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여보세요.”
-어디야.
“가고 있어. 왜?”
-오는 길에 성규 형 좀 데리고 와라. 혼자 나갔어.
“어디로 갔는데?”
-몰라. 내 전화 안 받아.
“알았어. 일단 끊어봐.”
-응.
우현은 마음이 무거워졌다. 성규의 번호를 검색하고 통화 버튼을 누르려는데 잠시 망설여졌다. 아까 남자에게 들었던 그 말 때문이었다. 가슴이 턱 막히는 기분이었다. 무언가 자신에게 큰 짐이 주어진 듯 불편하기도 하였다.
우현은 심호흡을 한 번 크게 하고는 통화 버튼을 눌렀다. 컬러링도 없는 무미건조한 통화 연결음이 이어지자 우현은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차라리 받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자마자 익숙한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들려왔다.
-여보세요.
“.....어, 형.”
우현은 괜찮은 척, 아무 일 없는 척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성규는 낮고 피곤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왜.
“어디야. 내일 회의 가야지. 나, 가는 길에 같이 들어가자.”
-싫어.
“….”
어느새 숙소 앞에 다다른 우현은 다 왔다는 택시 아저씨의 말을 듣고 돈을 지불한 뒤 택시에서 내렸다. 그때까지 성규와 우현 사이에는 아무 말도 오고가지 않았다. 우현이 차 문을 닫자 택시는 금방 출발했고 성규는 전화기 너머에서 낮은 한숨을 내쉬었다.
-너 먼저 들어가.
“.....같이 들어가.”
-그냥 들어가, 좀.
“할 얘기 있어. 만나.”
우현은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성규는 조금 뜸을 들이다가 한숨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내일 하자.
“오늘 해야 돼.”
-남우현. 그만 해라. 제발.
“형이나 그만 해라. 좀. 얘기 좀 하자.”
-나, 힘들어.
“….”
우현은 아파트 담벼락에 기대어 전화기에 귀를 기울였다. 마치 자기 자신이 땅으로 푹 꺼지는 느낌이었다. 자신에게 넘겨진 엉킨 실타래를 어디에서부터 풀어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우현은 전화기를 들지 않은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성규는 애써 차분한 어조로 말했다.
-다음에 하자. 우현아.
“형.”
-응.
“나도 지금 엄청 힘들거든. 뭐부터 시작해야 할지. 갑자기 막 한꺼번에 나한테 떨어졌는데. 그게 뭔지. 그게 너무 많아서. 복잡해서.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결해야 될지 모르겠어. 근데 있잖아. 다 나한테 그런다. 왜 기억 못하냐고. 기억이 하나도 안 나는데 있잖아. 왜 모르냐고 나한테 막 그래. 그럼 나보고 어쩌라는 거지? 하나도 기억이 안 나는데. 모르겠는데 나보고 어쩌라고! 씨발! 갑자기 자고 일어났는데 이상한 데 와 있고. 모르는 사람들이 왜 자기 모르냐고. 씨발, 그러는데. 그러는데 어떤 남자가 와서. 나한테 죽어야 나갈 수 있대. 어? 죽으래, 나보고. 그래, 그러면 끝나지. 끝나는 건데. 그럼 형, 아니, 넌 어떡하냐고. 이대로 끝나버리면 이제 넌 못 보는 건데 그건 싫단 말이야. 다시 돌아가면 넌 이미 없는 사람인데. 그 사실이 너무 싫어. 무서워. 나 어떻게 해야 돼. 어? 나 어떡해.... ”
-….
“맨날 그렇게 피하지만 말고 대답 좀 해봐. 내가 뭘 그렇게 잘못 했는데. 왜 그러는 건데. 기억이 하나도 안 나니까. 난 모르니까 좀 말해 줘봐. 응?”
-우현아.
“응.”
-미...
그때, 전화가 끊기고 우현의 휴대폰이 꺼졌다. 우현은 이미 배터리가 닳아 꺼져버린 핸드폰을 내려다보다가 제자리에 주저앉아 버렸다.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 나왔다. 잃기 싫었다. 성규도, 자신도. 하지만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세상이 그랬고, 그의 운명이 그러했다.
우현은 눈물 때문에 흐린 눈으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먹물을 부어놓은 듯 까만 하늘에는 마치 우현을 위로하기라도 하는 듯 별들이 무수히 많이 빛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우현의 시야에 익숙한 얼굴이 들어왔다.
“형, 여기서 뭐해?”
우현을 내려다보며 성종이 놀란 얼굴을 하였다. 우현은 눈물을 닦고 말없이 성종을 올려다보았다. 성종은 자신의 옆에 서 있던 여자에게 난감한 얼굴로 뭐라 귓속말을 하였다. 그러자 여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성종과 인사를 하고는 반대편으로 사라졌다. 성종은 한숨을 푹 쉬더니 손을 뻗었다. 우현은 성종의 손을 잡고 일어났다. 성종은 우현의 바지를 털어주고는 그의 손을 잡았다.
“들어가자. 형네 숙소 몇 동이었지?”
“몰라.”
“뭐?”
성종이 어이없다는 얼굴로 우현을 바라보았다. 우현은 팅팅 부운 얼굴로 말했다.
“기억이 안나.”
성종은 한심하다는 얼굴로 우현에게 말했다.
“아니, 술을 얼마나 많이 마셨길래 자기 숙소를 기억도 못해.”
“….”
“아휴, 다른 형들은 어딨어?”
“숙소.”
“기다려 봐.”
성종은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잠시 정적이 흐르고 반가운 목소리로 성종이 말했다.
“성규형, 어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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