찝찝하게 집으로 돌아온 찬열이. 더 달래줬어야 하는데 시간이 부족해서 다 못해주고 가서 많이 걱정 되는거. 그래서 그날 밤 이런저런 생각에 뒤척이다가 늦게 잠.
찬열은 꿈을 꿈. 자신이 고등학생때 다녔던 등교길임. 자신은 지금 교복을 입고 있고 하교시간인지 하나 둘씩 학교를 빠져나가고 있음. 야자를 마치고 오는 길이라 시간은 10시였고 꽤 어두웠음. 우르르 빠져나가고 신발장 센서가 켜지더니 입가랑 손등에 까진 상처들을 달고있는 종인이가 보여. 조용히 낡은 캔버스화를 우겨신고 가방을 고쳐 매. 나무 뒤에 숨어서 종인을 몰래 따라가는 찬열. 다리를 살짝 절뚝이며 교문을 빠져나가. 목도 안 아픈지 고개를 푹 숙이고 정말 느린 걸음으로 가. 찬열은 종인을 들쳐업고 집으로 데려다주고 싶지만 참기로 해. ㅎㅎ...
그렇게 한참 걷다가 멈춰서는 종인. 어느 집의 계단을 보더니 쭈그려 앉아. 그러더니 고양이 한 마리가 종인의 곁을 맴돌면서 애교를 부려. 그 고양이는 사람을 잘 따르는 고양이고, 이 주변에선 꽤 유명했어. 아무튼 종인은 고양이를 살살 만지면서 베시시하게 웃어. 입이 아픈지 살짝 찡그리더니 어색하게 입꼬리를 말아 올려. 한참 쓰다듬다가 일어서서 다시 집으로 가. 찬열도 또 따라가지. 10분 정도 걷다보니 종인이 드디어 집 안으로 들어가. 불이 다 꺼져서 종인 혼자만 사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 가족들 다 자고 종인은 신경도 안 쓰니까 다 꺼논거야. 무관심... 익숙하게 더듬으며 제 방을 들어가는 종인. 찬열도 같이 따라갔는데 방 안은 책상, 낡은 옷걸이, 이불이 끝인거야. 책꽂이에는 공책 몇 권과 파일, 그 흔한 동화책 하나도 없었어. 가방을 내려놓은 종인은 익숙하게 서랍을 열고 거의 다 쓴 후시딘을 꺼내. 그리고 옷을 갈아 입는데 상처에 옷들이 쓸려서 아픈지 인상을 찡그려. 꾸역꾸역 옷을 벗었는데 등, 가슴 옆구리가 알록달록해. 진한 건 아니지만 꽤 아파보였어. 아까 본 손등도 생각보다 범위가 넓게 까져있고. 겨우 꾹 짜낸 후시딘을 손등에 살살 펴바르곤 밴드를 붙이는 종인. 씻지도 않고 그대로 이불속으로 들어가서 눈을 깜빡거리더니 그새 잠에 빠졌어. 그대로 찬열은 꿈에서 깨어나고.
눈 떠보니 아침 11시였고 토요일이라 대학교도 안 갔어. 멍한 정신을 추스리곤 꾸물꾸물 나갈 준비를 해. 종인이 만나려고.
아직도 그 자리에 있을까. 사실 학교를 다시 찾아간다고 종인을 볼 수 있지는 않았어. 어디든 돌아다닐 수 있으니까. 혹시라도 버스를 타면 종인이를 못 볼까봐 40분이 걸리는 거리를 천천히 걸어갔어. 오랜만에 추억도 떠올릴겸. ㅎㅎ
10분, 20분 아무리 걸어도 종인은 보이지 않았어. 심지어 학교 입구에서도. 들어가도 되나 싶어 입구를 서성이며 살금살금 들어가는 찬열. 당연히 중앙현관을 비롯한 모든 곳이 다 막혔어. 이대로 허무하게 돌아가야하나 싶었는데 화단에 쭈그려 앉아있는 종인이가 보여. 굉장히 슬픈 얼굴로 흙을 살살 쓸고 있었어. 손으로. 2월달이라 아직 땅바닥도 차갑고 그늘진 곳은 아직 녹지도 않았는데 종인은 아랑곳 하지 않고 계속 쓸고 있었어. 궁금한 찬열이 종인의 앞에 다가갔어. 너 여기서 뭐해?
베시시 웃지만 눈은 웃고 있지 않았어. 그냥 히, 하고 입만 끌어 올려 웃는 정도. 또 왔네요 형. 인사를 건네곤 다시 흙을 쓸어. 그리고 다시 입을 여는 종인. 떨어지는데 되게 아팠어요. 조곤조곤 작은 목소리로 읊조리는 종인을 보며 찬열은 안타까워해. 보일락말락 하지만 종인이 쓰다듬는 손이 다른 부분보다 조금 빨개. 피가 묻은거지.
"종인아 왜 여기서 떠돌아다녀. 여기는 좋은 곳이 아니잖아."
'... 다른 곳엔 다른 사람이 있어서 안돼요.'
"집은?"
'... 보기 싫어요....'
유령들도 각자의 자리가 있어. (있다고 칩시다... ㅎㅎ) 유령 중에서도 기가 약한 종인은 떠밀리고 떠밀려서 구석까지 몰렸어. 그나마 안전한 곳은 집인데 집에 가면 엄마 아빠 동생의 모습을 볼텐데 그게 싫은거야. 사실 학교도 싫은데 그만큼 집이 더 싫은거지. 자기 빼고 잘 돌아가는 집을 보게 되니까. 그래서 결국 악몽밖에 없었던 학교에 남아 한을 풀지도 못한 채로 이곳에 떠도는거지. 유령이 되서도 아파하는 종인이... 종인은 화단에 쭈그려 앉아 희미한 자신의 사체를 봐. 그리고 아무도 달래주지 않던 자신을 자기 스스로 달래. 아프지 마, 하면서 볼이랑 손을 살살 쓰다듬는 거지. 이렇게 해서라도 위로를 받지 않으면 정말정말 불쌍해져 가만히 있을 수 없었어.
그런 종인이 안타까운 찬열이. 잠시 생각하다 자신의 집으로 데려가자고 생각해서 말을 꺼내. 종인아, 우리집 가자. 그 말에 벙찐 종인이. 이런 적은 처음이거든.
"잘해줄게. 외롭지 않게 해줄게.'
살아서 제일 듣고 싶었던 말 중 하나였어. 곁에 있어줄게, 뭐 이런거. 그 말에 홀리듯 잠시 멍 때리다가 금새 눈가에 방울방울 눈물이 맺히는 종인. 억지로 참으려고 했는데 잘 안되니까 입술 꾹 깨물고 소리없이 뚝뚝 울어. 피가 묻어 빨개진 손으로 눈가를 벅벅 문지르며 고개를 끄덕여. 지금 아니면 또 아주 긴 시간을 혼자 보내야 할 것 같아서. 그렇게 종인은 찬열이네 집에서 지내게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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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길어질듯 하네요. 허허.
읽어주신 분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