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할 수 있는 건 무엇이든 했다 | 인스티즈](http://file3.instiz.net/data/file3/2024/05/20/6/0/1/601a9d1d7c15efddd32843957e6bf915.gif)
사랑에 아파 눈물을 흘리는 현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우정보다는 사랑이 우선이었던 현은, 나를 감정 쓰레기통쯤으로 여겼다. 쓰레기가 되어 돌아온 그녀의 감정을 분리수거하는 건 내 전문이었다.
우정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할 수 있는 건 무엇이든 했다. 연애와 거리가 멀었던 나는 현을 통해 사랑을 배웠다. 만나는 사람마다 각각의 운명론을 만들어내는 그녀가 퍽 귀여워 웃음이 났다. 현은 자신의 사랑스러움을 알아줄 남자를 만나지 못한 것 같다. 아니면 현이 내 앞에서만 사랑스러운 짓을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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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녀가 좋아하는 사람과 있을 때 어떤 모습이 되는지 알지 못한다. 자신의 얼굴에서 가장 좋아하는 보조개를 보이며, 고개를 25도 기울인 채 예쁘게 웃어 보일 것이다. 현은 연애에 관해서는 의견이 확실한 사람이었다. 그중 하나는 커플 반지를 맞추지 않는다는 거였다. 하지만 나와의 우정반지는 변색이 될 때까지 끼고 다니는 모순적인 애였다.
나는 묻고 싶었다. 네가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는 범주에 내가 들어갈 수 있는지 말이다. 현을 짝사랑했을 당시에 구내염 때문에 고생한 날이 많았다.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해 생긴, 일시적인 현상이지 않았을까 짐작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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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병을 앓던 할머니가 곧 돌아가실 것 같다며 엄마가 운다. 어린 아이처럼 우는 엄마를 달랬다. 내가 엄마의 엄마가 된 것 같은 기묘한 느낌이었다. 언젠가 엄마와 딸의 역할이 바뀌게 되는 시점이 온다. 그 시점을 경험하기엔 이른 시기였다. 그 뒤틀림은 남동생이 아닌 나만이 겪어야 하는 일이었다. 나는 친구 같은 엄마를 원했지, 자식 같은 엄마를 원한 건 아니었다.
엄마는 집안일에 손을 놓았고 밤마다 할머니를 찾다가 잠에 들었다. 그렇게 집안은 점점 기울어졌고 장녀답게 나는 가족의 장이 되었다. 남자가 가장이 되었을 때는 어느 부족의 우두머리가 된다. 그런데 왜 여자가 가장이 되면, 멸망한 도시에서 살아남은 유일한 생존자가 되는 걸까.
나는 풋풋한 첫사랑을 하는 소녀가 되고 싶었다. 또래만큼 순진하고 대담한 학생이고 싶었지만, 우리 집에서 살아남은 유일한 생존자는 나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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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활비를 벌어야 했다. 현이 다니는 독서실과 가까운 편의점에서 일을 시작했다.현은 매일 같은 커피 두 개를 사갔다. 독서실에서 누군가와 썸을 타고 있는 모양이었다. 나는 원 플러스 원이라고 거짓말을 하며 반값만 받았다. 이렇게라도 마음을 표현하지 않으면 숨이 멎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 언젠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현과 누군가가 입 맞추는 걸 본 적이 있다. 나는 상대가 남자이길 바랐다. 우리가 이어질 수 없는 이유가 단지 성별이었으면 했다. 그들은 같은 패턴의 교복 치마를 입고 있었다.
'걔가 너 좋아하는 것 같아.' 상대의 말에 현은 알고 있다는 듯이 웃어 보인다. 나는 그녀의 마음이, 우정이 아니었다는 걸 안다. 비 오는 날 교복이 다 젖을 때까지 주차장 구석에서 서로를 안고 있던 게 꿈은 아니었으니까. 그녀는 무너져가는 내 세계의 첫 방문자가 되고 싶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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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야. 이거 원 플러스 원 맞지?"
"어. 아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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