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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낫찡타나카ll조회 1021l 1
이 글은 8년 전 (2016/2/07) 게시물이에요

 

나는 인류가 아닌 단 한 여자를 위해 쓴 잔을 죄다 마시겠지 | 인스티즈

나는 네 속에 사라지고 싶었다 바람 부는 세상 너라는 꽃잎 속에 활활 불타고 싶었다 비 오는 세상 너라는 햇빛 속에 너라는 제비 속에 너라는 물결 속에 파묻히고 싶었다 눈 내리는 세상 너라는 봄날 속에 너라는 안개 속에 너라는 거울 속에 잠들고 싶었다 천둥 치는 세상 너라는 감옥에 갇히고 싶었다 네가 피안이었으므로 그러나 이제 너는 터미널 겨울저녁 여섯시 서초동에 켜지는 가로등 내가 너를 괴롭혔다 인연은 바람이다 이제 나 같은 인간은 안된다 나 같은 주정뱅이, 취생 몽사, 술 나그네, 황혼 나그네 책을 읽지만 억지로 억지로 책장을 넘기지만 난 삶을 사랑한 적이 없다 오늘도 떠돌다 가리라 그래도 생은 아름다웠으므로


- 이승훈, 너라는 햇빛
















나는 인류가 아닌 단 한 여자를 위해 쓴 잔을 죄다 마시겠지 | 인스티즈


이 막막함이 달콤해지도록 나는 얼마나 물고 빨았는지 모른다. 헛된 예언이 쏟아지도록 나의 혀는 허공의 입술을 밤새도록 핥아댔다. 막막함이여 부디 멈추지 말고 나의 끝까지 오시길, 나의 온몸이 막막함으로 가득 채워져 투명해질 때까지 오고 또 오시길 나 간절히 원했다. 나는 이미 꺾이고 꺾였으니 물밀듯이 내 안으로 들어오시길. 그리하여 내게 남은 것은 나 뿐이라는 것도 어쩌면 이미 낡아버린 루머일지 모른다는 사실을 깊이깊이 내 몸속에 새겨주시길. 내 피가 아직도 붉은지 열어보았던 날 뭉클뭉클 날 버린 마음들을 비로소 떠나보냈듯이 치욕을 담배 피우며 마음도 버리고 돌아선 길이 죽고 싶다는 말처럼 깊어지도록 밀려오시길. 막막함으로 밥 먹고 사는 날까지.


- 이승희, 막막함이 물밀듯이
















나는 인류가 아닌 단 한 여자를 위해 쓴 잔을 죄다 마시겠지 | 인스티즈



이곳은 매우 슬프고 아늑하다. 비행운이 없이도 날 수 있는 하늘의 귀퉁이다. 휑뎅그렁한 부엌이라고 해도 좋다. 이건 포크고 이건 의자고. 그런데 왜 이렇게 텅 빈 거지. 이어폰을 끼우지 않은, 네가 억지로 밥 먹는 소리. 나는 음악을 들을 때마다 느끼는 청회색 정서가 싫었다. 머리카락 한 올 한 올에 넘치는 이야기들, 그 축축한 식도락. 부엌에서 종이비행기를 접시에 담고 너에게 포크로 자르기를 요구했었지. 미안해요. 나는 발자국도 없이 가벼운 사람. 무단투기된 언어들이 하필이면 부엌으로 몰려만 가는가. 지구의 한 조각을 손에 쥐고 사는 것이 이토록 서럽더라니. 우걱우걱 구겨 넣는 밥 한 숟가락은 비행기 안의 멀미만큼 어지럽고. 하늘에서 구름조각들을 잡아다가 먹어본 일이 있다. 시궁창에서 벗어날 길은 없다. 어두컴컴한 부엌에서 다리를 감싸고 있다. 노래로 감출 만한 슬픔들을 거울에 비춰보고 싶다. 모든 비행기들은 지구의 한 조각만을 떠돌 따름이고. 무모하게 눈부신 내 사랑, 미안해요, 같이 만져요. 너를 만져도 아무 느낌이 없는 것을 느낀다. 고개를 수그린다.

- 이이체, 추락한 부엌

나는 인류가 아닌 단 한 여자를 위해 쓴 잔을 죄다 마시겠지 | 인스티즈


당신의 눈 속에 가끔 달이 뜰 때도 있었다 여름은 연인의 집에 들르느라 서두르던 태양처럼 짧았다

당신이 있던 그 봄 가을 겨울, 당신과 나는 한 번도 노래를 한 적이 없다 우리의 계절은 여름이었다

시퍼런 빛들이 무작위로 내 이마를 짓이겼다 그리고 나는 한 번도 당신의 잠을 포옹하지 못했다 다만 더운 김을 뿜으며 비가 지나가고 천둥도 가끔 와서 냇물은 사랑니 나던 청춘처럼 앓았다 

가난하고도 즐거워 오랫동안 마음의 파랑 같을 점심식사를 나누던 빛 속, 누군가 그 점심에 우리의 불우한 미래를 예언했다 우린 살짝 웃으며 대답했다, 우린 그냥 우리의 가슴이에요

불우해도 우리의 식사는 언제나 가득했다 예언은 개나 물어가라지, 우리의 현재는 나비처럼 충분했고 영영 돌아오지 않을 것처럼 그리고 곧 사라질 만큼 아름다웠다 

레몬이 태양 아래 푸르른 잎 사이에서 익어가던 여름은 아주 짧았다 나는 당신의 연인이 아니다, 생각하던 무참한 때였다, 짧았다, 는 내 진술은 순간의 의심에 불과했다 길어서 우리는 충분히 울었다

마음 속을 걸어가던 달이었을까, 구름 속에 마음을 다 내주던 새의 한 철을 보내던 달이었을까, 대답하지 않는 달은 더 빛난다 즐겁다

숨죽인 밤구름 바깥으로 상쾌한 달빛이 나들이를 나온다 그 빛은 당신이 나에게 보내는 휘파람 같다 그때면 춤추던 마을 아가씨들이 얼굴을 멈추고 레몬의 아린 살을 입안에서 굴리며 잠잘 방으로 들어온다

저 여름이 손바닥처럼 구겨지며 몰락해갈 때 아, 당신이 먼 풀의 영혼처럼 보인다 빛의 휘파람이 내 눈썹을 스쳐서 나는 아리다 이제 의심은 아무 소용이 없다 당신의 어깨가 나에게 기대어오는 밤이면 당신을 위해서라면 나는 모든 세상을 속일 수 있다 

그러나 새로 온 여름에 다시 생각해보니 나는 수줍어서 그 어깨를 안아준 적이 없었다

후회한다

지난 여름 속 당신의 눈, 그 깊은 어느 모서리에서 자란 달에 레몬 냄새가 나서 내 볼은 떨린다 레몬꽃이 바람 속에 흥얼거리던 멜로디처럼 눈물 같은 흰 빛 뒤안에서 작은 레몬 멍울이 열리던 것처럼 내 볼은 떨린다

달이 뜬 당신의 눈 속을 걸어가고 싶을 때마다 검은 눈을 가진 올빼미들이 레몬을 물고 레몬향이 거미줄처럼 엉킨 여름밤 속에서 사랑을 한다 당신 보고 싶다, 라는 아주 짤막한 생애의 편지만을 자연에게 띄우고 싶던 여름이었다

- 허수경, 레몬

나는 인류가 아닌 단 한 여자를 위해 쓴 잔을 죄다 마시겠지 | 인스티즈

1

그해 겨울에는 참 많은 눈이 내렸다. 빼곡이 들어박힌 낡은 집들 사이로 뻗어난 골목길 가장자리에는 높다랗게 눈이 쌓여 간신히 앞으로 걸어나갈 수가 있었다. 미끄러지지 말아야지, 그렇게 잔뜩 긴장하며 조심조심 어둡고 고요한 그 골목을 헤쳐갔다. 문득 등뒤의 기다란 전신주 목덜미에 매달린 고장난 방범등이 켜지기라도 하면 누가 몰래 그림자를 밟아오는 것 같아 움찔 놀라야 했다.

2

너에게로 가는 층계는 가파르고 좁았다. 많은 사람들이 잠에 빠져 있을 늦은 시각, 너를 찾아 끝없는 계단을 올라가야 했다. 발소리를 죽이며 또 죽이며 살그머니 걸음을 옮겨놓아야 했다. 왜 그랬을까. 알 수가 없었으나 밤이면 너를 찾아 좁고 가파른 층계를 올라가야 했다. 그러나 네가 없는 풍경을 더 많이 바라봐야 했다. 그 쓸쓸한 가슴을 들고서 하얀 입김을 날리며 돌아서야 했다. 왜 그랬을까, 엄청나게 많은 겨울 밤을. 돌아서 걸어나오는 옆구리에서 간혹 심심한 개가 짖기도 했다.

3

날이 풀려 부드러운 바람이 불어오는 날의 밤에는 골목길이 온통 진흙투성이가 되어 있었다. 발목까지 빠져드는 길고 습한 골목길을 걸어나갔다. 점점 무거워져오는 발을 천천히 내디디면서 넘어지지 말아야지, 그렇게 마음졸이며 걸어나갔다. 아직도 등뒤에는 고장난 방범등이 때때로 껌벅거리고 있었다. 훈훈한 바람이 쌓인 눈과 얼어붙은 수도꼭지를 모두 녹이는 날에도 너는 자주 없었다. 너에게로 가는 길은 참으로 고단하고 아픈 것이었다.

- 홍영철, 너에게로 가는 층계

나는 인류가 아닌 단 한 여자를 위해 쓴 잔을 죄다 마시겠지 | 인스티즈

너는 투명해지기 위해 더 많은 각성제를 씹는다. 네 고향에선 비를 맞고 남의 배를 만져주는 게 풍습. 덧문을 꽉 닫고 체온이 가장 낯설게 부풀 때까지 잠을 잤다. 새를 볼 수 없는 계절도 있었다. 바람으로 짠 그물 침대에 누워 새의 비행법 중 이제 겨우 추락까지는 구별할 수 있게 되었다고 너는 안심했다. 좀 더 쥐기 쉬운 눈물을 가진 애들에게 허공은 날개 터는 소리로 채워지기 좋은 곳이다. 그곳에서 검게 칠해본 적 없는 얼굴을 조금씩 아끼며 나눠 칠하자, 그러면 누군가는 다시 젖은 손을 두개골 속에 집어놓고 파리 떼를 쫓겠지. 너는 양말을 신은 채 잠들고 골목길에 돌처럼 앉아 구기자차를 먹었다. 동생이 줄긋기 연습을 하던 시간. 팔뚝에 붉은 줄을 긋고 조용히 울던 시간. 모두 비슷한 맛의 눈물을 흘린 시간. 난곡(難曲)의 악보를 계단 삼아 너라고 부를 수 없는 지점까지 너는 걸어간다. 난 단지 잡았던 끈을 어떻게 놓아야 할지를 너에게 청한다. 너는 새끼 새처럼 빽빽거리며 이 방 저 방을 열어보고 부엌에 앉아 오물오물 생쌀을 씹었다.

- 조연호, 철저한 야외

나는 인류가 아닌 단 한 여자를 위해 쓴 잔을 죄다 마시겠지 | 인스티즈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

별들은 벌들처럼 웅성거리고

여름에는 작은 은색 드럼을 치는 것처럼

네 손바닥을 두드리는 비를 줄게

과거에도 그랬듯 미래에게도 아첨하지 않을게

어린 시절 순결한 비누거품 속에서 우리가 했던 맹세들을 찾아

너의 팔에 모두 적어줄게

내가 나를 찾는 술래였던 시간을 모두 돌려줄게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

벌들은 귓속의 별들처럼 웅성거리고

나는 인류가 아닌 단 한 여자를 위해

쓴 잔을 죄다 마시겠지

슬픔이 나의 물컵에 담겨 있다 투명 유리조각처럼

- 진은영, 청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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