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사회생활은 어려워. 뻐근하게 땡겨오는 어깨를 주무르며 생각했다. 제대를 한 뒤부터코를 찔렀던 준면의 자신감은, 취업을 함과 동시에 땅끝으로 추락했다. 이리 불려가고 저리 불려가고. 허리를 숙이며 예,예. 그렇다고 한가지 대답만 하면 성의없다, 싸가지 없다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 먼저 웃으며 말을 걸으면 회사가 가볍냐며 꾸중을 들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하루를 힘겹게 보내고 있었다. 오늘 또한, 여러 사원들에게 끌려다니다 하루를 마무리했다. 자신보다 입사한지 몇 주밖에 차이 안나는데. 여기가 무슨 군대인줄 알아. 유별난 회사사원들을 신나게 씹으며 어두운 골목을 걸었다. 그런데 씹으면 씹을수록 신이 나는게, 종국에는 휘파람까지 불며 뛰기 시작했다. 그렇게 어두운 놀이터를 지나는데, 준면의 귀에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순간 얼음이 되어 걸음을 멈추었다. 고요한 아파트단지에 준면의 숨소리만이 울려퍼졌다.
"뭐야아...."
환청까지 들리나. 가방 끈을 고쳐매고 다시 걸음을 옮기는데, 다시 한번 소리가 들려왔다. 끄응, 끙. 호기심이 발동한 준면은 소리가 나는 곳으로 다가갔다. 슬그머니 다가갔더니, 놀이터 뒷편 벤치에 무언가가 앉아있었다. 준면이 숙였던 몸을폈다. 가로등 불빛이 희미해 잘 보이지 않았다. 대담해진 준면이 힘차게 벤치로 향했다. 어디서 나오는지 모를 자신감이었지만, 이미 뒷일은 안중에도 없는 준면이었다. 지금은 무섭다기보다, 호기심이 강했으니까. 결국에는 벤치 앞까지 와버렸다. 복슬복슬하게 생긴 털을 가진...동물? 준면이 결심한듯, 크으게 심호흡을 하고 입을 뗐다.
"멍멍!"
...아무 반응도 없다.
"냐아오옹~"
......
"흠..."
자세히 보니 작은 곰같기도 했다. 그런데 손도 있고 발도 있고..머리통은 까만게, 꼭 사람같았다. 머리를 긁적인 준면이 무릎한쪽을 꿇고 앉았다. 얼굴을 보기 위함이었다. 앞에서도 분명히 말했지만, 준면의 자신감에는 근거가 없었다. 짝짝! 박수를 쳐봤지만 반응은 없었다. 턱을 쓸어내린 준면이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귀여운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긴 속눈썹, 빨갛게 달은 뺨, 까만 머리칼까지. 뭐야, 사람이잖아? 그냥 말 그대로 털옷을 입은 사람이었다. 근데.....귀도 있는데? 저거 뭐야? 혹시....외계인?! 히익, 하며 혼자만의 망상에 빠진 준면이었다. 그러나 곧 정신을 차리고, 눈앞의 괴생물체를 깨우기로 결심한다. 편안한 목소리로, 나긋나긋하게.
"애기야?"
끙. 작은 몸이 아픈소리를 냈다. 애를 쓰는것같기도 했다. 애기야??? 다시 한번 부르자 부스스한 머리가 고개를 들었다. 헐, 세상에. 귀엽잖아? 까만 머리 아래로 똘망똘망한 눈이 저를 쳐다본다. 눈썹은 안보이지만 입꼬리가 내려간게 울상을 짓는듯했다. 근데, 얘뭐지 진짜.
"끙,..끙,끙."
계속해서 끙끙거리며 떼를 쓰길래 그 작은 몸을 안아올렸다. 날씨도 추울텐데 털옷 하나 밖에 입지 않았다. 확 전해져오는 체온이 엄청나게 뜨거웠다. 바들바들 떠는 몸이 안쓰러워 꼬옥 껴안아 주었다. 편안한지 어깨에 얼굴을 폭, 기대고저를 쳐다보는데. 지져스.
"....."
나 아청법걸리는거 아니겠지?준면이 심각하게중얼거렸다. 고개를 으쓱하며 저를 쳐다보기에 어색한 웃음으로 화답했다. 얘 들고있다간 아침뉴스 속보에 등장하겠는데. 몸은 초등학생같은데, 귀도 있고, 꼬리도. 심오해진 준면이 애기를 달래듯이 부둥부둥하기 시작했다. 곧 끙끙거림은 사라졌지만, 잠이 완전히 깬것인지 준면의 얼굴에서 눈을 떼지못한다. 준면이 귀엽다며 아가 곰처럼 작은 귀를 쓰다듬었다. 그러자, 한순간에 인상을 찌푸리며 손을 내쳤다.
"때찌!!"
어? 꽤 매운손에 얼얼함을 느끼는것도 잠시,방금 내 귀에 들린게 한국말이지요? 스스로 되묻는다. 분명 또박또박한 한글말로 때,찌,라고 들었는데. 게다가 목소리도 낮았다.준면이 입을 쩌억 벌렸다.
"너...,너 말할 줄 알아??"
"우웅."
방금건 조금 어눌했어. 아니, 떼쓰는건가? 도리질을 하며 몸을 파고드는데, 애교를 부리나 싶었다. 제멋대로인 행동에 잠시 웃음을 터뜨린 준면이 머리를 쓰다듬는다. 새까만 머릿결이 꽤 부드러웠다. 그러나 이제는~ 헤어져야 할 시간. 준면은 어디선가 들었던 노랫말을 흥얼거리며 괴생물체를 내려놓았다. 괴생물체라기에는 좀 많이 귀여웠지만, 어쨌든. 차가운 벤치에 몸이 닿자 다시 몸을 떤다. 준면이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미안, 아가. 너는 자기 행성으로 돌아가야지."
"...."
"얼른 엄마 찾아!"
좋았어, 꽤 자연스러웠어. 흐뭇한 표정으로 준면이 뒤를 돌았다. 가방을꼭 쥐고 길을 가려는데, 누가 바지를 붙잡는다. 쪼끄마한데 손은 또 엄청 세다. 천천히 뒤를 돌자 울 것같은 표정의 생물체가 눈에 들어왔다. 바짓단을 아주 꾸욱 잡고있는게, 고집이 아주 황소고집인듯 했다. 차암, 누구 닮았는데 말이지. 준면은 애써 찝찝한 기분을 억눌렀다. 차 대리가 떠오르는건 그저 착각일 뿐이야. 온화한 미소를 지은 준면이 생물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 형아는, 너를 키울 수가 없어요.철컹철컹. 몰라?"
누가 보았다면 좋은거 가르친다며 엉덩이를 빡, 하고 찼을텐데. 주변에 아무도 없는것이 다행이었다. 준면은 자각하지못하는 듯 하지만. 그런데, 생물체가 좀 이상했다. 입술을 파르르 떠는게,꼭 울것처럼. 아...준면이탄성을 지르기 무섭게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아주 폭포처럼 쏟아지는 눈물방울에 준면은 어쩔줄을 몰랐다.
"아니..애기야, 잠깐만."
"....."
"아니, 왜. 왜 울어, 왜"
".......가죠."
"....응?? 뭐라고?"
"...데려가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죄둉..하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