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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우정을 정리하고 연인으로 새롭게 발돋움한 우리는 비록 조금이지만, 세월이 무색하게도 잘 지내고 있다. 여전히 그 녀석은 날 살뜰히 챙기고 있고 나도 뭐 나름 그 녀석을 살뜰히 챙긴다. 우리는 대한민국 학생이라면 누구나 겪는다는 대수능도 무사히 치르고, 폭풍같은 고삼생활도 끝내며 20대의 새로운 시작을 앞두고 있다. 일년간 많은 일이 있었지만 생략하겠다. 그것이 어떤 것이라도 우리의 사이에는 변함이 없었기에. 우리는 심심하면 과거를 회상하고는 한다. 터닝 포인트였던 나의 고백, 그리고 그 녀석의 용기. 어쩌면 처음부터 삶을 살아가는데에 이정표가 되어준 서로였기에 우리는 시간과 관념에 구애받지 않는, 미지근하지만 끓어오르는 물이 될 수 있었다. 18살은 사랑을 하기엔 아직 어린 나이라고 다들 말했다. 그렇다. 우린 아직 다 미숙하고 어린 존재며 완전하지 못하지만, 서로가 있기에 완전해진다. 이제야 익숙해진 사랑이란 감정을 너와 나는 잘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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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 도대체 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어. " " 내 학교도 내 맘대로 못 가? " " 너 충분히 더 좋은 학교 갈 수 있잖아. 근데 왜 낮춰. 너 바보야? " " 좋은 학교 필요없어. 너만 있으면 될 것 같아. " " 와, 진짜…, 대단하다. 대단해. "
전정국은 요새 개소리를 즐겨하는 편이다. 쟤가 진짜 웬만하면 개소리는 잘 안 하는데, 최근 들어 좀 늘었다. 전보다 심각하게 능글 맞아졌기도 하고. 나는 미술 실기 전형으로 내가 원하는 대학에 붙었다. 정국이는 붙을줄 알았다며 나보다 더 뿌듯해했고, 얼마 뒤 미친 짓을 하기 시작했다. 내가 붙은 대학으로 하향지원을 하겠단 소리를 했다. 난 당연히 그 녀석의 등짝을 때렸고.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자세한 내막은 모르겠지만 그렇게 노래를 부르던 cc가 아마 주목적일 것 같다. 뭐 어쩌겠나. 자기가 그렇게 원하는데. 말을 들어보니 전정국네 부모님도 반대 같은건 추호에 하지도 않으신다고 하더라. 나는 체념하기로 했다.
" 과는? " " 체대 가야지. " " 아, 체대..? 아 맞다. 너 태권도 하지. 체대. 헐. "
나는 순전히 나 때문에 우리 학교를 지원하는거라고 굳게 믿고 있었지만 생각해보니 우리 학교는 미대 다음으로 체대가 유명했다. 나는 왜 그걸 미처 생각 못 했던거지. 전정국의 선택에도 나름 일리가 있었던거다. 그럼 걱정할 필요는 없는 것 같았다. 전정국은 태권도 특기생 전형으로 들어갈거라고 했다. 태권도 하는 체대생. 묘하게 어울리는게 슬핏 웃음이 났다. 공부를 꽤나 하는 녀석의 성적으로는 상위권 대학의 높은 과도 지원할 수 있었지만 오랜 꿈이라던 태권도를 놓을 수는 없었나보다. 나는 그냥 응원한다고 말했다. 이제 조금씩 성인이라는게 실감이 났다. 처음은 항상 어렵지만, 녀석과 함께 있다면 큰 문제는 없을 것 같다. 나는 언젠가부터 그 아이를 완전히 맹신하고 있었다. 사회적 위치에 변화가 오고 주위의 환경이나 모든게 격변하겠지만, 항상 말하듯이 나는 전정국과 함께라는 것에 의의를 두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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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 다 엄청난 쑥맥이라 보통의 연인들이 흔히들 챙긴다는 100일도 우리는 카운트 할 줄 몰랐다. 그게 뭐가 중요해? 지금 만나고 있으면 된거지. 둘 중 누구도 그런거 가지고 서운해 하지 않았기 때문에 200일도 300일도 자연스럽게 넘어갔다. 그러다가 무심코 발견한 내 다이어리. 내가 어리숙한 마음을 녀석에게 고백하고 둘이 만나 함께 관계를 정의한 날, 함께 찍은 폴라로이드 사진이 붙어있다. '4월 어느 날에' 라고 적혀 있는 그 폴라로이드 사진에는 누구보다 환하게 웃고 있는 둘의 모습이 있었다. 나는 침대에 걸터 앉아 그것을 한참동안 바라보다가 비로소 나와 정국이가 만난지 2년이 훌쩍 넘었다는 사실을 자각했다. 아 완전 나쁜 사람 같아. 2년이나 됐는데 이때까지 아무것도 안한건 너무 심했나 싶던 거다. 하지만 곧 그 생각은 관뒀다. 챙겨봤자 별 의미 없다는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아까 말했듯이 지금 잘 만나고 있으면 그걸로 된거라고. 그러다 문득 또 생각이 났는데, 내가 전정국을 처음 만난 그 날부터 연인으로 시작한 날을 거쳐 지금까지 녀석은 한번도 나에게 짜증을 내거나 화를 낸 적이 없었다.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라 생각 했기에 소중함을 몰랐지만, 주위 친구들의 연애사는 매번 평탄치 못한거에 비해 나의 연애사는 너무도 순탄하고 안정적이었다. 참 대단하다. 사람이 그 정도로 다정해도 되는지. 미련하다 싶을 정도로 나한테 지고지순한데, 좋으면서도 미안하다. 너무 애 성격을 죽이는게 아닌가 싶고. 내 친구들은 전정국이 나한테 완전 잡혀 산다고 말한다. 근데 또 그렇지는 않다. 나도 나 나름대로 화 잘 안 내는데. 오래 봐서 서로가 무엇에 화나고 지치는지 잘 알기 때문에 아예 그 싹을 만들지 않는 것 같다. 평범한 듯 평범하지 않은 보통의 연애. 어쩌면 가장 어려운 걸 우리는 너무도 쉽게 하고 있는 것 같아서 새삼 녀석에게 고마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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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살의 봄. 그것은 잔잔했지만 꽤나 스릴있었다. 녀석과 첫 키스를 했을 때의 일이다. 주말에도 고삼이라는 명분하에 독서실에 갔다가 저녁을 해결하고 집으로 가기 위해 버릇처럼 투닥대며 밤거리를 걷던 우리 둘은, 사람들의 시선에도 서슴치 않고 격렬하게 키스하는 커플 한 쌍을 발견했다.
" 와, 대박. " " 저게 가능해? " " 미쳤나봐. 야, 우린 절대로 저러지 말자. 민폐야, 민폐. "
그 모습에 넌더리를 치며 다시 길거리를 걷는데 묘하게 분위기가 이상했다. 우리 집으로 향하는 골목길에 들어서서야 우린 헛기침을 해댔고, 그 이유는 아무도 몰랐다. 진짜다. 모..몰랐다. 집 앞에 도착해서 난 전정국이 들고 있던 내 책가방을 건네 받았고 녀석은 늘 그랬듯이 내 머리에 투박한 손을 턱 하고 올려놨다. 끈질기게 맞춰오는 눈을 난 요리조리 피했다. 왠지 모르게 부끄러워 졌기 때문이었다.
" 부끄러워? " " ㅇ..아니. " " 아닌데? 부끄러운 것 같은데? " " 아니거든. " " 뽀뽀 해줄까. " " 뭐?! " " 예뻐서. "
그러더니 내 입술에 촉 소리나게 입을 맞췄다 뗀다. 나는 미쳤다며 녀석을 밀어냈지만 전정국은 끝까지 내 얼굴을 잡고 마구잡이로 뽀뽀를 해댔다.
" 아, 이게 왜 이래! 안 이러다가! " " 내심 바라던거 아니었어? " " 뭐, 내가?! 아니거든?! "
전정국은 한참을 소리 내서 웃다가 또 사뭇 진지해진 표정으로 내 살 오른 볼따구를 턱 하고 잡았다.
" 여자친구 해 줘서 고마워. " " 오글거려. " " 진짜 고마우니까. " " 응, 나도 고마워. " " 그게 다야? 넌 왜 뽀뽀 안 해줘. " " 너가 실컷 했잖아. 그걸로 끝! "
난 재빨리 핑그르르 돌아 가방끈을 잡고 현관문을 열었다. 야, 잘가! 내일 봐! 정국이가 어이 없다는 듯이 웃었다. 와, 대박 치사해. 그러고는 삐진 척 팔짱을 낀다. 하여간 애 같다. 그래, 내가 속는 셈 치고 뽀뽀 한 번 해준다. 나는 열었던 문을 놓고 우직하게 서 있는 그 그림자 앞으로 달려가 발을 들어 녀석의 볼의 입을 맞췄다. 찰나의 순간, 손목을 잡힌건 그 찰나보다 더 한 순간이었다. 녀석이 내 뒤통수를 받치고 입을 깊게 맞춰왔다.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키스 한 번도 안 해봤다더니 완전 대박 능숙하잖아? 웁웁 거리는 나를 못 들은 체 하고 전정국은 꽤나 오랫동안 날 붙잡고 있었다. 농염하고 짙은 키스가 아닌, 진심으로 우러나는 은애의 키스. 그것마저 다정해서 눈물이 날 뻔 했다. 몇 분간 입을 떼지 못하던 녀석은 아쉽다는 듯 반들반들한 내 입술에 몇 번이고 다시 짧게 입을 맞췄다. 나는 정신을 못 차리고 그저 전정국을 올려다 볼 뿐이었다.
" 잘 자. " " 너두. " " 얼굴 빨개졌어. " " 아, 쫌! 그런 말 하지마! " " 알겠어. "
끝까지 키득거린다. 나는 뒤로 천천히 걷는 정국이에게 끝까지 손을 흔들어줬다. 그 때 그 키스는 절대 못 잊을 것 같다. 내 첫 키스 상대가 쟤일줄은 몰랐는데. 아마 마지막 키스도 전정국일 것 같은 느낌적 느낌을 받았다. 좋네, 뭐. 아직도 두근두근. 그 모습이 사라질 때 까지 손을 흔들다가 떨리는 맘으로 방에 들어왔었다. 첫 키스. 그 단어를 두어번 곱씹어 보았다.
과거를 회상하는 것은 나에게 매우 흔한 일이지만 그 때 생각만 해도 웃음이 나는건 너와 함께 있어서 그런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2년 전 어린 맘으로 했던 첫 키스도, 이제는 자연스럽게 나누는 키스도, 포옹도. 모두 다 나에게는 새로운 떨림이라는 걸 너는 알까. 앞으로의 우리는 어떨지 감히 예상할 수는 없지만 생각보다 훨씬 더 달콤하고 기분 좋을 것 같다. 고맙다. 네가 내게 해준 모든 것에 대해, 주지 않은 것에 대해서도. 우리의 시작은 미약했지만 끝은 비로소 완전해지기를. 네가 옆에 있어 주어서 나는 오늘도 오늘 하루를 기분 좋게 기억할 수 있다.
다시 봄이 오면 너는 또 봄일까, 정국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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널 만난 후로 나에게 사계절 같은 건 없었어. 내 속에 네가 들어와 뜨거운 꽃을 심었던 옅은 봄, 그리고 그것이 만개해 꽃잎이 온몸을 타고 흐르던 찐한 봄, 내겐 어쨌든 봄 뿐이었어. 널 만난 후로 나에겐.
박치성 - 널 만난 후,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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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염치없게! 매우 짧게 마무리를 합니다! 정든 정국이..안뇽...☆★ 사실 완결을 어떻게 내야 하나 고민을 많이 했는데 열린 결말이 좋겠죠, 역시! 진짜 제가 바라는 사랑과 연애를 글에 그대로 담아냈어요. 순탄한 연애. 속으로 서로를 끝 없이 사랑하고 아끼는. 여러분, 어떠셨나요? 대리설렘을 느끼는 그대들에게 더 큰 설렘을 주기 위해 매일 노력했건만 잘 되었을지 모르겠네요 ;ㅅ; 글도 표현도 많이 미숙했지만,격변기의 풋사랑! 그것의 두근거림만은 잘 전해졌길 빌어봅니다. 연재텀 가지고 밀당하는 저 때문에 많이 고생하셨어요....(석고대죄) 다음 글은 무기한 연재를 미뤄봅니다. 무기한이라 해서 막 몇 년이 걸리고 그런건 아니구요 ㅎㅅㅎ; 불확실한 미래에 확실히 다음 작품을 가볍게 언질하기엔 제 스스로 너무 자신이 없어서 그래요 ㅠㅅㅠ그대들의 수많은 (???) 신알신 사이 힘들게 낑겨서 살아가다가 저 스스로 여유가 좀 생기면 멋진 후속작으로 쪽지창에 찾아뵐게요! 고전물? 의학물? 판타지? 전 다 좋습니다 (음흉) 아무튼 부족한 글에 댓글 달아주시고 포인트 눌러주시고 매번 초록글 만들어주시고! 말로 다 하기 어려운 성원 고개 숙여서 감사함을 표해요 (__) 사랑합니다. 고마웠어요! 아디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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