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인으로서 넬슨과 대등한 제독이 있다는 건 인정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만약 누군가가 넬슨과 비견된다면, 그건 일생동안 패배를 몰랐으며 적의 앞에서 최후를 맞은 아시아 인종의 이 위대한 제독이어야 할 것이다.
-G.A 발라드-
그러나 일본은 뭍에서 성공을 거둔 반면, 바다에서는 일대 타격을 받았다. 한반도 사람들은 항해에 능한 민족이었고, 조선에는 이순신이라는 뛰어난 장군이 있었다.
-버나드 로 롱고메리-
역사를 통틀어 정면 공격과 기습 공격, 병사를 뭉치고 산개시키는 전술에 모두 뛰어났던 장군은 몇 되지 않는다. 육군에서는 정복전의 대가였던 나폴레옹이 그런 장군이었고, 해군 중에는 더욱 천재적인 전술가로 동양에서는 한국의 이순신, 서양에서는 영국의 호레이쇼 넬슨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불행히도 이순신은 조선에서 태어났기에 서양에 별로 알려지지 않았지만, 임진왜란의 기록이 부족하다는 것을 전제하더라도 의심할 여지가 없는 최상급의 지휘관이다.
-사토 테츠타로 제독의 『제국 국방사론』 중-
<1차 출진>
옥포 해전: 1592년 5월 7일, 26척 격침, 사망자 4,080명
합포 해전: 1592년 5월 7일, 5척 격침, 사망자 490여 명
적진포 해전: 1592년 5월 8일, 11척 격침, 사망자 2,840명
-합계-
사망자 7,410여 명, 42척 격침
*조선수군 손실: 사망자 없음, 부상자 1명, 격침 없음
<2차 출진>
사천 해전: 1592년 5월 29일, 13척 격침, 사망자 2,600명
당포 해전: 1592년 6월 2일, 21척 격침, 사망자 2,820명
*일본 지휘관 피해*
구루지마 미치유키: 사망
당항포 해전: 1592년 6월 5일, 26척 격침, 사망자 2,720명
율포 해전: 1592년 6월 7일, 3척 격침, 4척 포획, 사망자 500명
-합계-
사망자 8,640명, 63척 격침, 4척 포획
*조선수군 손실: 사망자 11명, 부상자 49명, 격침 없음
<3차 출진>
한산도 해전: 1592년 7월 8일, 54척 격침, 12척 포획, 사망자 9,000여 명
*일본 지휘관 피해*
와키자카 야스하루: 도주
와키자카 사베에: 사망
와타나베 시치에몬: 사망
미나베 사마노조: 할복 자살
→사망자 9천명 설은 '병량조발건기' 참고
안골포 해전: 1592년 7월 10일, 42척 격침, 사망자 3,960여 명
-합계-
사망자 12,960여 명, 96척 격침, 12척 포획
*조선수군 손실: 사망자 19명, 부상자 116명, 격침 없음
<4차 출진>
장림포 해전: 1592년 8월 29일, 6척 격침, 사망자 480명
화준구미 해전: 1592년 9월 1일, 5척 격침, 사망자 500명
다대포 해전: 1592년 9월 1일, 5척 격침, 사망자 590명
서평포 해전: 1592년 9월 1일, 8척 격침, 사망자 1,000명
절영도 해전: 1592년 9월 1일, 9척 격침, 사망자 1,200명
초량목 해전: 1592년 9월 1일, 4척 격침, 사망자 380명
부산포 해전: 1592년 9월 1일, 128척 격침, 사망자 3,830여 명, 부상자 1,200여 명
-합계-
사망자 7,980여 명, 부상자 1,200여 명, 165척 격침
*조선수군 손실: 사망자 6명, 부상자 25명, 격침 없음, 3척 소규모 파손
-조선 지휘관 피해: 정운 사망
▶▶▶부산포 이전의 6 해전에서 일본측 전사자는 확정된 것이 아닌 함선 승선인원에 따른 추측 입니다.
<5차 출진>
웅포 해전: 1593년 2월 10일~3월 6일, 51척 격침, 사망자 2,500여 명
*일본 지휘관 피해*
구와나 치카카쓰: 사망
-합계-
사망자 2,500여 명, 51척 격침
*조선수군 손실: 사망자 불명, 협선 4척 전복, 전함 격침 없음
<6차 출진>
견내량 해전(2차 한산 해전): 1593년 3월 26일, 10척의 일본 함대 격퇴(격침과 사상자는 알 수 없음)
-합계-
격침과 사상자 불명
*조선수군 손실: 사망자 없음, 격침 없음
<7차 출진>
2차 당항포 해전: 1594년 3월 4일, 31척 격침, 사망자 4,100여 명
-합계-
사망자 4,100여 명, 31척 격침
*조선수군 손실: 사망자 없음, 격침 없음
<8차 출진>
장문포, 영등포 해전: 1594년 9월 29일~10월 1일, 2척 격침, 사망자 190여 명
2차 장문포 해전: 1594년 10월 4일, 내륙 일본군의 무대응
▶전상자, 피해전선 없음.
-합계-
사망자 190여 명, 2척 격침
*조선수군 손실: 사망자 없음, 격침 없음
칠천량 참사 이후
<9차 출진>
어란포 해전: 1597년 8월 28일, 8척의 일본 함대 격퇴(격침과 사상자는 알 수 없음)
벽파진 해전: 1597년 9월 7일, 13척의 일본 함대 격퇴(격침과 사상자는 알 수 없음)
-합계-
격침과 사상자 불명
*조선수군 손실: 사망자 불명, 격침 없음
<10차 출진>
명량 해전: 1597년 9월 16일, 31척 격침, 10여 척 반파 추정, 사망자 3,000~3,400여 명 추정
*일본 지휘관 피해*
도도 다카도라(총대장): 부상
구루지마 미치후사(선봉): 사망
모리 다카마사(군감): 침수 뒤 구조
하타 노부토키: 사망
-합계-
사망자 3,000~3,400여 명 추정, 31척 격침, 10여 척 반파 추정
*조선수군 손실: 사망자 11명(추정치), 부상자 21명(추정치), 격침 없음
-대장선 사망자: 김탁(순천 감목관), 계생(본영노비)
-대장선 부상자: 이극신(강진현감), 박영남, 봉학
<11차 출전>
고금도 근해 전투: 1598년 2월 경, 16척의 일본 함대 격퇴(격침과 사상자는 알 수 없음)
-합계-
격침과 사상자 불명
*조선수군 손실: 사망자 없음, 격침 없음
<12차 출전>
흥양 고도 전투: 1598년 3월 18일, 5척의 일본 함대 격퇴(격침과 사상자는 알 수 없음)
-합계-
격침과 사상자 불명
*조선수군 손실: 사망자 없음, 격침 없음
<13차 출진>
절이도 해전: 1598년 7월 19일, 50여 척 격침, 50여 척 반파, 사망자 10,000여 명
-합계-
사망자 10,000여 명, 50여 척 격침, 50여 척 반파
*조선수군 손실: 사망자 불명, 부상자 불명, 격침 없음
<14차 출진>
순천 왜교성 전투(장도 해전): 1598년 9월 20일~10월 7일, 31척 격침, 11척 포획, 사망자 2,900여 명, 부상자 200여 명
*일본 지휘관 피해*
오야노 다네토모: 사망
오야노 다네하카루: 사망
스모토 미치타카: 사망
-합계-
사망자 2,900여 명, 부상자 200여 명, 31 척 격침, 11척 포획
*조선수군 손실: 사망자 29명(지휘관 미포함), 부상자 100여 명, 격침 없음
-조선 지휘관 피해: 황세득 사망, 군관 이청일 사망
*명군 손실: 사상자 2,300여 명, 전함 30여 척 격침 및 파손
▶▶▶독단적으로 공격을 감행하다 일본군의 포위에 같힌 명의 수군을 구출하기 위해 (일본군에 비해)취약했던 근접전에 돌입한 결과... 노량해전을 제외하면 가장 많은 사상자가 발생한 해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15차 출진>
(...)
노량 해전: 1598년 11월 18일~11월 19일(양력 12월 15일~16일 경), 200여 척 격침, 150여 척 반파, 100여 척 포획, 사망자 20,000~30,000여 명, 부상자 3,000여 명
→참고로 명사 '진린전'에서는 사상자가 1만으로 나와 있습니다.
아마도 이건 순천 왜교성 주둔군의 피해로 파악됩니다.
*일본 지휘관 피해*
시마즈 요시히로: 휘하 병력의 8할 이상을 잃고, 도주
고니시 유키나가: 해전 발발전에 도주
타치바나 무네시게: 도주
오코히라 다카시게: 사망
마치다 히사마사: 사망
이케베 사다마사: 사망
-합계-
사망자 20,000~30,000여 명, 부상자 3,000여 명, 200여 척 격침, 150여 척 반파, 100여 척 포획
*조선수군 손실: 사망자 130여 명, 부상자 170여 명, 격침 없음, 6척 소규모 파손
-조선 지휘관 피해: 이순신 사망, 이영남 사망, 이언량 사망, 방덕룡 사망, 고득장 사망
*명군 손실: 사상자 500여 명, 격침 1척←조선수군에게서 대여한 판옥선
-명 지휘관 피해: 등자룡 사망
<종합>
일본군 손실: 사망자 75,500~91,880여 명, 부상자 4,400여 명, 격침 760~800여 척, 포획 120~130여 척,
반파 200~210여 척
*조선군 손실: 사망자 약 250~290여 명, 부상자 480~500여 명, 전함 격침 없음, 소규모 파손 9척, 협선 4척 전복
명군 손실: 사상자 약 2,800여 명, 전함 격침 및 파손 30여 척(+ 노량해전 당시 대여한 판옥선 1척)
무엇보다도 충무공 휘하의 조선수군 전함은 격침이 하나도 없습니다.
정말로 '해신' 그 자체와 다를 바 없네요.;
충무공 이순신(忠武公 李舜臣)
1545.4.28~1598.12.16(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