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2년, 마르몽 원수가 이끈 약 5만 명의 프랑스군은 웰링턴 공작이 지휘하는 약 2만의 영국군과 스페인 살라망카 근처에서 대규모 야전을 벌입니다. 사실 이 전투는 근 1달 동안 스페인 평원을 떠돌며 양군이 회피 및 추격 기동을 하다가 웰링턴이 파놓은 함정에 마르몽이 걸려들어 벌어진 전투였습니다.
여기서 패퇴한 프랑스군은 알바 데 토르메스(Alba de Tormes)의 다리를 건너서 후퇴해야 했습니다. 웰즐리는 패퇴하는 프랑스군을 몰살시키기 위한 장치도 미리 만들어 놓았었습니다. 즉, 알바 데 토르메스의 요새에 알바 장군이 이끄는 스페인군을 주둔시켜 두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 전쟁 내내 보여준 스페인 정부군의 성격이 여기서도 드러나, 프랑스군이 후퇴하여 그쪽으로 온다는 소식을 들은 스페인군은 프랑스군이 도착하기 3일 전에 짐을 싸서 도망쳐 버립니다. 영국군에게는 후퇴에 대해서 통보도 하지 않구요.
당시 스페인 정부군의 무능함에 대해서는 정말 전설적인 이야기들이 많습니다. 대표적인 것 중 하나를 들면, 1809년 탈라베라 전투 전날 저녁, 저 멀리 사정거리 한참 바깥에 접근한 수십 명의 프랑스 용기병들에 대해 약 1만의 스페인 보병들이 장교의 지휘하에 일제 사격을 쓸데없이 한 일이 있습니다. 거기까지는 괜찮았는데, 그만 자기들이 쏜 일제 사격에 자기들이 놀라 수많은 스페인 병사들이 소총을 버리고 일제히 도주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것만 해도 어이가 없는데, 도망친 스페인 병사들의 대부분은 곧장 탈라베라의 술집으로 달려 들어가 술을 약탈해 마시고 취해 버렸다고 합니다. 이때의 스페인은 정부군이 무능함의 극치를 보여준 것에 비해 순수하게 민중들이 들고 나선 게릴라들은 영웅적으로 싸웠습니다. 사실상 프랑스군을 쫓아낸 것은 웰즐리보다는 이름 없는 스페인 게릴라들이라는...
아무튼 이 다리를 건너 후퇴하던 프랑스군의 후위 역할을 하는 기병 1,000명과 보병 3개 대대(보병 1개 대대는 약 800~1,000명 정도)가 휴식을 취하고 있는 중에 영국군에서 복무하는 KGL(King's German Legion, 왕립 독일 군단) 소속의 중기병대 350명 가량이 도착합니다. 이때 프랑스 기병대는 언덕 위에 있었고, 보병들은 KGL 기병들이 볼 수 없는 언덕 뒤편에 방진을 치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근처에는 가르시아 에르난데스라는 마을이 있었습니다.
당시 영국군 내에서 기병하면, 당시 영국 조지 3세의 고향인 하노버 출신의 독일인들로 구성된 KGL 기병들을 최고로 쳐주었습니다. 영국군 기병들은 문란한 규율로 인해 평이 좋지 않았습니다. 특히 나쁜 버릇은, 돌격할 때 승리감에 도취되어 아무런 자제도 하지 않고 무턱대고 추격을 계속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진열도 흐트러지고 말도 지쳐서, 정작 적의 신규 부대와 맞닥뜨릴 때 처참하게 패배하는 일이 종종 있었습니다. 그중 가장 유명한 것은 바로 워털루 전투에서 프랑스 보병대를 유린하고 프랑스군의 독수리 깃발을 2개나 빼앗은 뒤, 결국 프랑스 창기병들에게 거의 전멸당한 스코츠 그레이(Scots Grey) 기병대의 사례입니다.
아무튼 KGL은 무려 3배나 많은 숫자인 프랑스 기병대를 향해 과감히 돌격을 감행했고, 패전 이후 사기가 떨어진 프랑스 기병대는 무의미한 싸움을 하고 싶지 않아, 그냥 말을 달려 도망쳐 버립니다. 그러면서, KGL을 잘 정비된 3개의 프랑스군 보병 방진 앞으로 유인합니다. KGL은 언덕 위에 올라와서야 프랑스군의 보병 방진을 발견하고 당황합니다. 보병의 일제 사격에 약간의 사상자를 낸 KGL 기병대는 당연히 후퇴해야 했습니다. 당시 기병으로는 보병 방진을 '절대' 깰 수 없다는 것이 상식 중의 상식이었습니다. 계산 방법은 이렇습니다. 돌격하는 기병들은 좌우로 최소 약 1.2미터의 폭이 필요했습니다. 그에 비해 방진의 보병들은 60cm의 폭만 있으면 되었고, 또 방진의 보병들은 대개 4열로 늘어서 있었습니다. 즉, 한 자루의 기병검에 대해 4x2=8발의 총탄과 8자루의 총검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보병의 총에 총탄이 들어 있지 않다고 해도, 말이라는 동물은 절대 그 빽빽한 총검의 숲으로는 돌격해 들어가지 않고, 끝에는 반드시 옆으로 머리를 돌리곤 했습니다. 간단히 말해서, 기병으로는 보병 방진을 절대 뚫을 수 없었습니다. 이 사실은 워털루 전투 때, 프랑스 최정예 기병대를 이끌고 영국군 보병 방진에 돌격을 감행했던 네(Ney) 원수가 증명을 했습니다.
그러나 KGL 중기병대는 돌격을 감행했습니다. 바로 전날 살라망카 전투에서 영국군 기병대가 행군 대열에 있던 프랑스 보병들을 공격하여 프랑스군의 독수리 군기를 빼앗은 것에 대해 느낀 질투심이 가장 큰 요인이었다고 합니다. 프랑스 보병대는 침착하게 대응 사격을 했고, KGL 기병대의 돌격은 사상자를 내면서 실패로 끝나는 듯했습니다. 더군다나 보병 방진은 무려 3개나 있었습니다. 그러나 KGL은 거의 제정신이 아닌 듯한 용기 또는 만용으로 계속 돌격했고, 선두의 지휘 장교와 그의 군마가 총탄에 맞아 죽어 쓰러지면서 그대로 슬라이딩, 프랑스 보병들의 대오를 들이받았습니다. 여기서 생긴 작은 틈새로 KGL 기병대가 쏟아져 들어갔고, 그 순간 프랑스 보병들의 운명은 결정되었습니다.
돌연 패닉 상태가 된 프랑스 보병 대대는 방진을 허물고 허겁지겁 2번째 방진으로 도망쳤고, KGL 기병대는 거기에 뒤섞여 따라가며 보병들을 학살했습니다. 이 도망병들이 2번째 방진 안으로 뚫고 들어가 숨으려는 와중에 그만 2번째 방진마저도 허무하게 무너집니다. 2개의 무너진 방진의 보병들이 우왕좌왕하면서 3번째 방진으로 도망칠 때, 3번째 방진의 프랑스군은 도망쳐 오는 아군을 향해 일제 사격을 가하며 방진을 지키려고 했습니다만, 이미 승리의 맛을 본 KGL은 첫 번째와 같은 방식으로 죽음을 불사하고 돌격하여 마침내 세 번째 방진에도 구멍을 냅니다. 구멍이 뚫리자마자 세 번째 방진의 프랑스군은 모두 총을 버리고 서둘러 항복합니다.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KGL 중기병대의 사상자는 127명인데 비해 프랑스 보병대의 피해는 1개 대대가 통째로 포로로 잡힌 것을 포함하여 거의 2,000명에 달했다고 합니다. 겨우 350명의 기병대가 약 2,400명의 보병들을 완전히 패퇴시킨 것이었습니다. 다만, KGL의 전사율이 무려 36%였으니, 확실히 희생이 컸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건 나폴레옹 전쟁 사상 매우 희귀한 사례였습니다.
이것이 아마도 소수의 기병으로 다수의 보병을 물리친 거의 마지막 사례가 아닐까 싶습니다. (아마 제가 잘 몰라서 이런 소리를 막 할 수 있는 것이고, 찾아보면 더 있겠지요.) 사실 나폴레옹 전쟁 때만 해도, 이미 기병은 주력 병종이 아니었고, 웰링턴 공작은 피아의 전력 비교를 할 때 대개 기병대는 아예 셈에 넣지도 않았다고 합니다. 기병은 어디까지나 정찰용이나 추격용이지, 전투의 승패를 판가름하는 요소는 아니었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이후에도 장군들은 여전히 기병을 아끼고 아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냥 '위엄 있고 멋있으니까'라는 점 외에 달리 설명이 안되는군요.
모태솔로 중 의외로 많은 케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