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말 없이 바로 시작할게.
눈이 내렸어. 그 해는 유독 눈이 많이 내렸던 걸로 기억해. 십여 분이 지나도 오질 않는 김지원에 무슨 일이 생겼나 싶었지만
이내 저 멀리서 누가 손을 흔들거리면서 달려오는 거야. 땅바닥 얼어서 미끄러운데ㅋㅋㅋㅋ
"악!"
ㅋㅋㅋㅋㅋ; 미치겠다. 결국 넘ㅋ어ㅋ짐ㅋ. 후다닥 일어나서 다시 이리로 뛰어오는데
얼굴은 새하얗고 코며 볼이며 귀는 상기돼서 새빨간 거야ㅋㅋㅋ 아니, 무슨 못난이 인형도 아니고ㅋㅋㅋㅋㅋ
"늦, 늦어서. 미안. 와, 힘들어."
"괜찮아."
"많이 기다렸지."
"아니. 약 십분? 괜찮대도."
숨이 가쁜지 숨을 몰아쉬는 김지원이 웃겨서 큭큭 거리고 빤히 보고 있으니까 민망했는지 볼을 두어 번 긁적대더니 내 손목을 잡고 길을 나서.
근데 너 모솔도 아닌 주제에 왜 이렇게 조심스러우세요?ㅋㅋㅋㅋ
"어디로 가는거야?"
"밥부터 먹을까?"
밥을 먹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어.
이 자식이 은근히 세심한 게 나 불편해할까 봐 룸이 나누어져 있는 레스토랑으로 예약을 해놨더라고. 물론 스캔들도 염두 해 두고 있었겠지만.
근데 웃긴게 정작 김지원이랑 나는 지금까지 사귀면서 스캔들이 터진 적이 없어ㅋㅋㅋㅋ
애꿎은 여자들이랑만 줄줄이 터졌지 ㅡㅡ
"매니저 형 때문에 늦었어. 아, 무슨 연말까지."
"관리해?"
"응. 여자 만나러 간다니까 기겁하더라."
"여자친구로 오해하셨겠지."
"여자친구 맞잖아?"
...의도가 그게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놀라서 숨을 들이켜는데 이 자식은 그냥 밥만 먹어. 아 ㅂㄷㅂㄷ. 그때 한대 쥐어 패줄걸.
"먹고 남산타워 가자! 가 보고 싶었어."
"그래, 가자."
"마침 눈도 내리고, 좋겠다. 가서 자물쇠도 걸어야지!"
"그래, 그래."
어린애처럼 들떠서 방방 거리며 좋아하는 김지원은 조금 낯설었다고나 할까. 대답을 하며 걸어가는데 김지원이 눈치를 봐.
아닌 눈치는 왜 봐, 눈치는ㅋㅋㅋㅋㅋ 내가 무슨 네 스토커니?
"왜?"
"아니. 그, 나는 처음이라서. 근데 너는 혹시 지루해할까 싶고."
"안 지루해. 근데 뭐가?"
"어. 오늘 하는 거 다? 데뷔 전에는 연습만 죽어라 했고, 데뷔하고는 활동만 미친 듯이 했으니까."
어깨를 으쓱거리며 웃는 김지원이 조금 불쌍하기도 했고, 대견하기도 했고. 그래서 우쭈쭈하니까ㅋㅋㅋㅋ
지도 남자라고 자존심은 있어서 아씨! 왜! 아! ㅋㅋㅋㅋ 막 연발하는데. 웃겨 죽는줄ㅠㅠㅠㅠㅠ
"와, 별걸 다 했다. 안 피곤해?"
"난 별로. 너는?"
김지원은 내가 피곤할까 봐 걱정하는 눈치였지만 일단 얘랑 있는데 어떻게 피곤하겠냐고ㅋㅋㅋ
한 네 시간은 논 것 같았고 시간은 어느새 열한 시에 가까워져 가고 있었어. 약 한 시간 뒤면 우리는 또 한 살을 먹는 거지.
"...예쁘다."
김지원이 멍하니 길거리에 우뚝 멈춰 서서 거리 한복판의 트리를 보며 중얼거렸어.
눈은 여전히 살랑살랑 내리고 있었고 목소리를 두르고 뽀얀 입김을 뱉어내며 홀린 듯 트리만 보고 있던 김지원의 모습이 상상이 가?
'찰칵'
셔터 소리가 터져 나왔고, 김지원은 렌즈를 응시해. 그리고 곧이어 또다시 셔터 소리가 울려 퍼졌지.
있잖아, 진짜로. 도저히 담지 않고는 참을 수 없는 인생 최고의 피사체였어.
내가 멍하니 뷰파인더만 보고 있으니까 김지원이 다가와서 어깨동무를 하는 거야. 꼴에 남자라고 나보다 키는 크더라ㅋㅋㅋ
"가자!"
어디로? 종로로. 우리는 종로로 자리를 옮겼어. 마지막 연말 행사를 즐기기 위해서였지.
김지원이 오늘 아주 뽕을 뽑더라, 뽕을. 태어나서 처음 연말에 종로를 가는 거였는데. 그게 김지원이랑 가는 거라니.
수많은 인파 속에 내가 연예인이다! 광고할 마음은 없는지 전보다 얼굴을 더 꽁꽁 가리고 서서 같이 자정을 기다리는데 김지원이 그러더라고.
"아까. 같이 볼 수 있어서 다행이다, 트리. 없으면 어쩌나 랬어. 같이 보고 싶었거든."
"그래? 다행이네."
"어. 지금 몇 분이지?"
"열한 시 오십 구분."
"몇 초?"
"사십이초. 아, 막 삼초."
이다음으로 김지원이 한 말이 가장 기억에 남는 말 베스트 쓰리 중에 하나지. 십초부터 다 같이 숫자 세기를 시작했어.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과 나, 김지원 모두다. 김지원은 내 어깨에 턱을 올리고 숫자를 세는 거야. 이 버릇 저 날부터 생겼나 봐ㅋㅋㅋ
어쨌든 그 많은 사람들 속에서 그러고 있어서 그런가 내 귀에는 김지원의 목소리가 또렸히 들려왔어.
십, 구, 팔, 칠, 육, 오, 사,
"삼, 이,"
"일."
"친구 말고 여자친구 어때?"
숨을 죽이고 있었고, 김지원의 목소리 말고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어.
눈은 여전히 내리는 중이었고, 김지원의 숨결만이 느껴지는 가운데였지.
제야의 종소리가 울려 퍼졌어. 사고 회로가 멈춘 듯한 가운데 끊임없이.
우리는 스물두 살이 됐고, 내 스물두 살의 시작에 처음 받는 고백이었어.
to B continued |
안녕하세요, 여러분 ㅠㅠㅠㅠㅠ 그동안 자리를 비우고 있어서 자연스레 글도 부재가 됐네요. 오늘은 나름 빵빵하게 들고 왔다고 생각했는데 쓰니까 또... Hㅏ. 소설이랑 썰이랑은 많이 달라서 분량 늘리기가 힘드네요. 흑흑. 분발하겠습니다! 암호닉 신청해 주시고 신알신 해주신 여러분 모두 너무 감사드려요 ^ㅅ^! 물론 글을 읽어주시고 관심가져 주시는 모든 분들 다! 싸그리 몽땅 다! 김밥 님 :) 시계 님 :) 고데기 님 :) 바나나 님 :) 고맙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