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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챠ll조회 987l
이 글은 6년 전 (2017/5/26) 게시물이에요

[단편] 스위치 하나로 바뀌는 내 세상 | 인스티즈

" 사람들이 전부 저를 싫어하는 것 같아요... "
" 그렇지 않습니다. 그건 본인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일 뿐이지, 실제 사람들은-. . . "


'장진주'는 의사 선생님의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정해진 레퍼토리, 교과서적인 답변. 눈앞의 의사에게도 본인은 그저 몇 분짜리 손님 하나에 불과했다.


" . . .~아무튼, 약을 처방해 드리겠습니다. 아셨죠 장진주씨? 본인의 마음가짐이 가장 중요합니다. "
" ...네. 감사합니다. "


영혼 없이 인사를 한 장진주는, 처방전을 받고 병원을 나섰다. 약국을 향해 가면서도 마음이 우울했다.
왜 사람들은 나만 미워할까? 내 성격이 소심하고 답답해서 그럴까? 내가 사람들과 어울리는 법을 몰라서 그런 걸까? 
오늘 하루는 병원을 핑계로 조퇴했지만, 내일 당장 출근해야 하는 게 너무 싫었다. 힘들게 들어온 대기업이었지만, 내일 당장에라도 때려치우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었다.
오늘만 해도 그랬다. 


[ 진주야! 너 애가 왜 이렇게 답답하니? 너 우리 회사는 도대체 어떻게 들어온 거니? ]
[ 저, 저는 그냥 양대리님이 기다리라고 하길래... ]
[ 뭐? 너 지금 핑계 대니? 양대리 불러와? 삼자대면할까? ]
[ 아, 아뇨. 죄, 죄송해요... ]
[ 뭐가 또 죄송해? 죄송할 걸 왜 그랬는데? 어이구~! 정말 답답해! ]


분명 자신은 잘못한 일이 없는데도, 모든 잘못은 자신이 뒤집어쓰게 됐다. 점심시간엔 자기만 일을 시키고 다 밥을 먹으러 간 걸 보고 서러워서 얼마나 울었던가? 장진주는 회사의 모두가 자신을 싫어한다고 생각했다. 아니, 세상 사람들 모두가 자신을 싫어한다고 느껴졌다.
장진주는 다시 눈물이 나올 것 같아, 근처 벤치에 앉아 마음을 진정시켰다. 
그때,


" 세상을 바꾸는 '스위치'가 있습니다. "
" ?! "


갑자기 옆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는 장진주! 어느새 다가온 건지, 옆자리에 앉은 사내가 장진주를 향해 빙긋 미소 지었다.
사내는 손가락으로 앞을 가리키며,


" 저기 나무 보이세요? "
" 네? 네?? "


얼떨결에 사내의 손을 따라가는 장진주의 시선. 도로변의 가로수가 보였는데,


" 저 나무에 스위치가 보이시나요? "
" 네?? "


장진주는 사내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누구인지, 눈썹을 찡그리며 경계했다. 
사내는 '흠.' 눈을 끔뻑하더니,


" 너무 먼가? 가까이 가서 보시죠. "
" 예, 예? 자, 잠깐! "


장진주의 팔을 붙잡고 가로수로 이끄는 사내! 
힘없이 끌려간 장진주는 곧, 사내의 손끝이 가리키는 나무를 보았다. 거기엔 정말로, 위 아래로 내릴 수 있는 '스위치'가 하나 붙어 있었다.


" 이 스위치는 세상을 바꾸는 스위치죠. "
" 무, 무슨 말이세요? 왜 이러세요? "


장진주는 사내를 두려워했지만, 사내는 빙긋 웃으며 말을 이었다.


" 이 스위치를 올리면, 당신의 세상이 바뀝니다. 당신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당신을 좋아하게 되고, 당신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당신을 싫어하게 되죠. "
" 뭐..라고요? "


사내의 말이 황당해 눈썹이 구겨지는 장진주! 무슨 사이비 종교인가 싶은 눈빛으로 사내를 보았지만, 


" 올리고 말고는 본인의 마음이니 마음대로 하세요. 그럼 전 이만. "


사내는 미련 없이 그대로 돌아서 떠나갔다. 어이없는 얼굴로 사내의 뒷모습을 보는 장진주.
곧,


" ...날 싫어하는 사람들이 나를 좋아하게 된다고? "


장진주는 스위치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바보 같은 짓인 걸 알면서도,


" 그랬으면 얼마나 좋을까. "


' 딸깍! '


스위치를 위로 올리는 장진주. 한참을 바라보다가, 한숨을 쉬며 돌아서 걸어갔다.







" 엄마 나왔어~ "


힘없이 현관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선 장진주. 한데,


" ? "


다녀왔다는 인사에도 아무런 대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엄마가 어디 갔나 싶어서 거실을 보는데, 소파에 앉아 TV를 보고 있는 엄마의 모습이 보였다.


" 엄마? "


불러도 대꾸 없이 TV에 열중하고 있는 엄마. 
장진주는 약간 의아하게 눈썹을 좁히다, 옷가지를 벗으며 말했다.


" 엄마~ 나 오늘 병원에서~ "


한데, 갑자기 버럭하는 엄마!


" 넌 옷을 아무 데나 벗어놓고 다니니?! "
" 으, 응?? "


엄마가 짜증을 내다니? 낯선 엄마의 모습에 장진주의 눈이 커졌다!


" 맨날 싸돌아다니지 말고, 일찍 일찍 다니면서 집 안 청소도 하고 좀 그래! "
" 어, 엄마? 말했잖아! 나 지금 병원 갔다 오는 길인데...! "
" 병원은 무슨! 너가 몸이 아프니, 어디가 아프니? 정신병원 다니는 게 뭐 벼슬이라고! 내가 창피해서 진짜! "
" 어, 엄마...? "


장진주의 두 눈이 흔들렸다. 평생 처음 보는 엄마의 낯선 모습이었다. 항상 따뜻하던 엄마가 왜?
순간,


" 아...! 서, 설마? "


장진주의 머리에 번쩍! '스위치'가 스쳐 지나갔다!


[ 이 스위치를 올리면, 당신의 세상이 바뀝니다. 당신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당신을 좋아하게 되고, 당신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당신을 싫어하게되죠. ]


" 지, 진짜였단 말이야?! "


경악한 얼굴로 엄마를 바라보는 장진주! 
엄마는 세상 한심한 얼굴로 장진주를 보며 짜증을 냈다.


" 어휴~! 대기업에 취직을 하면 뭘 해! 나약해 빠져가지고! "
" 으... "


장진주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당장 스위치를 원래대로 하기 위해 현관으로 돌아서는 장진주! 
한데,


" 자, 잠깐만. 그렇다는 건...? "


멈칫! 멈춰선 장진주는 회사를 떠올렸다. 그 누구도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 회사. 


" ... "


돌아서서 엄마를 보던 장진주는, 하루만 견뎌보기로 결정했다. 내일 회사에서 어떻게 될지가, 궁금해 미쳐버릴 것 같았으니까!







" 어머~ 진주야! 좋은 아침~! 벌써 출근했어? 역시 부지런하네~ "
" 네? 네? "
" 커피? 커피 하나 할래? "
" 네?? "


장진주는 놀란 눈으로 임과장을 보았다. 그동안 절대 들어본 적이 없었던 말투와 톤이었다. 어안이 벙벙하여 있는데, 


" 진주씨! "


양대리가 급히 달려오더니, 90도로 고개 숙여 사과하는 게 아닌가?


" 아~ 진주씨! 어제 내가 정말 미안했어! 내가 기다리라고 해서 욕 많이 먹었지? 아~ 내가 진짜 죽일 놈이야! "
" 네, 네? "


장진주는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항상 자신을 깔보고, 무시하고, 탓하던 사람들이, 180도로 바뀌어 살가운 미소를 짓는 모습이라니?
저절로 입가가 씰룩이며 웃음이 나왔다! 정말이구나! 정말로 모두가 나를 좋아하게 됐어!


" 역시~ 진주 너는 웃을 때가 정말 예쁜 것 같아~ 호호! "
" 와... "


재수 없으니까 웃지 말라는 말을 들었던 게 얼마 전이었는데 말이다.


" 과장님! 오늘 점심 메뉴는 진주씨가 정하는 거로? "
" 그럴까? 진주야 뭐 먹고 싶어? "
" 네? 아...예 전 아무거나.. "
" 아이 말해봐~ "
" 와아... "


장진주는 자신을 호감있게 바라보는 얼굴들이 정말로 적응이 안 될 지경이었다. 처음 본 얼굴이었고, 처음 본 대우였다. 모든 것이 너무나, 너무나 좋았다.







장진주는 싱글벙글 신이 나서 회사 복도를 걸었다. 자신을 아는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좋아할 거라 생각하니 좋아서 팔짝 뛸 것만 같았다. 오전 내내 상황에 적응한 지금은, 아는 얼굴을 마주치면 먼저 달려가 웃으며 말을 걸었다.


" 최부장님! 어디 가세요? "
" 어~ 잠깐 요 앞에... 자네는 어디 가나? "
" 예~ 전 복사실 가요! "
" 그래. 수고하게나~ "
" 네에!! "


만나는 사람들 마다 자신을 좋아하니까, 너무나 행복했다. 이런 세상이 있다니! 
장진주에게 나무의 '스위치'는 힘들게 살아온 자신에게 하늘이 내려준 축복이었다!
한 가지 걱정이라면, 자신을 좋아하던 사람. 즉, 가족과 친한 친구들이 걸리긴 했었지만-,


" 그것도 문제없지! "


장진주는 싱글벙글 아름다운 미래를 꿈꾸었다.







' 딸깍! '


나무의 스위치를 내린 장진주는 씩 웃었다.


" 헤헤 완벽해! "


장진주의 계획은 이랬다. 저녁에 퇴근하는 길에 나무에 들러 스위치를 내리고, 아침에 출근하면서 다시 스위치를 올리는 것이다!
비록, 회사와 나무가 30분 거리에 있어서 돌아가야 한다는 게 번거롭긴 했지만... 그 정도는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었다.


만족스러운 하루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온 장진주.


" 엄마~ 나 왔어~ "
" 어~ 왔어? "
" 휴! 엄마~아! "
" 응? 왜? "


장진주는 곧장 엄마의 품에 안기며 안심했다. 자신이 알고 있던 따뜻한 엄마가 맞았다.
걱정스럽게 장진주를 쓰다듬는 엄마.


" 왜? 또 회사 일이 힘들었어? "


장진주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 아니 아니! 너~어무 좋았어! "
" 어머? 그래? 다행이다~ "


진심으로 기뻐해 주는 엄마의 모습에 장진주는 헤헤 웃었다. 


" 아참! 엄마, 나 내일부턴 30분 일찍 출근해야 하니까... 일찍 깨워줘야 돼! 응? "
" 30분 일찍? 그래, 알았어~ "
" 헤헤헤~ 엄마 나 밥! 밥! "


장진주는 세상 행복한 얼굴로, 아무 걱정 없이 웃었다.







" 좋은 아침이에요~! "


장진주는 사무실에 들어서자마자 크게 인사했다.


" 어~ 진주씨 왔어~? "
" 진주야 안녕~ "
" 좋은 아침~ "


장진주는 밝게 웃었다. 사무실의 모두가 자신의 인사를 무시하지 않고 받아주는 게 너무나 기뻤다.
자리에 앉아 싱글벙글 가방을 내려놓는데, 어느새 다가온 동기 '임여우'가 말을 걸었다.


" 진주야 진주야! "
" 응? 어 여우야. "


장진주는 살갑게 다가오는 임여우를 보며 잠깐 착잡한 기분을 느꼈다. 그래도 임여우는 자신에 대해 별다른 감정 자체가 없을 거라 생각했었는데, 이제 보니 속으로는 많이 싫어했었던 모양이다.


" 진주야 너 옆부서 정재준씨 알지? 너랑 맨날 복사실에서 만나잖아. "
" 응? 어어. 알아. 왜? "
" 듣자 하니, 어제 그 사람이 너 소개시켜달라고 주변에 엄청 말하고 다녔다던데? "
" 뭐?? "


장진주의 얼굴이 복잡하게 일그러졌다. 갑자기 나를? 엄청? 그렇다는 건... 그동안 날 엄청 싫어했다는 것 아니야??


" 이런 씨! "
" 너는 어때? 그 사람 꽤 잘생겼잖아! "
" 됐어! 내 스타일 아니야. "
" 음? 그래? 아쉽네. 너 되게 마음에 들어 하던 것 같던데. "
" 에휴~ "


한숨을 내쉰 장진주의 얼굴이 복잡해졌다~







" 흐응~ 흥~ "


복사기 앞에 선 장진주는 일하는 게 너무 즐거워, 콧노래를 흥얼거릴 지경이었다. 
그때,


" 저기... 진주씨 "
" 네? "


정재준이 다가와 장진주에게 말을 걸었다. 단번에 표정이 복잡해지는 장진주. 


" 혹시 주말에 시간 있으시면... 아니다. 언제라도 좋으니, 저와 데이트 한번 하지 않으시겠습니까? "
" 하아... "


장진주는 작게 한숨이 나왔다. 도대체 얼마나 자신을 싫어했었길래 이렇게 적극적으로 호감을 나타낸단 말인가?


" 아 혹시, 부담되시나요? 죄송합니다. 데이트는 너무 갑작스러울지 몰라도, 진주씨와 친하게 지내고 싶은 마음은 진심입니다. "
" 아 예... "


씁쓸한 얼굴의 장진주는 대충 고개를 끄덕거렸다. 확실히, 임여우의 말대로 정재준이 잘생기긴 했다. 진실한 표정에다가 조심스러운 말투도 매너가 있었다. 참 괜찮은 사람인데, 씁쓸한 감정은 어쩔 수 없었다.







[ 진주씨! 장난해? 일을 그렇게-. . . ]
" 네... 네... 죄송합니다.... "


장진주는 저자세로, 전화 통화를 끝내자마자 소리를 질럿다!


" 으아아~~~! "


괴로웠다. 전화라니? 집에 있을 때 전화를 거는 건 반칙 아닌가?
회사에서는 그렇게 살갑게 지내던 상사가, 퇴근 후에 전화로 구박하는 건 정말 견디기가 힘들었다.


" 아~ 망할. 이건 생각도 못 했는데! 아이씨, 퇴근 후에는 핸드폰을 꺼놔야 하나? "


장진주는 짜증이 났지만, 예전처럼 죽고 싶을 만큼 우울하지는 않았다. 어차피 내일이 되면 또 기분 좋게 하하 호호 지낼 사람이니까, 걱정이 안 돼서 그런 것 같았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병원 신세까지 져야 했던 멘탈에 비하면, 정말 장족의 발전이었다.


" 그러거나 말거나...이건 어쩌지? 에휴! "


장진주는 포스트잇 쪽지를 만지작거렸다. 오늘 회사에서 '정재준'에게 커피와 함께 건네받은 쪽지였다.


[ 날씨가 좋네요. 마블 영화 개봉 소식 들으셨어요? ]


" 에휴~! "


정재준이라는 사람은, 벌써 며칠째 노골적으로 호감을 표시해왔다. 문제는, 자신이 점점 그게 싫지가 않아진다는 것이었다.
분명 스위치 효과 때문이라는 걸 알면서도, 정재준이라는 사람이 워낙에 괜찮아 보였다.


" 그래도... 지금 연락하면 단번에 퇴짜맞겠지? 하하. "


장진주는 피식 웃으며 쪽지를 접었다.







" 으~ 지친다... 왜 이렇게 야근이 많아? "


사람이란 참, 간사한 동물이었다. 
스위치를 알게 된 얼마 전까지만 해도, 회사에 오는 게 너무나 즐겁고 일하는 게 너무나 즐거웠던 장진주다. 한데 지금은, 대기업의 어마어마한 업무량이 지칠 뿐이었다.


" 에휴~ 진주가 고생이 많네~! 커피 한잔할래? "
" 예~ 언니! 좋죠~ "
" 그래~ 언니가 쏠게! 가자! "


물론, 예전에 비하면 훨씬 웃을 일도 많았고, 좋긴 좋았다. 
그래도 역시,


" 으~! 야근 싫다~! "
" 나도 그래 얘~ 호호. "







' 딸깍! '


장진주는 지친 얼굴로 나무의 스위치를 내렸다.


" 에휴~ 너무 멀어 멀어... 몇 시야 벌써? "


야근까지 하고 힘든 퇴근길에, 30분이 넘는 거리를 돌아서 가려니 죽을 맛이었다. 
게다가 내일도 아침 일찍 나와서 스위치를 올려야만 했으니, 얼른 들어가서 일찍 자야 했다.


" 에휴휴~ "


한숨이 늘어나는 요즘이었다.







" 주말에 또 어딜 싸돌아다녀? 또 정신병원 가냐?! 미친 것! "
" 으~ "


장진주는 엄마의 싫은 소리를 애써 흘려넘겼다. 주말이었지만, 어쩔 수 없이 스위치를 올려둔 상황이었다. 왜냐면,


" 아~나! 나 데이트 간다고 데이트! 정신병원은 무슨! "
" 데이트? 하! 너 같은 거 좋다는 남자가 세상에 어딨니?! "
" 어휴... "


장진주는 한숨을 쉬면서도, 애써 엄마의 말을 무시하고 준비를 했다. 오늘은 정재준과의 데이트가 있는 날이니, 지금은 꾸미는 게 더 중요했다.







" . . .~하여간 아이언맨은 정말 로다주가 아니었으면 이렇게 매력이 있었을지가~ "
" 그러니까 말입니다! 괜히 출연료가-. . . "


영화를 보고 난 뒤, 식사를 하는 장진주와 정재준의 얼굴은 만족스러웠다.
장진주는 새삼, 정재준을 다시 봤다. 자신과 취향, 성향, 좋아하는 것까지 너무나 잘 맞았다. 
정말, 스위치 효과라는 것만 신경 쓰이지 않았다면, 백번 천번이라도 사귀었을 남자였다.


" 진주씨는 참... 성격이 좋으신 것 같습니다. 제 이상형이세요. "
" 네? 하하.. 갑자기요? "
" 하하...사실 저는 진주씨처럼 마음이 좋은 분이 너무 좋거든요. 결혼을 해도 꼭 진주씨 같은 분과 해야겠다고 생각했었죠. "
" 아..으.. "


장진주의 얼굴이 붉어졌다. 태어나서 남자가 이렇게 노골적으로 고백해준 적이 있었나 싶었다. 
정재준의 따뜻한 미소를 보며, 장진주는 생각했다. 


그래. 까짓거, 못 사귈 게 뭐야? 스위치를 올려놓고 만나면 되잖아! 







" 뭐야 엄마! 나 왜 안 깨웠어?! 지각이잖아~ 으앙! "
" 아까 분명히 깨웠는데~ 다시 잠들었잖니~ "
" 어떡해! 으아~! "


허둥지둥 집을 나서는 장진주! 지금 당장 가도 지각이었다. 도저히 스위치를 올리러 갈 시간이 모자랐다.
숨 가쁘게 내달리면서도, 장진주는 밀려드는 불안함에 얼굴색이 안 좋아졌다.







" 너 ? 정신 나갔어? "
" 죄, 죄송합니... "
" 넌 도대체 뭣 하러 회사에 나오는 거니? "


장진주의 안색이 창백하게 식었다. 예상보다 훨씬 더 충격이 컸다. 그동안 편하고 좋게 지내던 회사 사람들이 순식간에 자신을 차갑게 대하는 모습은 너무나 공포스러운 일이었다.
회사 사람들 모두에게 구박을 받으면서도, 장진주의 머릿속은 오직 한가지 생각으로 가득했다.


스위치! 스위치를 올려야 해!









" 오늘도 고생 많았어 진주야~ "
" 예~ 언니도 수고 많으셨어요. "


늦은 밤. 피곤한 야근을 마친 장진주는 고민했다. 스위치를 내리러 가는 게 너무, 귀찮았다.
거기까지 언제 돌아갔다가 집에 가서 쉴까? 또 아침이면 다시 올리러 가야 하는데?


" 아이 몰라! 오늘은 그냥 가자! "


장진주는 그냥 스위치를 그대로 두기로 했다. 어차피 지금 자신을 좋아할 사람을 만나게 될 일이라곤 엄마밖에 없었다. 
엄마가 나를 싫어하게 되는 것이야 뭐, 하루 정도 충분히 참을 수 있었다.







' 카톡. 카톡. 카톡. '


" 뭘 그렇게 울려?! 무음으로 해 좀! 넌 어쩜 그렇게 이기적이니?! "


노골적인 엄마의 짜증에도 장진주는 그러려니 했다. 벌써 사흘째 스위치를 올려놓은 상태로 건드리지 않은 참이었다. 


" 아~ 알았어 좀! 무음 하면 되잖아! "
" 저 년이 지가 잘못해놓고 어디서 성질이야?! "
" 에휴... "


장진주는 엄마를 무시하며, 정재준과의 카톡 대화를 이었다.
스위치를 내렸다면, 정재준과 이렇게 달달하게 카톡을 할 수 없었다. 스위치를 내렸다면, 내일 아침에도 30분 일찍 출근해서 스위치를 올려야 했다. 거기다 퇴근하고 나서 또 스위치를 내려야 하고? 정말 번거롭고 귀찮은 일이었다.
장진주는 어느새 스위치를 올려놓는 생활에 익숙해져 갔다. 그것이 훨씬 괜찮다고 생각했다.
엄마가 자신을 싫어하게 되는 것도 이젠 익숙해져서 그런지 참을만했다. 굳이 항상 엄마랑 잘 지낼 필요가 없다 생각했다. 
언제라도 필요해지면 가서 스위치를 내리면 되니까.







' 전화 받으세요~♬ '


장진주는 핸드폰 액정을 힐끔 확인하고는, 인상을 찌푸렸다. 엄마 전화였지만, 지금은 회사 점심시간의 휴식시간이었고, 스위치는 올라가 있었다.
그냥 전화를 받지 않고 끊어버리는 장진주. 그 모습을 본 임과장이 물었다.


" 진주야, 누구 전환데 그렇게 끊어? "
" 아, 그냥...엄마요. "
" 엄마? 왜? 엄마랑 싸웠어? "
" 아뇨 싸운 건 아닌데.. 그~~ "


장진주는 뭐라고 말해야 할지, 할 말을 찾지 못했다. 싸운 건 아니지만, 뭐라고 해야 한단 말인가? 엄마가 자신을 싫어한다고?
뭐라고 말해야 할지를 생각하다가, 머리가 복잡해지는 장진주. 


자신이 유일하게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던 엄마가, 이젠 자신에게 거북스러운 존재가 되어 있다니? 이건, 조금 이상했다.


인상을 찡그린 장진주는, 오늘 퇴근길에는 나무에 들러서 꼭 스위치를 내리고 가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때, 멀리서부터 정재준이 진주의 이름을 부르며 다가왔다.


" 진주야~ "
" 어머~ 진주 네 애인 왔다. 호호호 "
" 아이, 아직 애인 아니에요~!  "
" 뭐가 아직은 아니야~! 이미 다 소문 났구만! "


살갑게 웃으며 다가온 정재준이 장진주에게 커피를 건넸다. 웃으며 농을 던지는 임과장.


" 뭐야? 진주 거만 가져온 거야? 애인 없는 사람 서러워서 살겠어? "
" 하하.. 같이 계신 줄 모르고... 다음엔 꼭 과장님 것도 가져오겠습니다! "
" 됐네~ 됐어~! 아유, 눈치 좋은 노처녀는 이제 그만 빠져줘야겠네~ 진주야 천천히 들어와~ "


훈훈한 분위기 속에 둘만 남은 정재준과 장진주.
씩 웃은 정재준이 장난스럽게 말했다.


" 나 오늘 개인 방송할 건데. "
" 개인 방송? 무슨 방송? "
" 응. 너한테만 보여줄 방송. "
" 뭐? 그게 뭐야~ "


함박웃음이 터지는 장진주!


" 하여간, 준비한 거 많으니까.. 오늘 집에 가서 꼭 접속해야 돼! "
" 아이 뭘 준비했다고~ 아히하하...하? "


행복하게 웃던 장진주는 잠깐, 머릿속에 한 가지가 걸렸다. 오늘은 꼭 스위치를 내리려고 했었는데... 에이, 뭐 어때?


" 알았어! 꼭 볼게! "







" 스위치 안 올린 지가, 벌써 보름 정도 됐나? 에휴~ "


퇴근 후 집 앞에만 도착하면 항상 인상이 쓰이는 장진주였다. 집에 들어가기 전에는 스위치를 내리고 왔어야 했나? 싶다가도, 귀찮음과 정재준과의 카톡 썸같은 것들을 생각하면 그럴 수가 없었다.
한숨을 쉰 장진주가 현관문을 넘어서자마자~ 예상했던 대로,


" 저저! 저 왔네! 너 지금 대기업 다닌다고 유세 떠는 거?! 왜 엄마 전화를 다 씹어?! "
" 아~ 정말...! "


장진주는 인상을 구기며 엄마의 말을 무시했다. 그럴수록 엄마가 더 막말을 했지만, 장진주는 한숨을 쉬며 넘겼다. 
엄마의 상처 주는 말과 행동들은 당장 달려가서 스위치를 내리고 싶게 만들었지만, 여러 가지로 귀찮고 복잡했다. 그냥 참고 말지. 
한데,


" 이 이기적인 ! 넌 내일이 엄마 생일인 건 알아?! "
" 아! 맞다! 엄마 생일인가? "
" 몰랐지? 이럴 줄 알았어 이년! 내가 너를 낳은 게 후회된다 후회돼! 진짜 너 같은 건 낳지 말았어야 하는데! "
" 아~ 무슨 그런 말을 해! "
" 닥쳐 이! 꼴 보기 싫어서 진짜...! "
" 으... "


장진주는 끔찍하게 구겨진 얼굴로 엄마를 보면서, 내일은 무슨 일이 있어도 꼭 스위치를 내려야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사랑하는 엄마의 생일은, 날 사랑하는 엄마에게 축하해주고 싶었고, 그게 당연했다.







지하철역 계단을 오르는 장진주의 발걸음이 조금, 빨랐다. 오늘은 얼른 스위치를 내리고 엄마와 맛있는 거라도 먹으러 가서 생일을 축하할 계획이었다.
한데, 지상으로 나온 장진주의 눈동자가 사정없이 흔들렸다!


" 뭐... 뭐야?? "


도로변 가로수들이 베어져, 밑동만 남아 있었다!


" 아, 안돼...안돼... 안돼!! "


소리 지르며 달리는 장진주!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저 멀리 스위치 나무가 있는 곳을 발견하고 소리 지르는 장진주!


" 아아-! 아아아-! 아아아아아-!! "


없었다. 나무도, 스위치도 없었다.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는 장진주, 멍청한 얼굴로 충격에서 헤어나오질 못했다.


" 어, 어떡해.. 어떡해... 어떡해... "


머릿속이 새하얘진 장진주는 곧, 눈물을 쏟아냈다!


" 엄마...엄마... 엄마...! 우리 엄마 어떡해! 엄마! 엄마!! 으하앙~! 엄마아~! 흐아앙~! 엄마아아~!! "


장진주는 이제 다시는, 자신을 사랑하는 엄마를 만날 수 없게 되었다. 자신을 싫어하는 엄마와 살아야만 했다. 
단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던 일이었다. 믿을 수가 없고, 믿고 싶지가 않았다. 미친 듯이 도리질 치며 엉엉 소리 내 울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장진주를 미친 여자처럼 쳐다봐도, 하염없이 엄마만 부르며 울어댔다.


그때,


" 이런 아가씨, 다 큰 처녀가 이렇게 눈물을 흘리면 꽤 흉한데 말입니다. "
" 으으...?! "


어느새 다가온 것인지, 한 사내가 장진주의 옆에 앉아 손수건을 건네고 있었다. 사내를 한눈에 알아본 장진주는 다급하게 매달렸다!


" 아, 아저씨! 아저씨! 스위치가 없어졌어요! 스위치요 아저씨! 우리 엄마! 우리 엄마 어떡해요! 네?! 스위치 찾아줘요~ 흐어엉~! "


울고불고 매달리는 장진주를 딱하게 쳐다보던 사내는 말했다.


" 꽤 괜찮은 전략이었는데 말입니다. 출근할 때는 스위치를 올리고, 퇴근할 때는 내리고. "
" 스위치 좀 찾아달라고요~! 흐어엉! "
" 왜 계속 전략대로 하지 않으셨습니까? 왜, 어머니가 본인을 싫어하는 모습을 그대로 둔 겁니까? 만약 스위치가 아래인 상태였다면 이럴 일도 없었을 텐데 말입니다. "
" 으하앙! 몰라요! 스위치 내놔요~!! "


장진주가 떼를 써도, 사내는 냉정하게 할 말만 했다.


" 가로수 조경사업이랍니다. 메타세콰이어 나무가 좋지 않아서 교체한다나? 그거 아세요? 이 나무는 오늘 새벽에 베어졌습니다. 어젯밤에만 오셔서 스위치를 내려놓으셨더라도, 이럴 일은 없었을 텐데. "
" 으흐윽.... "
" 귀찮으셨죠? 엄마 보다, 당장 더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었던 사람이 많았죠? 엄마야 언제라도 내 옆에 있을 테니, 괜찮을 거라 생각하셨죠? "
" 으흑... "
" 인간이란 게 참 그래요. 하하. "


사내는 냉정하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 안,안돼! 안 돼요! "


사내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매달리는 장진주! 
사내는 장진주를 가만히 내려다보다가, 다시 자리에 앉았다. 


" 딱 한 번뿐입니다. "
" 예? 네네! 예? "


사내는, 주머니에서 '스위치'를 꺼냈다.


" 아! 아아! "


크게 반응하며 손을 뻗으려는 장진주!
사내가 잠깐! 장진주를 막아섰다.


" 잠시! 잘 생각해야 합니다. "
" 흐으?? "
" 이 스위치를 올리고 내릴 수 있는 기회는 딱 한 번뿐입니다. 이제 다시는 건드릴 수가 없어요. 지금 당신을 좋아하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당신을 싫어하게 될 겁니다. "
" 아... "


사내는 확실하게 말을 한 뒤, 장진주의 손 위에 스위치를 올려주었다.
스위치를 바라보는 장진주의 눈동자가 마구 흔들렸다. 머릿속에 예전의 일들이 스쳐 지나갔다. 회사에서 왕따처럼 지내던 날들. 당하고, 욕먹고, 모두가 자신을 싫어하던 그 시절로 돌아가야 한다고? 그리고 정재준은? 만약 스위치가 내려간다면 그 남자는?


" 아아... "


마구잡이로 일그러지는 장진주의 얼굴. 덜덜 떨리는 손으로 스위치를 잡는데-,


" 으...으으... "


부들부들 떨기만 할 뿐, 스위치를 쉽사리 내리지 못했다. 
곧, 왈칵 눈물을 터트린 장진주가 사내를 바라보며 웅얼거렸다.


" 무서워요...! 너무 무서워요...! "


처참하게 일그러진 얼굴로 울먹이는 장진주. 사내는 가만히 장진주를 내려다보다가, 미소를 픽 지었다. 


" 세상 모두가 아가씨를 좋아할 순 없어요. 두려워하지 마세요. 인생을 살다 보면, 나를 싫어하는 백 명 같은 건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정말입니다. 깜짝 놀랄 만큼 중요하지 않지요. 그보단, 나를 정말로 사랑해주는 단 한 명이 훨씬 더 중요하죠. "
" ... "


" 사람들은 누구나, 마음속에 '스위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아가씨도 있고, 아가씨네 직장 동료들도 있고, 아가씨네 엄마도 있지요.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언제라도 그 스위치를 올리고 내릴 수 있습니다. 아가씨.. 아가씨가 움직여야 할 스위치는 아가씨 마음속에 있는 스위치입니다. 남들의 스위치가 아닙니다. "
" ... "


'스위치'를 잡은 장진주 손의 떨림이 점차 멎어 들었다. 
그리고-,




' 딸깍-! '















" 후~!  "


사무실 문 앞에 선 장진주는 심호흡을 했다. 이제, 다시 되돌아온 진짜 내 세계의 첫날이었다.
가만히 문을 바라보던 장진주는 작게 속삭인 뒤, 문을 열었다.


" 스위치, 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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