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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은수ll조회 506l
이 글은 6년 전 (2017/12/12) 게시물이에요
원작: 이범선 <오발탄>
각색: Philequiem(blog.naver.com/philequiem)

오발코인

모 중소기업 사무실 부장 송철호는 아홉시가 넘도록 사무실 한구석 자리 자리에 멍청하니 앉아 있었다. 무슨 미진한 사무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엑셀은 벌써 꺼버린 지 오래고 그야말로 멍청하게 그저 앉아 있는 것이었다. 딴 친구들은 눈으로 시곗바늘을 밀어올리다시피 다섯시를 기다려 휘딱 나가버렸다. 그런데 점심도 못 먹은 철호는 허기가 나서만이 아니라 갈 데도 없었다.
“퇴근 안 하시나요?”
이제 불을 끄고 정리를 해야 할 테니 그만 나가달라는 투의 경비아저씨의 말에 철호는 다 빛이 바랜 감색 상의 호주머니에 깊숙이 찌르고 있던 두 손을 빼내어서 무겁게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나가야지.”
하품 같은 대답이었다.

(중략)

철호는 자기 집이라고 하는 집이 맞을지 모를 아파트 현관 비번을 누르고 문을 잡아당겼다. 이제 막 열린 문틈으로 그의 백수아들의 소리가 새어나왔다.
“가즈아! 가즈아!”
미치면 목소리마저 변하는 모양이었다. 그것은 이미 그의 장남의 진중하고 침착하던 목소리가 아니고, 쨍쨍하고 간사한 게 어떤 딴 사람의 목소리였다.
방문안에 들어선 채 미라마냥 이불을 휘감은 채 벽을 향해 돌아누운 장남의 아들을 내려다봤다. 검은 머리카락은 한 오리도 제대로 놓인 것이 없었다. 그대로 수세미였다. 장남은 벽을 향해 돌아누워서 마치 딸꾹질처럼 어떤 일정한 사이를 두고, 가즈아 가즈아, 하는 외마디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철호는 안방으로 돌아가 털썩 침대에 기대어 앉아버렸다. 가슴에 커다란 납덩어리를 올려놓은 것 같았다. 정말 엉엉 소리를 내어 울고 싶었다. 눈을 꼭 지르감으며 애써 침을 삼켰다.
이주 전까지만 해도 철호가 저녁때 일터에서 돌아오면, 장남은 야간 인력시장을 나갈 준비 중에도, 아버지 다녀오셨습니까, 하고 인사를 하곤 했다. 그러나 요즘은 그것마저 안 하게 되었다. 그저 핸드폰만 들여다보고 1800, 1900 이런 숫자만 중얼거리고 있다가 이젠 드러누워 벽과 스마트폰만 보고 있는 것이다. (중략)

철호는 아파트 놀이터에서 으스스 몸을 떨다가, 천천히 철호의 아파트 동 앞으로 들어섰다.
“가즈아!”
철호는 멈칫 섰다. 낮에는 이렇게까지 멀리 들리는 줄은 미처 몰랐던 장남의 그 소리가 굳게 닫힌 발코니 창문을 뚫고 앞동 어귀에까지 들려왔다.
“가즈아!”
그러나 언제까지 그렇게 서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철호는 다시 발을 옮겨놓았다. 정말 무거운 발걸음이었다. 그건 다리가 저려서만이 아니었다.
“가즈아!”
철호가 그의 집 쪽으로 걸음을 옮겨놓을 때마다 그만치 그 소리는 더 크게 들려왔다.
가자는 것이었다. 돌아가자는 것이었다. 2470. 장남은 2470으로 가으야한다고 말했다. 그것은 이렇게 벽만 보고 살기 전부터 철호의 장남이 입버릇처럼 되풀이하던 말이었다.
가상화폐. 그것은 아무리 자세히 설명을 해주어도 철호에게는 이해할 소용이 없는 일이었다.
“난 모르겠다. 암만해도 난 모르겠다. 2470층 거주민이 대체 무슨 말이냐. 어쨌단 말이냐. 어찌됐건 고점에서 물렸건 물린 건 잊고 사람답게 살아야 하는 거 아니냐?”
그럴 때마다 장남은,
“아버지, 그래도 존버하면 연중으로 5천 갑니다.”
하고, 비트코인은 무조건 간다고, 존버하면 된다고 오히려 철호에게 타일러보려고 하는 것이었다. (중략)

“다녀오셨어요?”
둘째 녀석이 자기 방 침대에 걸터앉아 거실에 들어선 철호를 쳐다보았다.
“언제 들어왔니?”
“지금 막 들어와 앉는 길입니다.”
그러고 보니 둘째도 뿌옇게 화면이 켜진 스마트폰만을 바라보고 있다.
“아버지!”
새삼스레 부르는 둘째의 소리에 철호는 둘째의 얼굴을 뻔히 바라보았다.
“이제 우리도 한 번 살아봅시다. 남들 다 사는데 우리라고 밤낮 이렇게만 살겠어요? 이거 대출도 다 갚고, 우리도 차 한 대씩 사고, 우리 결혼할 때 떡하니 서울 역세권에 아파트 하나씩 해줘야 하지 않겠어요?”
군대에서 나온 지 이 년이 넘도록 아직 학업도, 직업도 갖지 못한 둘째가 최근 철호만 보면 하는 수작이었다.
“그리고 벤츠도 하나 삽시다. 경차만 보면 들이미는 게 아니꼬와서. 특별히 갈 데 없어도 빵빵 경적 울리고 막 끼어들면서 돌아다녀야지 하하하.”
비스듬히 걸터 앉은 둘째는 상기된 얼굴로 스마트폰 스크롤을 위아래로 오르내린다.
“또 알트했구나.”
“네, 조금 했습니다. 이게 다음주에 하드포크가…….”
이것도 들으나마나 늘 같은 대답이었다. 또 그것이 거짓말이 아니라는 것도 철호는 알고 있었다.
“이제 잡코인 좀 그만 해라.”
“어플 보다보면 자연히 타게 되는걸요.”
“글세, 그러니까 그 아무거나 타는 걸 좀 삼가란 말이다.”
“그럴 수도 없고요, 하하하.”
“그렇다고 언제까지 그저 그렇게 잡코인만 타서 잃기만 하면 뭐가 되나?”
“되긴 뭐가 돼요? 그래도 한방 하기엔 알트만한 게 없으니까 하는 거고, 이러다가 제대로 한 번 타면 인생 역전 하는 거죠.”
“글세, 그게 맹란한 일이란 말이다.”
“그렇지만, 아버지. 이런 알트라도 있다는 게 좋지 않아요? 이게 시시한 코인들이라 해도. 정말이지 이것들마저 없었더라면 어떻게 살 뻔했나 생각할 때가 많아요. 빛아인, 아더, 스텔라루멘. 참 시시한 놈들이지요. 죽다 말은 놈들. 그렇지만 아버지, 그놈들 다 가능성 있는 놈들이에요. 최소한 존버하면 분명 갈 거거든요.”
철호는 그저 물끄러미 둘째의 모습을 쳐다볼 뿐 아무 말도 없었다.
“가즈아!”
건너방에서 장남이 소리를 질렀다.
“어쨌든 너도 이젠 좀 정신 차려줘야지. 벌써 제대한지도 이년이 되지 않니?”
“정신 차려야죠. 그렇지 않아도 이달 안으로는 어찌되든 간에 결판을 내고 말 생각입니다.”
“어디 취직을 해야지. 아니면 수능을 다시 보던가.”
“취직이요? 고점 기준으로 0.1비트도 안 되는 월급을 받고 남의 일이나 하라고요?”“그럼 뭐 별 뾰족한 수가 있는 줄 아니?”
“있지요. 남처럼 용기만 조금 있으면.”
“…….”
어처구니없는 둘째의 수작에 철호는 그저 멍청하니 둘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용기?”
“네, 용기.”
“용기라니? 너 설마 무슨 엉뚱한 계획을 세우고 있는 것은 아니겠지?”
“아니요. 엉뚱하긴 뭐가 엉뚱해요. 그저 우리들도 남처럼 다 벗어던지고 전력으로 타보자는 것이지요.”
“전력으로 탄다고?”
“네, 전력으로. 호재가 많아요. 하드포크도 있고, halving도 있고, 마스터노트 릴리즈가 있고 그 뒤엔 풀노트 릴리즈까지 있어요. 전 풀매수 갑니다.”
“네가 무슨 돈이 있다고?”
“아, 아버지한테 손 안 벌릴랍니다. 제가 알아서 하겠어요.”
어떻게 알아서 하겠냐는 말이 턱끝까지 차올랐지만 철호는 더 말을 잇지 않고 돌아선다.
“가즈아!”
몸을 돌려 거실로 한 발씩 내딛을 때마다 건너방 장남의 외침이 철호의 귀를 한 걸음만큼 더 날카롭게 파고든다. (중략)

지이이잉.
“네, OO팀 송철호입니다. 네? 경찰서요? ……. 네? OOO요? 네, 제 아들인데요. 한강구조대에서 이송됐다고요? 제 아들이 말입니까? 얼른 가겠습니다. 네.”
사무실 안의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철호에게로 쏠렸다.
“무슨 일인가, 아들이 무슨 일이라도?”
임원실 문을 열고 들어가려던 이사가 멍해진 철호를 쳐다보며 물었다.
“네? 아,네. 저 이사님. 잠깐 다녀오겠습니다.” (중략)

벌써 파래진 얼굴을 보고 신원확인을 마친 철호는 어디를 어떻게 걸었는지 알 수 없었다. 철호는 술 취한 사람 모양 허청거리는 다리로 아파트 입구를 들어서고 있었다. 철호가 사는 동 앞에 들어섰다.
“가즈아!”
철호는 거기 멈춰 섰다. 고개를 뒤로 젖혔다. 그러나 그는 하늘을 쳐다보는 것이 아니었다. 하 하고 숨을 크게 내쉬는 철호는 울고 있었다. 눈물이 콧속으로 흘러서 찝찔하니 목구멍으로 넘어갔다.
“가즈아! 가즈아! 어딜 가잔 거야? 도대체 어딜 가잔 거야?”
철호는 꽥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경사로 옆에 앉아서 수군거리던 학생들이 킥킥 거리며 그를 쳐다보았다. (중략)

철호는 던져지듯이 털썩 택시 안에 쓰러졌다.
“어디로 가시죠?”
택시는 벌써 구르고 있었다.
“상계동.”
방향을 바꾸기 위해 기사가 몸을 한편으로 기울이며 마악 핸들을 틀려는 때였다. 뒷자리에서 철호가 소리를 질렀다.
“아니야. 아인 3500으로 가.”
“네?”
갑자기 둘째의 죽음을 생각했던 것이었다. 택시기사가 갸웃하면서 다시 되물으려는 찰나 다시 한 번 철호가 소리를 질렀다.
“아니야. 비트2500으로 가.”
눈을 감고 있는 철호는 생각하는 것이었다. 둘째는 이미 죽었는데. 장남이 비트 2500에 풀매수했다고 했다든가.
“손님, 어딜 가시자는 겁니까?”
“아니야. 가즈아!”
“어딜 가자는 거냐구요?”
“글세, 가즈아!”
“하 참, 딱한 아저씨네. 취했나?”
철호는 점점 더 넋이 나갔다.
“가즈아!”
철호는 귓가에 장남의 목소리를 들었다고 생각하며 스마트폰을 꺼내 어플을 켰다.
차가 네거리에 다다랐다. 앞에 교통신호대에 빨간불이 켜졌다. 차가 섰다. 또 한번 기사가 뒤를 돌아보며 물었다.
“어디로 가시냐구요?”
지이잉 알트코인 전망 찌라시를 전달하는 카톡 진동이 울렸다. 긴 자동차의 행렬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철호가 탄 차도 목적지를 모르는 대로 행렬에 끼여서 움직이는 수밖에 없었다. 철호의 스마트폰에 떠있는 리플(XRP)이 매수평균가 892, 수익률 –77%, 매수금액 87,420,000KRW 라는 것은 아무도 모르는 채 교통신호대의 파랑불 밑으로 차는 네거리를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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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발탄 재밌게 읽었었는데 ㅋㅋㅋㅋ
6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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