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록 그 사랑이 아픈 사랑일지라도
남에게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말도 할 수 없는 사랑, 그래서 혼자의 가슴속에만
묻어 두어야 하는 사랑을 가진 사람에 비해서
밝힐 수 없는 사랑
결코 세상에 드러낼 수 없는 사랑
그러나 그 사람에겐
오래 간직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그 때문에
자신의 가슴이 잿더미가 되는 줄 모르고

어디로 흘러가는지 알 수 없는
이 무심한 길을 버리고
그대 사는 비취빛 호수에 닿아 수초도 키우며
보라빛 옥잠화도 키우며
귀여운 아이같은 붕어떼를 키우며
억만년쯤 머무르다 흐르고 싶다
밤이면 별들이 내려와 환한 등불이 되어주면
쓰다만 시를 쓰고
낮이면 환한 햇살이 스며들어 꿈의 프리즘을 이루는
이 아름다운 감옥에서
뜨다만 그대의 옷을 짜고 싶다
내 힘모아 달려온 모든 길이
내 열어둔 모든 그리움의 문들이
한 순간 발목에 잡혀
영원히 흐를 수 없더라도
늘 깨어 아프게 흐르던 그 절망까지도
이제는 그대 맑은 눈빛 하나 담고서
고요히 흐르는 거울이고 싶다

하늘이 이다지
서럽게 우는 날엔
들녘도 언덕도 울음 동무하여
어깨 추스리며 흐느끼고 있겠지
성근 잎새 벌레 먹어
차거이 젖는 옆에
익은 열매 두엇 그냥 남아서
작별의 인사말 늦추고 있겠지
지난 봄 지난 여름
떠나버린 그이도
혼절하여 쓰러지는 꽃잎의 아픔
소스라쳐 헤아리며 헤아리겠지

떠나고 싶은 자
떠나게 하고
잠들고 싶은 자
잠들게 하고
그리고도 남는 시간은
침묵할 것
또는 꽃에 대하여
또는 하늘에 대하여
또는 무덤에 대하여
서둘지 말 것
침묵할 것
그대 살 속의
오래 전에 굳은 날개와
흐르지 않는 강물과
누워있는 누워있는 구름
결코 잠깨지 않는 별을
쉽게 꿈꾸지 말고
쉽게 흐르지 말고
쉽게 꽃피지 말고
그러므로
실눈으로 볼 것
떠나고 싶은 자
홀로 떠나는 모습을
잠들고 싶은 자
홀로 잠드는 모습을
가장 큰 하늘은 언제나
그대 등 뒤에 있다

문득
가슴이 따뜻해질 때가 있다
입김 나오는 겨울 새벽
두터운 겨울 잠바를 입고 있지 않아도
가슴만은
따뜻하게 데워질 때가 있다
그 이름을 불러보면
그 얼굴을 떠올리면
이렇게 문득
살아 있음에 감사함을 느낄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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