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김재욱
‘ 올해까지만 살고 죽자. ‘
그것이 내 올해의 목표였다.
불행하게도, 올해가 얼마 남지 않은 오늘까지
멀쩡하게 살아버린 탓에 직접 끝을 맺어야 했다.
오랜 고민 끝에 정한 장소는
흔하디흔한 한강 다리 위였다.
늘 지나면서 보던 다리는
오늘따라 더 높고 더 추웠다.
강으로부터 불어오는 찬 바람에
귀가 떨어져 나갈 것만 같았다.
따뜻한 봄이었으면 조금 더 나았을까.
꼭 그렇지만도 않을 것 같다.
“ 빠지면 많이 차가울 텐데. “
강의 물살보다 더 빠르고 시끄럽게 흘러가는
자동차 소리를 뚫고 사람의 목소리가 들어왔다.
“ 내가 빠져봐서 알거든. “
아까부터 가만히 강을 바라보고 있던 남자였다.
그 남자의 말에 나도 모르게
두 손에 힘이 들어갔다.
“ 빠지겠다고 한 적 없는데.”
“ 표정은 내가 가면 곧장 뛰어들 표정인데. “
다 알고 있다는 듯 떠드는 그가 왠지 짜증이 났다.
게다가 맞는 말이었다.
난 저 남자가 어서 자리를 떠나길 기다리고 있었다.
“ 그냥 가던 길 가셨으면 좋겠는데. “
그렇게 말하자 계속 강만 바라보며 말하던 그가
나를 바라보았다.
그 눈빛은 그의 말보다
더욱 기분 나쁘게 느껴졌다.
마치 모든 걸 꿰뚫어 보는 듯한
눈빛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눈빛을 하고서 그는
나에게 같이 가자고 말했다.
그에 난 눈썹이 절로 찡그려졌다.
“ 할 일 없어요? 시간 많아? “
“ 돈도 많지. “
기분 나빠지라고 한 말인데
오히려 내 기분이 더 나빠졌다.
“ 그래, 살맛 나서 좋겠네. “
짧은 욕을 덧붙이며 말하자
그의 눈썹이 살짝 움찔했다.
기분을 상하게 하는 데에 성공한 것 같았지만
“ 그러니까 같이 가요. “
그는 다시 내 기분을 더럽게 만드는 표정을 하고서
손을 내밀었다.
아무래도 장소를 잘못 고른 것 같다.
“ 돈 많고, 시간도 많은 내가 살맛 나게 해줄 테니까. “
-
살맛 나게 해주겠다던 그가 하는 행동은
그저 매일 날 귀찮게 할 뿐이었다.
좋은 차를 끌고 와서 드라이브를 가자고 한다던가,
맛있는 걸 먹으러 가자던가,
영화를 보러 가자 거나 하며 말이다.
“ 사람 많은 데 별로 안 좋아해요. “
“ 그래요? 그럼 딴 거 해요. 하고 싶은 거 말해요.
어디든지 같이 갈 테니까. “
처음엔 싫기만 했던 그의 행동들이
갈수록 익숙해져갔다.
그의 차에서 항상 흐르는
제목 모를 그 노래를 외우게 되고,
항상 내 몸에 맞게 조절된
조수석 의자가 익숙해지고,
그의 앞에 마주 앉아 있는 것이 익숙해져버렸다.
그는 정말 이상한 사람이다. 그리고 무서웠다.
그의 옆에 있으면 이 끔찍이 싫은 세상에서
조금 더 살아가도 괜찮을 것 같다고.
이게 그가 말한 살아갈 맛이라면
꽤 괜찮은 것 같다고.
그런 무서운 생각이 들며 앞이 보이지 않았다.
나를 살고 싶게 만드는 그가 무서웠다.
-
그와 만난 뒤로는 처음으로 혼자 외출을 한 뒤,
해가 진 저녁이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집 앞에 세워진 그의 차가 보였다.
운전석에 앉아 있던 그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차에서 내렸다.
내 앞으로 다가와 나를 가만히 내려다보던 그는
크게 한숨을 한 번 내뱉고는 벽에 기대었다.
그에게 왜 그러냐고 묻자
그는 다시 한번 한숨을 뱉었다.
그제야 아까부터 꺼져있던 내 휴대전화가 생각났다.
그리고 늘 깔끔했던 그의 머리가
잔뜩 헝클어져 있는 게 그제야 보였다.
역시 난, 그가 너무나도 무섭다.
“ 아무것도 못 하겠더라. 걱정되고 무서워서.
혹시 당신한테 무슨 일이 생겼을까 봐. “
2. 유승호
이어폰을 귀에 꽂았지만
차들이 지나가는 소리가 워낙 시끄러워
노랫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어폰을 빼지 않은 채
속으로 노래를 부르며 걸어갔다.
그러다 갑자기 불어오는 찬 바람에
겉옷을 여미며 걸음을 재촉하는데
저 멀리 한 사람이 보였다.
그 사람은 다리의 난간을 밟고
올라서려는 듯 보였다.
그 모습을 보고 난 서둘러 그 사람에게 달려갔다.
“ 안 돼요! “
그의 옷을 붙잡고 당기자
다행히 그는 안전한 방향으로 넘어졌다.
그는 울고 있었다.
너무나 서럽게 우는 탓에
가족의 전화번호를 물어볼 수도,
집 주소를 물어볼 수도 없었다.
그저 처음 본 그의 등을 토닥여주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
괜스레 걱정되는 마음에
돌아가는 그의 뒤를 쫓아갔다.
다행히 그는 나에게 쫓아오지 말라는 말을
하지 않았고,
다행히 그는 딴 길로 세지 않고 그의 집으로 보이는
한 집 앞에 멈춰섰다.
이만 가보겠다는 말을 하고 돌아서야 하는데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걱정되었다.
얼핏 보인 그의 손바닥에는 상처가 있었다.
가방을 뒤지며 밴드가 있나 찾아보았지만
보이지 않았다.
“ 그럼. “
집 안으로 들어가려는 그를 불러세웠다.
그는 여전히 축 처진 어깨를 하고서
뒤를 돌아보았다.
난 그의 손을 조심스럽게 잡아 올렸다.
그리고 가방에서 밴드 대신 나온 펜으로
상처가 있는 손바닥 대신
손등에 내 전화번호를 적었다.
“ 힘든 일 있을 때 연락해요. “
그는 자신의 손등에 적힌 내 전화번호와
나를 한 번 번갈아 보고는
집 안으로 들어가버렸다.
그가 들어간 것을 확인하고는
나도 뒤돌아 집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제야 오른쪽 손바닥이
따끔거리는 게 느껴졌다.
손바닥엔 그와 똑같은 상처가 나 있었다.
-
그 일이 조금씩 잊혀져 갈 때쯤,
그에게서 연락이 왔다.
그는 또 울고 있었다.
집이라는 그의 말에 서둘러 그의 집으로 찾아갔다.
그는 그 날처럼 나에게 기대 울었고,
난 그 날처럼 그런 그의 등을 토닥여주었다.
“ 고마워요. “
그 뒤로, 그의 집에 찾아가는 건
습관처럼 익숙해졌다.
우린 참 이상한 관계였다.
누군가 우리가 무슨 관계냐고 물어본다면
난 그에게 선뜻 어깨를 빌려주는,
그는 나에게 선뜻 슬픔을 맡겨주는,
그런 이상한 관계라고밖에 설명할 수 없었다.
그의 눈물은 갈수록 줄어들었고
그의 등을 토닥여주는 횟수도 줄어들었다.
그런데도 그는 계속 나를 찾았다.
나 역시 마다하지 않고 그를 찾아갔다.
우린 이상한 관계니까.
-
아침부터 내리던 비가
어두워진 지금까지도 계속 내리고 있었다.
침대에 누워있던 그가 나를 불렀다.
그리고는 손을 잡아도 되느냐고 물었다.
난 말 없이 그의 손 위에 내 손을 올려주었다.
“ 난 당신이 가끔 미워져요. “
그 목소리는 밖에서 내리고 있는 비만큼이나
흠뻑 젖어있었다.
“ 난 정말 살고 싶지 않은데. “
“ 당신 때문에 매일 하루만 더, 하루만 더.
날 억지로 살아가게 만들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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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새해복마니바다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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