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말씀하셨다
너무 작은것들까지 사랑하지 말라고
작은 것들은 하도 많아서
네가 사랑한 그 많은 것들이 언젠간 모두 널 울리게 할테니까
나는 나쁜 아이였나 보다
아빠가 그렇게 말씀하셨음에도
나는 빨간 꼬리가 예쁜 플라밍고 구피를 사랑했고
비 오는 날 무작정 날 따라왔던 하얀 강아지를 사랑했고
분홍색 끈이 예뻤던 내 여름 샌들을 사랑했으며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은 갈색 긴 머리 인형을 사랑했었고,
내 머리를 쓱쓱 문질러대던 아빠의 커다란 손을 사랑했었다
그래서 구피가 죽었을 때, 강아지를 잃어버렸을 때,
샌들이 낡아 버려야했을 때, 이사를 오며 인형을 버렸을 때
그리고, 아빠가 돌아가셨을 때
그때마다 난 울어야 했다
아빠 말씀이 옳았다
내가 사랑한 것들은 언젠간 날 울게 만든다
- 신지상 지오 / 만화 베리베리다이스키
너 훌쩍이는 소리가
네 어머니 귀에는 천둥소리라 하더라
그녀를 닮은 얼굴로 서럽게 울지 마라
네가 어떤 딸인데 그러니
- 나선미 / 너를 모르는 너에게
아가
오늘이 성년의 날인가 뭐신가 하드라
그래서 사방이 장미꽃 받는 청년들 뿐이여
아가
35년이 지나도 가슴 속 열 여덟으로 잠든
내 아가야 미안타
올해도 엄마는 국화꽃밖에 주지 못하겄다
- 서덕준 / 오일팔
아버지는 두 마리의 두꺼비를 키우셨다
해가 말끔하게 떨어진 후에야 퇴근하셨던 아버지는
두꺼비부터 씻겨 주고 늦은 식사를 했다
동물 애호가도 아닌 아버지가 녀석에게만 관심을 갖는 것 같아
나는 녀석을 시샘했었다
한번은 아버지가 녀석을 껴안고 주무시는 모습을 보았는데
기회는 이때다 싶어 살짝 만져 보았다 그런데 녀석이 독을 뿜어대는 통에
내 양 눈이 한동안 충혈되어야 했다 아버지 저는 두꺼비가 싫어요
아버지는 이윽고 식구들에게 두꺼비를 보여 주는 것조차 꺼리셨다
칠순을 바라보던 아버지는 날이 새기 전에 막일판으로 나가셨는데
그때마다 잠들어 있던 녀석을 깨워 자전거 손잡이에 올려놓고 페달을 밟았다
두껍아 두껍아 헌집 줄게 새집 다오
아버지는 지난 겨울, 두꺼비집을 지으셨다
두꺼비와 아버지는 그 집에서 긴 겨울잠에 들어갔다
봄이 지났으나 잔디만 깨어났다
내 아버지 양 손엔 우툴두툴한 두꺼비가 살았었다
- 박성우 / 두꺼비
꽃게가 간장 속에
반쯤 몸을 담그고 엎드려 있다
등판에 간장이 울컥울컥 쏟아질 때
꽃게는 뱃속의 알을 껴안으려고
꿈틀거리다가 더 낮게 더 바닥 쪽으로 웅크렸으리라
버둥거렸으리라 버둥거리다가
어찌할 수 없어서
살 속에 스며드는 것을
한때의 어스름을
꽃게는 천천히 받아들였으리라
껍질이 먹먹해지기 전에
가만히 알들에게 말했으리라
저녁이야
불 끄고 잘 시간이야
- 안도현 / 스며드는 것
현관문 열어두마 언제 돌아올지 모르니
네 방 창문도 열어두마 한밤중 넘어올지 모르니
수도꼭지 흐르는 물속에서도 쏟아진다 엄마 엄마 소리
천 갈래 만 갈래 찢어지는 빗줄기 뚫고 널 맞으러 가마
네가 오지 않으니 내가 가마 맨몸으로 가마 두들겨 맞으며 가마
- 김해자 / 아기단풍 (세월호 추모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