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돼지를 모르는 사람도
이 장면은 알 정도로, 돼지가 채권은 거부하는 장면은 유명하다.
그러나 현대에 와서 보통 채권이라 함은 국가가 기업에게 발행하는 것으로
국가가 일반인에게 채권을 권유하는건 현대인에게 있어선 좀 낯선 풍경이다.
영화에선 왜 그랬던 걸까?
그 이유는 일본에서 만든 일본 영화기 때문이다.
일본은 전시 채권이 복권과 같은 구조라서,
번호 추첨으로 할증을 받을 수 있는 구조였기 때문이다.
물론 채권의 발행은 현대와 똑같이 1896년에 설립된 특수 은행인 '일본 권업 은행'에서 했지만,
채권의 매입은 주요 은행, 증권사, 우체국, 심지어 백화점, 담배 가게 등에서도 구입할 수 있었다.
어쩌다가 이렇게 된 것일까?
중일 전쟁이 시작된 1937년, 일본은 전시비상체제로 전환했고, 이듬해에는 총동원령을 내렸다.
그러나 일본 군부의 재정 지출은
1931년 만주 사변이 발생,
1937년 중일 전쟁 발발,
1941년 12월 태평양 전쟁을 거치며
급격하게 씹1창이 나게 된다.
게다가 육군 항공모함이 있는 일본답게,
직접적인 전쟁 지출과 재원 조달을 관리하는 임시군사비 특별 회계와
정부 일반 회계가 따로 노는 기현상을 보여준다.
그렇게 나온 재정 지출은
일반 정부 지출은 1944년도 199억 엔으로, 1935년 지출액인 22억 엔의 9배,
임시군사비의 지출은 1944년도 735억 엔으로, 1937년도 20억 엔 대비, 무려 37배나 팽창하게 된다.
결국 그 참혹한 결과는 다음과 같다.
이것은 중일 전쟁이 발발하자, 전비 조달을 목적으로 1937년 12월부터
총수입 2억엔이 될 때까지 일본 권업 은행이 발행 가능했던 채권이다.
겉으로 보기엔 멀쩡한 채권으로 보인다.
그러나 일제의 꼼수는 이렇다.
이 채권을 구매한 이후, 액면가 20엔 이하로 국가에 상환시.
매년 2회 정도 추첨하여 당첨된 이를 가린다.
그리고 그 사람에게 판매가의 150배 이내로 할증료를 붙여서 돌려준다.
그리고 그 할증료를 국채로 돌려준다!
즉 대놓고 배째겠다는 소리다.
이외에도 다양한 꼼수로 소액채권이 발행되었다.
▲1942년 6월 8일부터 전국 우체국에서 발매하기 시작한 추첨권.
소위 총알 우표로 불렸지만, 정작 우표로는 사용할 수 없었다.
▲1942년에 실린 전시채권 광고
"대동아전쟁 국채, 8월 20일부터 9월 6일까지 제 10 회 전시이익 보국채권 판매."
▲1943년 광고에 실린 우표 채권 광고
"결전일은 가열차다. 적에게 쏠 총알 우표의 사명은 무겁다! 자아, 이번 달은 한장이라도 더!"
"1장에 2엔, 1등은 1000엔."
이 채권들은 상술했듯이 총알 우표라 하여,
아이도 구입할 수 있는 소액 채권으로 발행되었고,
또한 점차 반 강제적으로 떠넘겨졌다.
이렇듯, 일본의 전시 채권은
좁은 의미의 서민에게서까지 군자금을 걷고,
조금이라도 대중의 전쟁 의지를 돋구는 데 사용되었다.
즉 붉은 돼지의 저 장면은, 전후 세대의 일본인에겐 꽤 친숙한 장면이란 것.
참고로 물가 계산을 해봐도 그렇게 비싸지 않다.
당시 발행된 10엔 채권의 가격은, 현대 물가로 계산시 대략적으로 4만원.
총알 우표는 그야말로 몇천원에 불과하니,
이야말로 당시 일제의 절박함을 짐작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