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화 시간이 삼분이 넘어가는 데도 폰 너머로는 아무런 응답이 없더라. 뭐 어쩌자는 건지.
김지원 이름을 부르기도 지쳐서 가만히 폰을 붙들고 있었어.
"보고 싶다."
김지원을 부르는 걸 체념하고 있던 중에 김지원의 목소리로 처음 들은 말이었어.
목소리를 듣는 순간 맥이 탁 풀리는 거 있지. 생각보다 괜찮은 듯한 목소리에 안심하면서 대화를 나눴어.
"어디야?"
"집. 그냥 가만히 있으래."
"갈까?"
"밖에 기자들로 무성해."
"괜찮아?"
"괜찮지 못할 건 또 뭐야."
왜 난 그 말이 괜찮은 척 연기 못 할 건 뭐야,로 들리는 건지.
물어볼 것도 많고 듣고 싶은 이야기도 너무나도 많았는데 통화로는 못 하겠는 거야.
지금 당장 김지원을 보고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그게 마음대로 되냐고, 어디. 답답해 죽겠는 거지.
"김지원. 우선은 하나만. 저거 다 개소리지?"
"아니."
"어?"
"개만도 못 한 소리. 너네 오빠가 저런 짓을 했을 것 같아?"
김지원은 나름 분위기를 풀어 보겠다고 말한 것 같은데 오빠 드립이고 나발이고 하나도 안 웃겨.
그래도 정말, 진짜로 생각 한 것보다는 멀쩡하구나 싶어 안심이 되면서 땅이 꺼져라 한숨만 쉬어 대니까 김지원의 웃음 소리가 들려.
"넌 뭐가 좋다고 웃고 난리야, 병신아."
"병신이라서."
"보고 싶어."
"그거 고백으로 받아들이라는 거지?"
"너는 야, 이 상황에."
"이 상황이 무슨 상황, 어떤 상황인데? 나한테는 다를 거 없는 오늘이야.
좀 한가한 거 빼면. 오빠가 좀 바빴잖아, 여유롭고 좋구만."
어이가 없어 실성할 지경이었다.
김지원도 상황을 모르고 하는 말이 아니라는 걸 분명히 알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화가 나기도 하고.
이러쿵 저러쿵 더 할 말도 없어서 우선 집 주소를 알려 줬어. 네가 판단 했을 때 안 따라 잡히고 나올 수 있는 상황이면 오라고.
진짜 신기한 게 이런 대도 걔랑 나랑은 스캔들도 난 적이 없다니까? 다른 의미로 참 대단해.
"아이고.., 두야..."
일주일 정도가 지났는데도 여론은 사그라 들 기미가 전혀 안 보여.
김지원? 당연히 활동 중단이지.
소속사 피드백도 없이 활동 중단이니 다 진짜로 얘가 나쁜 사람이구나, 하고 생각하는 모양이야.
그리고 또 이 주일 정도가 흘렀을까. 김지원이 새벽에 우리 집에 왔어. 처음에 보고 얼마나 놀랐다고.
근데 그냥 담담한 척 맞이했지. 얼굴 보니까 알겠더라. 목소리는 꾸며 낼 수 있지만 표정 연기에는 뛰어난 사람이 아니라는걸.
"어서 와."
"실례."
식음을 전폐하셨던 건지 수척해 져서는. 쯧, 소리가 절로 나오는 몰골을 하고 있었어.
오자마자 피곤하다는 김지원에 안 잤냐고 물어보니까 그냥 가만히 서 있길래 물이나 따라서 건넸지.
"땡큐. 그냥 이것저것 생각도 좀 해보고. 뭘 잘 못 했길래 이 지경이 됐나, 뭐 그런 거."
김지원은 거실 소파에 멍하니 앉아서 그냥 그러고 있더라.
나는 소파 밑에 기대앉아서 김지원이 입을 열 때까지 잠자코 기다렸어.
"이번 여름은 최악이다."
"그래?"
"아마 단군 이래 최악일 거야."
"웃기시네."
"그러게."
전혀 웃음기 없는 말 장난이 오갔고 또 한동안 적막한 침묵만이 이어졌어.
"어떻게 된 건지 안 물어봐?"
"아닌 거 아니까. 말해줄 때까지 기다리는 거야."
"글쎄. 스폰서 제의 거절. 뭐, 그것 때문이겠지. 방송국 국장이라나 뭐라나."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경우의 수는 아니지만 국장이라니. 그래서 일이 이 지경이 됐구나 싶더라고.
"왜 거절했어?"
"필요 없었거든. 이 오빤 원래도 잘 나갔고 그딴 더러운 짓 하면서까지
... 하고 싶은 음악이긴 한데 쓰레기 만도 못한 짓 하면서 하기에는 내 음악이 너무 불쌍하잖아."
멍청이. 그 생각이 제일 먼저 들더라.
그냥 곱게 거절했으면 여기까지 흘러 오진 않았으리라는 걸 알고 있어.
그쪽에서도 아마 두 번 세 번 권유를 했을 거고 너는 재차 거절하면서도 예의 바르게 행동했겠지.
그 횟수가 점점 늘어나면서 내 꿈이 이 사람들 눈에는 고작 그만큼의 가치인가 싶어 울컥했을 거고.
그래서 악바리로 대들었겠지. 안 봐도 눈에 훤하다.
"근데, 후횐 안 해."
"왜?"
"지금은 잠시 쉬어 가더라도 나는 언젠가 무대로 돌아갈 거니까."
"대중이 너를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어떤 질타가 있어도 상관없어. 내 꿈이 나를 받아들인다면."
믿음직스러워졌어. 그 말 한마디에. 꿈, 그게 뭔지. 부럽기까지 하더라.
꿈에 대해 말하는 김지원은 정말 세상에서 제일 믿음직해 보였어.
김지원이 저렇게 이야기하잖아. 그러면 내가 할 일은 하나로 결정된 거나 마찬가지지.
"그럼 난 기다릴게. 네가 바비로 다시 무대에 서는 날을."
to B continued |
얍! 아마 한 편만 더 쓰면 지겹던 과거편이 끝날 것 같습니다.
요즘 텀이 많이 느리죠 ㅠㅅㅠ 읽고 계시는 분이 얼마나 계시는 지는 모르겠으나 빠릿빠릿하게 끝내고 얼른 다른 이야기로 찾아오겠습니다 :)
분량 조절만 잘 한다면 곧 끝 맺음을 지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
[김밥]님 [시계]님 [고데기]님 [바나나]님 [밥씨눈]님 [밀대]님
늘 행복하고 예쁜 날들만 가득이길 바라겠습니다. 항상 들러주셔서 감사해요 :)
사실 암호닉 색이 분홍색인 이유는 봄덕후라 그래요 ㅋㅋ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