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였다. 37도는 기본으로 넘는 날씨에, 원전 문제로 전기세를 아껴야 한다며 하루에 3시간만 틀어주는 에어컨에, 달달거리는 소리를 내며 이리저리 고개를 돌려대는 선풍기. 그나마 이 찌는 더위를 이겨내보려 예전에 찢어둔 스프링 노트의 두꺼운 표지로 어설프게나마 부채질을 해댔다. 그 손짓 마저도 힘이 나지 않아 그만뒀다. 주위를 둘러 보다 땀으로 젖은 몸뚱아리와 고개를 책 위로 처박았다. 진짜 공부할 의욕이 들지 않았다. 그것은 내 옆에 앉아있는 변백현도 마찬가지였고, 내 뒤에 앉아있는 김민석도 마찬가지였고, 3학년 3반 이과반 모두가 마찬가지였다. 진도가 느리다며, 빨리빨리 정신차리고 하자. 하던 선생님의 목소리도 어느새 들리지가 않았다. 책 위로 처박았던 고개를 들고 교탁을 바라보자 더위에 한껏 지친 모습으로 창 밖을 향해 멍을 때리고 있는 선생님의 모습이 보였다. 아아, 그래. 선생님도 사람이였지. 무언가를 깨달았다는 듯이 고개를 주억거리며 주위를 다 둘러보니 누구라할 것 없이 모두가 다 잠에 빠져들어 있었다. 고개를 든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심지어 전교 1등 마저도 다른 아이들과 똑같이 잠에 취해있었다. 나도 다른 아이들처럼 책을 고개에 묻고, 묻은 고개를 책으로 덮고는 잠에 빠져들었다. 잘 때 만큼은 더위를 느끼지 못할터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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