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바라보는 김진환의 표정이 싸늘했다. 김진환의 주위에 보랏빛 한기가 맴돌았고 김진환의 두 눈동자는 분노에 이글거렸다. 깨물던 입술을 매만진 김진환은 여유를 부리듯 구두 굽으로 바닥을 탁탁 쳐대는 나를 보며 한숨을 쉬고는 입을 열었다.
"선택해. 나랑 헤어지던가, 그새끼랑 헤어지던가."
내게 화를 내는 김진환은 미치도록 섹시했고, 매혹적이었다. 김진환은 눈을 감고는 입술을 깨물더니 나를 바라보곤 다시 입을 열었다.
"그 새끼랑 헤어져."
김진환은 나를 소유하고 싶어했다. 그리고 나는, 그 누구의 소유물도 되고싶지 않았다. 어쩌면 김진환은 내게 그저 평범한 사랑을 바란 것 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지독하게 이기적이어서 그 부탁을 들어주지 않았고, 무엇보다 김진환을 내 아래에 두고 싶었다. 많은 개를 기르는 주인, 그 주인에게 충성하는 강아지. 얼마나 감동적인 한 폭의 그림일까.
"내가 왜?"
"씨발, 미쳤냐, 너?"
나를 죽일듯이 노려보는 김진환의 눈에서 독기가 뿜어져 나왔다. 이를 악물고 소리치는 꼴이 꽤 재밌어서 고개를 삐딱하게 뒤로 젖히곤 손가락을 뻗어 김진환의 가슴팍을 톡톡 쳐댔다.
"아니, 멀쩡해. 미친건 너잖아. 아냐?"
내 말에 김진환이 허, 하곤 바람빠진 소리를 내더니 내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가깝게 가져다 대었다. 또렷하게 마주친 두 눈에 비친 내 모습이 선명했다. 너는 이렇게 날 담고있단 말이야. 한 시도 뺴놓지 않고. 그래서 네가 나한테 안 된다는 거야, 넌 나를 절대 못 이겨. 그나저나 향수 냄새 좋네. 향수 바꿨나봐?
"진환아, 무슨 향수 써? 향수 바꿨나봐? 냄새 좋네."
맞다, 나 네일 새로 했는데. 볼래? 하며 손을 내밀자 김진환은 어이없는 듯 작은 탄성을 내뱉으며 신경질적으로 제 머리를 쓸어넘겼다.
"이 상황에, 참 속 좋네."
"그거 칭찬이지? 고마워."
"그리고 나 향수 안바꿨어."
"그래그래, 알겠어"
역시 나 칭찬해주는 건 진환이밖에 없다니까, 하곤 웃어보이자 김진환은 무섭다 너. 라며 중얼거렸다. 김진환은 한숨을 푹 내쉬고는 자켓 안주머니에 손을 넣더니 자신의 휴대전화를 꺼내 내 눈 앞에 들이밀었다. 화면 속에는 진하게 입을 맞추고 있는 나와 다른 남자의 모습이 담겨져 있었다.
"이게 뭔데?"
"다 알고 있잖아."
내게 내뱉는 김진환의 말들은 딱딱했다. 김진환에게 내뱉는 내 말도 딱딱했다. 우리가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은 날카롭고, 차가웠다. 나를 내려다보는 김진환의 눈빛엔 살기가 가득했지만 그 속에서 지친 애정이 꿈틀대고 있었다.
"너도 다 알고있지 않아?"
내 물음에 김진환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휴대폰을 주머니에 우겨넣고는 담배를 꺼내물었다. 내게 마음에 들지 않는듯한 눈빛을 쏘아대는 김진환에게 라이터를 건넸다. 김진환은 라이터를 빼앗듯이 낚아채고는 담배에 불을 붙였다.
"다 알고 있는데, 변명할 기회를 주는거야. 너한테."
김진환은 천천히 말하는 듯 했지만 그 속내는 꽤나 초조하고 다급해보였다. 아무 말 없이 김진환의 타들어가는 담배 끝을 바라보고 있는데, 김진환이 입술이 또다시 열렸다.
"양심이 있으면, 제발 변명이라도 해봐 00아."
김진환은 이제 거의 애원하는 듯 했다. 그 꼴이 우습고도 귀여워서 어떤 말을 할까, 어떤 말을 하면 김진환이 더 주저앉을까 한참이나 생각했다.
"난 변명할 거 없어. 아니면 네가 나랑 헤어지던가."
"그걸 말이라고 해?
김진환은 답답한지 품에서 담배를 하나 더 꺼내물었다. 라이터를 들어 불을 붙이려는데 불이 잘 붙지 않자 김진환은 욕을 읊조리며 라이터를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라이터는 흰 연기를 내뿜으며 산산조각이 났고 찡한 가스 냄새가 코를 찔렀다.
"라이터가 너 담배 피지 말라고 하나보다. 몸에 안 좋아 진환아."
나는 꺄르르 웃으며 손뼉을 쳤고 그런 나를 보며 진환이는 미친년, 이라며 중얼거렸다. 이런 미친년에 미쳐 네 앞가림도 못 하는 건 너면서. 실제로 김진환은 내게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쳤다. 나를 바라보는 김진환의 눈동자에 내 인영이 흔들리고 있었다.
"울어?"
걱정이 묻어나게끔 들리도록 김진환에게 물었고, 김진환은 고개를 내저으며 손으로 자신의 두 눈을 가리곤 고개를 숙였다.
"00아"
김진환의 목소리가 아지랑이처럼 흔들렸다. 김진환이 부른 내 이름은 내 주변의 공기들을 갈랐다. 나는 대답 대신 김진환에게 가벼운 웃음을 흘렸다. 내 웃음은 허공에 발을 딛고 김진환의 목에 칼을 디밀었다. 그제서야 김진환은 내게 보였던 발톱을 숨기고 한껏 치켜세웠던 꼬리를 내렸다.
"제발, 제발."
"제발 나만 봐주면, 안 돼?"
김진환의 목소리가 울음에 잠겼다. 나는 말 없이 김진환에게 다가가 김진환을 품에 안았다. 나는 김진환의 머리칼을 쓸어내렸다. 손가락 틈으로 스치는 머리카락이 부드러웠다. 김진환의 앙다문 입술 틈으로 흐느낌이 연하게 새어나왔다.
"진환아, 나는 널 사랑해."
"그런데, 너 하나만은 아니야."
"내가 말했잖아. 난 못 한다고."
"그러니까, 선택은 네가 해. 진환아."
본격 카사 여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