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라."
구준회는 깊게 들이마신 담배연기를 내 얼굴에 뿜어내며 술잔을 내밀었다. 눈과 코가 따가웠고, 숨 쉬기가 힘들었다. 한 번 터진 기침은 그칠 줄 몰랐고 술을 따르는 내 손은 덜덜 떨려왔다. 그런 내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 지 구준회는 인상을 찡그리며 나를 바라봤다.
"이제 적응 좀 하면 안 되나? 보는사람 기분 더럽게."
더럽다면서 구준회는 내 허리에 팔을 감싸왔고 앞에 놓인 재떨이에 담배를 비벼 껐다. 그러고는 내 턱을 단단히 잡아 위로 치켜올렸다.
"하는 꼬라지는 존나 처녀 같아선, 또 그게 아니란 말야."
말이 끝남과 동시에 구준회는 나를 벽 쪽으로 돌려세워 입을 맞춰왔다. 수치스럽지만 저항할 수 없었다. 아니, 저항해선 안된다. 구준회는 뜨거운 혀로 내 입 속을 농락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입술을 뗐고, 메마른 시선으로 날 한참 바라보다가 룸을 나섰다.
구준회가 찾아온 지 한 달 째였다.
*
술집을 나서서 길을 걷는 나를 보는 시선이 깨끗하지 않다. 그리고 나는 그 시선이 억울하지 않다. 진한 화장에 딱 달라붙는 옷을 입은 내 모습은 '나 술집에서 일하는 여자에요' 라는 꼬리표를 질질 끌고 다니는 듯 했고, 그 꼬리표를 인정하듯이 나는 화류계 여자였다.
지나가는 남자들의 음란한 시선과 지나가는 여자들의 혐오스러운 시선을 받아내는 것이 내 일상이었다. 내게 다가오는 남자가 늙은 노인네던 젊은 영계던 그 누구도 받아들여야 했고 심지어 레즈비언까지 상대하기도 했었다. 거절해선 안됬다. 그들은 모두 내 생계를 이어줄, 돈줄이었다. 구준회를 만나기 전까진.
*
구준회를 만난 건 한 달 전이었다. 연예 기획사 간부들의 회식이 있다는 소식에 마담은 가장 큰 룸을 준비했고 우리들을, 나와 같은 일을 하는 화류계 여자들을 잔뜩 줄 지어 세워놓고 사람을 골라냈다.
"못생겼어."
"넌 뱃살 좀 빼라. 쪽팔리지도 않니?"
"관리 안하니? 피부가 이게 뭐야."
"넌 너무 늙었다 얘"
새빨간 루즈를 덕지덕지 바른 마담의 입술은 끊임없이 열리며 독사처럼 우리들을 물어댔다. 몇 명은 화가나서 술집을 그만둔다고 하기도 했고, 몇 명은 흐느끼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그래도 마담은 누락된 애들에게 아무 관심도 갖지 않고 진한 눈화장을 한 눈을 더욱 매섭게 치켜세웠다.
한 명 한명 걸러내던 마담의 눈길이 내 멈췄고 나를 아래위로 쭉 훑었다. 사람이 아닌 상품을 보는 듯 한 눈길에 온 몸에 소름이 돋아왔다. 마담은 손을 뻗어 내 옷가지를 잡았고 나를 한 바퀴 돌렸다. 빙글 돌아간 나는 초조한 눈을 애써 숨기며 마담의 입이 날 물어댈까 하는 생각에 입술만 깨물었다.
"입술 깨물면 어떡해. 예쁜 입술 망가지잖니"
내가 누락될 거라는 생각과는 달리 마담은 나긋한 목소리로 날 불렀고 부드러운 손길로 내 팔을 끌어당기며 룸으로 데려갔다.
그리고 구준회를 만났다.
"안녕"
끝이었다. 나는 구준회 옆에 앉았고, 구준회는 내게 아무런 터치도 하지 않았다. 다른 회사 간부들이 내게 음흉한 손길을 내뻗으면 구준회는 쇼파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내 어깨를 감쌌다. 몇 몇 사람들의 침을 넘기는 소리가 귀를 스쳤고, 나는 구준회에 의해 그대로 룸을 나갔다.
*
구준회는 적지 않은 돈을 내며 날 만나면서도 키스 이상의 행위를 취한 적은 없었다. 내게 폭력을 가하지도 않았고 성적인 모션을 요구하지도 않았다. 그저 술잔만 내밀다가 허리를 감쌌고, 입을 맞춘 뒤 한참 나를 바라보다가 룸을 나섰다. 그리고 그것이 한 달째 반복되다가 구준회의 발걸음이 끊겼다.
"000, 1번 룸으로 들어가 봐."
구준회일까, 하는 생각으로 룸의 문을 열었다. 하지만 룸 안에는 구준회가 아닌, 중년의 남자가 두꺼운 안경 너머로 더러운 눈빛을 흘려대고 있었다.
"이리 와."
구준회가 아니었지만, 상대해야 했다. 내 손님이니까.
남자가 내 허벅지로 손을 뻗어왔다. 물컹한 손길이 허벅지를 쓰다듬는 기분나쁜 느낌에 몸을 움츠리자 남자의 낯빛이 바뀌었다. 아주 빨갛게.
"내가 더럽냐?"
"너, 내가 더러워?"
"시발년아. 내가 더럽냐고!"
아니라고 말 할 틈도 없이 남자의 손이 올라갔고, 그와 동시에 룸의 문이 열렸다.
구준회였다.
"000, 나와."
남자는 어이가 없다는 듯 구준회를 바라봤고 구준회는 아무렇지 않은 듯 내 앞으로 걸어와 내 손목을 잡고 끌어당겼다.
"넌 뭐야!"
남자가 언성을 높혔고 구준회는 정장 안주머니에서 돈 뭉치를 꺼내더니 남자에게 던졌다. 남자는 구준회를 한참 바라보다 돈 뭉치를 잡아들더니 눈대중으로 계산을 했는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고는 룸을 나갔다.
"000"
구준회의 입에서 나온 내 이름이 달큰했다. 나는 혀로 입술을 한 번 축인 뒤 대답을 했고, 구준회는 나를 한참 바라보다가 내 흘러내린 머리를 뒤로 정리해 주며 조금 쌉쌀한 듯 하면서도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00아"
"이제 이런 일 하지 말고,"
"나랑,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