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호 끝나고 돌아다니면 벌점이야.”
“선배도요.”
“거기서 뭘 하고 있었던 거야?”
“선배는 왜 나와 계셨어요?”
“……잠깐 회의가 있었어.”
“이 늦은 밤에요.”
늦은 밤. 달빛이 창문으로 쏟아져 내리는 와중에 병동을 온 이유는 방금의 일 때문이었다. 아무리 밤에 금지된 외출을 했더라도 쓸리고 구른 상처를 못 본 척 할 수는 없었는지 윤기는 희완을 병동으로 데려다 주었다. 거기다 쇳소리 나는 기구들 사이에서 이것저것 찾아와 희완이의 팔다리에 이것저것 바르고 붙이며 말했다.
“뭐가 궁금해서 계속 물어보는 거야?”
“그냥, 뭐든 깊게 파고들지 않으면 아무것도 모르게 될 것 같아서요.”
일기장을 더 이상 보지 않기로 한 사람 치고는 조금 모순된 말이었고, 시아와 아이들 사이를 깊게 파고들지 못 한 사람 치고는 화풀이에 가까운 말이었다. 희완이는 고개를 숙였다.
“거즈는 내일만 갈아주면 될 거야. 바로 낫는 약은 폼프리 부인이 가지고 있으니까 내일 와서 발라달라고 해.”
폼프리 부인은 물론이고 환자도 없어 텅 빈 병동에 윤기의 목소리가 조용히 퍼졌다.
“근데 선배. 저 하나만 더 물어봐도 돼요?”
“뭔데.”
“그때, 방학 직전에 말이에요.”
불꽃놀이 하던 날. 여기서 마주쳤잖아요.
“그때 병동에 나밖에 없었는데.”
윤기는 저것이 완벽한 질문의 형태가 아님을 느꼈다. 반 정도의 확신과 반 정도의 의문은 물음표만 붙이면 질문이 된다. 그러나 그마저도 붙이지 않고 온점을 찍었다면, 글쎄.
“누굴 만나러 왔던 거예요?”
그렇다면 윤기는 답변의 형태로 말을 내놓아야 할까, 도리어 물음표를 찍어 보내야 할까.
“너.”
“…….”
“너 보러 갔었어.”
윤기는 답변의 형태로 말을 내놓았으나.
“많이 다친 것 같아서.”
“일면식도 겨우 있는 후배가 걱정돼서요.”
“아니.”
그 뒤에 또다시 새로운 물음이 올 수밖에 없는 답을 내놓았다.
“넌 날 이곳에서 처음 알았겠지만, 난 아니야.”
이것은 완전한 답변의 형태일까, 혹은 또 다른 회피의 일종일까.
“난 거의 평생 동안 널 알고 있었어, 희완아.”
윤기는 이것을 완전한 답변이자, 완전한 회피라고 생각했다.
호그와트; 일곱 개의 호크룩스
48.
윤기가 말한 회의는 저녁시간에 이뤄졌었다. 학생회실에 모인 그리핀도르, 래번클로, 슬리데린, 래번클로 학사장과 학생회장 사이에 윤기는 없었으나 회의는 진행되고 있었다. 윤기는 더 이상 부회장이 아니었으니. 하지만 윤기를 대신해 자리에 앉은 이는 있었다. 누구의 눈에도 보이지 않고 움직일 수 있는 마법의 검.
“마지막 안건은, 본관 9층과 10층을 잇는 복도에 결계를 친 흔적이 발견된 일이야.”
여러 안건들을 오랫동안 이야기한 후 회의도 어언 끝이 보일 때, 시완이 입술을 축이며 말했다.
“결계마법이야 교내사용이 금지된 마법도 아닌데 문제가 되나?”
“하지만 결계 안쪽에서 악의 기운이 발견됐다면 말이 달라지지.”
“악의 기운? 그게 정말이야?”
지은이 놀라 되물었다.
“미약하지만 그 기운이 발견된 건 맞대.”
“악의 기운이면, 어둠의 마법을 썼단 말이야?”
석진의 말에 시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건 우리가 아니라 교수님들이 해결해야 할 문제 아냐?”
“사실 이 안건은 공식적인 안건은 아니야. 우연히 조사현장을 지나면서 알게 된 사실이거든. 교수님들은 모두 알고 계셔. 학생들만 모르고 있지.”
남준은 인상을 찡그렸다. 교수 선에서 처리해야 할 일이 분명했지만 이것은 모두가 모르고 있기에는 꽤나 큰일이기 때문이었다. 학생들의 안전과 안정 모두를 챙기기 위한 어른들의 결정임은 알고 있으나, 남준은 학생들 모두가 위험성을 알고 스스로 조심하게 만드는 것이 더 나은 방도라 생각했다. 그 생각에는 지민도 동감이었으나 섣불리 나설 수 없었다. 저 또한 희완이에게 모든 것을 말해주지 않고 있으니.
“흔적이 발견될 정도면 한두 번 있었던 일은 아니란 건데…….”
“일단 결계마법은 1학년 2학기 때 배우니까 1학년은 배제. 결계의 정도를 봤을 때 숙련된 마법사야. 교수님들이 하는 말로는 슬리데린일 확률이 높다고 하던데.”
시완이 슬리데린 학사장을 돌아보며 물었다.
“박경리, 짐작가는 사람 있어?”
지민 또한 그녀를 돌아보았다.
“……결계는 마법은, 민윤기가 제일이긴 한데.”
지난 경기장에서 보았던 익숙한 얼굴. 머릿속에 온통 울리는 경고음에 생각하기를 관뒀었던 그 얼굴. 지민은 실소를 터뜨렸다. 화가 나다 못해 웃음이 났다. 어떻게 호그와트에 하나같이 이런 인물들이 붙냐는 말이다. 대체 전생이 뭐길래. 나인. 네가 호그와트 슬리데린으로 환생했냔 말이야.
“너 지금 민윤기를 의심하는 거야?”
지민이 경리를 노려보는 동안 지은 또한 경리에게 쏘아붙였다.
“너도 알잖아. 결계마법은 민윤기를 능가할 사람이 없다는 거. 적어도 호그와트 내에서는.”
“그래도 악의 기운이 발견됐다는데. 민윤기가 그런 짓을 할 이유가 없잖아!”
“다들 그만. 앞서 말했듯이 이 안건은 공식적인 안건이 아니야. 교수님들 선에서 비밀리에 진행되고 있는 일이니 우리도 이 안에서 이야기를 끝내야 해.”
더 이상 언성 높이지 말잔 말이야. 시완이 차분하게 상황을 정리했다. 지민은 이 모든 것들 보고 들으며 생각이 많아졌다. 지민은 그 결계의 범인과 그 기운의 주인을 알았다. 하지만 마냥 흥미롭게 방관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이 모든 일의 시초에는 희완이 얽혀있기 때문이었다. 지민이 바라는 것은 희완이 전과 같은 일을 겪지 않고 평화롭게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희완이에게는 이미 너무 많은 인연들이 닿았다. 태형과 지민 자신, 심지어 환생한 나인까지. 전생의 저를 죽인 사람부터 죽게 만든 사람. 이 정도면 누군가 희완이에게 벌을 준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어쩌면 호크룩스 마법 때문일지도 모르지. 지민은 어디서부터 어떻게 개입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모든 게 복잡하게 얽혀있었다. 해서 개입한다고 한들, 제가 원하는 대로 흘러갈지도 미지수였다.
“회의 중에 미안한데.”
“교, 교수님.”
“여기서 나오면 안 될 이야기를 들은 것 같아서.”
“교수님. 이건 지극히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
“알아요. 학생회의 입단속이나 벌을 위해 온 게 아니니까 걱정 말아요.”
지민은 여전히 경리를 노려보며 생각했다.
“그래서……”
김태형. 네가 뭘 하고 있고 뭘 원하든지.
“호그와트의 제일가는 결계마법사가 누구라고요?”
절대로 네 뜻대로 되게 하지 않을 거라고.
“너 때문에 민윤기가 불려갔잖아.”
“죄가 없다면 금방 풀려나겠지.”
회의가 있고난 다음 날. 점심시간에 윤기가 교수님들과 상담이 있는 동안 학생회실 앞에는 지은과 경리가 앉아 있었다. 지은의 날이 선 말에 시큰둥하게 대답한 경리는 무릎 위에 놓인 책을 넘겼다. 지은은 그런 경리를 보고 부아가 치밀었다.
“너, 대체 민윤기한테 왜 그래? 쌓인 게 있으면 대화로 풀 것이지, 전부터 조잡하게.”
“너야말로 민윤기 일에 왜 이렇게 민감해?”
“네가 지랄 맞은 거라고는 생각 안 해?”
“너 때문에 민윤기가 부회장 사퇴했다고 생각해서 그래? 미안해서?”
“……뭐라고?”
“꿈도 커. 고작 너 하나 때문에 그랬을 거라고 생각하다니.”
“야, 박경리.”
“너네 뭐하냐.”
혹자가 들으면 지난 시간동안 경리와 지은, 윤기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해 할 대화였다. 순식간에 굳어진 지은의 얼굴은 학생회실 문을 열고 나온 윤기가 아니었다면 꼭 무슨 일이라도 벌였을 것처럼 차분하게 고조돼 있었다.
“봤지? 죄가 없으니까 풀려난 거 아냐.”
경리는 읽고 있던 책을 윤기에게 던지듯 넘겨준 뒤 학생회실로 들어갔다. 지은은 남은 점심시간 동안 이어갈 회의가 암담했다. 지금 기분으로는 회의는 물론이거니와 수업도 제대로 듣지 못 할 것이 뻔했다. 지은은 덜 닫힌 문 틈 사이를 노려보다 발길을 돌렸다.
“회의 안 해?”
“안 해.”
“그러다 잘린다.”
윤기가 지은 뒤를 따라가며 말했다.
“안 잘려. 내가 너처럼 회의 참석률이 들쑥날쑥이었는 줄 알아?”
“엄연히 말하면 난 내 발로 나간 건데.”
계단을 내려가다 멈춘 지은은 고개를 훽 돌려 윤기를 돌아보았다. 손에 들린 것은 교과서였다.
“걘 아직도 네 책 빌린다니?”
“내 책이 깨끗하잖아. 필기도 없고.”
“……말 나온 김에 하나 묻자.”
지은은 윤기가 천천히 넘기는 책장에 시선을 둔 채 말했다.
“왜 사퇴했어?”
“…….”
“그래, 순순히 말 안 할 줄 알았어. 그럼 그 이유, 임시완은 알아?”
“대충은.”
“……그럼.”
지은은 윤기의 손에 팔랑팔랑 넘겨지는 책장이 시간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저렇게 해서라도 시간을 돌릴 수 있다면.
“네가 사퇴한 이유에 내가 없다는 거네.”
이런 쓸데없는 죄책감 같은 건 가지지 않아도 됐을 텐데.
“다행이다.”
언제 인상을 썼냐는 듯 지은은 누그러진 표정을 지으며 계단을 마저 내려갔다. 윤기는 그 뒷모습을 가만 바라보다 책을 든 손을 아래로 내렸다. 시완이 대충 안다는 말에 안심하는 이유는 한 가지였다. 시완이 전부 알 거라고 생각한 것이었다. 그리고 모두가 아는 하나의 사실.
“이모는 천천히 회복 중이셔.”
“…….”
“완전한 회복이 되면 가장 중요한 증인이 되실 거야.”
지은의 이모가 뷔와 계약한 사실. 그리고 이를 마법부에 신고한 사람이 윤기라는 사실. 윤기는 제가 뷔와 관련된 일을 하는 것을 모두에게 숨겨야 했고, 우연히 지은의 이모를 보고 신고한 것처럼 연기해야 했다. 뷔와 계약한 사람들을 더 늦기 전에 전담 팀에게 넘기는 것과 호크룩스를 찾아내고 뷔의 과거를 캐는 것이 윤기가 하는 일이었다. 모든 것은 부모님으로부터, 그리고 희완으로부터, 모든 걸 잃고 홀로 남은 제 자신으로부터 시작한 일이었고 후회는 없었다. 하지만 특수병실로 옮겨지는 여자를 부르짖으며 얼굴도 보지 못 하고 헤어진 지은을 보고, 윤기는 죄책감을 가졌다. 그리고 그 죄책감은 지은도 아는 것이었다.
“알아.”
“나는……”
“네 선택이 옳은 선택이었다는 거 알아. 나였어도 너처럼 행동했을 거야. 근데 내가 너한테 도리어 미안하고 화나는 건. 네가 그 일 때문에, 내 얼굴 보기 껄끄러워서 학생회를 나갔다는 생각이 자꾸 들어서 그래.”
“…….”
“박경리가 그러더라. 고작 나 하나 때문에 민윤기가 그랬을 것 같냐고. 나도 알아. 너는 누구라도 했을 일을 했어. 처음부터 우리 이모를 신고하기 위해 따라다닌 게 아니라는 것도. 그랬다고 한들 내가 할 말은 없어. 이모가 지은 죄는 크니까. 아마 네가 학생회를 나간 이유도 비슷한 이유겠지. 근데 나는 그냥, 그냥……”
윤기는 말을 않았다. 지은의 주먹 쥔 손이 작게 떨렸다.
“하. 그냥, 요즘 네 얼굴 보기 힘들어서.”
내뱉듯이 던진 말에는 공허함과 허탈함이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우리 되게 오랜만에 만나는 거 알아?”
“……이지은.”
“다 끝난 얘기 또 하는 것도. 이런 일 아니면 이렇게, 얼굴 보는 거 힘들어서 그런 거야. 그러니까.”
나 피하지마. 지은의 말이 계단참을 울렸다. 저 아래층에서는 점심시간을 즐기고 있을 학생들의 목소리가 작게 음영졌다. 누군가가 친구를 부르는 소리, 책을 두는 소리, 신발을 끄는 소리, 마법 연습을 하는 소리, 운동을 하는 소리……. 윤기는 그 소리 끝에 선명히 들리는 목소리가 천천히 들어차는 것을 느꼈다.
“피한 거 아니야.”
“피한 거 아니면 안 피하는 척이라도 해. 일부러라도 얼굴을 비추란 말이야.”
“…….”
“무슨 일이 있었는지, 네가 정말 범인인지도 아무것도 묻지 않을 테니까. 나 큰 거 바라는 거 아니잖아.”
“그래.”
윤기는 그 소리를 영원히 간직할 수 없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이 또한 지킬 수 없는 약속임을 알았지만 입을 열 수밖에 없었다.
“자주 나올게.”
“…….”
“이미 용의자로 지목돼버려서 자주 볼 수밖에 없을 거야.”
“너 아닌 거 알아.”
“교수님들은 모르잖아.”
빙긋 웃는 얼굴에서 지은은 지키지 못 할 약속임을 알았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책장이 움직였다. 시간이 돌아가기라도 하는 듯한 기분도 들어 마냥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겠어. 지은의 속마음이었다. 지은은 목이 고장 난 인형처럼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약속 지켜.”
실없는 말이 지켜지기를 바라며.
전교회장: 임시완
전교부회장: 공석 (전 민윤기)
래번클로학사장: 김남준
그리핀도르학사장: 김석진
슬리데린학사장: 박경리
후플푸프학사장: 이지은
지각지각 대지각~!~! 이번주 안에 꼭 데려올게요 해놓고 그다음주 첫날인 오늘 데려와버리기 굉장히 짜릿하군요. 다음부턴 이런 일이 없도록... 세이브 원고를 빨리 만들어야겠어요..(이마짚)
지민이 움짤이 안 나와서 읭 지민이가 여기 어딨단 거야 하는 느낌이 들었을 수도 있겠네요. 단지 대사가 없어서 안 넣었을 뿐.. 회의실 안에는 아무도에게도 안 보이는 상태로 있답니다. 오늘은 설명할 게 좀 있네요. 우선 윤기랑 지은이 일부터 풀어보자면.
지은이네 이모가 뷔랑 계약을 했어요. 근데 계약한다고 바로 뷔한테 영혼 뺏기고 힘 쓸 수 있고 그런 게 아니라 서서히 되는 거라서, 초장에 잡으면 일방적으로 계약을 끊어서(위험하지만) 혹은 영혼을 강제로 회수해와서(마찬가지로 위험하지만) 최대한 원래대로 돌려놓을 수 있어요. 이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죽었답니다. 어차피 죽은 거나 마찬가지인 거지만,, 그 사람들 중 한 명이 지은이네 이모였고, 그걸 본 윤기가 마법부에 신고를 했어요. 윤기는 처음에 몰랐지만 후에 지은이네 이모였던 걸 알고, 지은이가 슬퍼하는 걸 보고 일말의 죄책감을 가지게 돼요. 옳은 일을 한 거지만 친구의 가족을 잃게 만든 셈이니까요. 이 일은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라 경리가 언급하기도 합니다.
지은이는 윤기가 자신에게 미안해하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 뒤 윤기가 사퇴한 일이 자기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가지게 돼요. 위에 설명한 '쓸데없는 죄책감'이 이에 해당합니다. 어쨌든 그래서 여기까지 오게 되었구요. 지은이는 아직 윤기가 무슨 일을 하고 다니는지는 모른답니다.
그리고 드디어 슬리데린학사장이 공개되었네요. 1부 마지막 즈음에 지민이가 슬리데린 관중석을 보고 웅앵웅 했던 것 기억 나시련지요. 거기서 언급한 사람이 경리였답니다. 무려 보바통 131대 교장 나인의 환생인이죠. 지민이가 열받을 만 하지유?
노파심에 말씀드리자면 아직까지 경리가 여주에게 직접적인 해를 가할 일은 없습니다.
설명이 겁나 길었네요. 이만 줄이도록 하겠습니다.
이제 더위가 한 풀 꺾이고 가을이 오려나 봐요. 이러다가 또 더워지면 화날 것 같지만 안 그러길 바라야죠. 저는 또 이번주 안에 다시 오겠습니다. 세이브 원고가 많아지는 그날까지..☆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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