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세요. 안 자지, 아직? 대답은 하지 말고, 그냥 들어. 듣기만 해, 알겠지? 나 내일 한국 다시 들어가. 미리 이야기 못 해서 미안해. 오늘 헤어지기 전에 이야기해야지, 해야지 했는데 혹시 내가 울까 봐. 그리고 마지막이라고 네가 특별한 뭐라도 할까 봐, 그게 싫어서 이야기 안 했어. 끝까지 제멋대로인 나 이해해 줄 수 있지? 마지막이니까 한 번만 봐 주라. 여태 고맙단 말 한 번 안 했는데, 고마웠어. 내가 처음 등교한 날 그 애들한테서 온갖 희롱을 들었을 때 나 대신 욕해주고 챙겨준 건 진짜 못 잊을 거야. 꼴에 이미지 관리해 보겠다고 다 알아들어도 참았는데 덕분에 속은 후련하더라. 아, 걱정하지 마. 그거 마음에 담아두고 끙끙거리진 않아. 다른 기억으로 남았으니까, 괜찮아. 오사카에서만 있던 나 불쌍하다고 도쿄, 삿포로도 데려가 준 거 진짜 재밌었어. 다음에 한국 오면 연락해, 그땐 한국 투어 시켜줄게. 삿포로 눈 축제 가는 게 꿈이었는데, 가니까 좋더라. 여름이랑 어울리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새하얀 눈 속에 파묻힌 너도 볼만했어. 잘생겼단 건 아니고. 일본 유학 오는 게 오로지 내 선택만은 아녀서, 너 안 만났으면 엄청 힘들었을 거야. 빈 말이 아니라 진심으로. 한국 들어가면 지금보다 더 힘들지 몰라. 그래서 가기 싫어.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게 전혀 없었고 없을 테고, 모르겠어. 나는 널 만나고 처음 한 게 참 많아. 새벽까지 놀아보기도 하고, 그냥 비도 맞아보고… 재밌었는데. 생각해 보니까 좋았던 게 되게 많다. 사진에 모든 추억이 담기진 않겠지만 보고 싶을 때 볼 수 있는게 어디야, 그지? 학교에, 내 자리에 가면 사진 있어. 그거 가보로 간직하라구, 내 사진 비싸. 원본은 내가 가져갈 거야, 내 맘. 나 아직 디즈니랜드 못 갔잖아. 다시 오면 꼭 데려가, 같이 가. 둘이, 둘이서. 솔직히 일 년 너무 짧은 것 같아. 평생 살라는 줄 알았는데… 매일같이 봐서, 내 생각 이상으로 더 보고 싶을지 몰라. 버튼 하나만 있으면 전화하고 영상통화도 가능한 시대에 무슨 걱정인가 싶지? 그러게, 왜 이런지 몰라. 미리 각오해서 나쁠 건 없잖아, 그지 너무 오래 잡아뒀다. 유타, 운동 작작해. 너 타서 또 피부 다 일어나. 선크림이라도 바르던가. 안 다치게 조심히 다니고. 계단 여러 개 올라가다가 뒤로 넘어지지 마. 머리 다친다. 끼니 잘 챙겨, 라면 말고 밥으로. 웬만하면 일찍 자. 학교에서 자도 이제 깨워줄 사람 없잖아. 다시 네 친구들이랑 잘 지내고, 알겠지? 아프지 마, 유타. 보고 싶을 거야. 끊을게, 잘 자.
사랑해.
보고 싶었어. 난 너 없는 시간 동안 언젠간 만날 너한테 잘 보이고 싶어서 네가 떠나고 오 년만에 취업까지 했어, 한국에. 무슨 뜻이냐면, 다른 요소들로 인해 널 떠날 일 없다는 거야. 당연히 한국어도 배웠고. 네가 마지막으로 한 말뜻 알고 나니까 그렇게 하지 않을 수가 없었어. 사랑한다는 말 그렇게 쉽게 해, 왜? 우리나라에선 그렇게 쉽게 안 해. 마지막 인사로 할 말 아니잖아. 보고 싶었어, 죽도록 보고 싶었어. 네가 가고 난 후에 네 말대로 운동 작작하고 공부만 했어. 깨워줄 사람 없어서 일찍 잤고, 친구들이랑도 잘 지냈어. 라면 좀 줄이긴 했는데, 쉬운 일 아닌 거 알잖아. 주말 아침이 되면 놀러 갈 생각에 일어나자마자 너한테 전화하는 게 습관이었는데… 없는 전화라는 말이 얼마나 사람 미치게 하는지 넌 모르지. 고작 친구였으면서 내 모든 곳에 스며들면, 일상을 송두리째 앗아갈 정도로 깊게 자리 잡으면 어쩌자는 거야. 아픈 곳도 없이, 잘 지냈어. 너 좀 미안해지라고 한 마디 하자면, 마지막 전화 이후로 일주일을 앓았어. 녹음이라도 해두는 건데 너무 충격적이어서 아무것도 못 했어. 전화번호도 바꾸고, 진짜 너무하다고 생각했는데 학교 할 수 있는 게 선생님께 부탁하는 것 말곤 없더라, 그래서 졸업하고도 일 년을 빌었어. 제발 주소라도 알게 해달라고. 근데 이렇게 만나게 될 줄은 몰랐네. 오랜만에 보니까 못 알아볼 정도로 예뻐졌다, 너. 나 안 보니까 살 맛 났나 봐. 사진 예쁘더라. 네 증명사진은 왜 두고 간 거야, 나 오해하게. 덕분에 얼굴 안 잊고 지냈어. 작년에 처음으로 한국 와서 든 생각은, 넌 이렇게 아름다운 도시에서 살았구나, 네가 태어나고 자란 이 나라는 우리나라와는 다른 풍경을 담아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 네가 놀러 갈 때마다 한국에 비슷한 곳이 있다고 이야기했잖아. 도대체 어딜까 하면서 주위 추천으로 몇 군데 돌아봤는데 확실히 일본이 더 예쁜 것 같더라. 그래도 네가 말한 야경은 여기가 더 예쁘더라. 밤에도 쉼 없이 빛나는 불빛 사이에서 너도 밤새 무언갈 하고 있을까 걱정도 됐어. 혼자서 다녀왔으니까 이젠 같이 가. 거기가 어딘지 모르고, 뭐가 뭔지도 모르고 다녔는데 전용 가이드 생기면 가고 싶었던 데가 많아. 널 괴롭히는 모든 것에서 벗어나진 못해도 조금이라도 그 압박이 줄었는지부터 내 생각은 안 났는지, 궁금한 것도 듣고 싶은 이야기도 많아. 내 이야기는 이까지만 할게. 구구절절한 건 안 어울리잖아, 난.
보고 싶었어. 늦었는데,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