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데이비드 라이머 실험 - 존머니 박사
심리학적인 성은 생리학적 요인이 아니라 환경에 의해 결정된다는 존 머니 박사의 이론( 인간의 성 정체성을 결정하는 으뜸 인자는 본성이 아니라 학습과 환경 이라는 주장)하에 브랜다(=데이빗)에게 이뤄진 실험

데이비드 라이머는 쌍둥이 형제로 태어났다. 생후 8개월 때 포경수술을 받던 중 의료과실(전기소작기 사고)로 남성 성기에 큰 손상을 입자, 부모가
의사와 의논하여 아이를 여자아이로 성전환하였다.
특히 존스 홉킨스의 성 심리학자 존 머니(John Money)의 주장에 영향을 받아 부모는 그에게 브렌다(Brenda)라는 이름을 새로 지어주고 여자아이처럼 키웠다.

<어머니인 자넷 라이머와 쌍둥이 데이빗 라이머와 론 라이머>
부모는 1년에 한 번씩 아이를 머니에게 데리고 갔고, 아이가 자신을 여성으로 인식할 수 있도록 돕는 상담과 치료를 계속했다.

<자신의 성을 여자로 인식하고 자랄때의 데이빗 라이머>
존 머니는 인간의 성정체성이 양육에 의해 형성된다는 이론을 주장하고 있었다. 그는 태아기에 남성호르몬에 노출되어 남성에 가까운 외성기를 타고난 인터섹스를 여성으로 교정한 결과 여성의 정체성이 형성된 것을 근거로 성별 정체성이 양육에 의해 생긴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당시 동성애자를 상대로 호르몬 실험을 한 결과 호르몬 치료를 해도 성정체성이 바뀌지 않는다는게 증명되면서 선천설으로 형성된다는 이론이 큰 타격을 입었던 상황이었던지라 후천설이 설득력을 얻어 존 머니의 주장은 학계의 정설이 되었다.
또한 남녀의 차이는 생물학적인 것이 아닌 사회적이라는 것에 대한 결정적인 근거가 되어 1970년대 페미니즘 운동의 도화선이 됐다.

존 머니는 브렌다를 여자로 기르기 위해 열 살도 안된 아이한테 임산부의 분만 장면 같은 쇼킹한 사진을 보여주기 시작했고, 브렌다는 성별정체성은 둘째치고 주치의를 무서워하기 시작했다. 급기야는 초등학생도 안된 애한테 성별 구분을 주입식으로 세뇌하려 들었고, 질 성형 수술을 강권했으며, 브라이언까지 끌어들여서는 쌍둥이 간에 남녀의 성관계 장면을 모사하도록 하였다

< 쌍둥이 형제 존과 데이비드>
존 머니의 입장에서 보면 굉장히 욕심 낼 만한 사례였다. 두 아이는 일란성 쌍둥이로 유전자가 100퍼센트 일치한다. 그런데 한쪽은 타고난 남성이고, 다른 한쪽은 후천적인 교육과 양육으로 만들어진 여성이라면 “성별을 자기인식 하는 요인은 유전자로 결정되는 선천적 성질이 아니라 후천적 성질이다”라는 자신의 이론을 객관적으로 입증할 완벽한 사례였던 것이다.
급기야 존머니는 데이비드가 여성화 되고있다고 주장하며 데이비드 사례를 강력한 근거로 ‘존/조안 사례’라는 제목으로 양육과 교육에 의한 성공적인 성의 재지정 치료의 결과로 학계에 발표했다.
이에따라 음경이 지나치게 작거나 기형으로 태어난 아이들, 라이머 처럼 전기소작기 때문에 성기가 다 타버린 아이들 대부분이 강제로 성전환 수술을 당하고 여성으로 길러졌다.

<존과 데이비드>
그러나 브렌다 라이머는 자신의 성 정체성 때문에 큰 정신적 혼란을 겪었고, 학교 적응도 힘들어했다. 동생인 브라이언과 싸움이 끊이지 않았고 화장실에서도 서서 소변을 보는 등 남자다운 행동을 보였다.
존머니는 브렌다와의 심리상담에서 아무 문제가 없으며 말괄량이 기질을 보일뿐이라며 브렌다의 문제를 일축했다. 프릴이 달린 드레스나 여성호르몬 치료조차도 브렌다를 스스로 여성이라 느끼게 하지 못했다.
남자아이같은 행동거지와 관심사로 학창시절에서 많은 따돌림과 정체성의 혼란 그리고 그것을 교정시키려는 부모와 박사의 실험 및 상담은 별다른 효가 없었다.
브렌다는 머니와의 상담치료에 극도로 저항하기 시작했고, 10세가 지난 후부터는 병원을 찾지 않았다.

브렌다는 머니 덕에 더욱 빠른 시일 내로 자살할 것 같은 처참한 정신상태로 흘러들고 있었다. 비록 고환은 없었지만 난소도 없었던 브렌다가 사춘기에 접어들며 남성적인 생김새를 갖게 되자, 머니는 자신의 환자였던 MTF 트렌스젠더를 동석시킨 상담에서 호르몬 요법과 질 수술을 강권했다.
데이비드 라이머는 호르몬 요법등으로 인해 몸이 여자처럼 변해간다는 스트레스를 감내하고 잠깐 여자처럼 하고 다니기도 했지만 놀림만 받았으며 또한 가슴이 나오기까지 하자 엄청난 스트레스을 겪은 브렌다는 부모에게 나 머니 다신 안 봐. 또 만나라 하면 죽어버릴꺼야!" 하는 일갈을 날렸다.

<생전 데이비드의 다큐 - 데이비드는 자신과 같은 희생자가 생기는 것을 막기위해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는 것을 감수하면서 자신에게 행해진 실험의 진실을 밝혔다.>
결국 부모도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했다. 엄마는 브라이언을, 아빠는 브렌다를 옆에 두고, 사실을 알려줬다. 브라이언은 크게 충격을 받고 울분을 토했지만, 브렌다는 아빠가 사준 아이스크림이 다 녹아내리도록 가만히 있었다.
이런 놀라운 사실을 듣자, 자신이 왜 이런 문제를 겪고 있는지 이해할 수 있겠다며 오히려 안심했다고 한다. 브렌다는 주저없이 다시 남성으로 돌아가기로 결정했다.

문제는 한 남성의 삶을 망쳐놓은 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지 않는 동안 이것이 다른 환자의 치료 기준으로도 널리 쓰였다. 의사들은 이후 미소음경, 총배강설 뒤집힘증 등의 환자에게도 강제로 성전환수술을 시켰다.
여튼 그 이후에도 라이머는 험난한 삶을 살아가야 했다. 얼굴은 상당히 잘생겼지만(위 영상 참조) 여자와 하룻밤을 보냈다가 무슨 일을 겪게 될지 알 수 없었으니 적극적인 연애활동은 언감생심이었고, 결국 홀로 여러 딸을 키우는 미혼모와 결혼했지만, 30대 후반에 실직과 브라이언의 자살로 힘들어하였고, 아내마저 갈라서기를 요구했다. 결국 라이머는 2004년, 권총 자살을 감행하며 한 많은 삶을 마감했다.
결국 존 머니의 미친 실험은 90년대 초반부터 다이아몬드 박사와 브렌다의 근황을 궁금해하던 운동가와 학자들에 의해 진실이 서서히 밝혀지기 시작하였고 1997년에 언론에 의해 대대적으로 폭로되었다 그리고 BBC판 추적 60분인
이들이 활동했던 20세기 중반(1960년대 전후)의 의학계 정확히는 학문계 전반의(인문/과학 불문하고) 윤리적 결여는 매우 심각한 수준이었다. 이후 20세기 후반부터 연구나 학문의 성과 이전에 연구 과정에서의 윤리성이 더 강조되기 시작한 것은다 이런 피해자들의 희생이 있었기 때문이다.

참조 - 네이버 캐스트 / 나무위키 / 이상한 나라의 브렌다 (국내도서)
관련다큐멘터리 - David Reimer Documentary:
//www.youtube.com/playlist?list=PL23E3CF1A3748F93F
라이머 다큐멘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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