와 깡소주를 깐 후에 울었다. 처음엔 윤기도 그럴 생각이 아니었지만 소년이 슬퍼 보여서 달래 주다 벌어진 일이었다. 고등학교 졸업도 안 한 미자와 새벽부터 깡소주를 깐 건 윤기도 처음이라 조금 답답하긴 했다. 

 

종이컵에 가득 따른 소주를 맨 속에 들이킨 소년은 곧바로 윤기에게 제 슬픔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사실 나는 시설에 사는데 원장이 날 때렸다, 로 시작해서 끝은 빨리 시설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문장이었다. 윤기에게 거의 그 얘기를 토해내다시피 털어놓은 소년은 그리고 나서 편의점 테이블에 머리를 박고 쓰러졌다. 

 

그리고 나선 가끔 소년이 안쓰러워서 윤기가 먼저 몇 번 말을 걸었고, 두어 번 쯤 집에서 재워 준 이후론 소년이 먼저 윤기를 따라다녔다. 아저씨, 우리 같이 살면 안 돼요? 허공에 입김을 이만큼 불어넣으며 하는 말에 윤기는 어깨를 으쓱했다. 다시 생각해 보면 왜 그 제안을 수락했는지 알 수 없을 노릇이었다. 

 

소년과 같이 살게 되고 나선 윤기의 지출이 두 배로 늘었다. 학교가 마치면 집에 혼자 있을 소년을 생각해 최대한 일찍 퇴근했으며, 한 번도 거른 적 없는 회식 자리에서 몰래 빠져나오기도 했다. 그런 윤기를 모른 척 다 알고 있던 소년이 먼저 윤기에게 몸을 섞자고 했다. 

 

그 말을 들은 윤기는 처음엔 반신반의해 했다. 아직 딱히 이렇다 할 여자도 만나본 적 없고, 그렇다고 제가 호모 성향이 있다는 건 딱히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가끔 건조한 연애와 섹스를 즐겼지만 사랑한다거나, 뭐 그러진 않았단 말이었다. 그런데 소년이 먼저 저를 좋아한다며 안겨 오는 꼴이라니, 황당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결국 술에 취해 일을 저지른 후에 윤기는 확실하게 소년을 책임져야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이것 또한 소년의 계략 안에 있었던 일이지만 알아도 아무 상관은 없었다. 일단 소년을 안은 것도 윤기였고, 결과가 이럴 걸 알면서도 소년을 집에 들인 탓도 있어서였다. 

 

결과가 나쁘지 않았기 때문에 윤기는 꽤 만족했다. 가끔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게 거슬리긴 했지만 짜증이 날 정도도 아니었고, 꽤 달고 짠 연애가 매력적이기도 해서였다. 물론 연애 말고도 다른 이름을 붙이자면 셀 수 없이 많은 단어가 떠올랐겠지만, 몽실하고 따끈한 연애란 단어의 어감이 참 좋다고 윤기는 생각했다. 

 

방금 굉장히 제 자신과 어울리지 않는 생각을 했단 걸 깨달은 윤기가 한숨을 내쉬었다. 야구는 어제에 이어 제가 응원하는 팀이 이겼고 소년은 설거지를 끝냈다. 윤기는 소파에 등을 몇 번 비비다 옆에 앉은 소년을 쳐다봤다. 

 

 

"야구 이겼네요?" 

"엉. 요새 잘하더라." 

"오늘은 헬스 안 가요?" 

"귀찮아." 

 

 

소년과 나눈 대화가 꼭 오래 사귄 연인이나 부부쯤 되는 것 같다고 생각한 윤기가 속으로만 웃었다. 옆에 놓인 빨랫대에 빨래를 널어놓은 소년이 윤기의 옆으로 와 채널을 쭉 돌렸다. 분명히 소년을 데려와 먹여 주고 재워 주고 한 건 저였는데 오히려 제가 얹혀 사는, 혹은 도움 받는 기분이 들었다. 

 

윤기는 묘하게 이질감을 느끼며 소년의 무릎을 베고 누웠다. 꽤 일상적인 행동이었다. 한참 채널을 돌리던 소년은 리모컨을 내려놓고 티비에 눈을 고정시켰다. 마침 방송해 주는 홈쇼핑이 꼭 제가 예전부터 갖고 싶던 상품이라 소년은 윤기에겐 눈길도 안 주고 화면 아래에서 훅훅 지나가는 상품평과 전화번호, 그리고 혜택을 확인하기에 바빴다. 

 

생각보다 해당되는 할인 조건이 많다. 게다가 이미 저번부터 찜해 놓은 터라 다른 구성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물건을 지르기로 마음먹은 소년이 전화기를 들었을 때 윤기가 나지막이 물었다. 

 

 

"너 저거 필요해?" 

"……." 

"채소 즙? 건강 안 좋냐?" 

"……." 

"차라리 옷을 산다면 말리진 않을게." 

 

 

소년은 천천히 수화기를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저런 무섭게 논리적인 아저씨 같으니라고. 속으로 투덜대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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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슈짐이라니.................................... 작가님 사랑해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슈짐행쇼 ㅋ
9년 전
독자2
츤데레야 ㅠㅠㅠㅠㅠㅠㅠㅠㅠ윤기야ㅠㅠㅠㅠㅠㅠㅠ 슈짐영원히행ㅇ쇼!
9년 전
독자3
아우 윤기야ㅠㅠㅠㅠㅠㅠ 윤기 이 아저씨야ㅠㅠㅠㅠㅠㅠ 이런 슈짐 너무 좋아요ㅜㅜ 밥 챙겨주는 지민이도 귀엽고ㅠㅠㅠㅠㅠ
9년 전
독자4
아 문체가 너무 좋아요 읽는 내내 뭔가 따듯하달까(?) 암튼 슈짐이라니 작가님 저 죽어요.. 엉엉..
9년 전
독자5
ㅠㅠㅠㅠ슈짐이란 글자에 당장 들어와보니 이렇게 달다리한글이ㅠㅠㅠㅠㅠㅠㅠ넘 죠아요ㅠㅠ
9년 전
독자7
ㅠㅠㅠㅠㅠㅠㅠ슈짐ㅠㅠㅠㅠㅠㅠ비람직합니다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9년 전
독자8
ㅜㅜㅜㅜㅜㅜㅜㅜㅜ꿀잼이다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신알신하고가여ㅜㅜㅜㅜㅜ
9년 전
독자9
슈짐 진짜.. 어후 츤데레 미늉기 아저씨..
9년 전
독자10
헐 슈짐ㅠㅠㅠㅠㅠㅠ와 지민이....바람직하네요ㅠㅠㅠㅠㅠ 민윤기도 진짜ㅠㅠㅠ
진짜 좋아요ㅠㅠㅠㅠ 잘 보고갑니다ㅠㅠ

9년 전
독자11
아 이런 일상적인 거.너무 좋아여 ㅠㅠㅠㅠㅠ 설레
9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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