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첫 날의 아침 햇살은 창을 타고 들어와 내 얼굴 위에서 바스라져 흩어졌다. 그 따스하고도 부드러운 눈부심에 눈이 떠졌고, 동시에 걸려온 김동혁의 전화에 거실로 나가며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전화기 너머로 푸흐, 하는 김동혁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김동혁의 웃음에 아침부터 귓가가 간지러웠다.
'지금 일어났어? 목소리가 잠겼네.'
"응, 지금 일어났어. 그런데 왜? 이른 아침부터."
'우리가 언제 시간 봐가면서 전화하는 사이었나?'
김동혁의 발언에 나는 물론이고 김동혁도 웃었다. 들려오는 김동혁의 목소리가 예뻤다. 아침부터 기분좋게 김동혁의 목소리를 들려주는 전화기가 기특하면서도 얼굴은 안 보여주고 목소리만 들려주는게 조금은 괘씸했다. 영상통화가 되는 걸로 바꿔야지.
'00아'
내 이름을 불러오는 김동혁의 목소리가 솜이불처럼 부들부들했다. 당장이라도 동혁이를 찾아가 얼굴을 마주보고, 손을 마주잡고 그 예쁜 웃음을 두 눈에 직접 담고싶었다.
"응, 동혁아."
내 대답에 동혁이는 보고싶다. 라는 말을 내뱉었고 그 말에 나는 나도. 라며 공감했다.
'오늘 만날까? 시간 돼?'
"나야 남는게 시간이지 뭐."
동혁이를 만난다. 서로 멀리 떨어져 사는 것도 아니고 가끔 만나 애간장이 타는 것도 아닌데, 동혁이를 만난다는 생각에 괜시리 가슴이 떨렸다. 오늘은 어떤 옷을 입을까, 화장은 어떻게 할까. 행복한 고민들이 머릿 속을 헤엄쳤다. 입술 틈으로 베시시 웃음이 새어나왔다.
*
"오늘 왜 이렇게 예뻐?"
김동혁은 나를 보곤 두 손으로 입을 가리며 눈을 크게 띄우곤 어머, 하는 시늉을 해 댔다. 그런 김동혁이 귀여워 볼을 꼬집자 김동혁은 내 손을 붙잡고는 자신의 자켓 주머니에 넣었다.
"오늘 춥대."
그러고는 자신이 하고있던 목도리를 풀어 내게 단단히 매어줬다. 목도리에서 동혁이의 향이 풍겨왔다. 은은한 게 기분이 좋아 흐흥, 하곤 웃자 김동혁은 그 예쁜 웃음을 지어보이며 내 어깨에 팔을 두르곤 걸음을 옮겼다.
"뭐 먹고싶은거 없어?"
김동혁은 나를 바라보며 물어왔고 나는 새해 첫 날에는 떡국을 먹어야 하는데, 생각하다가 동혁이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네가 먹고 싶은 거."
"예쁜 짓만 골라서 하지 정말."
김동혁은 내 볼을 쭉 잡아당기고는 자기가 맛집을 알아뒀다며 내 손을 잡고는 끌고갔다. 김동혁의 발걸음은 한 아담한 식당 앞에서 멈췄고 그 안으로 들어갔다. 눈에 띄지 않는 곳이라 그런지 찾는 사람들이 적어 한산했다. 원목의 인테리어들이 고급 레스토랑 못지않은 분위기를 뿜어내는 게 한 번 와본듯한, 익숙한 느낌이었다. 언제 와본 것 같기는 한데, 그게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한참 지난 기억을들 되새기며 이 식당에서의 기억을 찾고있는데 김동혁이 내게 말을 건네왔다.
"여기 기억 나?"
으, 역시. 동혁이랑 왔던 데구나. 김동혁은 눈을 한껏 빛내며 날 바라봤다. 그 눈이 내게 마치 기억난다고 해 줘. 라고 말하는 것 같아서 가슴이 벌렁댔다. 나는 음, 하면서 눈을 데굴데굴 굴리다가 김동혁을 보며 살풋 웃어보였다.
"기억 나지. 네가 여기서 고백했었잖아."
"4년 전 일인데, 기억하네?"
"당연하지."
내 대답이 흡족했는지 김동혁은 입꼬리를 씨익 말아올리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리를 잡아 앉았다. 그러고는 앞에 놓여진 메뉴판을 읽지도 않고 돈가스 두 개를 시켰다. 김동혁은 똘망똘망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재차 웃음을 터뜨렸다.
얼마 되지 않아 돈가스가 나왔고 김동혁은 제 앞에 놓인 돈가스를 열심히 썰더니 칼질을 버벅거리는 내 돈가스와 바꾸었다. 돈가스를 찍어 입에 넣고는 우물거리는데 김동혁이 그런 날 빤히 쳐다보더니 입모양으로 돼지. 라며 중얼거리고는 피실피실 웃었다. 나보며 돼지라던 김동혁은 나보다 먼저 돈까스 하나를 다 비워냈다.
"다먹었냐 돼지야, 니가 돼지네 아주."
김동혁은 툴툴대는 나를 바라보며 눈꼬리를 예쁘게 접었다.
"돼지라고 해서 삐졌어?"
아기를 달래듯 말하는 투에 기분이 알쏭달쏭해져 그냥 아니거든. 이라 대답했다. 김동혁은 고개를 숙이며 끅끅대며 웃다가 고개를 들곤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빨리 먹어, 나 할 말 있어."
"지금 말해도 돼."
돈까스를 우물거리며 지금 말하라고 하자 김동혁은 엄청 중요한 거라며 다 먹고나서 얘기할 거라고 찡찡댔다. 나는 세조각 남은 돈가스를 모두 입에 털어넣고 김동혁을 쳐다봤다. 김동혁은 날 한참 뚫어져라 바라보더니 한 마디 던졌다.
"다람쥐같아."
김동혁은 긴 손가락을 뻗어 내 볼을 쿡쿡 찔렀다. 나는 돈가스를 전부 삼킨 뒤 이제 말하라며 김동혁을 바라봤고, 김동혁은 큼큼, 하곤 헛기침을 해댄 뒤 나와 눈을 마주치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00아, 내가 4년 전에 여기서 너한테 고백했었잖아."
뜬금없이 꺼내는 4년 전 이야기에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우리 둘 다 참 풋풋했는데. 김동혁의 두 눈이 맑게 일렁였다.
"그리고 지금 4년이나 지났어."
김동혁은 자켓 안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 내 앞에 올려놓았다. 작은 반지케이스였다.
"우리 이제, 결혼하자. 너 후회 안 하게 할 자신 있는데."
우리 이제 결혼하자. 이 말이 아주 느리게 흘러갔다. 놀란 눈으로 김동혁을 바라보자 김동혁은 소리없이 웃어보이며 반지 케이스의 뚜껑을 열어보였다.
은빛 반지가 찬란하게 반짝였다.
"평생 행복하게 해줄게."
다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