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시옷' 발음이 새는 듯한 기장의 인삿말이 끝나고, 곧이어 양쪽 홀에서 스튜어디스와 스튜어드가 나와 안전사항에 대해 설명을 한다. 호원은 꽤나 열심히 구명조끼에 바람을 넣는 시늉을 하는 스튜어드를 힐끗 보더니 이내 칸막이를 닫아버린다. 닫히는 틈새로 당황한 듯한 스튜어드의 표정은 꽤나 우스웠다. 하늘을 나는 호텔이라고 불리는 이 여객기에서 그것도 무려 퍼스트 클래스를 당당히 꿰차고 앉은 호원은 불만이였다. 퍼스트 클래스 스튜어드가 왜 저 모양이냐며. 칸막이를 닫으니 좁은 내부가 답답했다. 호원은 창문을 스륵 열고는 안전벨트를 멨다. 한창 밖에서 뭐라뭐라하던 소리가 잠잠해지더니 이내 누군가 딱딱한 칸막이를 두드린다.
"실례하겠습니다, 고객님."
목소리를 듣자니 아까 그 스튜어드가 분명했다.
"뭡니까."
"곧, 본 항공기가 이륙할 예정입니다. 부디 안전벨트를..."
"착용했으니까 가봐요."
"ㅇ,예.. 그럼, 좋은 여행 되시기 바랍니다."
인기척이 멀어지고, 스튜어드가 예고한 대로 비행기가 움직이고 있었다. 호원은 이어폰을 귀에 꽂은 채, 쇼파 처럼 넓찍한 의자에 몸을 완전히 기댔다. 곧이어 비행기가 이륙하는 듯 몸이 뒤쪽으로 기울어지고, 귀도 멍멍해지고 있었다.
난 이게 싫어.
언제나 비행기를 탈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정말이지 일시적으로 귀가 멍멍해지는 그 느낌을 호원은 너무나도 싫어했다. 창 밖을 보니 세상이 빠른 속도로 작아지고 있었다. 마치 미니어쳐 장난감 마냥. 랜덤으로 노래를 듣고 있던 호원은 시끄럽고 정신없는 멜로디에 지저분한 일렉트로닉 사운드가 도배되어 있는 최신곡이 나오자 짜증스럽게 이어폰을 빼버렸다. 누가 이딴 쓰레기를 넣어놓은거야. 자세히 보니 제가 평소에 쓰던 아이팟이 아니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모델은 같은데, 제 물건에 흠집이 나는 꼴을 못 봐서 관리를 잘해 4년 넘게 쓰고 있음에도 새 것 같은 원래의 호원의 것과는 다르게 보기 싫게 네 모서리에 흠집이 나있고, 중앙 버튼에 유치한 뽀로로 스티커까지 붙어있었다. 이게 뭐지, 무심코 바탕화면을 들여다보던 호원은 낯선 무리들 틈에서 익숙한 얼굴을 캐치했다. 아까 그 스튜어드다. 이게 왜 여기있는거지, 곰곰히 생각해보니 아까 비행기에 올라설 때, 왠 정신없는 놈과 부딫혔었던 적이 있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하고는 황급히 자리를 뜨는 바람에 얼굴은 못 봤지만. 무심코 익숙한 그립감에 제 것인 양 아이팟을 주머니에 넣고 탑승을 했음이 분명했다.
"....귀찮게 되버렸군"
호원은 다시 몸을 기대고는 눈을 감았다.
반면에 동우는 아침부터 기분이 꿀꿀해 미칠 지경이였다. 그토록 아끼던 아이팟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비행기에 올라탄 후, 이륙 전 약간의 여유가 있었을 때 습관적으로 유니폼 주머니를 뒤적이던 동우는 당황했다. 있어야할 아이팟이 없었기 때문이다. 황급히 백팩을 뒤져봐도 나오지 않았고, 캐리어까지 뒤집어봤지만 끝끝내 아이팟은 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퍼스트 클래스 고객님과 부딫히질 않나, 이래저래 오늘 일진이 좋지가 못하다. 자주 떨어뜨려 낡아보이긴 해도 애정이 담긴 물건이였다. 동우는 홀 끝의 좌석에 벨트를 메고 앉았다. 한숨을 폭 쉬자 옆에 같이 앉은 명수가 동우를 바라봤다.
"왠일이야, 장동우가 한숨을 다 내쉬고?"
"잃어버렸어..."
"또?"
"또가 아니야! 그래도 없어진 줄 알고 찾아보면 나오긴 했는데 오늘은 완전히 잃어버렸나봐.."
"이따가 안정권에 들어서면 다시 천천히 찾아봐"
"..아냐, 이건 내 직감이야, 완전히 잃어버렸어"
반대쪽 홀에서는 스튜어디스들이 꺄르르, 거리며 수다를 떨고 있었고, 동우는 의자에 몸을 완전히 기대어 눈을 감았다. 속상하긴 해도 어쩔 수 없었다. 잃어버린 제 탓이니. 대체 어디서 잃어버린거지,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질 않았다.
비행기가 완전히 떠오르고, 기울어짐이 덜해지는 것을 느끼자 동우는 갤리(Gelley -비행기내 주방 혹은 음식물 등을 보관 하는 장소)로 들어가 고급스럽게 셋팅 되어있는 카트를 조심스럽게 끌며 나왔다. 옆의 홀에서는 아까 안전사항을 안내하던 누나가 벌써 카트를 밀며 대접을 하고 있었다. 비즈니스 석 이후로 퍼스트 클래스는 처음이였던 동우는 훅- 하고 긴장을 애써 내뱉곤 활짝 웃어보였다. 가히 퍼스트 클래스 다웠다. 개인적인 객실의 크기가 크다보니 많은 사람을 대접하지 않아도 됐었다. 라바토리(Lavatory- 비행기 내의 화장실) 앞에 자리한 객실은 칸막이가 굳게 닫혀있었다. 보통 이륙할 때는 닫지 않는데, 이상하다- 고개를 잠시 갸웃하던 동우는 행여나 상태바의 [방해하지마시오] 칸에 불이라도 들어왔을까 확인을 하고는 똑똑, 칸막이를 두드렸다.
"실례하겠습니다, 고객님."
손바닥만한 크기의 창이 내려가고, 그 안에는 호원이 뭐냐는 듯한 눈빛으로 동우를 바라보고 있었다. 허리를 조금 숙이고는 창문 안의 호원에게 눈을 휘어접으며 고객님, 필요하신 음료 있으십니까? 하고 물어오는 동우의 목소리는 다정했다.
"아이스아메리카노 가능합니까,"
"실례지만 카트에는 아이스아메리카노가 없네요 고객님. 금방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얼음 좀 많이 넣어주세요"
"네,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동우가 허리를 피자 가차없이 다시 닫히는 작은 창문을 바라보며 무안함을 뒤로 넘겼다. 제 착각일지도 모르지만 유난히 제게 쌀쌀맞은 호원을 보며 피곤한 성격일 것 같다고 지레 짐작을 해보는 동우다. 카트를 정리하고 라운지의 바로 다가오는 동우를 보며 우현이 반갑게 인사했다.
"벌써 나와있네?"
"엉- 우리 짱똥 보고 싶어서,"
"에이, 농담하지 말고 아이스아메리카노 좀 만들어줘, 얼음 잔뜩- 넣어서"
"어어? 진짠데?"
서로 실없는 농담을 주고 받던 사이에 얼음이 잔뜩 들어간 아이스아메리카노를 다 만든 우현이 쟁반과 함께 건낸다.
"몇 번인데?"
"저어-기, 오른쪽 제일 끝. 8번-"
"칸막이 닫혀있는데?"
그니까 말이야. 뭐, 자기 마음이긴 하지만 보통 처음에는 잘 안닫는데, 타자마자 저러고 있었다니까? 동우의 작은 불만은 우현이 맞장구를 쳐 줌에 어느 새 호원의 험담으로 변해있었다. 벨트 매라니까 말을 싹둑 자르고 말이야, 사람 무안하게 창문도 싹 올리고, 막- ...
아메리카노가 담긴 컵의 표면에 송골송골 물이 맺혀 떨어질 때 쯔음 오랜 기다림을 못 참고 객실에서 나온 호원이 바에 기대어 제 동료와 히히덕거리고 있는 (적어도 호원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동우와 옆에 있는 아메리카노를 번갈아 봤다.
"뭐...하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