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여주, 저거 손 안 댄지 얼마나 됐냐?"
김남준의 잔소리 아닌 잔소리에 슬쩍 돌아본 키보드에는 먼지가 얇은 층으로 쌓여 있었다. ..하긴, 친지 꽤 됐으니 그럴 만도 하다. 한 2주 정도는 건반을 조금 띵똥거리는 정도였고, 가장 최근 일 주일 간은 작업실에 멍하니 앉아 있기만 했으니까.
"진짜 어디 아픈 거 아니야, 너?"
"..아니야."
"아니면 뭐야, 대체? 음악 빼면 시체인 애가 왜 이래?"
명색에 오빠라고, 연신 타박을 해대는 김남준의 말에도 나는 그저 곡이 당최 써지질 않는다고 대답할 뿐이었다.
언제부터 이랬더라. 아마도, 가장 최근에 내 곡을 녹음하겠다며 찾아온, 노래 더럽게 못하던 그 가수 씨랑 싸운 뒤부터였던 것 같다. 회사 사장이 어렵게 데려온 실력자(아마도 '스타'겠지만)라며 참으라던 말에 더 빡쳐서 사무실을 박차고 나온.. 그래, 바로 그 시점부터였네.
"너 파업해?"
"아니."
"솔직하게 말해도 돼. 더 나은 작업환경을 요구하는, 뭐 그런 거야? 사고 싶은 악기 생겼어?"
"아니라니까."
"아니 그럼 대체 뭔데??!!!"
김남준이 방방 뛰는 것이 당장에라도 뭘 부실 것만 같아서, 나는 겨우겨우 오빠를 다시 의자에 앉혔다.
"...그냥, 마음에 안 들어. 뭘 쓰든, 그리고 누가 부르든, 다 별로야. 다 마음에 안 들어. 전부 다."
"..그냥 마음에 안 든다."
"응."
"그럼 다 때려치지 왜? 은퇴하려고?"
"..그것도 나쁘지 않지."
"...야 이 미친.. 너 정식으로 곡 내놓기 시작한지 3년 밖에 안 돼, 알어?"
"...그 정도면 많이 했지 않나?"
"..아나.."
김남준은 제 피가 섞인 여동생의 만행이 마음에 들지 않는 건지, 혈압이 오른 아침 드라마 속 회장님 마냥 제 뒷목을 잡았다. ..그럼 어쩌라고, 도무지 손에 일이 잡히지가 않는 걸.
마치 기계마냥 곡을 뽑아낸 시간, 5년. 정식 프로듀서 데뷔가 3년 전, 그리고 곡을 내놓을 때마다 음원차트 상위권을 쓸어버리게 된 건 한 2년 반 정도 전부터였다. 하지만, 과거는 과거다. 의욕이란 의욕을 전부 말그대로 번아웃(burn-out)시킨 나는, 이제 재만 남은 상태니까.
나라고 안 답답하겠냐고. 내 얼굴에 꽂히는 김남준의 시선이 부담스러워, 책상 위에 놓여 있던 아메리카노를 집어 입에 댔다.
"..아, 다 식었네."
씁쓸한 맛이 입에 감돈다. 손에 닿은 종이컵에 아주 미약히 남은 온기가, 차가운 내 손끝에 닿자마자 사라져버린다.
그래, 다 식어버린 커피는 고혹적인 향도, 따스함도 없는 쓰고 까만 물일 뿐이다. 나와 꼭 닮은 그 미적지근한 온도를 빤히 내려다보다가, 그대로 쓰레기통에 던졌다.
상황이 심각한 걸 느낀 김남준이 나가자며 나를 끌어당긴다. 작업실 문턱을 넘기 전 문득 피아노를 보지만, 아무 감흥이 없다.
..진짜로, 그만둬야 할까.
***
바람을 쐬자던 오빠가 날 데리고 나온 곳은, 있던 바람도 사람에 막혀 사라질 것 같은 왁자지껄한 홍대였다.
"..바람 쐬자며."
"술 마시자고."
"..아이씨."
끌리듯이 앉은 술자리. 안주를 먹는 둥 마는 둥 하는 내게, 김남준은 피식 웃으며 술병을 내밀었다.
본능적으로 내민 잔에 투명한 알코올이 채워지며, 김남준의 목소리가 그 뒤를 따라 흐른다.
"'뮤즈'를 찾아봐."
"뮤즈?"
"넌 슬럼프란 걸 모르고 5년 이상 곡을 써제껴온 애야. 당연히 영감이 다 바닥나지."
"..음악으론 내 내면 표현하기도 바빠."
"그 뮤즈에게 영향을 받은 네 내면을 표현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야. 그리고, 계속 안으로 파고들면 히키코모리 된다. 이젠 밖을 볼 때도 됐어, 마."
솔깃한 소리긴 하다만, 그게 찾고 싶어요, 한다고 찾아지냐고. 내가 눈을 굴리자, 김남준은 속으로 하지 않은 말을 들은 듯이 그냥 한 번 시도해보라며 날 부추긴다.
"뮤즈를 만난다는 거, 음악 인생에 굉장한 터닝 포인트가 될 수 있어. 한 번 해보라니까?"
"..그렇게 뮤즈로 곡 쓰다가 뮤즈랑 피치 못하게 떨어지게 되면? 그럼 또 곡 못 쓸 거 아니야."
"한 번 뮤즈는 영원한 뮤즈야. 첫만남부터 마지막 순간까지 말이야. 거기다 둘이 함께 한 추억도, 전부."
"......."
"굳이 기억하려 하지 않아도, 그 감정과 추억은 쉽게 사라지는 게 아니라서 자연스럽게 묻어나오게 돼. 그게 가족이든, 친구든, 연인이든."
"오글거려."
괜히 팔을 마구 비볐다. 오빠가 이런 소리 할 때마다 적응이 안 된다. 쓸데없이 진지해가지고 말이야..
"..몰라, 그게 찾는다고 마음대로 찾아지나. '뮤즈'라는 느낌이 뭔지도 모르겠고, 궁금하지도 않아."
"그게 있다니까? 딱, 딱 감이 와."
"난 첫눈에 반하는 거 안 믿는다니까."
"아니 그게 왜 그 쪽으로 튀어?"
결국, 우리 남매는 단 5분도 진지함을 견디지 못하고 다시 아웅다웅 다투다가 술자리를 끝냈다.
잔뜩 취해선 몸을 잘 가누질 못하는 김남준은 근처에 사는 윤기 오빠를 불러 부탁하고, 난 술에 들떠 붉어진 얼굴을 가라앉히려 밤같지도 않은 밝은 밤거리를 조금 걸었다.
조금 붕 뜬 머릿속에 김남준의 목소리가 울린다.
-"뮤즈를 찾아."
-"I don't know you"
-"그 뮤즈에게 영향을 받은 네 내면을 표현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지."
-"But I want you"
-"이젠 밖을 볼 때도 됐어, 마."
-"All the more for that"
-"뮤즈를 만난다는 거, 음악 인생에 굉장한 터닝 포인트가 될 수 있어."
-"Words fall through me"
-"한 번 뮤즈는 영원한 뮤즈야. 첫만남부터 마지막 순간까지 말이야.
-"And always fool me"
-"딱, 딱 감이 와."
-"And I can't-"
"-react..."
어느샌가, 발은 멈춰 있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김남준의 목소리를 뚫고 들어오는 오묘한 목소리를 따라 익숙한 멜로디를 읊조리고 있는 나의 입. 'Once'의 ost, 'Falling Slowly'였다.
홍대에선 흔하다 못해 뻔하기까지 한 버스킹이다.
-"Take this sinking boat"
한 두 번 들은 노래도 아니다.
-"and point it home"
버스킹 곡으로는 더욱 많이 들어본 노래다.
-"We've still got ti-me"
하지만, 나의 신발코는, 부드럽게 기타소리를 향해 방향을 튼다. 점점, 발이 빨라지기 시작한다.
"Raise your hopeful voice"
꽤나 많이 몰려 있는 사람들 사이로, 조곤히 흘러나오는 소리.
"you have a choice"
마치 마법처럼, 목소리가 흘러나오는 방향을 따라가면 길이 나왔다. 나를 부르는 것만 같았다.
정말로,
"You've make it no-w"
마법만 같았다.
***
옆에 동생으로 보이는 어린 소년 하나가 치는 서투른 기타 선율에 맞춘 내 또래 남자의 목소리는 참 예뻤다. 아니, 향기로웠다고 하겠다. 온몸에 감돌듯이 아련히 남아서, 몇 안 되던 청중들에게 꾸벅 고개를 숙이고 사라질 때는 마지막 순간까지 눈길을 떼지 못했었다. 바로 옆에서 대학 댄스 동아리가 시끄럽게 공연을 하고 있었다는 건 그가 떠나고 한참 뒤에 안 사실이었다.
아주 작은 앰프에 3만원도 채 안 되어 보이는 마이크를 잡고 한 노래였다. 목소리를 생각해보면 'Falling Slowly'와 완전히 딱 맞는 음색도 아니었으며, 성량이 딱히 아주 특출나지도 않았었다.
..그런데, 그 많은 사람을 뚫고, 나를 끌어당겼다. 그 작은 소리로, 그는 나를 불러내었다.
작업실에 가만히 앉아 천장을 바라보던 나는, 문득 키보드로 시선을 돌렸다. 어제보다 조금 더 먼지가 올라앉은 건반. 무심코 키 하나를 누른다. 그 남자의 목소리와 잘 어울리는 것 같다.
천천히, 손가락을 움직인다. 단편적인 선율 위, 머릿속에 베이스 소리가 노크하듯 낮게 울리며 들어온다. 드럼, 세컨드 피아노, 일렉.. 아니야, 일렉은 아니고, 베이스로 화음을 하나 더.
자세를 고쳐잡았다. 느낌이 좋다.
***
그 날 이후로 매달려 완성한 곡이 총 다섯 개. 한 곡당 한 이틀씩 공들여서 만든 것 같다.
내 곡을 확인하러 온 김남준과 윤기 오빠는, 곡을 듣고 의미가 같은 말을 한 마디씩 던졌다.
-"..야, 괜찮기는 너무 괜찮은데.. 소화할 사람이 있을까 모르겠다."
-"모르겠네.. 노래 자체는 진짜 괜찮은데, 가이드가 아쉬워. 멜로디가 독특해서 그런지... 느낌이 안 살아."
나는, 그럴 때마다 의도한 바라며 웃어보였다. 솔직히, 누가 소화해냈다면 기분이 오히려 잡쳤을지도. 내가 쓴 이 곡들은 전부 이름도 알지 못하는 그 남자를 위한 곡이니, 그 사람 말곤 아무도 떠올릴 수 없어야 정상인 거다.
그래도 평생을 그 사람만을 위해 곡을 쓸 순 없으니까, 나를 다시 시작하게 해준 그에게 느꼈던 짧은 감정과 고마움을 여섯 번째 곡에 전부 털어놓기로 하고 작업에 매달렸다.
"..베이스부터.."
..아니다.
"..아예 오케스트라처럼 갈까?"
..이것도 아니다.
마지막이란 생각 때문인가, 뜻대로 잘 되지를 않았다. 목소리를 들은지 너무 오래된 건가. 한 번 더 듣고 싶은데.
살풋 구겨진 미간을 꾹꾹 누르며 휴게실로 나와 물을 마셨다. 오늘 김남준과 윤기 오빠가 홍대를 간다고 해서인가, 항상 이곳저곳 시끄럽던 작업실 공간이 한적해서 귀와 눈을 조금 쉴 수가 있었다.
..이제는 끝이야. 오늘은 끝내자.
나의 짧은 뮤즈와의 만남은, 이제 마지막이야.
마지막, 이라는 단어를 중얼거리며 종이컵을 버리고 다시 작업실로 가려는데,
"야야, 김여주!!!"
익숙한 시끄러움에 몸을 돌렸다.
"우리가 대박인 애 하나 찾았어!!"
그리고, 잔뜩 신난 오빠들의 뒤에서 얼굴을 휘감는 향긋함이 느껴졌다.
"너 노래 누구보다 잘 살릴 목소리라 데리고 왔어. 설득하느라 힘들었다고."
"......."
그 때완 다른 까만 머리를 한 채, 그 때처럼, 맑은 눈을 반짝이며 제 동생을 옆에 꼭 데리고 있는 그.
나를 보자 어색하게 웃으며,
"아, 안녕하세요.. 박지민이라고 합니다."
내가 반했던, 그 오묘한 향기를 내 귓가에 다시 한 번 뿜어낸다.
"..아아,"
"......."
"..박, 지민 씨."
박지민, 하고 나는 그의 이름을 몇 번이고 내 입술에 머금었다.
조금 당황한 듯 빠르게 깜짝이는 까만 눈동자에게로, 그의 향기로운 이름에게로, 나는 떨리는 손을 내밀었다.
"..프로듀서 김여주라고 합니다."
이젠 마지막이 아닌 그에게, 다시 오롯이 취해버리고 마는 나다.
***
"참 신기해요."
"네?"
"어떻게 나랑 그렇게 딱 맞는 곡을 만드는지."
"그야, 지민 씨는..."
"?"
"..항상, 노래를 부르고 있거든요."
"......."
"노래를 불러요."
You don't love someone for their looks, their clothes, or their fancy cars-
-but, because,
because, they sing a song only 'you' can hear.
***
쓴지 2년이 다 되어가는 글인데, 뒤져보다 나와서 가지고 와봅니다. 예전에 공부할 때 쓰던 노트에 써 있던 글귀를 바탕으로 썼습니다.
마찬가지로 타 커뮤니티와 블로그에 업로드된 글입니다.
감상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