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씨발스러운 날씨에 기분이 나빠져 홧김에 집을 나오긴 했는데,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굴려댄 눈동자가 대한민국 국경을 넘어 저 먼 바다 섬까지 도래할 것 만 같았다. 그만큼 길은 끝이없고 갈곳은 무한한데 갈 곳이 없었다. 하늘도 무심하고, 가출하는 아들 잡지도 않은 어머니는 더 무심하시지. 어제 본 야동 주인공 서양 형아의 정자만큼 솟구치는 짜증을 견딜 수 없어 애먼 펩시 콜라 깡통만 걷어찼다. 이새끼도 코카콜라에 밀려서 서러울텐데… 같잖은 동정심이 들어 그 알루미늄 덩어리에게 조금이나마 미안해졌다.
엄마는, 엄마는 씨발 아무것도 모르면서. 애매하게 늙은 나의 어머니는 사춘기 소년의 마음을 전혀 헤아려주지 않았다. 말로만 이해한다, 이해한다. 그녀와 싸움판을 치룰때면 나는 그녀 얼굴 곳곳에 그어진 세월의 흔적들을 주시했다. 그것은 곡선이기도 하고 올곧은 직선이기도 하고, 가끔은 조금 예뻐보일때도 있었다. 이런면에서 도경수 긍정적인건 알아줘야 해. 주름을 예쁘게 보는 사람이 몇이나 있겠어?
얼마전에 헤어진 백희가 선물했던 깔끔한 지갑 안에는 깔끔하게 이만원이 끼워져 있었다. 접혀있는 지폐의 정 중앙을 가로지른 쇠막대가 오늘따라 더 날카로워 보여 매끈한 표면을 엄지로 쓸었다. 지문의 고랑 사이사이 쇠막대의 한기가 서려 이팔청춘 혈기왕성한 뉴런은 촉각을 병신같은 뇌로 빠르게 전달했다. 울 마마 마음도 이런 꼬챙이에 찔렸으려나. 괜히 엄마를 동정해보려 애를 썼다. 나같은 개새끼 꼴통을 낳은 죄. 돈이 없으니 그냥 항복하고 싶었다. 엄마를 동정하고 용서한다는 허무맹랑한 핑계로 귀여운 막내 아들의 재귀를 꿈꾸고 싶었다. 근데 남자가 존심이 있지. 나는 결국 이만원을 빼 들었다. 정처없이 걸어온 나의 눈 앞에 있는건
“오백 사우나? 뭐야 이름 좆병신같다.”
나는 호탕하게 하하 웃었다. 그리고 주위를 살폈다. 아까와 같이 눈동자를 휘적댔으나 전과 같은 이유는 아니고 탁한 흰자속에 쌓여있는 흑갈색 눈동자는 일분 일초를 더할수록 요란하게 좆병신 같은 사우나의 입구를 향해 갔다. 발걸음 또한 가만히 있지 않고 살금살금 어설프게 오래된 사우나의 문 앞으로 움직였다. 「PUST, 눌러주세요」네가 그렇게 원한다면 눌러주도록 하지. 눈치를 보는 주제에 무언갈 짓눌러 내린다는 것에 쾌감을 느낀 건 정말 눈 깜박할 3초 였고 나는 관용을 베풀어 버튼새끼를 위로하듯 짧게 손바닥으로 비벼주기도 했다. 큰 사람이 되려면 적당한 선행은 필수니까. 나름의 현대 향을 풍기는 유리문이 벌어졌다.
꽤 묵직하고 또 바래진 파란 찜질복위 쓰여진 사우나 이름이 좀 쪽팔려도 여기서 내가 이 찜질복이 가장 잘 어울리는 것 같았다. 짧은 파마머리 아줌마도 온 찜질방을 싸돌아다니는 철없는 어린아이도 촌티나는 굴림체를 피할 수 없었다. 나는 얇은 매트를 깔고 발라당 누워 오세훈에게 카톡을 보냈다. 후끈한 사우나의 열기 때문인지 손에 자꾸 땀이 배어나와 멍청한 휴대폰은 엉뚱한 문구를 적어내려갔다. 그보다 더 멍청한 나는 멍청한 휴대폰을 탓했다.
나는 도라에몽의 타임머신을 타고 동심으로 돌아가 불가마에 들어갔다가 또 얼음방에서 혼자 깽판쳤다가 다시 불가마에 들어가 행패를 부리며 병신같이 놀아댔다. 나는 분명히 신났었다. 그리고 지금도 조또 신나고. 찜질에 집중하며 흐르는 땀으로 인해 쾌감을 느끼는 이시대의 중장년층들은 미성숙한 소년을 손가락질 하기 바빴다. 열리고 닫히는 불가마 문에 자신들의 땀이 한 방울이라도 식을까 노심초사 구석탱이에서 육두문자를 씹기 바빴다. 그것은 부모 욕, 사우나의 관리 실태 등의 이야기까지 잉크 번지듯 퍼져 어른들의 심심찮은 요기 역할을 야무지게 해냈다. 생애 첫 가출의 폐해, 부모곁을 떠난 미성숙 청소년의 불안. 도경수를 수식할 말들은 많았다. 올해로 도경수 스물, 딱 스물이 되던 그 해에. 아직 교복을 벗지 못 한 채.
모두가 잠든 시각 나는 아무도 없는 안마 의자에 털썩 앉았다. 벗겨진 가죽의 기괴한 촉감이 소년의 부드러운 다리털과 마찰하며 생경한 느낌을 선사했다. 이 짧은 안마에도 수입을 놓치지 않으려는 사우나를 원망하며 어느새 수면에 빠진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내가 꽤 시끄러운 소음에 쌓여있었다는 것 과, 내가 진짜 우리 김여사와 대판 싸우고 홧김에 집을 나와 이지경 이꼴에 이르렀다는 것, 아 시발 나 이러다 평생 집에 못 들어가는 건 아닌가. 뒤늦은 후회로 머리통을 부여잡았다. 드라마에선 이게 존나 응급처치 인 것 처럼 굴던데. 아무것도 변한 건 없었다.
요란한 텔레비전도 쉴 새 없이 열을 내는 형광등도 모두 잠든 시각 홀로 구석진 곳에서 영롱히 빛을 발휘하는 곳을 나는 고개를 돌려 주시했다. 그 작은 빛 위로 비추어 지는 간판에 매점이라고 쓰여있던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그 빛을 반사해 빛나는 양파링을 우상이나 되는 것 처럼 올려다 보았다. 무언가 나는 네 발로 서 있는 것 같기도 했고, 매끈한 턱 위 아밀레이스가 줄줄 흐르는 것 같기도 했다. 손을 뻗고싶다. 봉지를 뜯어 나의 건강한 이로 저 짭짤하고 귀여운 양파링을 농락해주고 싶다.
아. 씨발. 뭐야.
짧은 시간 날아와 내 머리를 강타한 것은 남탕용 목욕탕 키였다.
“어떤 새끼야.”
인기척 없이 날아온 목욕탕 열쇠의 끝에는 영롱한 사우나 매점 안 유약한 소년이 낄낄대고 있었다. 나는 순간 헉 했다. 여잔 줄 알고. 예뻐서.
낄낄대던 멀건 낯짝의 이목구비가 움직임을 멈추어 다시 표정을 굳혔다. 나도 그를 따라 표정을 굳혔다. 소년은 내 굳은 표정을 보고 실소를 터뜨렸다. 나 도한 그를 따라 작게 웃었다. 소년은 다시 표정을 굳혔다. 그럼 나도 표정을 굳혀… 아니 이게 뭐하는 뻘짓이야. 정신을 차리고 생각해 보니 견고한 쇠막대로 맞은 머리 한 부분이 아려왔다. 절로 욕이 나왔다. 그림같던 소년이 입술을 오물댔다. 솔직히 씨발 나는 그것밖에 안 보였다.
“어디서 수작을 부려.”
“…무슨 개소리야.”
“이번엔 다행인 줄 알아라. 다음번엔 너 과자 훔치는거 몰래 다 찍어서 경찰 넘길 거니까.”
“아니 시발 이게 무슨,”
“딱 봐도 집 나온 고딩 같은데. 부모님 속 썩이지 말고 곱게 집 들어가라. 형 바쁘다.”
“너 지금 내가 과자 훔…”
“훔쳤다고 생각하는 거냐고? 병신아, 당연하지. 너 같은 새끼들 수도없이 봐 왔어. 그러곤 꼭 그딴 말 지껄이더라. 형이 눈 감아 준다는데 왜 성을 내. 용서를 마다하는 미친놈이 있나.”
“시발 용서고 뭐고 훔칠 생각도 없었다니까 니가 엑소냐 초능력 써서 내 마음을 읽게? 너야말로 어디서 개수작이야 어이가 없어서 진짜”
“미친놈이 말 다했냐?”
사우나 매점의 유약한 소년을 노려봤다. 그도 이제 더 이상 오묘한 빛을 내뿜는 존재가 아니였다. 덧없는 말싸움 속 소년은 작은 악마와도 같은 형상을 띠고 있었다. 쳐진 눈꼬리가 유난히 올라가 보이고, 입술도 콧망울도 유난히 미워 보였다. 정갈한 갈색 머리통 위 깜찍하게 씌워진 양 모양 수건이 마냥 어린아이 같기도 했지만 성이나서 한 개도 어여삐 보이지 않았다.
뭘 잘했다고 그렇게 야무지게 사람을 훑어대는지, 백마디 나누지 않아도 그 유아독존과 자존심, 성깔과 예민함을 유추할 수 있었다. 나는 진짜 똥 씹은 것 같았다. 여성스레 다리를 꼬고 휴대폰을 만지작 대는 꼴이 답답해 등을 돌려 다시 자리로 걸어갔다. 빌어먹을 사우나 소년이 선사한 포만감에 어쩔 줄 몰랐다. 욕을 실컷 먹은 덕분에 배도 안 고팠고 오래 살 것도 같았고 좆같았다.
그와의 휴전을 암시했던 등은 애매하게 푹신한 사우나 매트에 눕혀져 나름의 휴식을 취했다. 나 또한 잠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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