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그런 경험 한 번 쯤은 있었을거야. 아무것도 안해도 그 사람만 보면 가슴 한 쪽이 분홍빛 수채화가 번지듯이 아릿해지는 거.
사실 어제까지는 저게 뭔 X소리야, 하면서 웃어넘겼어. 그런데 오늘은 이해할 수 있어. 지금도 약간 그런 것 같거든.
점심 시간이 20분 정도 남았을 때였나, 그냥 친구들이랑 평소처럼 매점에서 사탕 한 개 씩 사서 교실 뒷자리에서 수다 떨고 있었어.
누가 누구랑 사귀네, 이번에 누가 컴백하는데 공방 같이 갈 사람, 오늘 수업 끝나고 시간되는 사람, 뭐 이런 얘기였어.
사실 그 교실 안에는 우리말고 남자애들도 있었는데, 그 중 한명은 내가 좋아하는 짝남이었고 또 한 명은 나랑 친한 남사친이었어.
그래서 친구들이랑 얘기하는데도 자꾸 흘끔흘끔 그 쪽을 쳐다봤단말이야? 근데 그러다가 남사친이랑 눈이 마주쳤어.
"야, 잠깐만 와봐."
"왜? 뭔데."
그러더니 잠깐 인상찌푸리더니 추워보인다고 옆자리에 있던 담요 덮어주더라. 난 그 와중에도 짝남 훔쳐보고있었고.
근데 남사친이 자꾸 내가 쭈뼛거리고 아무말도 안하니까 이상했나봐.
"너 왜그래? 어디 불편하냐?"
얘라면 그냥 편하게 얘기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끌고 복도로 나왔어. 그리고 걔한테 나 네 친구 중에 00이 좋아한다고 하니까 걔 표정이 싹 굳는거야.
"왜?"
정말 딱 이 한 마디하고 아무말 없이 내 대답 기다리더라. 좀 혼나는 분위기라 주눅들어서 이것저것 늘어놨어.
"그냥 키도 크고, 손도 크고... 알지? 나 손 큰 남자 좋아하는 거? 어, 그리고 눈이 딱 내 스타일. 뭐..."
"그게 다인데 걔가 좋다고?"
그 복도에서 걔랑 말하는데 진짜 불편해 죽겠는거야. 얘가 좀 무뚝뚝해도 할 말은 다 하고 은근히 다 챙기는 성격이라 이런 분위기 만드는 것도 처음이라 어색하고.
그 때 딱 내 눈 마주치고 한마디 하는데 갑자기 얘가 되게 멋있어보이는거야.
"꼭 걔여야만 해?"
이 때 난 정말 당황. 진짜 당황. 이게 무슨 의미지, 하는 생각부터 왜 이런말은 하는거지, 하는 생각까지.
"왜?"
"묻는 말에만 대답하지?"
오, 박력.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걔가 답답한지 자기 뒷머리를 헝클어뜨리는거야. 더불어 좀 짜증난 표정까지.
"아니, 꼭 걔여야만 하는 건 아닌데, 지금 좋아하는 건 걔야."
"그럼 좋아하지마. 어차피 걘 다른 애 좋아해. 알겠어?"
솔직히 이쯤되면 좀 어이없기도 하고 짜증도 나잖아. 그래서 따져물었어.
"야, 니가 뭔데 좋아하라마라야? 난 뭐 자유도 없어? 갑자기 왜 이러는데?"
"몰라도돼."
"나 너랑 싸우기 싫다. 빨리 말해. 왜 이러는데? 걔한테 악감정있어?"
"너 좋아해서."
반박할 말 생각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그 말 들으니까 아무 생각도 안나고 걔 눈만 쳐다보게 되더라.
한 3초였나? 어쨌든 긴 시간은 아니었는데 걔랑 눈만 마주치고 있었는데 걔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딱 웃으면서 말했어.
"너 좋아한다고. 됐어? 아, 진짜. 쪽팔리게."
그러고는 머리 한 번 쓰다듬어 주고 교실로 들어가더라.
사실 난 그 때까지도 사고회로가 정지되어있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