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지금 혹은 다시
현민은 시무룩해진다. 평소라면 칭찬을 해야 할 동민이 자신을 가만 올려다보더니, 아무 말 없이 하던 일에 다시 몰두하기 시작했다.
오늘은 인턴 마지막 날이자, 현민이 맡았던 2주 프로젝트의 마감일이다. 2주 동안 현민은 바빠서 정말 말 그대로 죽을 뻔했다. 다행히 동민이 주말에 자료 조사도 도와주고, 야근 하지 않도록 이것 저것 팁을 준 덕에 대안책까지 현실성 있게 기획이 가능했다. 현민은 출근하자마자 파일을 하나하나 살펴보고는, 내 인생에 이렇게 완벽한 보고서를 쓰다니...! 라며 감탄했다. 그리고는 동민에게 바로 한 번 봐 달라며 쪼르르 달려왔던 것이다. 그러자 동민은 10분 동안 말 없이 보더니,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끄덕? 그게 다? 현민은 뭐 더 없나, 싶어 동민을 가만히 쳐다봤지만, 동민은 요지부동이다. 현민은 갑자기 냉담해진 동민의 태도에 당황한다.
회식을 한 날, 현민은 회식이 끝나는 시점부터 집에 도착할 때까지 아무런 기억이 없었다. 그래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음 날 동민에게 저 어제 뭐 실수한 거 없었죠? 라고 물었다. 그러자 동민은 잠시 현민을 말없이 바라보더니, 배를 움켜잡고 실성한 사람처럼 웃기 시작했다. 뭐죠...? 어리둥절해 하는 현민을 바라보며, 동민은 웃느라 숨도 제대로 못 쉬었었다. 그러더니 약하게 딱밤을 한 대 먹였다. 미션이나 마무리 잘해, 라는 말과 함께. 그 뒤로 자신을 대하는 태도는 딱히 달라지지 않았다. 휴, 이건 내꺼 인듯 내꺼 아닌 내꺼 같은 차장님인 건가..!! 현민은 진짜 마지막 날까지 쉽사리 자신의 손 안에 들어오지 않는 동민을 보며 진짜 인생 최고의 난적이라 생각한다.
한편 동민은 시무룩해져서 정현에게 보고를 올리러 가는 현민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회식날 밤, 용기를 내서 현민과 첫 키스를 했다. 그런데 이 놈, 다음 날 한다는 말이 기억이 안 나서 그러는데, 뭐 실수한 게 없냔다. 혹시 장난치는 건가 싶어 눈을 빤히 바라보는데, 100프로 진실이 동민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 참, 이게 소설도 아니고. 뭐 이렇게 어이 없는 일이 다 있지? 허무해진 동민은 인턴이 끝날 때까지 현민을 들었다놨다 하기로 한다. 더 애타라, 어린이. 그래서 동민은 지금까지 둘의 관계를 애매하게 놔 둔 채 진전시키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오늘 동민이 현민에게 냉담한 것은 다른 이유에서였다.
오늘 아침, 출근하자마자 정문과 요환, 경훈 이 세 사람이 엄청난 호들갑을 떨며 사람들에게 하나를 제안했기 떄문이다. '오현민 서프라이즈 송별회'. 송별회 열어줄 때 우는 걸 보고 싶으니 모든 사람들이 현민에게 냉담하게 굴란다. 준석은 그거 좋지요, 라며 어딘가 섬뜩하게 웃어보인다. 경란과 윤선은 현민씨가 운다구...? 어머나, 귀엽겠다 - 란다. 그런데 퇴근하고 나서 송별회 열려면, 장소 섭외 같은 건 다 끝난 거야? 연승의 질문에 경훈은 아니요! 라고 힘차게 대답한다.
"정문씨가 먼저 얘기를 꺼내 주셨으니, 장소 섭외는 다 되신 거겠죠?"
"아, 갑자기 뭔가 걷어차고 밟고 싶네, 어때요 경훈씨?"
"... 그 섭외 제가 하게 해주세요!!!!!"
결국 장소 섭외는 경훈이, 나머지 기획은 정문이, 입 다물고 작전 망치지 않기는 요환이 담당하기로 했다. 상민은 오후 외근 나간 김에 현민에게 줄 선물을 사오겠다며 신이 났다. 그러자 한 사람씩 나는 뭐 해줄까? 라며 고민에 빠지기 시작했다. 동민도 생각에 잠겨있다가, 정문의 말에 굳었다.
"홍대리님은여? 뭐 사 드릴 거에요?"
진호는 정문을 가만 바라본다. 뭘 해줘, 인턴이 머가 대단해서 - 진호의 말에 경란은 어머, 냉혈한! 이라며 경악을 한다. 정문도 와 - 홍대리님 너무 하시네 - 라며 진호를 손가락질 했다.
"... 그냥 근처에서 아무 케이크나 하나 사 오지 뭐."
"... 여기 근처에 다 비싼 브랜드 밖에 없는데여?"
"아 그러니까, 좀!"
진호가 손을 휘두르자 정문은 우앙 - 츤데레다앙 - 이라며 진호를 놀려댄다. 아잉씨, 저리 안가아아아아!! 라며 도망가는 정문을 쫓아나가는 진호를 보며 사람들은 빵 터진다. 동민도 웃으며 중얼거린다. 우리 어린이, 사람들한테 이쁨도 받고 좋겠네.
이런 사건의 전말을 알 리 없는 현민은, 그렇게나 자신을 이뻐했던 정현도 떨떠름한 반응을 보이자 더욱 시무룩해진다. 뭐, 그 정도면 괜찮네. 이제 이 서류들 좀 정리해 봐. 정현에게 서류 뭉치를 받은 현민은 마지막 날인데 다들 왜 이러나 싶다. 나름 정들어서 나한테서 정을 떼는 건가. 서러워진 현민은 사무실을 나서면서 동민의 쪽을 애처롭게 바라본다. 그러나 동민은 감정 없는 눈으로 모니터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다들 너무해... 현민은 그렇게 사무실을 나갔다. 나가자마자 동민은 책상에 엎드렸다. 아, 진짜 귀엽다.
2차 장소 섭외를 해야하나? 경훈은 고개를 갸웃한다. 그냥 1차만 해야하나, 팀장님들이 계속 마시게 하다 보면 1차에서도 시간 많이 지날텐데. 그렇게 고민하던 경훈은, 화장실을 다녀 오는 동민이 눈에 들어온다. 동미니 혀엉아아 - 자신의 허리를 껴안고 어깨에 볼을 부비는 경훈에, 동민은 세게 밀어낸다. 아야, 아파요!
"누가 본다, 누가 봐."
"보면 어때요!"
"... 그 말 2팀 가서도 해 볼래?"
아차, 준석씨. 생각지도 못했다는 반응의 경훈에 동민은 혀를 끌끌 찬다. 대체 무엇을 위해서 너 같은 놈이랑 왜 사귈까? 동민의 질문에 경훈은 발끈한다. 내가 뭐요, 나 정도면 완전 벤츠지 벤츠!
"이상한 소리만 할 거면 비켜. 나 들어가게."
"아 맞다. 오늘 송별회 장소 2차는 몇 시에 예약하는 게 좋을까 해서요."
"........잡지마."
"네?"
적당히 하고 나한테 양보해. 동민의 말에 경훈은 고개를 갸웃한다. 무슨 소리징? 아이씨, 너는 애가 눈치가 왜 이렇게 없냐. 1차 대충 끝내고 나랑 시간 보내게 2차 잡지 말라고. 동민의 말에 경훈은 아아 - 소리를 낸다. 맞다, 형 왜 아닌 척 했어요. 저번에 껴안는 거부터 시작해서, 나랑 준석씨 이상으로 붙어다니고, 눈에서 꿀 떨어지고 난리났던데! 경훈이 온갖 호들갑을 떨자, 동민은 킥 웃는다. 미안한데, 우리 안 사귄다. ....?네? 뭐요?
"와 - , 이 형 나쁘네. 어린 애 가지고 노는 거에요 지금? 다 늙어서 썸이에요?"
결국 경훈은 동민에게 싸커킥을 맞고 조용해진다. 정강이를 붙잡고 있는 경훈을 보며, 동민은 한숨을 쉰다. 한번에 팍 하고 당겼는데, 눈치가 없더라. 왜 촉 좋은 애가 그 쪽으로는 멍청이인지 모르겠어. 동민의 말에 경훈은 정강이를 문지르며 대꾸한다.
"아직 애기잖아요. 좀 커야 그쪽으로 눈치가 생기죠."
"... 넌 왜 다 컸는데 눈치가 그러고 없냐?"
"이건 제 매력이니까요!"
매력 같은 소리하네. 동민이 손으로 때리려고 하자 경훈은 동민의 손목을 잡아 벽으로 밀친다. 혹시 다른 손으로 때릴까 봐 두 손목 다 잡아서 벽으로 짓눌렀다. 동민과 경훈이 그렇게 힘겨루기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옆에서 소리가 들린다.
"대낮부터 이러시면 곤란하지 않을까요?"
준석이다. 경훈은 잠시 지금 자신의 자세를 생각해 보았다. 내가 동민이 형 두 손목을 잡아서 벽에 누르고 있다. 동민이 형은 내 두 팔 사이에서 팔이 묶인 채로 서 있다. 나는 그런 동민이 형을 내려다 보고 있다...? 아, 아, 아니에요 준석씨! 이건! 경훈은 화들짝 놀라며 동민에게서 떨어진다. 동민은 준석을 보더니 큭큭 웃는다. 준석은 무표정하게 둘을 바라보고 있다.
"둘이 알아서 해 - 난 모르겠다 - "
그리고 동민은 준석을 스쳐지나간다. 준석은 무표정하게 동민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경훈에게 안긴다. 경훈은 준석에게 달려와 허겁지겁 안은 것이다.
"아으아아아아아으아아아아 준석씨 오해하는 거 아니죠?"
"... 회사 내에서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아무리 금사빠이셔도, 회사 안에서 이러시면 안 되죠. 준석의 말에 경훈은 더욱 울부짖으며 준석을 껴안는다. 하여간, 장동민 저 인간은 좋아할 수가 없어. 준석은 낮게 으르렁거린다. 경훈은 준석의 어깨에 매달려 아예 통곡을 하고 있다. 아, 좀 놔요. 준석씨 화나써여?
"아뇨."
"에이, 거짓말. 그럼 뽀뽀해죠! 뽀뽀해죠요!"
여기서 왜 이러는 거지... 준석은 정색을 하며 씨씨티비. 라고 낮게 읊조린다. 아! 그럼 화장실에 가여. 라며 경훈은 준석을 화장실로 끌고 가 칸막이에 몰아넣는다. 그리고 자신도 들어가 문을 잠근다. 아, 좀 좁은데요. 그래도 여기면 아무도 안 보잖아여! 나 뽀뽀, 빨리 뽀뽀. 경훈의 칭얼댐에 준석은 한숨을 쉬더니, 짧게 입에 입맞춘다.
"됐죠?"
"이게 뽀뽀에요? 그냥 툭 건든거지! 뽀뽀란건 말이에요 - "
갑자기 경훈이 준석의 입술을 삼키듯이 문다. 여, 여기 회사인데... 준석은 불안해서 경훈의 팔을 붙잡는다. 경훈은 준석의 뒷목을 부드럽게 잡고 준석의 입 안을 혀로 쓸어내린다. 달뜬 숨이 느껴지자, 경훈은 더욱 대담하게 목을 반대 방향으로 꺾는다. 곧 준석의 목에 입을 맞대는 경훈이다. 그렇게 아무도 없는 화장실에서는 한숨과 앓는 소리만이 들렸다.
진호는 전시된 케이크들을 보며 고민에 빠진다. 무슨 케익을 사야 하지...
비싼 브랜드의 빵집이라 그런지 가장 싼 가격이 28000원부터 시작한다. 저런 코딱지만한 케이크로는 회사 사람들이 다 못먹겠지. 그런 생각으로 진호는 큰 케익 쪽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어디 보자, 이 만한 사이즈가...뭐? 5만원???? 무슨 케이크가 이따위로 비싸!! 결국 폭발한 진호는 중간 크기 케이크를 사기로 한다. 뭐...맥시멈 4만원 까지는 쓸 수 있지.. 진호야, 그치? 진호는 눈물이 날 것 같다. 내가 그 콩알만한 얄미운 놈을 위해서...!! 그런데 현민이 뭘 좋아하는지 모르겠다. 치즈? 생크림? 초코? 고민에 빠진 진호는 결국 핸드폰을 꺼내 메세지를 보낸다.
-동민이 형, 꼬맹이 케이크 뭐 좋아해?
이걸 받고서 당황해서 안절부절해 할 동민이 떠오른다. 큭, 아마도 그렇겠지. 진호의 마음이 산산조각난 날, 그 이후로 동민은 진호만 보면 미안해서 어쩔 줄 몰라한다. 말도 제대로 못 걸고, 회사 안에서 업무를 시킬 때도 말투가 상당히 조심스럽다. 처음에 그런 동민의 태도에 진호는 원망스러웠다. 제대로 짓밟으란 말야. 그런 조심스러운 태도에 일말의 기대도 갖지 않게. 진호는 계속해서 동민의 걱정스런 눈을 마주보고 싶어하는 자신도 원망스러웠다.
그러나 한 달째가 되어가자 전혀 아물것 같지 않던 상처가 아물었다. 현민과 동민이 붙어있어도, 이제는 주먹을 쥐지 않고 지나칠 수 있게 되었다. 동민이 조심스러워 해도, 그 눈을 마주치고 싶다기보다 그냥 재미있었다. 오히려 자신이 상처를 줬다는 사실에 죄책감을 가지고 아직도 시달리는 동민이 안쓰러웠다. 이제 의식하지 말고 행복하면 될 텐데 말이지. 내 상처는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핸드폰이 징 - 하고 울린다. 동민의 답장이다.
동민이 형 : 다 좋은데 생크림은 사지 마 17:15
동민이 형 : 요즘 피부 예민해서 그런거 바르면 안 돼 17:15
동민이 형 : 생크림 사면 김경훈이 분명... 17:16
맞는 말이다. 아마 생크림 케이크를 사면 김경훈은 백프로 손에 크림을 묻혀서 현민의 얼굴에 팩을 하겠지. 예전에 유현의 생일때는 아예 케익째로 얼굴에 문댔었지. 케이크 괴물 몰골이었던 유현의 얼굴을 떠올리며 진호는 부르르 떤다. 그럼, 다크 초콜릿 케이크로 할까. 진호는 이름을 보고, 케이크를 주문한다.
"여기여 - 이거, 다크 초코 케이크요!"
"알바언니 - 다크 초코 케익이요!"
뭐야. 싶어 옆을 쳐다보자 웬 여자가 진호를 빤히 쳐다본다. 저기, 죄송한데 제가 이 케익을 사고 싶은데요. 여자의 말에 진호는 저도 사고 시픙데여? 란다. 알바생은 다가와서 아.. 어느 분이 사가시겠어요? 라며 난처해한다. 당연히 나지, 싶은 진호는 저여! 라고 외친다. 여자도 질세라 저거등여? 라고 진호의 팔을 붙잡는다. 아니, 뭐 잘못 먹었나. 이 여자가 왜 이래!
"아, 내가 멍저 산다거 해꺼등요!"
"여자한테 양보도 못해요?"
"아 모태모태, 그리고 이쁜 여자한테나 양보하는 거져!"
진호의 말에 여자의 이마에 핏줄이 하나 솟는다. 뭐? 그럼 내가 안 이쁘다는 거야?
"개구리가치 생겨가지고 - 알바 누나, 저 이거 줘여!"
"뭐래, 아저씨가! 알바 조카겠지, 조카!"
"조카아 - ? 그럼 당신은 딸내미네 딸내미!"
이 사람들, 왜 여기서 이러는거야... 싶어 난처해지는 알바다. 못생긴 여자가 성격도 안 좋아! 버럭 소리를 지른 진호는 갑자기 여자가 잠잠해지자, 이겼다는 뿌듯함에 케익을 주문한다. 그런데 갑자기 우는 소리가 들려 보니, 여자가 뚝뚝 울고 있다. 에... 저기... 저기요?
"성격... 나빠서... 미안하네..."
"아, 저, 그게여.."
"전 남자친구도, 성격 나쁘다구, 떠나가고, 성격 나빠서, 케익도 못사구 - "
말을 끝낸 여자는 으아아앙 - 하면서 애처럼 운다. 아, 이게 뭐야. 진호는 뭐라도 물려서 그치게 해야겠다는 생각에 다크 초코 케이크와 아메리카노를 하나 급하게 산다. 그리고 여자를 다급하게 빵집 안의 테이블로 끌고 가 앉히고 커피를 건넨다.
"ㅈ, 자 이거 마셔요. 지, 진정해요."
여자는 흐끅거리며 커피를 마신다. 진호는 죄책감이 밀려온다. 아, 그냥 치즈 살껄 그랬나. 괜히 지면 안 된다는 생각에... 머리를 감싸쥐던 진호는 여자가 숨을 고르자 살았다는 듯 고개를 든다. 진정 좀 되셨어요? 그러자 여자는 끄덕이며 눈물을 손가락으로 찍어 닦는다.
"죄송해요, 제가 남자친구랑 헤어진 지 얼마 안 되서, 갑자기 서러웠나봐요. 남자친구가 성격 나쁘다고 말하면서 떠나갔었거든요."
헤어진 지 얼마 됐는데요? 한 달쯤...? 한 달이라. 이 여자한테도 한 달이란 잔인한 시간이었구나. 동지애가 느껴져, 진호는 씁쓸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저도 한 달 전에 차였거든요. 진호의 말에 여자는 아, 그렇구나... 란다. 왜 그렇구나야! 나 같은 남자가 차였다는데 왜 안 놀라는 거야! 여자가 울고 있지만 않았으면 한 소리 할텐데, 내가 울렸으니 그냥 가만히 있어야지. 진호는 혹 떼려다 혹 붙였다는 속담을 떠올리며, 케익을 여자 쪽으로 민다.
"이거 먹고 힘 내요. 그리고 아까 한 말 다 잊어요. 사실 엄청 미인이에요."
"...이거 그 쪽이 산 거 아니에요?"
"울렸잖아요. 사람 울리는 거 나쁜 거니까, 사죄의 의미에요."
여자는 케익 한 번, 진호 한 번, 커피 한 번 번갈아 바라본다. 진호는 여자를 잠시 바라보다가, 빨리 케익이나 사가야 겠다는 생각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다. 화장 좀 손보고 나가요. 눈 가장자리 조금 지워졌어요. 라는 말과 함께 진호는 다시 진열장 앞에 선다. 치즈가 사이즈는 더 크니까, 그나마 다행이네. 치즈케익 값을 계산하고 뒤를 돌려는데, 핸드폰 하나가 진호의 눈 앞에 나타난다. 그 여자가 내민 것이다.
"나 그 쪽 번호 줘요."
"...네?"
"케익이랑 커피 값. 지금 현금이 없으니까, 다음에 밥 한 끼 살게요. 번호 줘요."
뭐, 그러죠. 진호는 여자의 핸드폰에 자신의 번호를 입력하고, 통화 버튼을 누른다. 곧 진호의 폰 액정에 뜨는 11자리 숫자. 진호는 여자에게 폰을 건네주고 자신의 폰을 꺼내어, 주소록 등록을 한다.
"저능, 홍지노에요."
"...콩이요?"
"아닛, 홍!진!호!"
이 여자가 끝까지 진짜. 당신 이름이나 불러봐요. 진호는 투덜댄다.
"... 전지혜. 전지혜라고 해요."
현민은 결국 눈물을 터뜨렸다. 성공이다! 라며 경훈은 덩실덩실 춤을 추기 시작했다.
사건의 전말은 이랬다. 다섯시 쯤, 유현은 현민에게 엄청나게 화를 냈다. 그리고 회사를 박차고 나갔기 때문에, 현민은 그대로 얼은 채로 매체팀 사무실에 가만히 앉아있었다. 퇴근 시간이 다 되자, 정현은 분위기 안 좋으니 어서 집에 가라며, 그 동안 수고했다며 등을 몇 번 두드려주더니 그대로 회사를 나가 버렸다. 혼자 서러움을 참던 현민은 동민의 'ㅇㅇ식당으로 와라' 라는 메세지에 터덜터덜 들어왔다. 그랬더니 눈 앞에 보이는 건 케이크에 잔뜩 초를 켠 천재회사 사람들. 수고했어요, 현민씨! 서프라이즈였지롱 - 라는 외침에 현민은 그 자리에 서서 그대로 울고 말았다.
"어구 서러워 서러워 - "
사람들은 조카 놀리듯이 현민의 머리를 한번씩 쓰다듬고는, 선물을 건네주었다. 현민은 꺼이꺼이 울면서도 선물을 넙죽넙죽 받았으므로, 사람들은 그런 현민이 재밌다며 사진을 찍었다. 현민이 간신히 울음을 사그러뜨리고 초를 불자, 정현은 자 - 인턴 끝난 기념으로 이별주를 만들자고! 라면서 사발에 소맥을 말기 시작한다. 저, 저기, 그렇게 나오시면 제가 되게... 그렇게 불안한 눈빛으로 사발을 바라보던 현민은 동민에게로 눈을 돌린다.
동민은 아무 말 없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아까와는 완전히 다른 눈빛이었다. 정말 잘 했다는 위로의 눈빛. 그리고 지금까지 자신이 바래왔던 눈빛. 사랑스러운 눈빛. 현민은 순간 마음이 탁 놓였다. 물론 그 안도감은 이별주가 앞에 놓이자마자 날아갔지만. 사람들은 작정이라도 한 듯, 현민에게 술을 먹이기 시작했다. 심지어 경훈은 정수기! 라며 술이 반쯤 남은 술병을 현민의 입에 그대로 꽂았다. 엄청난 술이 목구멍에 들어가는 것을 느끼며, 현민은 식당에 들어선 지 한시간 만에 정신을 잃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현민이 눈을 뜨자, 낯선 집의 침대 위였다. 웅웅 울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몸을 일으켜보니, 모델하우스처럼 집안 정돈이 매우 잘 되어 있는 곳이었다. 여긴 어디지? 방을 나와 거실을 돌아보는데, 현민은 입이 벌어졌다. 드라마에 나오는 것 같이 야경이 넓게 펼쳐진 긴 창문에, 먼지 하나 없이 빛나는 베이지톤의 거실은 황금빛을 뿌리는 스탠드로 동그랗게 물들어 있었다. 여긴 어느 부자의 집인가, 생각하며 넓은 거실을 천천히 돌아보는데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어, 어린이. 좀 깼어?"
편의점 봉투를 들고 들어오는 동민이다. 여기, 차장님 집이에요? 왜 이렇게 좋아요! 감격한 듯한 현민의 말투에 동민은 픽 웃는다. 왜, 나는 좋은 집에서 살면 안 되냐? 아니 그게 아니라요, 손을 내젓는 현민에게 동민은 숙취음료를 쥐어준다. 자, 얼른 먹고 술 깨. 저 술 다깼는데요! 현민이 외치자, 동민은 고개를 가로젓는다.
"너 못믿어. 저번처럼 또 하나도 기억 못할라구."
"네? 뭐가요?"
"됐고, 미션 결과 발표부터 할까?"
동민은 현민을 지나쳐 소파에 앉는다. 현민은 그런 동민을 졸졸 따라가 옆에 앉았다. 동민은 현민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어떤 것 같아?"
"성공 아닙니까. 그러니까 이렇게 수상하러 이런 곳에 와 있는 거겠죠?"
하여간 눈치는 빨라. 동민의 말에 현민은 쑥쓰럽게 웃는다. 미션 성공했는데, 뭐 선물 없어요? 동민은 현민의 말에 기다려 봐, 라며 일어나서 방으로 간다. 현민은 그 사이에 숙취음료를 열어 한 모금 마신다. 조금 시야가 밝아지는 느낌이다. 동민은 웬 쇼핑백 하나와 작은 상자 하나를 들고 나온다. 그게 뭐에요?
"먼저, 작은 것부터 열어 봐."
현민이 작은 상자를 열자, 시계가 나온다. 오오 - 현민이 눈을 반짝이자, 동민이 그 모습이 귀여워 웃는다.
"메탈에 익숙해져야지. 이제 졸업하자마자 회사 들어가서 이런 거 차야 하는데."
"...비싼 거 아니에요? 얼마 줬어요?"
"대학생이 찰 만한 가격이야."
너무 비싼 거 아니죠? 라는 현민의 물음에 야, 선물은 부담없이 받아라. 우리 사이에. 라며 동민이 핀잔을 준다. 우리 사이가 뭔데요? 현민의 돌직구에 동민은 고개를 돌린다. 자, 이제 큰 거 뜯어봐. 현민은 시계를 상전 모시듯 고이 모셔놓고, 쇼핑백 입구를 뜯어본다. 길고 납작한 상자가 나오고, 그 뚜껑을 열자 나오는 건.
"... 이거 잠옷 아니에요?"
게다가 캐릭터 잠오오오옷??? 동민은 현민의 표정을 보더니, 웃겨 쓰러진다. 현민은 황당한 듯이 하늘색 잠옷을 바라본다. 이 사람이 진짜, 어린이 어린이 하더니 진짜 내가 애인 줄 아시네. 현민이 이게 뭐에요! 라고 소리치자 동민은 킥킥, 웃는다.
"야, 오늘 그거 입고 자라."
"아, 됐어요. 내가 애에요?"
"내 나이 돼 봐! 완전 애기지!"
아, 싫어요! 나 애기 아니란 말이에요! 현민은 이렇게 외치더니, 동민을 뒤로 넘어뜨린다. 진짜 애기 아니에요, 보여 줄까요? 현민의 두 팔 안에 갇힌 동민은 가만히 현민을 바라보더니, 현민의 어깨를 부드럽게 감싸 서서히 당긴다. 그렇게 동민과 현민의 입이 맞대어진다. 서서히 숨이 얽히고, 혀가 얽힌다. 적나라한 소리가 거실을 가득 메우지만, 둘은 신경도 쓰지 않는다. 그러다 숨이 막혀 현민이 몸을 일으키자, 둘의 사이에 실이 하나 늘어진다. 현민이 입가를 슥 닦자, 동민은 몸을 일으켜 소파 손잡이에 등을 기댄다.
"어린이. 내가 잠옷을 왜 사줬게?"
"... 애 취급 하느라 그런거 아니에요?"
그렇기도 하지. 동민이 현민의 턱 밑에 손을 가져다대고 우쭈쭈, 하자 현민이 약하게 탁 쳐낸다. 동민은 킥킥 웃더니 덧붙인다.
"연인 사이에서 잠옷은 나의 모든 것을 바쳐 사랑합니다, 라는 뜻이야."
동민의 말에, 현민은 멈칫한다. 그리고 잠옷을 빤히 바라본다. 하여간, 어려서 괜히 찔리니까. 동민은 현민의 볼을 꼬집는다. 어린이, 나랑 연인할까? 현민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더니, 대뜸 와락 동민을 안는다. 참 오래도 걸렸다. 두 사람 다, 두 달이란 시간이 이렇게 긴 시간이었나 싶다. 현민은 품에서 동민을 떼어내더니, 고마워요. 란다. 동민은 그런 현민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현민을 다시 껴안는다. 한참을 그러고 있다가, 동민이 말을 꺼낸다. 그런데 어린이. 이 잠옷 내가 사이즈를 안 보고 눈대중으로 산 거야.
"이거 사이즈 맞는지 입어보려면, 이 옷 벗어야 되는데."
현민의 어깨를 움켜쥐고 어때? 라고 묻는 동민의 말에, 잠시 현민은 동민을 바라본다. 그러더니 동민의 허리를 두 손으로 붙잡는다. 나 여기서 할건데, 괜찮아요? 현민의 말에 동민은 현민의 귓가에 속삭인다. 바라던 바야.
흐아우아 드디어 끝났당 8ㅅ8
사실 내가 글 쓰는 게 처음이라 내용이 이리 꼬이고 저리 꼬여서
13화에 끝내려는 걸 17회까짘ㅋㅋㅋㅋ끌고왔닼ㅋㅋㅋㅋㅋ
후기 써달라는 갓들이 있어서 좀 써보면...음...어.. 근데 글잡에서 연재하는 거 아닌데 후기가튼거 써도돼?
안 되면 수정할게 ㅠㅠㅠ 암튼
이거 보이닠ㅋㅋㅋㅋㅋㅋ 원래 12회, 길어봤자 13회로 끝날 거였다고...!! 망한 현장이 보이니!!
어쨌든 생각했던 큰 스토리라인은 다 쓴 것 같다.
미안... 콩이 다른 남정네가 와서 행복했음 좋겠다고 쓴 갓드랔ㅋㅋㅋㅋㅋㅋㅋ뜬금 레제루트라서
근데 원래 생각해놨었음 ㅇㅅaㅇ ㅇㅅㅇr'... 미안
...나 더 쓸말이 없는 것 같아
더 궁금한거 있으면 댓글로 달아줘!! 답글 열심히 달겡!!
그리고 보고 싶은 외전 같은 것도 댓글로 달아줘!! 내가 아예 외전은 모아서 따로 글 쓰게!!
지금까지 이런 글 보느라 수고했어 갓드라...사랑해!
PS : 나는 그취방을 떠나지 않을거야
혹시 누가 또 이상한 설정으로 연재를 하거든 ㅋㅋㅋㅋㅋ 댓이즈 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