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일이 있었는지 기억이 잘 안난다. 간호사가 와서 뭘 물었던 것도 같고 의사의 바짓가랑이를 잡으며 호소했던 것도 같은 찬열이었다. -보호자분 되시죠? 지금 긴급한 상황이라서 수술동의서 좀 작성해 주세요. -네? 아...네. 백현의 아래에서 울컥울컥 쏟아지는 피에 도저히 찬열이 손쓸수가 없다고 여겼을 때 구급차가 도착했고 바로 대학병원 응급실로 이송되었다. 남자임산부인 백현을 본 의사들은 지금 당장 수술실에 들어가야 한다고 했고 정신없이 동의서에 사인을 했다. 일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찬열은 그저 백현과 아이를 살려야 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수술시간이 4시간을 넘어가고 있을 때 수술실에서 갑자기 의사가 나와 찬열에게 말했다. 생사의 고비라고 지금 아이랑 산모 둘 중 하나만 선택하라던 의사의 말에 제발 둘다 살려달라고 무릎을 꿇었다. 최선을 다해보겠다는 확신없는 말을 내뱉은 의사는 다시 수술실로 들어갔고 3시간이 더 흘러서야 수술은 끝났다. "선생님, 어떻게 됐습니까?" "산모는 지금 중환자실로 옮겨 졌구요. 흉부골절로 인한 장기파열로 잠시 쇼크상태가 왔었는데 지켜봐야 할 것같습니다. 다행히 머리에는 뇌진탕을 제외한 다른 부상은 없는데 두고봐야 하네요. 응급조치는 끝냈고 앞으로 몇차례 수술이 있을 거에요. 환자의 의지가 참 중요한데..." "아이는요?" 긴장감이 서린 목소리로 찬열은 아이의 생사를 물었다. "그게... 유감입니다. 산모의 뱃속에서 이미 사산되었던 터라. 죄송합니다." 순간 다리에 힘이 풀린 찬열은 그 자리에 주저 앉아 버렸다. 백현과 찬열의 꿈이었다. 서로를 향해 미래를 약속했고 고생해서 얻은 작은 생명이었다. 잘 키우자고 떳떳한 부모가 되자고 했던 둘의 작은 꿈이 사라져 버럈다. 모두 찬열의 잘못 때문이었다. 백현이 의식을 차리면 무슨말을 해 줘야 할지 막막했다. 중환자실에 있는 백현때문에 면회도 하지 못한 찬열은 그저 멍하니 병원에 앉아 있었다. 무슨일을 해야 할 지 감도 잡히지 않았고 뭔가 텅 빈 듯한 가슴이 답답했다. 한차례의 수술을 더 마치고 아직 의식을 차리지 못한 백현이 일반 병실로 옮겨졌다. 그 동안 정해진 면회시간에만 겨우 얼굴이나 보고 갔던 찬열은 하염없이 백현의 옆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언제쯤 의식을 찾을 수 있습니까? 벌써 일주일이나 지났는데..." "두번째 수술이 성공적이어서 금방 의식을 찾을 겁니다.기다려봅시다." "네...감사합니다." 회진을 돌러 온 의사는 또 다시 기약없는 기다림을 계속하라고 하고 있었다. 산소마스크를 한채로 미동도 없이 누워만 있는 백현을 쳐다보는 것은 찬열에겐 큰 벌이었다. 의식을 찾고 자신에게 원망을 퍼부어도 좋다고 생각했다. "백현아. 내가 죽일 놈이라고 너한테 용서를 빌어야 하는데 얼른 일어나봐. 날 때리고 욕해도 좋으니까 정신차려봐. 내가 다 미안해..." 하루에도 몇번씩 백현의 손을 부여잡고 빌고 또 빌었다. 근 이주동안 자리를 비웠던 찬열은 급하게 처리할 서류들을 가지러 잠시 백현의 곁을 떠났다. 그런 찬열이 미워선지 그제서야 백현이 눈을 떳고 간호사의 전화를 받은 찬열은 급하게 병실로 돌아왔다. "아기 돌려주세요!! 제발요. 우리 아기 엄마 없으면 안되잖아요. 돌려줘요. 아악!!" 찬열은 병원 복도까지 울리는 백현의 목소리에 다급히 병실로 들어갔다.의식을 차린지 한시간도 채 안된 백현이 아이를 돌려달라며 발악하고 나가겠다고 아이를 찾아오겠다며 발작하는 모습에 의사와 간호사들이 백현의 손과 발을 억지로 붙잡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찬열은 심장이 내려 앉는 듯한 기분이 들었고 조심스레 다가가 백현을 품에 안았다. "백현아...백현아...괜찮아. 진정해" "찬열씨...아기 데리고 와요. 응? 찬열씨 할 수 있잖아." "너 아직 많이 아파. 눕자." 백현을 달래서 눕히자 간호사는 바로 진정제를 주사했다. 숨을 헐떡이던 백현은 가만히 누워서 천장을 바라봤고 찬열은 텅빈 듯한 그 눈동자에 마음으로 눈물을 흘렸다. "아들인데... 의사선생님이 그랬어요. 아빠많이 닮았다고. 아들일거에요. 그렇죠? 당신 닮아서 코도 오똑하겠다." "백현아..." "왜요... 아니에요? 직접 확인하고 싶은데 다들 못일어나게 해서 속상하다. 우리 아기도 엄마 못만나서 속상하겠다." "백현아.. 아기 없어. 하늘나라에 갔대. 내가 미안하다." 어느정도는 예상했던 대답을 듣게 된 백현은 이불을 머리 끝까지 끌어당겼다. 그 모습을 본 찬열은 백현이 우는 것이라고 여기고 자리를 비켜주었다. 그러나 백현은 그저 잠이 자고 싶었을 뿐이다. 꿈에서 만났던 자신의 작은 아이를 만나고 싶었다. 그 이후로 백현은 아무 말이 없었다. 더 이상 아이 이야기를 꺼내지 않길래 단념했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다행이라고 여긴 찬열은 매일 백현의 병실에 와서 다정하게 얘기를 걸곤 했다. "오늘은 뭐 하고 있었어? 아픈 곳은 없었지? 조금 있으면 움직일 수 있다고 하니까 우리 어디 놀러라도 가자. 백현아." "알겠어요. 근데 찬열씨 나 자고 싶어." "그래... 옆에 있을테니까 걱정말고 자. 사랑해." 요즘 부쩍 잠자는 시간이 많아졌다. 하루의 반 이상을 잠으로 채웠고 이상하다 여긴 찬열은 그저 체력이 부족해서 그렇다는 의사의 말에 넘기고 말았다. 기억이 돌아왔어도 바뀌는 건 없었다. 전의 일을 해결하기엔 백현과 함께 하지 못한 6개월의 시간의 잘못을 속죄하기에도 바빳다. 어머니에게도 연락하지 않았다. 심적으로 지쳐가는 찬열은 스스로 어머니에게 잘못을 떠넘기고 있었다. "찬열씨... 일어나봐." 깜박 잠이 든 찬열을 백현이 깨웠다. 평소 그런 일이 없던 백현이라서 아픈건 아닌지 걱정이 되서 일어난 찬열에게 들리는 말은 당황스럽기만 했다. "우리 아기가 아빠가 보고 싶대요. 근데 찬열씨는 왜 오지 않아? 나 따라서 오면 되잖아. 아기가 많이 섭섭한가봐." "백현아. 무슨 말이야?" 한달의 입원기간동안 아이 이야기를 꺼내지 않던 백현이었다. 갑작스럽게 꺼낸 이야기에 찬열은 무슨 영문인지 몰랐고 아직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한 백현의 모습에 가슴이 아려왔다. "매일 아가랑 만나고 있는데 찬열씨는 우리 아기 본 적 없지? 계속 내 꿈에 찾아와." "백현아... 아기가 찾아와?" "네... 매일 놀아달라고 해서 잠을 자면 아기가 찾아와서 엄마하고 달려와." 그냥 울라고 할걸 그랬다. 소리지르고 아기를 죽인 나쁜놈이라고 욕하라고 할걸 그랬다.아기의 부재를 인정한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가슴에 묻어서 상처가 썩어 문들어졌었다. 그것도 모르고 다행이라고 여긴 자신이 너무 한심했다. 찬열은 백현을 꼭 껴안았다. 백현도 다가오는 찬열을 피하지 않았다. 사고 이후에 서로의 몸이 접촉한 것은 처음이었다. 그렇게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 주듯 긴 시간 동안 안고 안겨있었다. 주중엔 못오고 담주 주말에 올게요. 앙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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