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예정일이 삼주 앞으로 다가왔다. 조산할 가능성이 크다고 하던 병원에서도 아이가 잘 버텨주고 있다며 예정일에 맞춰 나올 수 있다고 했다. 찬열은 계속 백현의 집으로 출퇴근을 했고 백현은 이제 그 일상이 편안하게 다가왔다. "오늘 점심에 병원 간다고 했나?" "네. 오늘 검사하고 아기 상태도 보구요.." "그럼 준비하고 있어. 데리러 올게." 찬열은 백현의 배웅을 받으며 출근을 했고 그동안 백현은 빨래며 설거지를 해나갔다. 무거운 몸을 이끌고 집안일을 하다가 울리는 전화벨 소리에 걸레질을 멈추고 전화를 받았다. 전화의 주인공은 찬열의 어머니였다. -나다. 요즘 찬열이가 너한테 간다는 얘기가 들리더 구나. "아, 네...죄송해요." - 듣기론 니가 꼬시기 보단 찬열이가 원해서 간다고 하니 말리진 않으마. 요즘 찬열이가 뭐 기억난다는 말은 없었니? "네. 그냥 전이랑 같아요." -그래. 산달인데 몸 잘 추스르고. 혹여나 찬열이 기억이 돌아오거든 바로 알리도록해. 그리고 내가 보낸 서류는 잘 받았으리라 생각하마. "알겠습니다. 들어가세요." 며칠 전 찬열의 엄마는 비서를 통해 백현에게 서류 하나를 건냈다. 서류봉투 안에는 비행기 표와 통장, 외국에 나가서 생활할 집 주소가 적인 종이가 있었다. 아이를 낳고 몸을 추스르면 찬열이 모르게 외국으로 나가서 돌아오지 말라는 의미였다. 이제 겨우 가까워지나 했는데 사이를 가로막는 장애물의 존재가 너무 커서 백현은 울고만 싶었다. 그리고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 "점심은 먹고 나온거에요? 괜히 저때문에 점심시간 뺏기고.. 죄송해요." "알아서 하고 있으니까 신경쓰지마. 니 몸이나 챙겨." 어떻게 해야하나 싶은 막막함에 멍하니 앉아있다 출발한다는 찬열의 전화에 백현은 정신을 차리고 나갈 준비를 했다. 차에 올라탄 백현은 가만히 앉아 계속 되는 생각의 고리에 잡혀있다 병원에 도착하여 건물을 들어섰다. "요즘 몸상태는 어떠세요?" "괜찮아요. 죽 말고 과일도 먹고 있구요." "음... 수면시간은 하루에 몇시간 정도 되세요?" "밤에 거의 잠을 못자요. 겨우 낮잠 몇시간 정도가 다에요." "잠을 잘 주무셔야 아기도 편안하게 있어요. 따뜻한 물 마시면서 자려고 노력해 보세요. 그럼 검사실로 가셔서 초음파 볼게요. 아버님도 같이 가셔야죠?" 백현의 뒤에 그냥 서있기만 하던 찬열이 갑작스러운 의사의 말에 어정쩡하게 검사실로 따라 들어갔고 백현은 검사실 베드에 누워 배를 걷어올렸다. 워낙 마르다보니 옷을 입었을 땐 배가 많이 나와 보이지 않았는데 걷어 올린 배가 남산만하게 불러 있자 찬열은 내심 놀랐다. "여기 아기 발. 손이에요. 심장소리 들어볼게요." "아.. 건강한가봐요. 막 쿵쿵 뛰어요." 함께 병원에 와서 심장소리를 처음 듣는 찬열은 모든게 신기했다. 곧 검사가 끝나고 배 위에 발려져 있는 젤을 닦아낸 백현이 일어나려 하자 찬열은 백현은 부축했다. "밤마다 배앓이가 심하다고 하시던데. 어디쪽이 많이 아려요?" "아랫배가 너무 아파요. 요즘엔 아이가 움직이지 않아도 배가 아파서 걱정인데...이상 없는거죠?" "이번주 중으로 입원하시는게 좋을 것 같네요. 아이가 너무 많이 내려와 있어요. 이러다가 큰일 나면 손도 못쓰고 위험할 수 있으니까 계속 누워 계시구요. 최대한 움직이지 마세요. 아이가 더 내려오면 백현씨가 더 힘들거에요." 병원 진료를 마치고 찬열과 백현은 집으로 출발했다. 아이가 위험할 수도 있다는 소리에 백현의 표정이 내내 좋지 못했다. "밤에 잠을 못자는 건가?" "네. 밤마다 배가 아파와서 잠을 잘 못자요." "하...왜 나는 몰랐던거지?" "아침에 찬열씨 출근하는거 뻔히 아는데 깨우기 싫었어요. 그리고 다른 방 쓰니까 걱정 안끼치고 싶었구요. 그래도 많이 아프지 않았어요. 우리아기 효잔가봐." 다른 방에서 잠에 들다보니 백현이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을 몰랐던 찬열이다. 매일 아침 아무말 없이 일어나 아침을 준비하던 백현은 힘든기색 하나 내비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뭔가 씁쓸한 마음에 찬열은 대답없이 운전을 계속했다. 이틀 뒤 입원준비를 하고 있던 백현은 찬열의 오피스텔에 아기용품이 있다는 것이 떠올랐다. 입원하고 아이를 낳으면 당장 필요할 짐인데 깨끗이 빨아 두고 싶었다. 백현에게 부탁을 받은 찬열은 그 날밤 백현의 집으로 가기 전에 자신의 오피스텔로 향했다. "여기 어디 있다고 했는데..." 병원에서 퇴원한 후에 한번도 들어가보지 않았던 작은 방에는 먼지가 소복하게 쌓여 있는 박스하나가 있었다. 박스를 열어보니 아이 젖병과 배냇저고리 등등 물건이 가득차있었다. 그중 이질적인 물건 하나가 찬열의 눈에 띄였다. 작은 수첩이었는데 거기엔 백현이 아기를 가지고 부터 쓰던 일기였다. 그 일기는 찬열과 백현이 커플로 구매한 일기장이었는데 백현의 것만 남아있었다. 일기장을 천천히 넘겨보다 문득 자신의 일기장이 어디에 있는지 궁금해진 찬열은 자신의 서재로 들어가서 서랍을 뒤져보았다. "아, 여깄네." 서재 책상 서랍 중 가장 밑 칸에서 일기장을 찾았다. 일기장을 들어내자 바로 밑에 낯설지 않은 얼굴이 있는 사진이 있었다. 뭔가 깨름칙한 기분이 든 찬열은 사진과 함께 놓여있는 노란서류봉투를 집어 들었다. 조심스럽게 봉투를 집어 올린 찬열은 안의 내용물을 보았다. 순간 찬열의 표정이 싸늘하게 굳어갔다. 찬열은 머리 끝까지 차오른 분노와 배신감에 일기장을 던져버리고 서재를 박차고 나왔다. 어느새 집에 온 목적을 상실한 찬열은 눈에 보이는게 없었다. 서류봉투를 챙기고 속도를 무시하며 찬열은 백현의 집에 도착했다. "오셨어요. 밥 먹어요. 지금 바로 차릴게요. 물건은 가져왔어요?" 찬열이 집에 들어오는 소리에 식탁을 차리기 위해 주방으로 향하는 백현을 찬열이 뒤따라갔다. 눈 앞에 있는 백현의 존재에 더욱 분노가 치미는 찬열은 거칠게 백현의 멱살을 잡아서 식탁 쪽으로 끌고 갔다. 갑작스런 찬열의 폭력적인 행동에 백현은 정신없이 당할 뿐이었다. 멱살을 더 쪼여오자 숨을 쉬기가 버거워진 백현이 바둥거려 보았지만 찬열은 손에 힘을 더 가할 뿐이었다. "아주 재밌었겠어. 변백현. 창녀처럼 다리 벌려서 가진 니 새끼 좋다고 난리치는 내 꼴이 얼마나 우스웠겠어." "무..무슨말 하는거에요?. 흡...하아..이거 놓고 얘기해요. 숨쉬기가 힘들어요." "닥쳐. 모른척 할 셈이야? 증거가 뻔히 있는데 당당하네. 나랑 만나는 동안에도 아주 구멍이랑 구멍은 다 벌리고 다니셨겠구만. 더러운년." "잠시만요. 오해에요. 하아...그런거 아니라구요." 이성을 잃어 버린 찬열은 아무말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분에 못이겨 계속 백현을 노려보던 찬열은 숨이 널어갈 듯 기침을 하는 백현을 바닥으로 내던져버렸다. "윽...흡... 왜이러는 거에요." "이거나 보고 지껄여. 난 더이상 너한테 변명따위 듣고 싶지 않으니까." 쓰러져 있는 백현의 위로 찬열이 던진 사진과 서류가 마구 쏟아졌다. 그 중 하나를 집어서 본 백현의 얼굴이 굳어졌다. 찬열은 그 모습을 보고 확실하다고 판단했다. "할 말 없지? 내가 기억을 잃었다고 호구처럼 보였나 보지. 당신을 조금이라도 믿으려고 했던 내가 병신이었어. 이제 정리됐군. 내 앞에서 꺼져." "찬열..찬열씨, 내 말 좀 들어봐요. 이거 오해에요. 찬열씨 어머니가 고의적으로 보낸거라구요. 제발요...흐윽... 기억 해봐요." 찬열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정신없이 말을 내뱉는 백현을 바라보다 기어코 자신의 어머니 탓으로 넘기는 백현이 진저리가 난다는 듯 찬열은 백현을 거칠게 잡아 떼 버렸다. 찬열의 힘에 못이겨 넘어지듯 쓰러진 백현은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기억을 잃기 전에도 말다툼이 있었다. 그때도 오해는 깊어 졌었고 찬열이 사고가 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찬열의 어머니가 찬열과 자신의 사이를 갈라놓기 위해 애쓰고 있을 때 이 사진이 찬열의 손에 들어왔다. 퇴사 후에도 백현이 평소 다른 남자동료들과 친하게 지내는 모습을 탐탁지 않게 여기던 찬열은 백현에게 화를 냈고 말다툼이 일어났다. 말다툼 후 흥분한 채로 운전을 하다가 사고가 난것이다. 그때문에 트라우마가 생긴 백현은 이 상황이 너무 무서웠고 공포스러웠다. 오해를 풀 자신이 없었다. "죄송해요...근데 이 아이 찬열씨 아이에요. 흐읍... 믿어줘요." 끝까지 부인하는 백현이 가증스럽다고 느껴진 찬열은 마시고 있던 물컵을 바닥에 내리 꽂았다. 유리 파편이 백현의 살결을 스쳤고 따가움에 인상을 찌푸렸다. "어디 언제까지 그 가증스러운 거짓말을 하지는 들어 보자고. 따라와" "아....흐윽." 찬열은 백현의 뒷덜미를 잡고 거실쇼파 앞으로 끌어당겼다. 백현은 손쓸 도리도 없이 끌려가서 찬열의 앞에 앉혀졌다. 폭력적인 찬열의 모습을 본 백현은 정신을 차릴수가 없었다. 지금 당장도 무섭지만 백현에게 더욱 공포로 다가오는 것은 과거의 기억이었다. 그 때와 같이 찬열이 백현의 곁을 떠나갈까봐 두려웠다. 공포감에 휩싸인 백현은 몸을 쉴새 없이 떨며 불안한 눈동자를 계속 움직였다. 불안했고 무서웠다. "찬열씨...가지마요...미안해요. 흡.. 가지마..흐윽...미안해.." "너 왜이래...정신차려. 헛수작부리지말고." 백현은 덜덜 떨리는 몸을 주체하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며 찬열에게 가지말라고 미안하다고 애걸해다. 두눈은 초점을 잡지 못해 이리저리 방황하고 있었다. 순간 이상하다고 느낀 찬열은 백현의 두 어깨를 꾹 눌렀고 백현의 행동을 저지했다. 여전히 몸을 떨며 앉아 있던 백현이 갑자기 아까의 기억이 떠올랐는지 찬열을 피해 거실 모서리로 기어갔다. "오..오지마요.. 내가 다 미안해요...아기 살려줘요..흐윽" "뭐하는거야. 정신차려 변백현." 공포에 질린 백현이 허둥지둥 자신을 피하는 모습을 본 찬열은 뭔가 일이 이상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생각에 백현을 쳐다보았다. 이성을 놓아버린 듯한 백현에게 다가가는 찬열이 백현의 눈에는 아까 자신을 죽일듯이 내팽겨치던 찬열로 보였다. 순간 백현은 아이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있는 힘을 다해 발악했다. "살려줘요.미안해요. 으흑. 아기있잖아요. " "정신차리라고!" 다가오는 찬열을 향해 이성을 잃은 백현은 잔뜩 부른 배를 무시하고 엎드려 두손으로 빌었다. 이건 아닌데라는 생각이 스친 찬열은 백현을 저지하기 위해 손을 뻗은 순간 자신을 때린다고 생각한 백현은 찬열을 밀치고 현관문으로 뛰어갔다. 아이를 위해 피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변백현!" 이성적인 사고가 불가능한 백현은 무작정 뛰쳐나갔고 백현의 돌발행동에 당황한 찬열은 그 뒤를 쫓아서 뛰어갔다. 빌라를 벗어난 백현은 어딘지도 모르고 무작정 뛰었다. 지금 백현에게 남은 거라곤 아이를 지켜야 한다는 모성 뿐이었다. 무작정 찬열을 피해 뛰던 백현은 큰길가에 다달았고 불안한 눈동자는 자신을 향해 돌진하는 큰 트럭을 발견할 수 없었다. -툭. 찬열은 앞서 있던 백현이 시야에서 사라진 순간 모든 행동을 멈췄다. 뭔가가 툭 떨어지는 소리에 그 쪽으로 고개를 돌린 순간 길 한복판에 쓰러진 백현을 발견했다. 가벼운 몸이 얼마나 큰 충격을 받았는지 사고지점에서 꽤 지난 곳에 백현이 쓰러져있었다. "정신차려봐...변백현..." 쓰러져 있는 백현을 향해 다가간 찬열은 백현을 안아 올렸고 백현의 아래에서 흥건하게 쏟아지는 피를 막기위해 필사적으로 움직였다. "아이...흐윽..살려줘요...찬열씨..." 아이를 살려달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백현은 정신을 잃었다. 순간 찬열은 과거의 기억의 조각이 맞춰지는 듯했고 가여운 백현을 안고 눈물을 흘렸다. "백현아...살아야지... 정신 차려봐...내가 다 미안해..흐윽" 엄청난 분량으로 돌아왔어요. 칭찬해주세요. 둘은 과연 행쇼할까요. 찬열이의 기억이 돌아왔으니까요. 제가 매회마다 복선을 몇개 깔아뒀는데 스토리전개가 달라지다 보니까 못챙긴게 많아요. 그래서 전개가 매끄럽지 않은 점 양해해주세요. 그리고 정주행해주시는 독자분들과 다른 모든 분들 스릉흡느드. 그리고 작가의 힘의 원천은 독자분들의 댓글이에요. 작가 힘내라고 한마디씩만 남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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