外1 - 최정문
어, 최정문? 어... 창엽 선배? 두 사람이 서로를 가리키며 놀라자, 천재 광고 회사원들이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본다. 둘이 아는 사이야? 그러자 창엽은 싱긋 웃으며 끄덕인다. 네, 고등학교 후배에요!
정문과 창엽은 같은 고등학교를 나왔다. 정문은 일어과, 창엽은 중어과. 정문이 고등학교에 입학한 지 한 달만에 창엽은 1학년 사이에서 꽃돌이로 유명했다. 어찌나 애들이 창엽을 따라다녔는지, 창엽의 그 때 별명은 아이돌이었다. 처음엔 정문도 창엽을 보며 가슴이 미친 듯이 설레었다. 그래서 창엽이 들었던 방송부도 따라들어갔고, 한 달 내내 먼발치에서 창엽을 바라보기만 했다. 그러나 방송부에서 창엽이 어찌나 정문을 괴롭히고 놀리는지, 소녀의 환상은 와장창 깨지고 말았다. 맨날 정신없이 티격태격했었지. 정말 재수없었는데. 그래도 여전히 잘생겼네, 정문은 생각한다.
"이야 - 우리 무니, 완전 용 다 됐네."
예전 모습이 기억이 안 나겠는데? 정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창엽은 싱긋 웃는다. 뭐, 예전에도 정문씨 귀엽지 않았을까요? 지금은 천재광고의 아이돌인데. 연승의 말에, 창엽은 잠시 눈을 크게 뜨며 놀란다. 그러다가 갑자기 빵 터진다.
"저, 정문이가요? 진짜? 와, 사람 이뻐지고 살 빠지니까 다르네."
저 정문이 고등학교 사진 있는데, 보여드릴까요? 창엽의 말에 정문은 피식 웃는다. 그런 게 어딨겠어. 그런데 창엽은 지갑에서 증명사진 하나를 꺼낸다. ...저 안경, 저 교복, 저 더벅머리. 설마...?
"꺄아아아아아악!!!"
정문은 사진을 움켜쥐고 회사를 뛰쳐나간다.
내 사진. 돼무니가 없앴어. 내 사진... 창엽은 투덜거린다. 정문은 창엽 옆에서 커피캔을 구긴다. 두 사람은 미팅룸 바깥에서 중요 미팅이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다. 창엽은 광고 외주 회사의 사원이다. 광고 업종에서 다시 만날 줄 몰랐네. 사원들은 잠시 미팅에서 빠져서 바깥 탕비실에 앉아있으라는 팀장들의 말에, 정문과 창엽은 미팅룸에서 쫓겨나 바깥 테이블에 앉아있는 것이다.
"그런 걸, 왜 가지고 있어요!"
"내 딸 그렇게 크지 말라고 나중에 보여줄라고 했지."
그걸 말이라고. 정문이 째려보자, 창엽은 개구지게 웃는다. 둘이 같이 방송부 할때도 창엽은 항상 이런 성격이었다. 전혀 꾸미지 않고 통통했던 정문을 쫓아다니며 살 좀 빼라, 안경 벗어봐라. 오지랖도 그런 오지랖이 없었다. 그리고 창엽을 쫓아다니는 예쁘고 날씬한 여자아이들을 보며, 자괴감에 빠졌던 정문이다. 가끔 지나친 장난에 정문이 화를 내면, 창엽은 일본어와 한국어를 섞어쓰며 더욱더 놀려댔다.
"히익 - 정문쨩, 코와이데스요 - 창엽쨩 흑흑데스!"
재수없는 인간. 중어과 주제에 왜 일본어를 쓴담. 평생 망했으면 - 하고 바란 게 엊그제 같은데, 이렇게 나타나다니. 고3 졸업 후, 정문은 15키로를 빼고 화장을 해서 지금처럼 아이돌같은 예쁜 모습을 가지게 되었다. 왠지 뿌듯해져 흠흠거리는데, 창엽이 정문의 얼굴을 감싸고 자신을 보게한다. 뭐야, 왜 이래. 정문이 미간에 주름을 잡자, 창엽이 빤히 바라보며 한 마디 한다.
"아무한테도 안 말할게, 솔직히 말해봐. 어디 했어?"
"선배. 혹시 커피캔으로 뺨 맞아본 적 있어요?"
정문의 말에 흠흠, 헛기침을 하며 손을 떼는 창엽이다. 화장 지워진다구요! 정문이 화를 내자, 창엽이 한번 지워 볼까? 라며 다시 손을 뻗는다. 선배, 남의 회사에서 손목 꺾여본 적은 있구요? 정문의 말에 창엽은 팔을 내리고 얌전히 앉는다.
"아, 맞다. 너 오늘 밤에 시간 돼?"
"...왜요."
"우리 그 때 방송부원들, 오늘 밤에 술 마시기로 했는데, 넌 번호가 없어서 연락이 안 됐거든."
오랜만에 한번 뭉쳐야지! 혼자 으쌰으쌰하면서 신이 난 창엽을 보니, 정문은 기가 차다. 뭐, 그래도 다른 선배들과 친구들이 보고 싶긴 하니까. 정문은 끄덕인다. 그 때 미팅룸이 열리고, 사람들이 빠져나온다. 성공적으로 끝났나보다.
"자, 창엽씨. 우린 여기서 퇴근하지."
"아, 좋습니다. 제가 역까지 바래다 드릴게요!"
자신의 상사에게 웃으며 말하는 창엽이다. 그러더니 정문에게 고개를 돌린다. 6시까지, 너네 회사 앞으로 나와! 창엽의 말에 정문은 고개를 끄덕인다. 아, 알았어요. 창엽은 옳지옳지, 라며 정문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나가는 듯 하더니, 정문에게 뒤돌아 소리친다.
"정문아! 그거 기억나, 숫자?"
"예, 아직도 기억나요."
520. 우알링이라고 읽는다면서요, 중국어로. 정문의 말에 창엽은 오 - 역시 기억력 천재 - 라며 엄지손가락을 들어보이더니 상사를 따라 쫄랑쫄랑 나간다. 광고주를 배웅하던 요환은 우...뭐? 링? 중국 과자야? 라며 정문에게 묻는다. 정문은 어깨를 들썩여보인다. 그 숫자는, 창엽이 졸업할때까지 정문만 보면 인사 대신에 외치던 숫자였다. 대체 뭔지 모르겠네. 내가 520키로 나가보인다는 건가. 항상 그 숫자를 들을때마다 이 생각이 들었던 정문이었다.
"오 - 창엽이 말이 맞았네."
"야 - 무니무니! 왜 이렇게 이뻐졌어, 여신 다 됐네!"
오랜만에 만난 방송부원들의 외침에 정문은 어깨가 으쓱, 하는 것 같다. 창엽이 데려 온 술집에는 예전에 같이 고등학교 방송부를 했었던 사람들이 거의 다 와 있었다. 정문의 친한 친구부터, 무서웠던 군기반장 언니까지. 지금은 사회인이 된 처지들이라 동질감이 생겼는지, 그 때의 사나운 표정은 어디가고 하나같이 다들 반가운 표정이다.
"나 아까, 돼무니 사진 뺏겼어...나 엽무룩..."
창엽은 정문의 옆에 앉더니 바로 사람들에게 사진을 빼앗긴 사건을 얘기한다. 아, 시간을 되돌려서 창엽과 같이 학교를 다니고 싶다. 점심시간마다 옥상으로 불러서 밟게. 정문은 짜증이 나 머리카락을 죄다 창엽의 쪽으로 쓸어넘긴다. 자신의 시야에서 가리게. 그런 정문을 보더니, 창엽은 정문 몰래 미소를 짓는다.
위하여 - 만 벌써 20번 넘은 것 같다. 정문은 머리가 어질거려서, 옆으로 쓰러진다. 그런데 자리가 비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남자 선배들 네 명 정도가 없다. 뭐지, 왜 없지. 뭐 상관없겠지, 싶은 정문은 자리에서 일어난다. 제가 아이스크림 사올게여! 정문의 말에 취기가 오르던 사람들은 오오 - 아이스크림 여신 - 이라며 정문을 찬양한다. 지갑을 들고 팔랑팔랑 편의점으로 향하는 정문이다. 그런데 취해서 그런지, 손에서 핸드폰이 미끄러져 떨어진다. 아이씨, 액정 나간거 아니겠지? 쭈그려 앉아 핸드폰 액정을 요리조리 살펴보는 정문이다. 그런데 이 때, 정문의 이름이 어디선가 들린다. 응?
"얘가 지 혼자 정문이 놀린다고 난리도 아니었지."
"맞아, 전에 어떤 2학년 여자애가 정문이 뒤에서 돼지라 그랬다가 창엽이가 반 죽일 뻔했잖아."
그렇게 좋을 거 왜 놀렸냐? 남자들의 놀림에 창엽은 그저 웃는다. 무, 뭐라고? 정문은 그 자리에 얼어붙은 채 서서 가만히 듣고 있었다. 창엽은 신발 코끝을 땅에 몇 번 차더니, 쑥쓰러운 듯 말한다.
"나, 그, 520. 맨날 정문이한테 말했는데.. 아직, 기억하더라."
"와 - 진짜 그걸 썼어? 나 그거 설마 누가 쓸까 했는데, 쓰는 사람이 진짜 있네."
소름끼친다, 나가 죽어! 남자들에게 창엽이 맞는 소리가 들린다. 아, 아! 아프다! 야, 근데 정문이 진짜 이뻐졌드라. 보니까 어떻든?
"뭘, 똑같이 좋지. 건들지마라. 니네여도 가만 안 둔다."
뭐래, 팔불출 오지시네요. 순애보인줄! 방송부원들과 창엽의 대화를 들으며, 정문은 이게 무슨 상황인가 싶다. ...? 최창엽이, 나를 좋아해? 날? 어찌나 자기 생각에 골몰해있는지, 정문은 몸을 피하지도 못하고 방송부원들과 마주친다. 어, 정문이 어디가냐?
"아, 저기, 사람들 많이 취해서, 아이스크림 사러가요."
"혼자 가? 위험해, 나랑 같이 가. 우리 돼무니 누가 잡아간다."
뒤따라오던 창엽은 정문의 손목을 잡는다. 가자, 돼무나. 오오 - 방송부원들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창엽을 툭, 치더니 술집 안으로 향한다. 이 사람이 날 언제 좋아했던건가, 혹시 내가 그 때 외적으로 못생겨서 그걸로 아직도 놀리는 건가? 싶은 정문은 창엽의 손을 뿌리친다. 술기운이 머리 끝까지 올라 제대로 된 생각을 할 수 없기에 가능한 행동이었다. 어, 왜 그래?
"...."
"아, 아직도 돼무니라고 해서 삐졌어? 미안, 지금은 날씬하잖아..."
"....나 다 들었어요."
정문의 말에 창엽은 잠시 어리둥절해하더니, 아, 라며 김빠진 소리와 함께 멍해진다. 그랬구나.. 우리 정문이가 들었구나... 정문은 창엽을 노려본다. 뭐에요, 내가 그 때 좀 못꾸미고 살쪘다고 나를 그렇게 놀린거에요? 왜 저 사람들까지 다 알고 있어요? 정문의 따짐에 창엽은 그렇지 않아. 라며 조용하게 말한다. 게다가 520이 뭔데 저 사람들도 그걸 알아요? 나 놀린거 맞잖아요! 정문이 외치자, 창엽은 씩 웃으며 정문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있지, 나 그거 알았다? 너가 나 좋아하는거?"
...예? 정문의 말에, 창엽은 웃는다. 방송부 면접봤잖아. 근데 니가 방송부 장비나 기능에 대한 기본 지식이 하나도 없더라구. 근데 왜 들어왔나 싶어서 다음날 널 관찰했거든? 근데 니가 나만 보더라. 나 알았어, 너가 나 좋아하는거. 창엽의 말에 정문은 멍해진다. 이, 이 나쁜 놈이!
"귀엽드라. 하얀 게 얼굴 빨개져가지고, 복숭아 같이 벽 뒤에 숨어있는거."
창엽의 말에 정문은 얼굴이 달아오른다. 무슨 소리를 하는거야, 대체.
"근데, 너가 너무 너 자신에 대해서 자신감이 없더라고. 그래서 맨날 말했잖아. 너 안경 벗고 살 빼라고. 너가 좀 더 너 자신을 사랑해야 나한테 자신감 있게 다가오지 않을까 싶었어."
거짓말, 맨날 놀리는 투였으면서. 정문은 눈물이 날 것 같다. 지금 살 빠져서 내가 좀 봐줄만 하니까 이러는 거다. 거짓말 하지 마요. 정문의 말에 창엽은 아닌데? 라며 정문의 눈을 바라본다.
"520. 검색해봐. 내가 너 방송부 들어오자마자 맨날 그 말 말했지? 내 말이 거짓말인지 아닌지 봐."
초록창에 검색만 해도 나올걸? 아, 520 중국어로 검색해야돼. 내가 요즘 검색해보니까 자동차 이름 나오더라. 창엽의 말에 정문은 밑져야 본전, 이라는 마음으로 초록창에 520 중국어라고 검색을 해 본다. 그러자 '숫자로 배우는 중국어'라는 포스트가 하나 뜬다. 눌러보니, 520에 대한 다음과 같은 한 줄이 눈에 들어왔다.
'520 = Wu Er Ling = Wo Ai Ni'
"워아이니는 뭔지 알지?"
이 사람, 진짜 유치하다. 유치해. 정문은 울컥 눈물이 터진다. 창엽은 씩 웃으며 정문을 껴안는다. 와, 진짜 신기하다.
"첫사랑은 안이루어진다던데, 7년 만에 이루어지겠네."
누가 받아준대요? 라고 정문은 말하고 싶었지만, 눈물 때문에 말을 씹고 말았다. 정문의 웅얼거림에, 창엽은 크게 웃는다.
"무나, 우알링."
".............."
"넌 아니야? 아, 그럼 아직 짝사랑이네. 어쩌지."
무룩무룩 엽무룩! 볼을 부풀리는 창엽이다. 어이가 없어서. 픽 웃은 정문은 창엽의 턱에 머리를 기댄다. 내가 먼저 우알링이었어요.
外2 - 홍진호
왜 넌 점점 못생겨지냐. 진호의 말에 지혜는 진호의 배에 어퍼컷을 날린다.
그 날, 빵집에서 전화번호를 주고받은 이후로 진호와 지혜는 이틀에 한 번은 만났다. 아, 물론 카톡도 매일매일 하고. 그러나 로맨틱한것은 없었다. 지혜에게서 날라오는 카톡 중 80%는 아, 팀장 살해하고 싶다. 아, 클라이언트 오다 살해당했으면 좋겠다. 심지어는 아, 옆집 아줌마 살해당했으면 좋겠다. 이 여자가 왜 남자친구에게 차였는지 알 것 같은 진호였다.
오늘은 야근이 끝나고 지혜와 저녁 겸 야식을 먹기로 한 날이다. 그런데 지혜가 팔랑팔랑한 반바지에 회색 후드 하나 입고 운동화를 신고 나왔다. 넌 남자랑 나오는데 그 꼴로 나오고 싶냐? 진호의 말에 지혜는 삐딱하게 서서 말한다.
"뭐 이득 볼 게 있다고, 너랑 만나는 데 꾸미고 나오냐?"
그건 그렇지만. 진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지혜를 끌고 일식집으로 간다. 야, 오늘은 스시 삘이다. 니가 사는 거지? 라는 지혜의 말에 진호는 지혜의 목을 장난스레 조른다.
연어 덮밥과 스시 12피스를 시킨 진호는 맥주를 시키는 지혜를 보고 놀란다. 너 내일 아침에 바쁘다며. 그러자 지혜는 어깨를 으쓱해 보인다.
"내일 일은 내일 걱정하면 되지."
"인생 참, 편하게 살아요."
그러다가 지혜의 허벅지에 든 멍이 보인다. 이건 뭐냐? 진호가 허벅지를 검지손가락으로 슥 찌르자, 지혜가 진호의 머리를 숟가락으로 딱 친다. 아, 아퍼!! 이 변태가, 왜 남의 다리를 만져!
"남자끼리 허벅지 만지면 어때서!! 그리고 허벅지 만진 게 아니라 멍 찌른거잖아, 멍!!"
"남자 같은 소리하네. 이렇게 이쁘고 섹시한 남자가 어딨냐!"
놀고 있네. 진호가 비아냥거리자, 지혜는 책상에 갖다 박았어. 라고 쿨하게 얘기한다. 칠칠맞지 못하긴. 진호는 혀를 차며 주방장이 건네는 음식을 받는다. 지혜는 맥주를 받으며 거맙습니당! 이라고 애교를 부린다. 역겹다, 라고 진호가 말하자 애교를 부려보는 지혜다.
지혜는 이제 너무 편해져버린 사람이다. 우연히 만난 사람치고, 진호와 하나부터 열까지. 심지어는 뭉개지는 발음마저 닮았다. 마치 서로가 서로를 위해 준비된 사람처럼. 진호는 이게 신기했다. 누굴 좋아한다는 마음보다, 먼저 곁에 있고 싶은 마음이 생겨버린 것은 처음이다. 단순한 호감보다, 누군가에게 스며든다는 게 이런 것인가 싶다. 그렇게 생각하는데, 지혜가 급하게 먹었는지 쿨럭댄다. 진호는 등을 쳐주면서 생각한다. 하필 이런 애랑...
"야, 이거 진짜 맛있다!"
"...오빠라고 못 부름?"
"님이 오빠? 뭔 소리."
차라리 이 연어한테 오빠라고 하겠다, 라며 지혜는 입 속으로 연어 스시 하나를 집어넣는다. 야, 연어 두 개 있는데 그걸 니가 다 멍냐!! 진호의 억울한 외침에 아 그럼 연어 덮밥에 있는 연어나 드시덩가!! 라며 버럭 소리를 질러온다. 뻔뻔하긴.
"근데 진짜 신기하지 않아? 나 지금까지 너 같은 사람 본 적 없어."
"... 나도."
"와 진짜? 우리는 친해질 운명이었나봐. 케익 가게에서 딱 같은 케익 고를 때 그 촉이 왔다니까."
아니, 너처럼 왈가닥인 여자 처음 봤다는 건데. 진호의 장난스러운 말에 지혜는 진호의 머리채를 잡는다. 사실 지혜의 말에 진호도 동감했다. 지혜와는 만남을 거듭할수록, 그냥 관심사가 같다는 말로는 표현할 수가 없었다. 마치 하나하나 서로 동기화가 되듯이, 그래서 하나의 화두를 던져도 서로가 바로 공감하고 대화가 이어져 나갔다. 운명이라 부를 수 있다면 이게 운명이겠다 싶은 진호였다.
"근데 난 운명을 안 믿어."
"왜?"
"운명은, 아무리 운명이 앞에 있어도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으면 말짱 도루묵이거든. 있어도 사람의 의지나 행동력 때문에 이루어질 수가 없다는 거지 - "
지혜의 말에, 진호는 그것도 그래. 라며 고개를 끄덕인다. 운명이 있어도, 망설이는 사람이 있고 그걸 용기 있게 움켜쥐는 사람이 있겠지.
"어때, 넌? 운명을 믿어?"
"응, 난 믿어. 난 운명이라고 생각하면 바로 남자답게 딱 - 행동하거든."
올 - 무슨 행동을 했었는데? 지혜는 진호의 어깨에 팔꿈치를 걸치며 묻는다. 진호는 잠시 고개를 돌려 지혜의 얼굴을 바라본다. 지혜가 초롱초롱하게 진호를 바라보며 답을 기다리고 있다. 진호는 대뜸, 지혜의 입술에 입을 맞춘다. 쪽. 지혜는 놀라 입을 가리고 몇 초동안 가만히 있는다.
"뭐야, 미쳤어!!"
"행동을 안 하면 운명이 안 이루어진다며."
그래서 하고 싶었어. 진호는 당황한 지혜에게 씩 웃어보인다. 운명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