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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5년 전 (2019/2/19) 게시물이에요








 오래된 건물이었다 | 인스티즈


오세영, 어떤 기도

 

 

 

기도하는 갈매기를 보았는가

허공을 선회하던 갈매기 한 떼가

돌연 뭍으로 내리더니

해안 사구에 정연히 자리를 잡고

해를 바래 조용히 명상에 든다

 

수평선 너머 한 방향을 일제히 응시하는

그 눈빛들이 경건하다

머리에는 한결같이 흰 깃의 히잡을 썼다

모스크 광장에 도열해서 메카를 향해

무릎을 꿇고 경배하는 무슬림들 같다

 

잠시 전 고깃배에서 활어를 약탈하고

어시장에서 생선 찌꺼기를 훔쳐 먹고

날쌔게 잠수해서 어린 물고기를 살육하던

그 모습이 아니다

 

갈매기도 험난한 바다에선

삶이 고해임을 아는 까닭에

이처럼 신에게 고백할 줄을 아는 것이다







 오래된 건물이었다 | 인스티즈


박제영, 그때는 미처 몰랐제

 

 

 

젊었응께 어렸응께

정말로 그때는 미처 몰랐제

서른 둘에 이장이 되어서 내가 처음 한 게

나무를 벤기라

마을 어귀 삼백 년 된 늙은 느티나무를 베어낸기라

길을 내야했거든

봐라 저 휑한 길을, 저 흉한 걸 내가 만든기라

어르신들 반대를 무릅쓰고

공약을 지킨기 그땐 그리 자랑스러울 수 없었는데

젊었응께 어렸응께

저 신작로를 따라 사람들이 하나 둘

마을을 떠날 줄 몰랐제

이리 될 줄은 이리 텅 빌 줄은

그때는 미처 몰랐제

 

내가 사람을 벤기라

나무를 벤기 아니라 사람들을 벤 기라







 오래된 건물이었다 | 인스티즈


신달자,

 

 

 

누가

내게

 

쉬익

뺨을 갈렸다

연타의

굴욕이 쩡 하늘을 가르며 빛났다

벌겋게 달아오른

팽팽한 우주 표면에 윙 울리며 부어오르는 심장을

직격탄으로 다시 갈겼다

 

종이가 두 팔로

내 생의 붉은 자국들을 두루두루 다 받아 안았다







 오래된 건물이었다 | 인스티즈


정윤천, 오래, 오래

 

 

 

흰빛, 보자기에라도

싸오신 것처럼이나

 

사알짝 내밀어

잡아주었던 것

 

손길

하나

 

그런 시간의

곁에인 듯

 

오래

오래

 

멈추고 싶었던

순간이 있었다







 오래된 건물이었다 | 인스티즈


이선욱, 단단한 구조

 

 

 

오래된 건물이었다

어떤 피로의 형상이었다

한 무리의 비둘기들이 지붕 가득히 앉아 있었다

무언가 이따금씩 술렁이는 것들이

비둘기였는지 지붕이었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보이지 않는 물결이 고개를 들 때마다

오래된 건물은 분명 이상한 꿈을 꾸고 있었다

깨진 창문들이 꿈속에 흔들리고 있었다

 

어느덧 비둘기들이 아지트로 자리한 그 건물이

어느 이름 모를 종교의 예배당이었다는 사실을

나는 알고 있다 또한

주로 아픈 사람들이 죽기 직전에 찾았으므로

이른바 안식의 집으로도 불렸다는 사실

그 후 심한 풍문을 앓으며 방치되기까지

안은 세월이 흘렀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러나 그때 내가 본 것은

그 사이 눈에 띄게 기울어진 건물의 축이었다

 

오래된 건물이었다

이상한 꿈을 꾸고 있었다

깨진 창문들이 점점 꿈의 바깥을 흔들고 있었다

그때 바깥은 낯설게 변한 풍경이었다

한 무리의 비둘기들이 일제히 날아올랐고

그것은 허공으로 흩어지는 건물의 지붕이었다

 

거기까지였다

꿈은 무너지지 않은 채 각설하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본 것은

그 모든 것들을 소리 없이 지탱해온

기둥과 기둥 사이

부서진 벽과 벽 사이의 필사적인 공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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