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MS 프린스 오브 웨일스'가 해상 시운전에 나섬에 따라 영국 해군은 이제 두 대의 정규 항모를 갖춘 국가가 됐습니다. 이제 중국이 무시무시한 산업 능력으로 2대의 항모를 마저 건조할 때까지는 세계 2위의 항모 세력이라는 영광스러운 타이틀을 유지할 수 있을 겁니다.
영국 해군은 2개의 소함대(Flotilla)로 이루어진 한 개의 함대(Fleet)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각 소함대에는 각각 1개의 항모 타격단(Carrier Strike Group, 이하 CSG로 통칭), 1개의 상륙 타격단(Amphibious Strike group)이 배치되어 있으며, 이들이 주기적으로 배치와 훈련을 반복하며 언제나 1개 이상의 항모 혹은 상륙 전단을 '상시 가동' 상태로 굴리는 체제입니다.
한편 미 해군은 10대의 정규 핵추진 항모를 기반으로 하는 항모 전투단(Carrier Battle Group, 이하 CBG로 통칭)을 운용합니다. 미 해군의 CBG는 언제나 30% 이상의 가동률을 유지할 것을 권고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미 해군은 동시에 3개의 CBG를 전 세계에서 동원할 수 있습니다. 각 CBG는 한 번 배치되면 6개월 동안 임무를 수행한 뒤 고향 땅의 노포크 항구로 돌아오지요.
미 해군의 CBG, 영국 해군의 CSG는 사실 동일한 의미를 담고 있지만, 세부적으로는 전혀 다른 성질의 그룹입니다. 이것은 미 해군이 영국 해군보다 몇 배 이상 강력한 조직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또 두 그룹의 작전 컨셉이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미 해군의 CBG는 세계 어디든 배치할 수 있는 궁극의 무력 투사 수단입니다. CBG의 핵심은 니미츠급(9만 톤), 혹은 신형 제럴드 포드급(10만 톤) 항공모함입니다. 제럴드 포드급 기준으로 미군 항모는 하루에 최대 160~240소티를 내뿜을 수 있습니다. 이것은 "한 번 보급받아 작전하는 동안 총 100~120소티를 낼 수 있는" 것으로 알려진 프랑스 샤를 드 골급 항모의 작전 능력 규모를 아득히 상회한 것이죠.
항모의 힘은 탑재 항공기 소티에서 나옵니다. 소티가 많을수록 항모는 다양한 일을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럴드 포드급은 함대 궁극의 방공 쉴드이자, 대함 무기이자, 가장 강력한 종심 타격 수단입니다. 반면, 경항모는 기껏해야 수상함 호위, SAR(수색 정찰), 대잠 작전 정도밖에 할 수 없습니다. 그마저도 모든 옵션을 한 번에 집행할 수 없지요. 3~4만 톤급 중형 항모도 경항모와 비교해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행거와 격납고가 작아 작전 지속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미 해군이 보유한 초대형 항모는 자신이 원하는 건 뭐든지 할 수 있습니다. 미국 CBG의 힘은 가히 '해군의 궁극형'이라고 할 만한 엄청난 다목적성에 있습니다. 정찰, 함대 보호, SAR, 대잠 작전, 적 함선 공격, 지상 종심 타격에 이르기까지 모든 임무를 완벽하게, 동시다발적으로 수행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공중 위협으로부터 함대를 방어하는 제1 수단은 항모입니다.(많은 사람들은 호위함이 함대를 보호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 반대입니다) 그리고 항모를 위협으로부터 보호하는 것은 에스코트, 즉 호위 함선입니다.
미 해군 CBG는 타이콘데로가급 순양함과 알레이버크급 구축함을 5~6척 이상 동원해 항모를 보호합니다. 이 함선은 수십 발이 넘는 SM-2 방공 미사일을 탑재하고 있으며, 모두 SPY-1 패널형 레이더 기반 광역 방공 시스템을 갖추고 있습니다. 알레이버크급에 장착된 SPY-1D의 매력은 다목적성에 있습니다. 이 레이더는 3.6*3.6m 크기 디쉬에 수천 개의 트랜스 리시버 모듈을 장착한 패널로, 특유의 고출력을 통해 넓은 탐지 범위를 제공합니다. 즉 멀리서 날아오는 미사일을 조기 감지 후 대응하기에 좋고, 방공 임무를 수행하는 동시에 항공 관제 등 부가적인 임무도 같이 수행할 수 있다는 겁니다.
모든 알레이버크, 혹은 타이콘데로가급이 준 기함급입니다.
알레이버크급의 무장 또한 다목적성을 염두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대공 미사일, 대함 미사일, 대지 타격 순항 미사일, ASROC 유도 로켓형 어뢰 등으로 무장하고 있으며, 대공, 대함, 대잠 등 어떤 임무도 수행할 수 있습니다.
물론 알레이버크급은, 현시점에서는 최강의 방공함도 아니고 최고의 BMD 플랫폼도 아니며(*Flight III형 이전까지는 X밴드 레이더를 탑재하지 않기 때문), 사실 대잠 플랫폼으로서는 썩 좋은 선택이라고 보기 힘듭니다. 대신 알레이버크급은 '뭐든지 할 수 있는' 전투함 중에서는 가장 강력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CBG의 부속품으로서 활동할 때 이 함선의 넓은 센서 탐지 범위가 막대한 장점이 됩니다.(해상 봉쇄든, 대함이든, 대공이든)
이제 미 해군의 CBG 컨셉을 보다 명확히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CBG는 6개월 이상 벌어지는 거대 규모 장기전 및 해상 봉쇄 작전에 특화된 초대형 배치 자산입니다. CBG는 넓게 퍼져서 적군을 해역 전체에 가둬둘 수 있으며, 무지막지한 난타전을 벌이는 동시에 적국의 해안선에 침투해 들어가 표적을 마구 두들길 수도 있습니다. 게다가 대한민국 해군 전체가 움직이는 것과 맞먹는 거대한 배수량을 지닌 항모 전단 하나를 보급하고 유지하기 위해 들어갈 수많은 보급함들을 생각하면, 미 해군의 전문성과 기술력에 경의를 표할 수밖에 없지요.
심지어 미 해군은 이런 궁극의 (협박용) 대사관을 무려 한 번에 3개나 끌고 다닐 수 있습니다! 'watch out, bad guys!'
그에 비해 영국 해군의 CSG는 CBG보다 훨씬 소박합니다. 애초 CSG의 작전 컨셉은 CBG보다는 미 해병대의 상륙 전투 개념에서 따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F-35C가 아닌 F-35B 전투기를 채택했고(*파일럿 훈련 문제도 있습니다), 작전 능력이나 작전 범위 역시 CBG와 비교하면 현저히 떨어집니다.
CSG의 핵심은 퀸 엘리자베스급 항모입니다. 7만 톤급 디젤 추진 정규 항모로, 한 번에 최대 72-110소티를 낼 수 있습니다. 니미츠급 혹은 제럴드 포드급의 거대한 화력과 비교할 수는 없지만, 놀랍게도 여전히 "세계 2위"라고 주장할 규모는 충분히 되고도 남습니다. 가끔 우리는 미 해군의 규모를 '스탠다드'라고 여기는 착각을 하곤 하지요! 하지만, 미 해군은 언터처블이지, 결코 스탠다드가 아닙니다.
퀸 엘리자베스급은 제럴드 포드급이나 니미츠급처럼 동시다발적이고 치명적인 화력을 투사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퀸 엘리자베스 항모를 운용하는 그룹은 선택을 해야만 합니다. 보통은 전투에서 함대 보호에 치중할 테니, 퀸 엘리자베스급은 대공 위협으로부터 함대를 지키고, 대함 전투에서 적을 타격하고, 헬리콥터를 보내 SAR/대잠 업무를 수행하는 정도면 족합니다. 퀸 엘리자베스급은 상륙 전단을 보조하기 위해 해안선에 위치한 적에 폭격을 가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제럴드 포드급처럼 영토를 넘어가 적의 기반 시설을 타격할 만한 여유는 없습니다.
그런 면에서 CSG가 오히려 CBG보다 더 통상적인 전투 함대에 가깝습니다. CSG는 해상에서의 전투에서 우위를 점하고, 적의 통상 라인을 효과적으로 절단하는 등 싸워서 이기기 위해 설계되었습니다. 적의 핵심 인프라를 무너뜨리고 문명 최후의 메시지를 날리기 위한 터미네이터가 아닙니다. 영국 해군의 CSG는 2척의 데어링급 방공함, 2척의 시티급 호위함에 보호를 받게 됩니다. 알레이버크급과 타이콘데로가급으로 통일하는 미 해군과 달리 영국 해군은 특화형 호위함 4척으로 항모를 보호합니다.
데어링급은 방공 특화 함선입니다. 수십 발의 비싼 ASTER-30 미사일을 탑재하고 있고, 어뢰나 대함 미사일은 없습니다. 데어링급은 SAMSON S 밴드 MFR과 S1850M X 밴드 3D 탐지 레이더로 방공 쉴드를 전개할 수 있습니다. 고도로 발달했고 극도로 정확한 빔을 조사할 수 있는 SAMPSON으로 적 미사일과 항공기에 대응하고, S1850M으로 상황을 인식합니다.
이 함선은 SPY-1A/B/D를 쓰는 전투함보다 훨씬 강력한 방공 쉴드입니다. 하지만 알레이버크급처럼 준 기함의 역할을 수행할 수는 없습니다. SAMPSON은 2면 패널을 결합한 360도 회전 탐지 레이더이기 때문에 우선 서치 볼륨에 한계가 있고, 무지막지한 알레이버크급에 비하면 화력도 현저히 떨어지지요.
한편 영국 해군의 차세대 호위함인 시티급은 현시점에서 가장 정숙하고 강력한 대잠 헌터가 될 함선입니다. 그러나 데어링급과 마찬가지로, 대잠 전투를 제외하면 알레이버크급에 상대가 될 수 없습니다.
영국의 CSG는 다목적 함선과 특화 함선 중 후자를 택했습니다. CSG는 CBG와 다른 작전 컨셉을 그리는 그룹이기 때문입니다.
앞서 썼다시피, CBG는 궁극의 전투 함대입니다. 넓은 해역에서 장기간 벌어지는 전투를 수행할 수 있게 설계됐고, 뭐든지 할 수 있으며, 최대한 널리 퍼져 적국을 통째로 가둬두고 공성해야 합니다. 이런 작전 환경에서는 비록 각각의 세부적인 기능에서는 떨어질 수 있어도 말 그대로 '뭐든지 할 수 있는' 함선이 중요합니다. 진짜 전투하는 배가 필요한 것이지요. 게다가 알레이버크급은 일부 특화 전투함과 비교해 일부 기능에서만 떨어질 뿐 어떤 기능에서도 탑 수준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한편 CSG는 CBG보다 훨씬 소박한 전투 함대입니다. CSG는 적국 항구까지 함대를 들이밀고 가서 슬레지 해머로 깨부수는 함대가 아닙니다. 이 함대는 해상에서 적의 통상 라인을 붙들거나, 아니면 함대와 함대가 대해에서 만나 서로 싸울 때, 혹은 아군의 상륙 작전을 지원하는 화력 투사 용도로서 쓸모가 있습니다. 그리고 꽤 놀라운 사실이지만, 세상에 7개 바다에 CSG 규모의 함대를 자유롭게 배치할 수 있는 해군 조직을 갖춘 국가는 진짜로 거의 없습니다.
또한 CSG는 'coalition force'입니다. 즉, 혼자서 활동하는 게 아닌, 연합 함대의 일원으로서 활동할 때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는 겁니다. CSG는 유럽에서는 노르웨이 해군, 아시아에서는 호주 or 싱가포르 해군 함선 1~2척과 함께 전개됩니다.
또 정말로 적국과 전면적으로 전쟁을 하는 순간이 온다면, 그때는 언제나 미 해군 옆에서 연합군의 일원으로 작전에 임하게 될 겁니다. 앞서 말했다시피 미 해군은 결코 전지전능하지 않습니다. 사실 미 해군도 항상 재원 부족에 시달리고 있으며, 만약 중국 같은 거대한 나라와 싸우게 된다면 천하의 미 해군도 상당한 소티 압박에 시달리게 될 겁니다. 그때 영국의 CSG는 미 해병대와 함께 미 해군에게 아주 요긴한 와일드 카드가 될 겁니다.
더불어 미 해군이 도와줄 여력이 없는 다른 나라에 미 해군과 거의 동일한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사실도 CSG의 강점입니다.
CBG가 미국의 막강한 철권(?)을 상기시켜 주는 위협적이고 강력한 대사관이라면, CSG는 영국의 국익을 수호하고 다른 나라와 영국 사이에 유의미한 협력의 장을 마련해 줄 수 있는 교두보에 가까운 셈이지요.
그리고 영국의 CSG가 소박하다는 것도 어디까지나 미 해군과 비교했을 때나 그렇다는 것입니다. 여전히 이 세상 바다에는 풀 무장을 갖춘 CSG와 대양에서 싸워 이길 수 있는 함대를 갖춘 나라는 거의 없습니다. 아마 미군을 제외하면 없다고 봐도 무방하겠지요. 적어도 중국이 3대의 항모 체제를 갖추기 전까진 말입니다!
출처: 네이버 로코코님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