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only :: - 파워FM 구준회,그대의 night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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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살아가다보면 놓치고 살아가는 것들이 정말 많죠. 자신의 주위 지인들부터
잘 오지 않을 것 같은 기회, 뭐.. 사랑하는 사람까지도 한순간에 놓치는 순간들이 오죠.
오늘 사연은 '놓치고 살아가는 것'을 주제로 받아보려 합니다. 아주 사소한 것들도
괜찮습니다. 예를 들면 몇 년만에 이사한 집을 정리하는 도중에 사라진 소중한 물건에
대한, 이런 사소한 사연도 포함이니까요. 많은 사연 보내주세요. 저희는 노래 듣고 오겠습니다.
윤하의 home"
잔잔하게 울리는 음악, 약간의 잡음에 __은 라디오를 두어번 충격을 가했다.
툭 툭, 언제쯤 말을 들으려나. 선반 위에 올려진 꽤 오랜시간 함께한 낡아빠져 이리저리 긁혀진
자국 가득한 라디오를 팔짱 끼고 바라보던 그녀는 손에 쥐었던 수건을 잠시 바에 올려두곤 선반 맞은 편
의자를 끌어다 앉았다. 음악을 채우는 드럼연주에 차차 기분이 맑아지던 차,
음악이 멎었다. 바를 채우던 그녀가 원하던 편안한 분위기가 깨지고 대신 그녀의 귀에 너무도 익숙한
휴대폰 벨소리가 바 안을 울렸다.
"여보세요"
"미팅 아직 안나갔냐? 빨리 가서 기다리라니까"
"아 진짜, 너 때문에 분위기 다 망쳤네. 네가 가게 마저 치워라.
넌 어떻게 내가 라디오를 들을 때만 골라서 그렇게 전화를 하나"
"또 구준회 라디오 들었나보네, 어차피 녹음본 아무때나 들을 수 있으면서
짜증은.. 미팅 잘 끝내고 와"
한빈의 전화가 끊기자마자 라디오에 연결해두었던 선을 꼽아 서랍에 넣고 그녀는
직원 탈의실로 향했다. 언제나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라디오를 듣고 있을 때면 전화로
흐름을 끊어놓는 한빈에 오늘도 인상을 찌푸리고 __은 락커를 열었다.
아 정말 김한빈 수신거부를 해놓던가 해야지.
***
"추가 계약 시 이 번호로 연락 주시면 됩니다. 저희 업체 물품은
아무래도 다다음주부터 들어갈 것 같구요, 그때 연락 한 번 더 드리는 걸로 하겠습니다"
"아, 네."
"전에 계약하셨던 그 남자 분이 오실 줄 알고 좀 강한 와인으로 준비했는데,
여자 분이시고 소믈리에라 하시니 긴장 좀 됐네요"
"이정도면 꽤 괜찮은 맛인 것 같아서 전 만족스럽네요. 그럼 먼저 일어나겠습니다"
형식적으로 일어나 문을 열어주는 관계자와 인사를 나눈 후 지끈거리는 머리를
누르며 __은 밖으로 향했다. 꽤 비어있던 와인병 오늘 장사는 한빈의 몫으로 돌려야 겠다.
후끈하던 기운은 빠르게 공기 중에서 흩어져 사라지곤 어느새 추위로 오들오들 떨리는
몸에 그녀는 손목을 들었다. 어엿 열두시를 향해가고 있었다.
"아 라디오 놓쳤네"
***
"이제 와? 전화하지, 데릴러 가는데"
"한창 피크인 시간인데 어떻게 전화 해. 택시타고 왔어, 나 좀 쉰다"
"휴게실로 담요 가져다 줄게, 소파에 누워 있어"
한빈의 말에 답할 새도 없이 닫힌 휴게실 문에 한빈은 "저 무뚝뚝한 기집애.."라며
칵테일 잔을 들고 중얼거렸다. 차갑게 엉겨붙어 버린 얼음을 집어먹으며 칵테일을 재촉하는
지원의 부름에 한빈은 그가 앉은 바 안쪽으로 향했다.
담요는 좀 이따 갖다주던가 해야지.
"너보다 방금 들어간 그 분이 더 잘하지? 왜이렇게 느려터졌냐"
"조용히 해, 근데 구준회 얘는 엄청 취했네. 네 와인 얘가 마셨어?"
"응"
"너 구준회 어떻게 데리고 가게 그러냐. 그리고 얜 왜 또 페이스 조절 실패고"
지원은 모른다며 손사래 치고는 한빈이 내민 칵테일을 마저 들이켰다.
졸린 건지 머리가 지끈거리는지 힘겹게 일어나는 그를 조용히 바라보던 두 사람은
시선을 거두고 대화의 집중했다. 혼탁한 기 도는 도수 높은 술을 거의 혼자 비웠으니
속이 말이 아닐테니 말이다.
셔츠 윗단추 두어 개를 풀어내며 한빈을 부르는 소리에 그는 턱짓으로 화장실의 위치를 가르켰다.
비틀거리는 발소리가 조용한 복도에 잔잔하게 울렸다. 아 죽겠네.. 속 아프게
시원하게 흐르는 물에 입가를 적셔 닦고 나온 화장실, 그는 다시 들어온 바에 한빈을 불렀다.
"담요 줘"
"갖다 주게?"
"어, 휴게실 어디야"
"저기서 왼쪽으로 꺾어서 들어가면 있다, 여기 담요
정 속이 거지같으면 너도 쉬다 나오던지. 이따 깨워줄게"
"어"
그가 고개를 끄덕이고 휴게실로 향해 사라지자마자 한빈은 지원이에게 넌지시 질문을
던졌다.
"쟤 진짜 무슨 일 있냐?"
"그런 거 있을 얘냐"
*
"후.. 김한빈 또 까먹었어"
무릎을 끌어안고 고개를 묻은 __ 옆으로 느껴지는 사람의 인기척에 그녀는
고갤 들었다. 고개를 젖히고 눈을 감은 남자, 중간 중간 미간을 좁히고 찡그리는 표정
붉고 도톰한 입술. 구준회였다.
"......"
움츠렸던 허리를 펴고 완전히 몸을 틀어 그를 바라보았다.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사람이
구준회다, 잠결에 그가 무심코 마구 헤집어놓은 앞머리에 정리해줄까 하다 허공에 멈춰버린
손. 나 뭐하는 거지 지금.
"..잠깐 눈만 붙이고 갈게요"
옆에 누운 이 남자도 느껴질 정도로 움찔했다. 놀랐다, 그의 목소리에.
뭘 한 것도 아닌데, 급히 손을 내리고 몸을 약간 두르뭉실하게 움직여 그와 사이를 벌리고
다시 무릎에 고개를 묻었다.
자꾸 내 옆에 이 남자가 눈이 가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