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호승, 미안하다
길이 끝나는 곳에 산이 있었다
산이 끝나는 곳에 길이 있었다
다시 길이 끝나는 곳에 산이 있었다
산이 끝나는 곳에 네가 있었다
무릎과 무릎 사이에 얼굴을 묻고 울고 있었다.
미안하다
너를 사랑해서 미안하다
이지현, 우리는
그대는 봄이고
나는 꽃이야
그러니
무심천 벚꽃이 눈 밖에 있지
나는 봄이고
그대는 꽃이야
그래서
내 눈 속이 온통 그대지
우리는 꽃밭이고
우리는 봄이야
나태주, 부탁
너무 멀리까지는 가지 말아라
사랑아
모습 보이는 곳까지만
목소리 들리는 곳까지만 가거라
돌아오는 길 잊을까 걱정이다
사랑아
류시화, 잔 없이 건네지는 술
세상의 어떤 술에도 나는 더 이상 취하지 않는다
당신이 부어 준 그 술에
나는 이미
취해 있기에
강문숙, 별이 되었으면 해
난 네게로 가서 별이 되었으면 해
너무 화려한 불빛을 지나서
너무 근엄한 얼굴을 지나서
빛나는 어둠이 배경인
네 속에 반듯하게 박혔으면 해
텅 빈 네 휘파람 소리
푸른 저녁을 감싸는 노래
그러나 가끔씩은 울고 싶은
네 마음이었으면 해
그리운 네게로 가서 별이 되었으면 해
자주 설움 타는 네 잠 속
너무 눈부시게는 말고
너무 꽉 차게도 말고
네 죽을 때에야 가만히 눈 감는
별이 되었으면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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