왁자지껄한 술자리, 대학교에 오면 뭔가 달라진다더니 달라지긴 개뿔이도 놀던것은 고등학교때와 똑같고 기껏해야 술만 더 먹는다는것밖에 없다. 남중남고군대공대. 최악의 레파토리를 밟아온 윤기였고, 당연스럽게도 공대의 술자리는 거무퀴퀴한 남정네들만 여럿 모여 소리를 버럭버럭 질러댈뿐이었다.
" …형! "
" …아, 또 너냐. "
엎친데 덮친격으로 요즘 윤기를 따라다니는건 공대아름이가 아닌 후배 김태형이었다. 준수한 성적, 자기사람 잘챙기고, 좀 호구끼도 있지만 남자들만 있는자리에서 똑똑한척해봤자 그게 바로 재수없는놈이었기에 오히려 플러스. 무엇보다 곱상한 외모로 합석하기 딱 좋은 조건이었기에 술자리엔 태형이 빠지질않았다. 윤기는 그런 태형을 꽤 마음에 들어했고 다른 동기들과 같은 이유로 이 술자리 저 술자리 데리고다니며 득을 참 많이봐왔다. 단, 태형이 윤기에게 커밍아웃을 하기전까지말이다.
" 형, 술 얼마나 마셨어요? "
" 네 알바아니다. "
" 아- 왜, 형은 술 잘 못먹으면서 맨날 먹더라. "
" 요즘 많이 늘었거든, 너 왜 여깄어, 얼른가라. "
" 석진이형이 불렀는데? "
" …? "
석진이형이? 태형을 부른다는것은 곧 여자를 부른다는 신호였다. 석진이형 여자친구있는데, 멀뚱멀뚱 석진을 바라보는 윤기의 눈길이 의아했다.
" 맞아, 차였는데 뭐, 왜 그렇게 쳐다봐 미친놈아. 동정할꺼면 꺼져. "
" …형 그냥 쳐다보기만 했는데요. "
" 니가 착각할까봐 그러는데 형 하나도 안슬프다? 나 김석진이야, 공대오빠 김석진이라고. "
" …그 공대에 오빠라고 불러줄사람이 없으니까 문제죠. "
" 윤기야, 넌 참 착하고 좋은동생인데 눈치가 존나 없는것같다. "
" …아, "
뒤늦게 깨달음, 대충 끄덕이며 눈앞에있는 뻥튀기를 입안에 털어넣는 윤기였다. 입안의 뻥튀기를 우적우적 씹어대는데 어느새 윤기옆에 바싹 붙어 병나발을 부는 태형을 발견하고는 기가 차서 헛웃음을 픽 내뱉는다.
" 이별한건 석진이형인데 궁상은 네가 다 떠냐, "
" 남이사, 내가 안먹으면 형이 다 먹잖아, 그럼 그때처럼 개꼴고, 난 또 사내새끼 들쳐업어야되고. "
" …야, 그땐. "
" 그땐? "
" …됐다, 너랑 얘기하면 기빨려. "
그땐 전 여친이 나이 지긋한 능력남이랑 결혼한다는 소식을 들었을땐데 안 꼴수가 있겠냐고, 하는 말을 삼켜냈다.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저 앞에 있는 맥주컵을 들어 벌컥벌컥, 큰 맥주컵을 통해 본 술자리는 말그대로 개판오분전이었다. 이별의 후유증이 갑자기 몰려온듯한 석진은 눈물을 글썽거리다 갑작스럽게 폭탄주를 말고, 그 옆에 어린아이마냥 신나서 요상한 춤을 춰대는 남준, 새로사귄 여자친구와 전화를 하며 역겨운 콧소리를 내는 호석, 완전히 취해 테이블에 코를박고 골아떨어진 지민이 노오란 기포들과 함께 일렁이며 톡톡 터졌다. 잠시 맥주마시는걸 중지한채 그 모습을 멍하니 지켜보고있는데 불현듯 어깨에 묵직한 무게감이 더해졌다.
" …? "
" 형, "
" 왜, "
" 나 좀 취한다. "
" 얼마나 마셨다고?
" 나 원래 요 주변에서 여자애들이랑 먹다가 형 있다길래 온거예요. "
" 그럼 석진이형 데리고 다시가라, 저 형 존나 외로워보여. "
" 여자애들 다 남친있어서, 남친없는애들이랑은 안놀지 내가. "
나보고 어쩌라는거야, 윤기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담배를 물자 여전히 윤기의 어깨에 고개를 기댄채 태형이 담뱃불을 가져다댄다. 훅- 하고 빨아들이자 담뱃불이 빨갛게 숨을 쉰다. 희뿌연 연깃속에 여러가지 상념들이 교차한다. 그렇게 싫다싫다해도 계속 치근덕대는 태형때문에 이젠 지치기 일보직전이고, 눈앞의 벌어진 술판은 이제 개판오분전이아니라 확실한 개판이었다. 음, 집가고싶다.
" 가야겠다. "
" …? 형 집 멀잖아, 지금 12시 넘었어요, 할증 붙었어 지금. "
" 술도 깰겸 좀 걷다가 가면 돼, 정 뭐 하면 석진이형네 가면돼고, "
" 그럼 같이나가요, 나 어지러워서 찬공기좀 쐐야할것같다. "
고개만 끄덕, 검정색 박시한 야상을 손에 들고, 술자리가 후끈해 잠시 걷었던 회색 니트소매를 정리하고 바지의 과자부스러기들을 툭툭 털어낸다. …계산은, 석진이형이 하겠지, 하며 놓고가는것이 없는지 테이블을 주욱 눈으로 훑는다. 이상 무, 살짝 풀린눈으로 고개를 털어대는 태형에게 살짝 턱짓을 하고선 밖으로 향한다.
" …아, 개추워. "
결국 손에 들었던 야상을 걸치고 종종걸음으로 걷는다. 살짝 뒤를 돌아보니 태형이 약간 비틀거리며 윤기를 따라오는데 부축해줄까- 하는 마음이 들다가도 그닥 넘어질정도의 비틀거림은 아니라서 무시하고 앞을 향했다. 나도 취했는데 남 부축은 무슨,
" 아-, 형, 윤기혀엉- "
비틀거리며 용케 윤기를 따라잡은 태형이 윤기의 손목을 잡는다. 손목을 털어내고 태형의 손을 자신의 어깨에 올리는 윤기.
" 손잡으면 게이같애, 넌 게이맞지만 난 게이아니니까 어깨잡아. "
" 나도 원래 게이 아닌데, "
" 지금 게이잖아. "
" 응, 그렇지, 윤기형 좋아서 게이지. "
" 사람들 듣는다. 그 입 다물어. "
" 아- 형, "
말 떨어지기 무섭게 홱 고개를 돌리고선 다시 발걸음을 옮기는 윤기였다. 그 어깨에 매달리다시피 휘청거리는 태형이 고개를 푹 숙인다.
" 쉬다가자 형, "
" 쉴데가 어디있다고. "
" 모텔? "
" 미쳤지 진짜, "
" 안미쳤어, 그냥 잠만 자자고, 석진이 형 집 솔직히 민폐고 형 집도 멀고, 우리 집도 멀고, "
" 그래도 남자끼리는… "
" 왜? 누가 잡아 먹는데? 김칫국 쩌네요 형, "
" …알았어, 간다, 가! "
자존심에 불꽃이 팍팍, 정신도 내가 말짱했다면 더 말짱했지, 여차하면 존나 때리면되는거고, 밀리면 신고할거다. 그리고 평소 태형의 행실을 봐왔을때 윤기를 좋아한다고 말하고나서 윤기의 주변을 묘하게 겉돌며 눈치만 보는것 외에는 딱히 윤기를 불편하게 한것도 아니었으니, 그런 일을 치룰 인물로는 보이지않았기에, 윤기는 그냥 고등학교시절 모텔방 잡고 친구 여럿이서 술을 먹던모습을 상상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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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볍게, 가볍게!
독방에서 추천받은 소재인데 딱 어울리는 브금이 있어서 쪘습니다.
한번에 올리려고했는데 생각보다 길어질것같아서 두편으로 나눴습니다
가볍게가볍게읽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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