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항상 자신의 노트북을 뺏어들고 교무실로 출석하는 줄리안이 부담스럽지만 거절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 이것도 다 희망고문인건가. 그 애한테는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친화력도 좋지.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드나드는 교무실인지라 수업을 안 들어오시는 선생님들도 모두 줄리안을 알았다.
줄리안 또 왔네? 하며 반기는 2학년 부장선생님이 허허 웃으며 사탕 하나를 건넸다.
감사하다며 얼른 받고 헤헤 웃는 줄리안이 아무리 봐도 저 선생님은 시츄를 닮았다며 속으로 키득거렸다.
"선생님 오늘 드린 커피 어땠어요?"
"어..응 맛있더라, 그런데 줄리안 내가 말했잖아 이제 그만 놓고 가. 학생이 무슨 돈이 있다ㄱ.."
선생님들의 눈치를 살피며 조용조용 얘기하다가 로빈의 대답에 빈정이 상한 줄리안이 로빈을 확 당겨 귀엣말로 말했다.
당신을 위해서인데, 돈이 무슨 상관이겠어요?
"그거라도 드려야 제 마음이 전해지죠. 아시잖아요, 좋아해요."
순간 볼이 확 달아오른 로빈이 줄리안의 등짝을 퍽퍽 때렸다.
얘가 못 하는 말이 없어! 교무실에서 선생님들도 계시는데 이렇게 확 안기나 하고!
"아무튼 줄리안, 그러면 커피 말고 좀 더 싸고 맛있는 거 많잖아, 예를 들면 사탕이라던지"
"무슨 사탕 좋아하시는데요?"
"음. 그냥 사탕이면 다 괜찮아."
옙. 그럼 내일부터는 사탕으로 드릴게요. 눈을 찡긋 하고 감아보이더니 능청스럽게 휘파람을 불며 교무실을 나선 줄리안이다.
줄리안이 나가고 난 뒤 교무실에서는 로빈이 아까의 일을 생각하며 몇 번씩 얼굴을 붉혔다가 식히곤 했다.
자신과 친하다면 친한 일본어 선생님인 타쿠야가 말을 걸며 다가왔다.
"로빈, 저 애 아직도 너 따라다니는 거야?"
"그렇지 뭐.. 얼른 정신을 차려야 할 텐데"
"에- 로빈도 싫진 않은 것 같던데, 아까 얼굴 빨개지는 거 다 봤어."
자신을 놀리며 웃는 타쿠야의 명치를 손으로 한 번 툭 쳐주곤 넌 저리 가서 니 커피셔틀이랑 놀아 인마, 한마디를 날려주었다.
"커피셔틀? 누구? 장위안? 야, 커피셔틀 아냐."
"그럼 왜 매일 커피 주는건데?"
"그을쎄, 나도 잘 모르겠다?"
의미심장한 웃음을 남기고 수업 있다며 유유히 떠난 타쿠야의 뒷통수가 왠지 기분나쁜게 꼭 사랑에 빠진 소녀 같았다.
으으- 소름돋아. 몸을 떨고 자신의 자리에 앉아 노트북을 켠 로빈이 다음 시간이 빈 걸 확인하곤 인터넷을 켰다.
그 때 메신저가 깜빡였다. 내용은 늘 그렇듯 오늘 회식 있다는 교감 선생님의 이모티콘 가득한 메시지.
아아 내일 또 떡이 돼서 학교에 오겠구나. 한국 술 문화는 정말, 몇 년이 지났는데도 익숙해지지가 않았다.
벌써 시간은 빠르게 흘러 점심시간이 다 되어가고 있었다.
한 교시 걸러 찾아오던 줄리안이 오늘은 어째 통 보이질 않았다. 왠지 뭔가 허전하더라.
그 새 4교시 끝나는 종이 치고 왜 안오나 생각했던 줄리안이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고 드디어 교무실로 등장했다.
"로오빈~"
"선생님은 어디다가 떨어뜨리고 왔냐"
"선생니이임~ 저 보고싶으셨죠? 다 알아요 알아요."
"그닥 안 보고싶었는데, 왜 오늘은 계속 안 오고 지금 왔어?"
"선생님 애태우려고 그랬지요! 점심 안 드셨으면 저랑 같이 드실래요?"
애태우긴 무슨, 그래, 조금은 궁금했으니까 인정.
웬 점심? 하고 되물은 로빈이 줄리안의 장난기 가득한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그렇게 부담스럽게 쳐다보면 제 얼굴 뚫려요. 저 도시락 싸왔는데, 너무 많아서."
"급식 신청, 안 했어?"
난처하다는 듯 묻는 로빈의 표정을 본 줄리안이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하긴 했는데, 오늘 메뉴가 너무 형편없어서. 머쓱한 듯 머리를 긁적인 줄리안이 시간 없으면 저 혼자 먹을게요 하고 뒤돌아섰다.
"아냐, 같이 먹어줄게"
로빈의 한 마디에 빛보다 빠른 속도로 뒤를 돈 줄리안의 얼굴에 예의 그 장난기 넘치는 표정이 돌아왔다.
진짜요? 진짜? 거짓말 아니죠? O ciel! 기쁜 감정을 온 몸을 다해 표현하는 줄리안을 보곤 어리긴 어리구나, 살풋 웃은 로빈이다.
어디서 먹어야 하나 고민하다 교내에 있는 가을이 한창인 코스모스 들판 한 가운데 펼쳐진 작은 정자를 떠올렸다.
줄리안이 로빈의 손을 잡고 확 끌었다. 가요, 진짜 맛있을 거예요.
가을 바람이 살짝 불어오는 탓에 조금 추웠지만 아무렴 어떠랴, 사람이 마음을 녹이고 있는데.
그저 싱글벙글 웃음기가 가시지 않는다. 말을 건네지 않아도 그냥 좋았다. 사람이 좋았다.
도시락을 펼쳐 놓고 먹기 시작할 무렵 햇빛이 구름 뒤에서 고개를 내밀었다.
아- 데이트하기 좋은 날씨네. 이거 데이트, 맞는거지? 줄리안은 그래, 데이트지. 본인에게 심심한 위로를 건넸다.
"로빈, 있잖아요. 나는 선생님이 내 마음을 그냥 어린애 취급하지 말아 줬으면 좋겠어요."
"그냥 어린애 취급하는 게 아냐. 줄리안 너 내년이면 고 3이고, 외국인이라도 예외는 없어. 공부, 해야지"
"나 어차피 불어 선생님으로 취직하면 그만이예요. 괜찮으니ㄲ.."
"내가! 내가 안 괜찮아. 줄리안, 나는 적어도 네 기억 속에 널 망친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아. 네가 잘 됐으면 좋겠어."
진심으로. 로빈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슬펐다. 이 아이는 이렇게나 어리고 솔직한데, 나는 왜.
솔직하지 못한 자신이 미웠다. 정말로 그냥 나이때문인거야?
"이 얘기는, 나중에 다시 하자."
"밥 먹는데 미안해요. 다음에는, 맛있는 거 사드릴게요. 이런 도시락 말고"
"아냐, 맛있어. 네가 만든거야? 잘 만들었다"
얼어붙었던 분위기가 차츰 다시 녹았다. 코스모스가 흐드러지게 핀 그 속에서, 로빈은 그 누구보다 아름다웠다.
그래, 더 천천히 다가가도 되겠지. 시간은 많으니까. 줄리안은 마음을 다잡았다. 조금 서운하긴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더 좋아하는 제 쪽이 양보를 해야겠다고, 그러자고 다짐했다.
그 때 눈치없이 문자를 알리는 진동이 줄리안의 휴대전화를 울렸다.
「 오늘 회식있음. 내일 책상에 헉개수라도 갖다 놓으면 로빈이 좋아할 듯
- 담임 장위안」
아아 친절하기도 하셔라. 이젠 담임이 별 걸 다 알려준다. 커피를 가져다 줘서 그런가? 기분 좋은 일이라도 있나?
줄리안은 피식 웃으며 답장을 보냈다.
[헉개수가 아니라, 헛개수겠죠. 감사합니다아~ 내일도 커피 드릴게요 ^ㅠ^]
좋은 정보를 얻었다. 그만큼의 보답을 해야겠지. 내일은 좀 더 비싼 커피를 사다 드려야지. 생각한 줄리안이 로빈에게 말을 건넸다.
"다 먹었으면 들어가요. 바람이 쌀쌀해서 감기 걸릴거예요."
"아, 좀 걷다가 들어갈게. 먼저 들어가"
같이 걷고 싶었지만 혼자만의 시간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기에 줄리안은 군말 없이 도시락을 정리해 교실로 향했다.
고개를 잠시 비춰주었던 햇빛이, 어느샌가 다시 구름 뒤로 숨었다. 오늘, 비 온다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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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저 또 왔어요ㅎㅎ 나름 길게 쓴다고 썼는데 분량이 늘지를 않네요ㅠㅠ
오늘 학교 일찍 끝났어요!! 기분 좋아여ㅕ!!
내일은 야자 안 하고 학원 가니까 좀 늦게 올 것 같아요. 원래 주말연재 하려고 했는데 우리 독자님들이 너무 큰 성원을 주셔서 자꾸 오게 되네요.
갑자기 글 안 올라와도 기다려 주세요. 시간이 그리 많지 않은 학생이라서 토요일 일요일은 연속으로 오지만 주중에는 잘 안 올 거예요..ㅎㅎ
오늘도 감사합니다. 쥬뗌므!! 독자님들 모두모두 아벨라예요 사랑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