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1 님의 리퀘 글입니다 :) 좋은 리퀘 주셔서 감사합니다(꾸벅)
지원은 비를 좋아했다. 직접적으로 비를 맞는 것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비가 올 때의 소리를 좋아했는데, 비가 올 때면 멍하니 창밖을 내다보며 몇 시간 동안 비가 내리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기도 했다. 지금 지원이 살고 있는 집도 애초에 이사 올 때 창문이 큰 집을 골라서 이사를 왔다. 가까이서 비를 보고 싶어 현관을 개조해 개방형으로 만들어 놓기까지 했다. 덕분에 길고양이들이 모여들긴 했지만 딱히 불편함을 느끼진 않았다. 특히 지원은 자고 일어났을 때 비가 창문에 부딪치는 소리를 좋아했다. 그 때문에 침실에도 커다란 창문이 뚫려있었다. 여름에 장마철이면 지원은 늦게까지 일어나지 않고 가만히 누워 비가 내리는 소리를 듣고, 빗소리가 멎어갈 때쯤에 몸을 일으켰다. 오늘도 딱 그런 날이었다. 가을이 다 지나고 겨울로 막 지나가는 시기라, 이젠 비가 오려면 한참이나 기다려야 할 것 같아 요 며칠 조금 우울했는데 생각지도 못하게 내린 비에 더욱 그러했을지도 모른다. 느지막이 일어나 창밖을 보고 있자니 삐뚤어진 지원의 정신세계가 조금은 편안해지는 것 같았다. 무거운 몸을 이끌고 대충 거실 소파에 앉아 벽 한쪽에 걸린 시계를 쳐다봤다. 숫자 6을 조금 넘긴 시침이 마음에 들어 웃음이 나왔다. 지금이 오전인가, 아니면 오후인가? 비가 와 새벽인지 저녁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 바깥은 푸르스름하게 경계를 흐려놨다.
"한빈아 지금이 오전인 것 같아, 아니면 오후인 것 같아?"
-......
"설마 아직도 자고 있는 건 아니지?"
이 집에 지원 말고 누군가 더 살고 있었던가? 지원은 가끔 알 수 없는 혼잣말을 지껄이곤 했다.
[iKON/바비아이] Rain Showers 上
검은색 우산을 때리는 빗방울 소리에 입꼬리가 올라가는 것을 주체할 수 없었다. 얼마 만에 내리는 비인지. 일부러 차를 타지 않고 걸어서 나온 시내를 몇 시간이고 돌아다녔다. 신발이 젖다 못해 양말까지 축축해진 것 같았지만 지금 지원에게 중요한 건 그런 것이 아니었다. 오늘은 아버지에게서도 전화가 오지 않았고 평소 귀찮다고 생각했던 계집애들에게서도 전화가 오지 않았다. 지원은 누군가 자신의 시간을 방해하는 걸 병적으로 싫어했다. 사람 결벽증. 딱 이 말이 들어맞는 것 같다. 몇 번이고 깨부순 핸드폰은 아예 집에 두고 나왔다. 아, 정정해야겠다. 전화가 오지 않은 게 아니라 또 부서져서 전화가 와도 알 방법이 없는 것이었다. 이제 슬슬 돌아갈까. 지원은 어느새 어두워진 하늘을 올려다보며 느릿하게 눈을 깜박였다. 조금 멀리 나왔지만 버스나 택시를 탈 생각은 없었다. 이제 장마철이 끝나갈 때라 언제 또 비가 올지 모르는데. 지원은 한쪽 손에 우산 손잡이를 쥐고 천천히 걸으며 비가 내리는 것을 바라봤다. 횡단보도를 건너고, 평소에 시끄럽다 생각했던 고등학교를 지나 주택가에 들어섰을 땐 지원의 바지 밑단이 다 젖어있었다. 발목이 차가웠다. 우산을 썼음에도 들이친 비에 젖은 앞머리를 툭툭 털며 우산을 접었다.
... 비를 피할 수 있도록 만들어놓은 공간 때문일까, 지원의 집 현관에는 유독 길고양이들이 자주 모여들었다.
"여기서 뭐 해?"
"비가 내려서, 추워요."
"그러게. 춥겠다. 다 젖었네."
아저씨랑 같이 들어갈래? 순진한 건지 멍청한 건지 고개를 끄덕이며 처음 보는 지원의 품으로 파고 들어온 남자아이의 눈동자가 빗방울을 닮아 있었다. 아이가 입고 있는 옷은 비에 완전히 젖어 지원의 옷까지 적시고 있었지만 지원은 그것에 불쾌함을 느끼지 않았다. 오히려 비를 닮은 이 아이가 마음에 들었다. 품에 안겨있는 남자아이를 꼭 끌어안은 채로 도어락을 풀고, 집 안으로 들어섰다. 멀뚱히 안겨 거실과 지원을 번갈아 보던 아이는 지원이 저의 머리를 쓰다듬자 허락을 받은 것처럼 낡아빠진 신발을 벗고 조심스럽게 거실로 발을 옮겼다. 처음 보는 것에 대한 호기심인지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두리번대는 아이에 자꾸만 웃음이 나왔다. 평소 같았으면 집 안에 물을 뚝뚝 흘리고 다니는 것에 지독한 결벽증이 도졌겠지만 이상하게 지금은 아무런 화도, 짜증도 느껴지지 않았다. 지원은 비에 잔뜩 젖은 검은 우산을 던지듯 내려놓고 신발을 벗었다. 역시나 양말까지 흠뻑 젖어있었다. 잠시 다른 곳을 봤을 뿐인데 아이가 사라져있었다. 부르려고 생각해보니 이름도 모르고 있었다. 살면서 처음으로 집에 자신이 아닌 사람을 들였는데 이름도 모르는 애라니. 심지어 남자에다가. 지원 자신이 생각해도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터졌다. 무언가를 쓰러트렸는지 유리가 깨지는 소리가 나는 침실로 가봤더니 아이가 울상을 하고 저를 올려다봤다.
"이거, 쓰러졌어..., 한빈이가 건드려서,"
"이름이 한빈이야?"
"응. 아, 아니다. 네!"
한빈, 이름이 한빈이구나. 지원은 깨진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선 하나도 묻지 않았다. 아까는 품에 안겨있던 터라 보이지 않았었는데 젖은 옷이 착 달라붙어 보이는 몸 선이 굉장히 얇았다. 도대체 얘가 어디서 갑자기 나타났는지, 어디서 뭘 하던 애인지는 전혀 궁금하지 않았다. 옷 젖었잖아, 벗어야지. 친절하게 말하는 지원에 얼굴을 붉힌 한빈은 동동 발을 구르며 방 안을 돌아다녔다. 어, 그게..., 옷, 벗으면 더 추워지는데... 우물쭈물하며 말 끝을 흐린 한빈은 지원이 다가오자 뒷걸음질 치며 슬금슬금 도망쳤다. 괜찮아. 아저씨 옷 줄게. 본래 성격과는 달리 웃으면 선해 보이는 지원이라 그 웃음을 보고 안심이라도 한 건지 고개를 끄덕이며 몸에 붙은 티를 끙끙대며 벗던 한빈은 팔 한쪽을 빼고 지원을 쳐다보고, 또 다른 한쪽을 보고 지원을 쳐다보고. 완전히 벗었을 땐 어딜 봐야 할지 모르는 것처럼 바닥만 쳐다봤다. 바지도, 얼른. 지원이 재촉하자 아까 잘못한 것을 들켰을 때 표정보다도 더 울상이 돼 도리질을 쳤다.
"뭐가 부끄러워. 여기 아저씨밖에 없잖아."
"그치만, 난 아저씨를 오늘 처음 봤, 으앗!"
"한빈이가 깨트린 거 뭔지 알려줄까?"
"... 뭔데?"
되게 비싼데, 한빈이가 물어내야 돼. 진짜? 응. 평생 일해야 될걸? 젖은 바지를 벗겨내며 침대 위로 넘어트리자 놀랐는지 손으로 입을 틀어막은 한빈은 눈꼬리를 축 늘어트리며 입술을 내밀었다. 나, 할 줄 아는 게 없어. 어떻게 물어내야 해요? 어디까지 순수한 건지, 아니다. 말하는 것과 행동하는 것들을 조금 지켜보니 얘는 순수한 게 아니라 멍청했다. 그게 더 마음에 들었다. 한빈에게는 지원이 말하고, 가르치는 게 곧 세상이었다. 몇 살인 걸까, 아직 음모도 제대로 나지 않은 하체에 가학심이 끓어올랐다. 미치겠네. 지원은 자꾸만 올라가는 입꼬리를 억지로 끌어내렸다. 사실 한빈이 깨트린 유리는 아무런 의미도 없는 장식품이었다. 비싸긴, 씨발. 줘도 안 가질 건데. 지원의 팔 안에 갇혀있는 한빈이 꼬물대며 몸을 움직일 때마다 의도치 않게 무릎으로 지원의 바지 앞섶을 건드렸다. 지원이 한 말을 정말 믿는 눈치였다. 돈 말고도 갚을 방법은 많이 있다며 한빈의 목덜미에 이빨을 박은 지원은 아플 정도로 세게 여린 살을 깨물었다.
"아파, 나, 목..., 으, 깨물지 마!"
"아직은 춥지?"
"아, 아파, 흐앗..., 싫어, 아저씨, 아파아..."
"순서를 잘못 생각했다, 내가."
한빈의 목덜미에서 얼굴을 떼낸 지원이 흘러내린 머리를 쓸어 올렸다. 비에 젖어서 축축한 머리나 몸에 달라붙은 옷을 잊을 정도로 지원은 흥분해 있었다. 어디서 이런 멍청한 년이 굴러들어 왔을까 몰라. 지원은 울먹이는 한빈을 안아들고 침실에 있는 욕실로 들어갔다. 널찍한 욕조에 한빈을 앉혀놓고 조금은 뜨겁다 싶을 정도의 물을 틀었다. 발끝에 물이 닿자 흠칫 놀라며 엉덩이를 뒤로 빼던 한빈은 그 새 적응이 됐는지 점점 차오르는 물을 찰박이며 장난치고 있었다. 생긴 건 고등학생 정도 돼 보이는데 하는 짓은 영락없는 애새끼였다. 많이 봐줘야 초등학교 저학년 정도밖에 돼 보이지 않는 행동들이 자꾸만 지원을 건드렸다. 아저씨는 왜 안 들어와요? 들어가면 또 싫다고 울 거잖아. 그거느은... 자꾸 아프게 깨물고 막, 이상하게 핥으니까... 한빈은 억울하다는 듯 입술을 쭉 내밀고 볼을 부풀렸다. 볼을 손가락으로 꾹 눌러보고 싶은 충동을 겨우 참았다.
"한빈이 여기서 아저씨랑 계속 살고 싶어?"
"우응? 나 원래 있던 곳 보다 여기가 훨씬 더 넓고, 아저씨가 훨씬 더 착하고, 음... 다정하고..."
"근데 아저씨랑 있으면 아까처럼 막 깨물고 핥을 건데. 괜찮아?"
"너무 아프지만 않으면 갠짜나!"
욕조의 물이 한빈의 가슴팍 정도까지 차올랐을 때 수도를 잠근 지원이 물에 입욕제를 풀었다. 느릿하게 올라오는 거품이 신기했는지 손으로 휘저어대는 통에, 더욱 빠르게 거품이 올라왔다. 이거, 신기해. 으응..., 예쁘다. 혼자 말하는 건지, 아니면 지원에게 말을 거는 건지 모를 작은 목소리로 중얼 댄 한빈이 물끄러미 지원을 올려다봤다. 아마 지원에게 하는 말인 것 같았다. 지원은 저를 올려다보는 한빈을 천천히 훑어보며 욕조의 거품을 한빈의 몸에 문질렀다. 너무 어리다. 하는 짓만 어린 게 아니라 직접적으로 만져본 몸은 양심 같은 건 지워버린지 오래인 지원에게도 죄책감이 느껴질 만큼 여리고, 부드러웠다. 그렇다고 해서 그런 것에 일일이 신경 쓸 만큼 지원은 양심적이지도, 친절하지도 않았다. 죄책감이 사라진 자리에는 그럼, 이 아이는 내가 처음인가? 하는 생각이 가득 찼다. 자꾸만 제 몸을 쓸어내리는 손길이 어색한지 무릎을 가슴팍 쪽으로 끌어안으며 고개를 푹 숙인 한빈이 슬쩍 지원을 쳐다보다 다시 시선을 피하고, 다시 지원을 쳐다보고를 반복했다. 한빈이는 몇 살이야? 수증기로 가득 차 흐릿한 욕실에 지원의 목소리가 울렸다. 한빈은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코 끝을 찡그렸다.
"나이..., 모르게써."
"... 괜찮아, 나이 같은 거 몰라도."
"정말?"
"뭐가 중요해, 그런 거."
그래, 섹스하는 데 나이가 뭐가 중요하냔 말이다. 까놓고 말해서 한빈이 초등학생이던, 중학생이던 알 바 아니었다. 중요한 건 한빈이 지원의 집 앞에 길 고양이 마냥 비를 맞으며 쭈그려 앉아 있었고, 그런 한빈의 모습이 지원의 마음에 들었다는 것이다. 추워서 바들바들 떨던 모습이, 멍청하다고 할 만큼 아무런 경계 없이 처음 보는 사람의 품 속으로 파고드는 행동이, 벗겨놓고 보니 어린애처럼 하얗고 부드러운 살결이. 욕조 안의 물이 점점 식어갈 때쯤 지원은 한빈을 일으켜 세웠다. 더 놀고 싶은 건지 거품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한빈의 머리 위로 샤워기를 틀자 한빈이 눈을 꼭 감았다. 고개 뒤로 젖혀봐, 눈에 물 안 들어가게. 지원이 말하자 한빈이 살짝 고개를 뒤로 젖혔다. 지원은 손에 샴푸를 짜 거품을 내 한빈의 머리에 칠하고, 적당히 거품이 일었을 때 거품을 씻어 내렸다. 한빈은 지원이 눈을 뜨라고 할 때까지 눈을 뜨지 않고 그 상태로 굳어 있었다. 머리 위로 쏟아지던 물이 끊기자 눈을 감은 채로 끝나써? 하고 물어 오는 것에 지원이 한빈의 볼을 톡, 건드렸다.
"이제 눈 떠도 돼."
"거품 다 없어졌어..."
"나중에 또 하자. 먼저 나가 있을래?"
추우니까 침대에서 이불 꼭 덮고 있어, 알았지? 지원의 말에도 꿈쩍 않고 서있던 한빈이 혼자 나가기 싫다며 고개를 저었다. 아저씨 다 벗을 건데. 지원이 눈을 휘어가며 웃자 한빈은 금세 얼굴을 붉히며 바닥을 바라봤다. 나, 나갈래. 한빈이 뒤뚱대며 욕실 문을 열었다. 문이 닫히기 직전까지 계속 지원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하던 한빈은 문이 닫히자 그제야 지원의 침대로 올라가 누웠다. 아저씨가 침대에 있으라고 했어. 이불도 덮으라고 했어. 머릿속으로 지원이 한 말을 생각하며 이불 속으로 들어간 한빈은 베게 시트에 머리를 비볐다. 아직 마르지 않아 젖은 머리에서 물이 뚝뚝 떨어졌다. 한빈은 제 앞머리에서 떨어지는 물방울 수를 의미 없이 세어보고 있었다. 톡, 하나아. 톡, 두울. 톡, 셋.
-
중간에 덮덮하는 것 때문에 불마크를 달아야하나 말아야하나 고민하다 목 핥는건데 불마크까진 아닌 것 같아서 안 달았어요. 리퀘 받은 소재로 쓰는거라 마음에 안드실까봐 걱정이 많이되는데.. 아직 본 내용이 아니라 도입부(?)니까요 ;ㅅ; ... ㅅ..실망하지 말아주세요ㅠㅠ.. 다음편은 불마크 달고 돌아올게요 ㅠ
아 그리고 레인샤워에서의 김한빈은 모지립니다 모지리. 정신연령 5~7세 정도로 보시면 될 듯.
좀 짧은 감이 없지 않아 있는데, 분량 조절 실패로 인한.... 뭐.. 그런... 글이 상,중,하, 3편으로 나뉠지 상,하 두변으로 나뉠지는 저도 아직 잘 모르겠어요 ;ㅅ;
항상 글 읽어주시고 댓글 남겨주시는 분들 감사합니다 (눈물 주륵주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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