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글"오늘도 늦게 오니?"
"음... 아마도? 먼저 주무세요."
"요즘 공부한다고 힘들지, 우리아들. 쉬엄쉬엄해."
"네, 다녀오겠습니다."
백현은 수능을 앞두고 집에서 꽤나 거리가 있는 독서실을 다니고 있다. 엄마는 집 바로 앞에 있는 독서실 두고 왜 그렇게 멀리 가냐고 성화시지만 백현은 독서실을 옮길 수가 없었다. 혼자서 공부하면 의지가 약해진다며 친구인 종대가 자신의 집 앞에 있는 독서실에 딱 한 번만 같이 가자고 졸라서 갔던게 화근이었다. 그래, 그때부터 였다.
"아~ 끝났다. 근데 요즘 열심히다?"
"이제 우리도 고3인데 빡세게 공부해야지."
"근데 뭐하러 너네 집에서 먼 곳을 다녀?"
"그...시..시설이 좋잖아! 그리고 걸어서 20분 밖에 안결려.."
"뭐... 난 모르겠다만 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백현은 학교를 마치고 종대와 함께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는 시간이 가장 행복했다. 종대에겐 미안하지만 종대 때문이 아니라 그를 보는게 너무 설레어서 그런거다. 종대와 인사를 하고 백현은 홀로 독서실로 향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린 4층, 독서실 문을 열면 카운터가 있다. 카운터에는... 오늘은 그가 없다. 그는 매일 독서실에 있지만 바로 옆에 있는 열람실에서 공부를 하기 때문에 백현이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얼굴을 보여주는 경우가 드물었다. 오늘도 그의 얼굴을 보지 못한채 백현은 자리의 열람실로 향했다,
1열람실에는 그가 있었고, 백현은 2열람실 이었다. 그와 같은 열람실을 쓰지 못해 아쉬웠지만 안타깝게도 1열람실에는 자리가 없었다. 백현은 가방을 책상 옆에 놓고, 모의고사 문제집을 꺼내 들었다. 자신은 공부를 잘하는 학생은 아니었다. 그냥 학교에서 중위권 정도의 평범한 학생이었다. 어떤 계기가 되었든 독서실을 다니면서부터 공부하는 시간이 많아진 것은 사실이었다. 실재로 최근에 본 3월 모의고사 점수가 많이 올라있기도 했다. 독서실은 새벽 1시 반이면 문을 닫는다. 백현이 야자를 마치고 오면 대략 11시 정도였고, 2시간 반동안 독서실에 있는 것이다. 백현은 단연코 하루 중에 이 두시간 반이 가장 행복하고 소중한 시간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 하나둘씩 사람들이 귀가를 하고, 어느새 독서실에서는 백현과 마감 정리를 해야하는 그만 남아있다.
"시간다됐어, 나가."
1시 20분. 문이 열리고 백현의 등 뒤에서 그의 음성이 들린다. 백현은 오늘도 독서실에서 끝까지 남아있는 자신이 너무 대견스러웠다. 책상에 펼쳐져 있던 책을 가방에 넣고, 스탠드 불을 끈 후 그가 번거롭지 않게 열람실 바닥에 떨어져 있는 쓰레기를 줍고, 의자를 가지런하게 정리를 한 후에 카운터 쪽으로 향한
"...수고하셨어요.."
"그래."
백현이 용기내어 작은 목소리로 그에게 한마디 하면, 따뜻함과 관심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그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백현은 상관없다. 그냥 대화 그 자체가 만족스러웠다. 아직까지 밤 기온은 낮기 때문에 백현은 빠른 걸음으로 집으로 향했다. 그와 나눈 대화는 겨우 두 마디이지만 백현은 즐거운 마음으로 집으로 갈 수 있었다.
"박...찬..열... 여기있다!"
백현은 잘려고 누운 침대에서 페이스북을 켜서 그의 이름을 검색했다. 요즘 하루는 그를 생각함으로서 시작되고 그를 생각함으로서 마무리한다. 차마 친구추가를 할 용기가 안나서 아무것도 없는 프로필 사진과 빈 타임 라인을 쳐다보고만 있지만 그저 좋았다. 독서실 카운터에 붙어져 있는 " 부재 중 연락처: 010-xxxx-xxxx", 그의 연락처이다. 카운터에 있는 그의 것처럼 보이는 책에 정갈하게 쓰여있는 이름 '박찬열', 그의 이름이다. 백현은 자신의 핸드폰에 '독서실 실장님'이라고 저장해놓은 연락처와, 카톡 친구 목록에 있는 '박찬열' 세 글자를 보여 한없이 그의 얼굴을 그려본다. 배시시 나오는 웃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의 페이스북에는 '한국대학교 법학과'라는 정보와 26살이라는 정보를 백현에게 알려줬다. 더 없이 소중한 정보가 아닐 수 없다. 나이, 전화 번호, 이름, 대학.. 그의 간단한 프로필을 알고 있지만 이미 그와 많은 대화를 한 것 같이 느껴지는 백현이었다.
"저기요."
"....저요?"
백현은 독서실을 나서려다 자신을 향하는 그의 목소리에 당황하여 바보같은 소리를 하고 말았다. 이 독서실에는 그와 자신 뿐인데 말이다. 얼굴이 빨개진 백현이 뭘하든 그는 자신의 할 말을 이어나갔다.
"매일 이렇게 늦게 갈거야?"
"...네?"
"너 때문에 나도 늦게 나가잖아."
"..."
"내가 수능 쳐봐서 아는데, 무작정 앉아 있는다고 돌머리가 공부머리되진 않더라. 그냥 빨리 집에 가. 사람 귀찮게 하지 말고."
"죄송합니다..."
백현은 빨개졌던 얼굴이 더 빨개져서 허둥지둥 독서실을 나왔다. 그가 나가라는 말이 아닌 다른 말을 자신에게 처음으로 걸어줬는데 내용이... 부끄러웠다. 그가 좋아서 했던 행동이 오히려 미울을 사고 있었다니... 아마 그에게 저는 '귀찮게 하는 고등학생'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 것이다. 어쩌면 1달 동안 마감 정리를 하면서 제 욕을 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집으로 향하는 백현의 발걸음이 무거웠다.
새로운 소설을 들고 왔습니다. 연재는 주에 2번 정도가 되겠네요. 앞으로 실장님이랑 백현이가 어떻게 이어질지 지켜봐 주세요~~
그리고 많은 분들이 버숲을 파일로 만들어 달라고 하셔서, 작업 중에 있습니다. 흐름 상 삭제되거나 더해지는 내용이 있을 것 같네요ㅎㅎ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