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것도 Rozen 님이 올린 것, 그리고 어떤 분이 약간 덧붙여서 올린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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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종
손견 때부터 활약한 노장이자 개국공신인 한당의 아들 한종은 227년 한당이 사망한 후, 그의 작위를 계승해 군대를 통솔했습니다.
조비가 죽고 촉의 제갈량이 출사표를 올리고 북벌을 준비하던 그해 손권도 군사를 일으켰습니다.
이 해, 손권은 석양을 징벌하러 가면서 한종에게 부친상이 있었기 때문에 무창을 지키도록 했다.
그러나 한종은 음란하였으며 정도를 따르지 않았다. 손권은 비록 그의 부친 때문에 힐문하지는 않았지만, 한종은 내심 두려워했다. -한당전-
한종은 급기야 부친의 시신을 수레에 싣고 모친을 비롯한 가솔들 수천 명을 이끌고 위나라로 달아나버립니다.
위나라에선 그를 나쁘게 대하지 않아서 장군직을 하사하고 후작위를 내렸습니다.
이후 한종은 조국으로 칼날을 돌려 수 차례 오나라 변경에 침입해 살육을 일삼았습니다.
손권은 당연히 두고두고 이를 갈았지만 살아 생전에 복수하지는 못했습니다.
252년 한종은 제갈탄과 호준이 이끄는 위군 7만을 제갈각이 이끄는 4만 오군이 깨뜨린(전부 제갈각 덕은 아니고 유찬, 정봉, 여거, 주이 등의 활약이 컸지만) 동흥전투에서 선봉으로 출진했다 참수당했고, 손권의 무덤에 목이 바쳐졌습니다.
2. 감괴
오를 대표하는 맹장 감녕의 아들 감괴는
감괴는 죄를 범하여 회계군으로 이주되었다가 오래지 않아 죽었다. -감녕전- => 이걸로 끝.
3. 반평
형주공략을 비롯한 여러 전쟁에서 활약했던 숙장 반장의 아들 반평.
참고로 반장은 연의에서는 유비군에게 죽는 걸로 나오지만, 실제로는 유비가 죽은 후에도 꽤 오래 살았죠.
반장은 가화 3년(234)년에 죽었다. 아들 반평은 품행이 좋지 않았으므로 회계군으로 쫓겨났다. -반장전-
4. 보천
오의 문신 보즐의 아들이자 촉이 멸망할 때 뒷치기하러 갔다 촉장 나헌에게 패배를 맛본 보협의 동생입니다.
대대로 서릉에서 살았는데, 272년 성을 바치고 진나라에 투항했으나 육손의 아들 육항에게 참패해 삼족 몰살.
5. 주적
이릉대전에서 활약한 장수인 주연의 아들입니다.
참고로 주연은 연의에서는 조운에게 죽는 걸로 나오지만, 정사에서는 멀쩡히 살아서 이후에도 활약 꽤 합니다.
주적은 반준과 함께 무릉의 만족 토벌에 종군해 담력으로 칭찬을 받았으며, 도적에 관한 사무를 맡아보기도 했고, 법 집행의 공정함으로 이름이 높았습니다.
(손권의 노망 덕분에) 태자 손화와 후계자 다툼을 벌였던 노왕 손패(손권 4남)가 그와 친교를 맺기 위해 일부러 찾아왔을 때도 거부하고 중립을 지켰고, 위의 정남장군 왕창이 강릉을 공격해 왔을 때 선전했으나 함께 싸우기로 했던 제갈융(제갈각 동생)이 약속을 지키지 않아서 승리하지는 못했습니다. 당시 권신이었던 제갈각과는 원래 사이가 좋지 않았는데, 이 사건으로 더욱 사이가 벌어지게 됩니다.
위에 든 3명과는 달리 능력 있고 공정한 성격에 권력을 탐하지도 않았던 괜찮은 무장이었습니다.
(257년)주적은 표기장군으로 승진했다. 손침(제갈각, 손준 사후 오의 국정을 휘두른 권신)이 정권을 쥐게 되자, 대신들은 서로 의심하고 다른 마음을 가졌다. 주적은 오나라는 틀림없이 혼란하게 될 것이고, 중원(위)이 그 틈을 타고 공격하려 할 것을 걱정하고 은밀히 편지를 보내 촉과 연락을 취하여 오나라를 겸병할 계획을 만들도록 했다. 촉은 우장군 염우를 파견하여 병사 5천을 인솔하여 백제의 수비를 늘리고 주적의 다음 지시를 기다리도록 했다. -주연전-
오나라에 촉의 지지자가 좀 있었던 건 사실입니다. 장온 같은 사람은 일찍이 사신으로 갔다가 대놓고 촉의 정치를 찬미했고, 그 말고도 제갈량과 장완을 지지하는 자들이 꽤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때 촉은 비의까지 사망한 상태에서 유선이 국정을 어지럽히고, 유선의 후광을 받은 환관 황호 및 그와 결탁한 진지 일당이 국정을 피폐하게 만드는 중이었습니다. 그런 촉의 사정이 손권 사후 혼란이 계속된 오나라보다 훨씬 나아보였던 건지, 아니면 촉나라 돌아가는 사정을 잘 몰랐던 건지 요충지인 형주 일대를 다스리는 사령관이 다른 나라 군대를 끌어들여 나라를 바치려 들었던 사건입니다.
이후 후속 기록이 없고 주적은 얼마 안 가 다시 승진하면서 잘 지낸 것으로 보아 그냥 해프닝으로 끝난 듯.
6. 주윤
그 유명한 미주랑 주유의 아들입니다. 주유는 2남 1녀를 뒀는데, 딸은 손권의 맏아들 손등에게 시집갔고, 장남 주순은 공주와 결혼했으며 주유의 풍모를 이어 받았다는 말을 들었으나 요절해서 남은 게 주윤입니다.
황룡원년(229), 도향후로 봉해졌으며, 후에 죄를 범하여 여릉군으로 옮겼다. -주유전-
저때 관직 박탈당하고 평민이 된 모양입니다.
10년 후인 239년 제갈근(제갈량의 형)과 보즐이 상소를 올려 말하기를
고인이 된 장군 주유의 아들 주윤은 지나친 칭찬을 받아 장군으로 봉해짐을 받았었습니다. 그는 특별히 두터운 대우를 받을 수 없을때는 공을 세우려고 생각하였으나, 도리어 방종하고 사용에 집착하여 매우 빨리 죄를 지어 처벌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신들의 사사로운 생각으로는(이하 주유 찬양 중략)
하물며 주유가 죽은지 오래되지 않았는데, 그의 아들 주윤을 강등시켜 평민이 되게 하였으니 더욱 더 슬픕니다.
-주유전-
간단히 말해 주유의 공을 생각해서 주윤의 죄를 사하고 복권시켜주자는 내용이었습니다. 저때가 주유가 죽고 29년이 지난 시점이었는데, 오래되지 않았다고 말하는 데서 오나라에서 주유의 존재감이 얼마나 컸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손권이 이에 답하기를
옛날 주윤이 나이가 어렸으며, 처음에는 공로가 없었는데도 정예 병사를 받아 지휘하고 왕후 장군의 작위로 봉해진 것은 주공근을 생각하여 주윤에게 미쳤던 것이오. 그런데 주윤은 이러한 것에 기대어 주색에 빠져 스스로 방자하였으며, 앞뒤로 몇 차례 말하여 깨우치게 하였지만, 일찍이 고친 일이 없었소. 나와 주공근과의 정의는 당신들 두 사람과의 것과 똑같은데, 주윤이 성취하는 것이 있기를 바라는 심정이 어찌 멈춰 있겠소? 주윤의 죄악을 구명하여 즉시 돌아오지 못하도록 하고 있는 것은 그로 하여금 고통을 받게 하여 스스로 알도록 하려는 것이오.
주유를 아끼고 기리는 마음이 손권이라고 덜할 리가 없는데 저렇게 말하는 걸 보면 기대를 저버리고 악행을 일삼은 게 한두 번이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제갈근과 보즐이 이후로도 지속적으로 건의하고, 다른 중신인 주연과 전종 또한 거들어준 끝에 주윤은 겨우 복권될 수 있었습니다. 제갈량의 아들인 제갈첨과는 너무나 대조되는군요.
7. 육항
오를 대표하는 장수이자 지략가인 육손의 둘째 아들입니다.
맏아들인 육연은 요절해서 육항이 아버지의 뒤를 잇게 됩니다.
이쪽 또한 오의 후반기를 책임지는 유능한 인물입니다.
오를 배신하고 진으로 달아난 보천을 아작내고 그 일족을 싸그리 처형하고, 진의 양호와의 대치로 진이 침공하지 못하게 견제하는 등의 활약을 했습니다.
그 전에 촉이 위에게 멸망했을 때, 영토 확보를 위해 촉의 파동을 공격했다가 파동을 지키는 촉장 나헌에게 저지당해서 실패한 전적이 있지만.
진나라 장수인 양호와 서로 견제하면서도 우정을 나눈 일화도 유명합니다. 결국은 병으로 죽지만.
8. 제갈각
제갈량의 형인 제갈근의 맏아들입니다. 이쪽은 어렸을 때부터 뛰어난 자질을 보여서 사람들을 놀라게 할 정도였습니다.
손권이 제갈근을 갖고 장난친 거에 대한 대응, 오의 중신인 장소에게 한 방 먹인 것 등이 그 사례.
그 외에도 수많은 난들을 제압했고 행정적인 일에도 공을 세워서 육손이 죽은 후에 그 뒤를 이어받게 됩니다.
252년에는 동흥에 제방을 만들고, 그걸 낀 형태로 성을 쌓아 위에 대한 견제용으로 삼습니다.
이에 위에서는 호준과 제갈탄에게 명해 7만 대군을 이끌고 동흥을 공격하게 하고, 제갈각은 4만 대군으로 구원하러 가는 한편, 유찬과 정봉 등을 선두로 보내 위군을 대패시킵니다. 여기서 위군은 수만의 병력을 잃은 데다 선봉으로 선 한종(위에 언급된 한당의 아들), 낙안태수 환가 등의 장수들까지 잃게 됩니다.
문제는 제갈각이 이 승리 이후로 적을 경시하게 되었다는 것이고, 바로 다음해에 군대를 출전시키려 하게 됩니다. 대신들이 병사들의 피로 문제 등을 비롯해서 시기가 아니라고 말렸음에도 불구하고. 제갈각이 확실히 능력은 뛰어나지만 고집이 세다는 문제 때문에 제갈근과 손권조차도 우려했을 정도였습니다.
결국 제갈각은 20만 대군을 일으켜 위의 신성을 공격했으나 끝내 함락시키지 못합니다.
-사졸들은 피로해졌고, 날씨가 더워 물을 마셨기 때문에 설사나 각기병에 걸린 자가 많았으며, 죽거나 부상당한 자로 땅을 뒤덮었다. 관리들은 병든 자가 많다고 보고했지만, 제갈각은 거짓말로 여기고 이들의 목을 베려 하니 감히 말하는 자가 없었다(그래도 내심으로는 자신의 계책이 실패했다는 걸 인정했다고 함). 장군 주이가 옳고 그름을 논하려 하자, 제갈각은 분노하여 즉시 그의 병권을 빼앗았다. 도위 채림은 계책에 대해 여러 가지로 진술했지만 제갈각이 듣지 않자 위로 도주했다. 위에서는 오군의 상태를 알고 구원병으로 하여금 전진하게 했다. 제갈각은 군대를 이끌고 떠나갔다. 사졸들은 병들고 다쳐서 모두가 탄식했지만 제갈각은 태연자약했다. 그는 장강으로 나와 한 달간 머문 후에 심양현에서 둔전할 계획을 세웠지만, 그에게 돌아오라고 부르는 조서가 끊이지 않아서 결국 돌아왔다. 이로서 사람들은 그에 대해 실망하고 원한까지 품게 되었다. - 정사 제갈각전
그야말로 고집 세고 혼자 다 해먹는 독재자 타입입니다. 자신더러 돌아오라고 한 조서에 대해서도 중서랑 손묵에게 "당신들은 어떻게 감히 망녕되게 조서를 몇 차례나 작성했소?"라고 성난 목소리로 말하기도 했으니. 이에 손묵은 제갈각을 두려워해서 한동안 병을 핑계로 삼아 조회에 나오지 않게 됩니다.
이후에 권한을 더욱 강하게 잡은 데다 그 성격 때문에 제갈각과 얼굴을 마주 해야 하는 대신들 치고 그를 두려워하지 않는 자가 없을 정도였고, 백성들로부터의 원망도 크게 높아졌습니다.
마침내 손준이 백성들이 제갈각을 원망하는 것을 틈타 당시 황제인 손량과 상의해서 제갈각을 제거하려 합니다.
결국 제갈각은 손준에 의해 살해당하고 갈대 자리에 싸여서 강에 던져지게 됩니다.
그 두 아들인 제갈송과 제갈건은 제갈각이 주살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위로 달아나려 하다가 잡혀서 참수당합니다.
생전에 제갈송은 제갈각의 독선적인 점이 화를 부를 것을 우려해서 아버지에게 자주 조언을 했다고 합니다.
물론 제갈각은 듣지 않았지만. 그래도 이쪽은 국정에 대한 책임감이 강했고, 능력도 뛰어나고, 성과를 거둔 것도 많았죠.
9. 주이
이릉대전 직후에 오에 쳐들어온 위의 세 갈래 군사 중 하나인 조인의 군사를 훌륭하게 막아낸 주환의 아들입니다.
주환이 살아 있었을 때는 그가 부대 후방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위군이 추격할 엄두도 내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그 뒤를 이어받은 주이도 나름대로 유능한 편이었습니다.
위의 여강태수 문흠(나중에 관구검과 함께 사마사에게 반기를 드는 인물)과 몇 차례 대치해서 타격을 준 바 있고, 문흠이 거짓항복을 시도하지만 그걸 간파하고 미연에 피해를 막아냈으며, 동흥을 공격한 제갈탄과 호준의 군대를 격파하는 데 한몫 합니다.
257년(사실상의 집권자는 손침이었던 시기)에 위에서 제갈탄의 난이 터지고, 제갈탄은 사마씨에게 맞서기 위해 오에게 도움을 청했으며, 이를 돕기 위해 손침의 지시로 주이가 대도독으로서 원군을 이끌고 출전합니다. 그러나 위장 주태, 석포, 호열에게 몇 차례 패한 끝에 주이가 성의껏 싸우지 않는다고 간주하고 격노한 손침에 의해 목이 날아가고 맙니다. 참고로 손침은 권위만 믿고 매우 오만하고 무례하게 구는 타입의 인간이라 원성이 자자한 막장 인간.
10. 여거
오의 개국공신 중 한 명인 여범의 차남입니다. 산월족을 토벌하고, 위의 번성 공격전에서 주이와 함께 위군에게 타격을 가하기도 했으며, 동흥에 쳐들어온 위군을 격파하는 거에 한몫 한 유능한 인물. 255년에는 수춘을 공격했다가 돌아오는 길에 마주친 위장 조진을 격파.
256년에는 병력을 이끌고 위를 공격하러 가던 도중, 손준이 사촌동생인 손침에게 자기 뒤를 잇도록 유언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분노해서 돌아가 손침을 쫓아내려 합니다.
이에 손침은 조서를 받들게 하는 한편, 병력을 보내 여거를 제거하려 합니다.
주위 사람들이 여거에게 위로 투항하라고 권하지만, 여거는 "모반하는 신하가 되는 건 부끄러운 일"이라고 하면서 자결합니다.
그 후, 손침은 여거의 삼족을 싸그리 멸합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여거 같은 경우가 나올 정도로 참 막장인 손침.
아시는 대로 손침 또한 손휴와 정봉 등에 의해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지만.
11. 장일
오장 장흠의 아들입니다. 이릉대전에서 공을 세웠고, 남군으로 돌아와 위군과 싸우다 전사합니다.
장일에게는 아들이 없어서 동생인 장휴가 뒤를 이었는데, 훗날 죄를 지어서 관직 박탈.
12. 전역
오의 공신 중 한 명이자 여몽과는 별도로 관우 토벌 계책을 올렸으며, 위의 두 차례 공격을 격퇴한 주역 중 한 명인 전종의 아들입니다.
전종이 세상을 뜬 후, 전역이 뒤를 이어받았고, 제갈탄의 난 때 제갈탄을 돕기 위해 파견됩니다.
그러나 손침의 막 나가는 짓거리로 인해 주이가 처형당하는 사태에다 상황도 점점 불리해지자 손침에게 반감과 두려움을 품고 조카들과 함께 위에 투항합니다.
결국 오나라를 망쳐놓은 주범으로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다름아닌 손침.
그런 인간을 자기 후계로 삼은 손준도 생전에 상당한 막장 인간이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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