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am B. 헝거게임]
『김한빈네꽃밭』
아무도 기다리지 않고, 기대하지 않는 추첨날이 다가왔다.
아침을 알리는 서벅서벅한 빗자루 소리에 눈을 뜨니, 익숙한 천장과 옆에서 곤히 자고있는 종대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인상을 깊게 찌푸렸다. 종대가 울던 모습이 자꾸만 눈에 겹쳤다.
윤형이에게 말해두었지만, 걱정되는 건 사실이다. 유려되는 모습과 불안증세는 어느덧 호전되었다고 하지만...
이불을 약간 끌어모아 이 차갑고도 아늑한 집의 온기를 더 느끼고 싶었다.
추첨날의 전날, 시장을 다녀왔다.
마지막으로 해주는 저녁과 식량, 그리고 물품들을 챙기기 위해서 쭈뼛거리며 시장문을 열었다.
쾌쾌한 냄새와 다르게 북적거리는 사람들, 그리고 여기저기서 거래되는 물건들이 내 눈길을 사로잡았으나 빨리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에
종이에 자그맣게 적어놓은대로 집어들었다. 가장 구석진 곳까지 빠른걸음으로 걸어가며 가격도 확인하고.
가장 후미진 곳에서 어떤 할머니가 파시던 악세사리에 흥미를 가질줄은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할머니는 다른 상인들과 다르게 부들부들 떠는 손길로 자신이 내놓은 장신구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아무말없이 툭툭 먼지를 터는 모습, 수수한 손짓이 나름의 관심을 유발하게 했으니까.
할머니 옆에 있던 채소가게를 지나고 장신구를 힐끔 보았다. 딱 봐도 낡아보이는 것들과 벗겨진 금칠들이 주를 이루었다.
멍 하게 서있던 나를 손길로 이끈것도 할머니였다. 할머니는 나긋한 목소리로 구경이나 해보라며 씩 웃었다.
천천히 부스럭거리며 장신구를 담아놓은 통을 휘저었다.
"아가씨, 그건..."
"이건 뭐죠?"
손바닥에 올려놓아도 작은 증표가 두 손 가득들어왔다.
할머니는 멈칫하더니, 그 중 드문드문 금이 섞인 것을 빼시면서 중얼거렸다.
"...은색의 증표."
"은색의 증표?"
"정확하게 말하자면 실버블레스쪽 사이에서 신을 숭배하던 유일하게 남아있던 어깨박이 문양들이야."
"그런 사람들이 아직도 남아있나요."
"지금은 보잘것 없을 수도 있다네. 하지만..."
할머니는 내 모습을 한번 슥 훑고 기분나쁘게 웃었다.
"아가씨가 가져가도 괜찮을 것 같아..."
"..."
"조만간 파도가 덮쳐올 것이군."
둔탁한 총소리와 대포소리가 하늘을 찔렀다.
이제 2시간 뒤면 광장에 사람들을 모으고, 추첨을 한다. 그 사실이 매번 받아들이면서도 괴로웠다.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사람들의 축복을 받으며 억지로 끌려가는 건, 보는사람도 가는사람도 동시에 비통했다.
종대와 아침식사를 하면서 어제 그 할머니가 준 어깨박이 문양을 기억해냈다.
치렁치렁하지도 않고 누구나 알맞게 쓸수있는 그런 장신구였다. 특히나 어깨박이는 말로만 들었다.
먼저 씻는다는 종대의 말을 뒤로하고 1년만에 다시 꺼내놓는 옷을 찾아냈다.
매번 헝거게임 추천을 할때마다 나와 종대가 입던 옷은 몇 년이 지나도 같은 디자인과 같은 소재였다.
빡빡 씻어내는 몸의 재와 머릿결, 얼굴을 단정히 하고 내가 제발 걸리지않기를 기도하면서.
눈을 천천히 깜빡이고 심호흡을 했다. 종대의 말이 틀렸을 것이다.
하지만 불현듯이 스쳐지나가는 할머니의 표정과 말. '조만간 파도가 덮쳐올 것이다.'
대체, 무슨 말인거죠?
"엄마, 다녀올게요."
3일동안 보지못한 엄마의 표정은 가관이였다. 깊게내려오는 다크써클에 움푹패인 몰골, 쪼그라든 입술과 핏기잃은 피부.
종대의 손을 꼭 부여잡고 엄마에게 작별인사가 될지도 모르는 말을 건넸다.
종대는 내 뒤에 숨어서 고개만 까닥거렸다. 엄마의 표정이 미묘하게 굳어졌다.
잘 될거야. 엄마는 속삭이듯이 말했다. 너희가 걸리더라도 나는 울지않을 게다. 정말이야.
엄마의 비정상적인 사고에 진절머리가 난 건 오래전이다. 난 익숙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흘려들었다.
"확률의 신이 너희의 편이기를."
엄마는 다른 아줌마들과 올 모양이였다. 차가운 종대의 손을 여전히 잡은채 정부가 오라고 하는 곳인 광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다시한번 둔탁한 총소리가 두어번 울려퍼졌다. 올해로 10살이 된 아이들은 겁먹은 얼굴로 두 귀를 막으며 주저앉았다.
하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은 멍 하니 광장만 바라보며 터벅터벅 걸어가기만 했다.
광장을 지나 10분만 좀더 걸으면 내가 자주가던 숲속이 나오는데. 이 길을 항상 기억해두자는 의미로 세게 짓밟고 갔다.
종대는 점점 발걸음이 느려졌다. 차가운 겨울인데도 이상하게 호흡이 점점 빨라졌다.
"ㄴ, 누나."
"..."
"나... 못가겠어..."
"그런 소리하지마."
"진짜란말이야. 나 못가겠어... 살려줘, 살려줘...!"
급기야 종대는 울음을 터뜨렸다.
크게 울지는 않고, 무서워서 우는 공포어린 울음에 모두들 힐끔거리며 딱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저 자식들, 자기일이 아니라고 나몰라라 하는거다. 순간 기분이 매우 나빠졌다.
주머니속에 넣어두었던 어깨박이를 꺼내며 종대와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잠시 무릎을 굽혔다.
"종대야."
"누나... 나 부탁이야."
"안돼. 이건 어쩔수 없어."
"..."
"대신 이걸줄게. 이걸 갖고있으면, 내가 널 보호해줄게."
단정하게 빛이나는 어깨박이를 종대에게 건넸다. 아직 15살인 터라 좁은 어깨를 갖고있는 종대에게는 너무나 버거워보였다.
눈앞에 물이 차서 숨을 약간 멈추고 종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종대야, 누나믿지? 누나가 구해줄게. 너무 무서워하지마. 누나가 있어. 걱정하지마.
이 어깨박이가 너한테 행운을 줄거야. 누나가 믿어. 무서우면 이걸 꽉 잡아. 아무한테도 들키지말고, 혼자서.
"어이, 거기 너!"
"..."
"빨리와!"
정부의 사람이 거칠게 소리쳤다. 종대는 울음을 그치고 조금 진정된 얼굴을 가졌다.
내가 준 어깨문양이 위안이 됐는지, 계속해서 쳐다보며 나와 함께 걸었다.
광장의 바리게이트가 가까워질 수록 쿠웅 거리는 심장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려왔다.
종대의 손가락에 전기를 일시적으로 통하게 해서 피를 내는 모습을 보고 나도 손가락을 내밀었다.
붉은색 피가 흐르는 모양에 감시관들은 감정없이 종이에 푹 누르고 가보라며 고개짓을 했다.
성별이 다른터라 종대와 멀어졌다. 아마 윤형이가 데려갔을테지.
터벅터벅 걷는 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온다. 사람들은 모두 질린다는 얼굴을 하며 억지로 온것을 티냈다.
입술을 잔뜩 굳힌채 시선은 앞쪽만 바라보고 있었다. 종대쪽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앞으로 시선을 옮겼다.
철컥철컥 거리는 소름끼치는 소리가 빙 둘러싼 정부의 사람들 손에서 들려왔고, 웅장한 음악이 울려퍼지기 시작했다.
새하얀 가면과 갑옷으로 둘러입은 사람들. 아니, 사람들이 아니다. 그냥 무기다.
웅장한 음악과 함께 나오는 커다란 화면. 커다란화면에는 굵직한 남자목소리가 경이로운 목소리로 읊조리고있었다.
자극적인 장면들이 하나둘씩 스쳐지나가고, 잔인하게 죽이는 모습과 더불어 피를 그대로 노출시키고 있었다.
[Hunger Game!]
[캐피톨의 지원을 받아 운영하는 헝거게임, 94주년을 맞이하여 이번 지역은 대한민국이 선정되었다.]
[이태껏 우승자들의 화려한 후기를 보았는가? 그들은 칭찬받아 마땅하다. 우승자라는 이름 아래에 정의로운 모습을 보여주었노라.]
[모두들 박수를 보내라. 우승자가 되고싶은가? 그럼 이겨라.]
[모두에게 열려있는 행운의 관문! 올해의 행운은 누가 거머쥘 것인가! 환호하라, 시민들이여!]
[그대들에게 행복한 헝거게임 시즌이 되기를!]
[확률의 신이 당신의 편이기를!]
화면은 잠시 검은화면이 되었다가, 다시 여자의 모습이 나왔다.
단상을 비추고 있었다. 여자는 우리 지역의 시장이였다.
괴상망측한 화장을 하고, 온 몸이 꽃무늬로 둘러싼 옷을 칭칭 동여맨채 가증스러운 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손짓도 얼마나 여상스러운지. 눈을 깜빡거리며 볼 때마다 여자의 표정은 호호, 웃으며 손을 흔들고있었다.
"행복한 헝거게임!"
"..."
"확률의 신이 당신의 편이기를."
"..."
"여러분, 안녕하세요? 여러분의 시장, 앨리스 리예요."
"..."
앨리스 리는 뻘쭘하지도 않은 모양이였다.
"올해로 94주년을 맞이한 헝거게임에 우리나라가 선택된 것은 크나큰 영광이라고 생각합니다만."
"..."
"추첨의 날까지 기다려온 사람은 없지않겠죠?"
"..."
"흐흥, 모두들 기뻐하시길. 우리 시를 대표할, 아니 우리 지역을 대표할 두 남녀를 뽑아야하니까요."
앨리스 리는 꺄르륵 웃어대며 기대만빵이라고 지껄였다.
"정말 매우매우 기대되요. 우리 지역을대표할 이번의 영광스러운 두 남녀는 누구일까요?"
"..."
"흐흥, 뽑아봅시다."
요상한 구두를 또각또각 옮기며 손짓은 굉장한 여우짓으로 살랑살랑 걸어온다.
고민하는 척을 하더니, 동그란 투명한 통 속에 손을 푹 집어넣어 잔뜩 휘젓는다.
마치 꿀통을 휘젓는다는 것처럼.
그리고 하나를 뽑아들었다.
"...흐음."
"..."
"남자가 먼저나왔네요."
"..."
"김, 종대군?"
종대 쪽으로 눈을 돌렸다.
종대는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단상을 쳐다보고있었다.
주변 아이들은 힐끔거리며 종대로부터 멀어지고 있었다.
경멸의 눈빛과 내가 걸리지 않았다는 안도의 눈빛이 섞여 종대로 향해있었다.
종대는 떨고있었다.
"김 종대군? 어디있나요?"
여자는 눈을 가증스럽게 돌리며 콧소리를 뿜어냈다.
정부의 무기들이 빠르게 종대쪽으로 다가서며 총구를 들이밀었다.
종대는 아..아 거리며 숨넘어갈 듯한 호흡을 삼키지못하고 있었다.
총구를 들이밀어대는 정부의 무기들이 보는 사람마저 경악을 자아냈다.
"누, 누나!"
"종대야!!!"
"살려줘!"
"종대야!!! 김종대!!!!"
"살려줘, 살려줘!!!"
"김종대!!!!야, 야!!! 비켜봐, 비키란 말야!!!!"
다른사람들의 만류에도 나는 종대만 바라보고 그 쪽으로 달렸다.
종대는 울먹거리며 힘껏 저항하고 있었다.
어깨박이가 힘없이 그의 바지주머니에 꽂혀있었다.
말 그대로, 눈이 뒤집힐 것같았다. 워낙 겁도많은 아이인데 살인가르쳐서 뭘 할려고할까.
"이런 망할 새끼들아!!!!"
"..."
"젠장, 더러워서 내가한다. 내가해!!!!"
"..."
"김종대 대신, 내가 한다고!!!!"
헉.
모두들 입가를 틀어막았다.
앨리스 리는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이건 무슨상황인지 파악을 하고있었다.
종대를 거세게 잡아쥐던 손길들이 천천히 풀렸다.
아픈 싸한 공기들을 몰아쉬며 저벅저벅 종대에게 다가갔다.
정부의 무기들은 힘없이 떨궈져 나갔다.
종대는 눈만 껌뻑거리며 입가를 덜덜 떨었다.
"김종대, 들어가."
"...이런, 지원자가 나왔군요. 여자 쪽에서 뽑을 필요가 없겠네요."
"..."
"지원자는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인데..."
이리와요, 라고 손짓하는 여자의 목소리에 뒤늦게 소리치는 종대를 뒤로하고 빠르게 걸어나갔다.
가면 안됀다며 만류하는 종대의 높은 목소리가 오늘따라 쿡쿡 찌르는 느낌이였다.
입술을 세게 깨물고 주먹을 꽉 쥐었다. 나도 사람인지라 몸이 덜덜 떨려왔다.
누나, 누나! 누나 가지마! 누나!!!!
나를 자꾸만 부르는 목소리에 다리가 마비에 걸린듯, 버벅거리며 단상에 가까워졌다.
"흥미로운 아이구나."
"..."
"대단한데. 그 용기는 내가 칭찬해주지."
"..."
"신사숙녀 여러분, 이 아이를 보세요.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지원자가 나왔습니다! 그것도, 우리지역에서!"
"..."
"남자 쪽을 뽑아보겠어요. 호호."
앨리스 리는 호들갑을 떨며 다시 투표함으로 다가갔다.
다시한번 마약한 얼굴로 휘젓더니, 이거다! 하며 아무도 반하지않을 괴상한 웃음을 날렸다.
한 표를 더 뽑았다는 것에 감사하세요. 앨리스는 아무말이나 지껄이며 종이를 펄럭거렸다.
후회하지 않는다,나는. 종대를 지켰으니까 그걸로 됐다. 무사히 돌아오기만을 기도해야한다.
종대 쪽으로 눈을 돌리니, 눈물을 펑펑 쏟아내며 윤형이의 곁에 울고 있었다.
윤형이는 눈짓하며 괜찮을 거라고 종대를 토닥였다.
"신사 숙녀 여러분-!"
"..."
"이 아이에 이어서, 누가 뽑혔는지 궁금하십니까?"
"..."
"젠틀맨, 남자가 뽑혔단 말입니다."
"..."
"그럼, 단상으로 모셔볼까요?"
침이 말라온다.
윤형아, 너는 아닐거야.
"아, 동갑이군요."
"..."
"축하합니다, 우리구역의 대표자여."
"..."
"김, 지원 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