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랑
"어서오세요-"
힘있게 울리는 종소리가 좋았다. 그 뒤에 따라오는 남자 알바생의 부드러운 목소리도 좋았다. 분명 목소리만큼 얼굴도 잘생겼으리라 생각하고 카운터로 발걸음을 옮겼다.
"주문하시겠어요?"
내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알바생은 훈훈했다. 살짝 접은 눈꼬리와 씨익 그려지는 입가의 호선이 매력적이었다. 메뉴판은 쳐다보지도 못했다. 알바생의 얼굴을 보느라. 알바생은 주문을 하지 않고있는 내가 이상한 듯 바라보았고 그 시선이 닿자 정신을 차리며 대답했다.
"어, 음..싱글 레귤러 하나 주세요"
더듬듯이 한 내 주문에 알바생은 살풋 웃어보였고 삼천 오백원 입니다, 라는 말을 내뱉었다. 목소리가 어쩜 저리도 나긋나긋한지. 떨리는 손으로 천원짜리 네 장을 내밀었고 알바생은 내게 하얀 영수증과 함께 오백원 짜리 동전을 건네주었다.
아, 손 닿았다.
"무슨 맛으로 하시겠어요?"
알바생은 와이셔츠의 소매를 걷어올리며 스쿱을 들어 허공을 한 바퀴 휘저었다. 31가지 맛 아이스크림이 눈에 보였고 가장 좋아하는 맛도 있었지만 알바생을 힘들게 하고싶지 않아 가장 가까이에 있는 요거트 아이스크림을 골랐다. 알바생은 몸을 숙여 하얀 요거트 아이스크림을 퍼서 컵에 담아 내게 건넸다. 들고 나가 먹을까 하다가 알바생을 계속 보고싶어 자리를 찾아 앉았다. 물론 알바생이 가장 잘 보이는 자리로.
딸랑
종이 울리며 문이 열렸고 시끌시끌한 한 여고생 무리가 들어왔다. 여고생들은 주위를 찬찬히 둘러보더니 알바생을 보고는 자기들끼리 수군대며 서로를 퍽퍽 쳐댔다. 그러고는 몇몇이 알바생에게 다가갔다.
"헐. 알바오빠, 짱 잘생겼어요"
"알바 언제 끝나요?"
"여자친구 있어요?"
"번호 주면 안돼요?"
여고생들은 애교를 부리며 알바생에게 말을 걸어댔고 알바생은 당황한 듯 보였지만 침착하게 주문을 받아냈다.
"하하, 감사합니다"
"여자친구는 없는데,"
"번호는 못 알려드려요"
그런 알바생에게 여학생들은 야유를 해댔고, 그럼 아이스크림 많이 주세요! 라는 말과 함께 자리로 와 앉았다. 하필 내 옆자리에 앉은 탓에 여학생 무리의 수다가 고스란히 들려왔고, 매우 시끄러웠다. 이런 소란 틈에선 알바 구경도 힘들겠다 싶어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알바는 여학생들의 아이스크림을 퍼담는 듯 보였고 수고하세요, 라는 말 한마디라도 건네고 싶었지만 용기가 나지 않아 그런 마음은 접어두고 아이스크림 가게를 나왔다.
*
딸랑
"어서오세요"
오늘도 듣기 좋은 목소리다. 알바생을 보러 아이스크림 가게에 매일 발걸음을 한 지도 알주일 째다. 알바생은 항상 이 시간에 있었고, 나도 항상 이 시간에 찾아왔다. 하루하루 매일 다른 맛으로 아이스크림을 골랐다.
"맛있게 드세요-"
알바생이 아이스크림을 건넸고, 그 아이스크림을 받는 찰나 스친 알바생의 손에 움찔하며 손을 떼자 아이스크림은 허공에서 놓아졌고 그대로 떨어졌다. 질퍽한 소리와 함께 바닥에 떨어진 초코맛 아이스크림이 보기 지저분했다.
"어, 죄,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를 연발하며 급하게 휴지를 찾았다. 휴지를 잔뜩 뽑아들고선 아이스크림을 닦으려는데 언제 나왔는지 알바생이 내 옆에 앉아선 같이 걸레질을 도와주고 있었다.
"괜찮아요. 옷에 묻은 덴 없으세요?"
대충 없다며 얼버무리고 허겁지겁 가게를 나가려는데 알바생이 내 어깨를 잡아세웠다. 왜 나를 붙잡을까 하는 생각에 초조해하고 있는데 별안간 내 앞으로 아이스크림이 들이밀어졌다. 내가 떨어뜨린것과 같은 맛으로.
고개를 들어 알바생을 쳐다보니 환하게 웃어보이며 아이스크림을 더욱 들이민다.
"감사합니다..."
꾸벅 고개를 숙이며 아이스크림 가게를 빠져나왔다. 당분간 부끄러워서 아이스크림 가게는 가지 못할 것 같다.
*
딸랑
부끄러움은 무슨. 그 날 이후로도 나는 줄기차게 아이스크림 가게를 찾았고, 오늘이 31가지 맛 중에서 31번째 맛을 먹는, 마지막 날이었다.
알바생은 그새 내가 편안해졌는지 오늘도 싱글 레귤러요? 라며 주문을 받았고, 나는 쑥스러움에 살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스크림 골라주세요"
하루 한가지 맛 씩. 순서대로 먹었는데 눈치채지 못한 걸까 하는 서운함이 여린 파도처럼 밀려왔다. 조금은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에 조금 틱틱대며 대답했던 것 같다.
"맨 끝에 있는거요. 뒷줄."
내가 틱틱대는 게 불편했는지 조금 표정을 굳힌 채로 스쿱을 휙휙 돌리더니 고개를 숙여 아이스크림을 퍼 담았다.
"맛있게 드세요"
알바생은 내게 아이스크림을 건넸고, 내가 받은 아이스크림은 내가 주문한 것과 다른 맛이었다. 그냥 먹을까, 하다가 맨날 왔는데도 아무런 의식 없이 이런 실수를 할 수 있는지 알바생이 조금은 괘씸해 항의를 하려 입을 열었다.
"저기, 저 다른 맛 시켰는데..."
당차게 불만을 표현하려 했지만 막상 입을 여니 말이 그렇게 쉽게 나오지 않았다. 우물쭈물하며 말을 하자 알바생은 뾰루퉁한 표정으로 나를 한참 쳐다보더니
"알아요."
"오늘 그거 먹고, 내일 또 와요."
"오늘 마지막 맛 먹으면, 내일 안올지도 모르잖아요"
그리고 전, 김동혁이에요.
자신의 이름을 말하며 알바생은 환하게 웃어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