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랑에는 끝이 있는데, 사람들은 어떻게 두려움 없이 사랑을 시작하는지가 늘 궁금했어. 그런데 이제는 그 고민이 얼마나 바보 같은 것이었는지를 알아. 어떻게가 아니라 그래서, 그래서 사랑인 거지. 끝이 온다는 걸 알면서도 모두들 사랑을 하잖아. 모든 게 영원할 것처럼.
너를 담은 나의 하루는
下 너를 담은 나의 하루는
궁금증을 가득 품은 채로 누워 천장만 바라보다, 눈을 비비며 침대 옆에 놓인 시계로 시선을 옮겼다. 8시 40분. 좋아, 고장은 아니고. 날짜는…… 정확히 보름 전이었다. 그날이었다. 그가 내 곁을 떠나도록 했던, 빌어먹을 그 날 아침으로 돌아와 있었다.
“꿈인가…… 으악!”
아직 잠이 덜 깼나 싶어 볼을 꼬집어 보았지만 이건 분명 꿈이 아니었다. 침대 옆에 놓아둔 시계가 고장 난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황급히 핸드폰을 켜 보았다. 그러나 그날의 날짜가 똑똑히 새겨져 있는 건 마찬가지였다. 정말로 우리가 헤어진 그 날로 돌아온 것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핸드폰 화면 상단에 보이는 메신저 알림.
카카오톡 27분 전
재환이❣ : 잘 잤어?
이 순간부터 이게 꿈인지 현실인지는 상관이 없었다. 나에게 또 한 번의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내 옆엔 그가 있고, 결말이 정해진 대본 따위는 우리에게 더 이상 필요하지 않았다.
/
문자에 답장하는 것도 잊은 채 곧장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 대기음이 울리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오늘은 그 짧은 시간마저도 너무나 길게 느껴졌다.
“어, 여주야. 일어났어?”
“어? 어…….”
“근데 아침부터 웬 전화야? 문자에 답이 없길래 아직 자는 줄 알았는데.”
“아…… 그냥.”
“할 말 있었던 거 아니야?”
“그냥 네 목소리 듣고 싶어서.”
별 특별할 것도 없는 대화였지만, 통화를 이어가는 내내 울음이 목 끝까지 차올라, 나는 몇 번이고 호흡을 가다듬어야 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듯 평소처럼 담담하고 다정하게 말을 이어가는 그의 목소리는 나를 안도하게 하는 것도 모자라 초조해지게 만들었다. 사랑의 끝이 이별이라는 것을 알아 버린 뒤라 그런지 그 어떤 행복도 마음 편히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저 소중한 사랑을 잃는 바보 같은 실수는 두 번 다시 하지 말자는 생각뿐이었다. 꿈과 현실의 경계에서 이루어지던 그와의 통화는 그 이후로도 꽤 긴 시간 동안 계속 되었다.
“근데 여주야, 우리 이렇게 오래 통화하는 거 되게 오랜만인 거 알아?”
“그러네. 우리 예전에는 기본 몇 시간씩 전화하고 그랬었는데. 옛날 생각난다.”
“오늘 주말인데 어디 안 나가? 약속 없으면 우리 집 올래? 내가 너한테 가도 되고.”
“좋지. 내가 그리로 갈게. 오랜만에 요리해줘. 점심 같이 먹자.”
“알았어. 준비하고 있을 테니까 천천히 와.”
여전히 실감이 나지 않았지만, 뭐가 어찌 됐든 간에 다행이었다. 몇 달 만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 긴 전화통화, 핸드폰 너머로 들려오는 포근한 목소리, 그리고 창틈 새로 비치는 눈부신 아침 햇살까지. 모든 게 완벽했다. 전과 달라진 건 나의 태도뿐이었고, 그것이 만들어낸 변화는 생각보다 대단했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를 지켜가는 게 이렇게나 쉬운 일이었는데, 그것 하나 해내지 못해 우리를 벼랑 끝까지 몰고 갔던 나 자신이 또 한 번 원망스러워지는 아침이었다.
딩동-
언젠가 그가 예쁘다고 해 주었던 옷을 꺼내 입고선 그의 집 초인종을 누른 뒤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는 건 내 인생을 통틀어 손에 꼽을 만큼 긴장되는 순간이었다. 자주 들락거리던 그의 집이었지만 오늘따라 낯선 느낌이 들었다. 다신 오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던 곳이기 때문이었을까. 괜스레 초조해진 심정으로 기다리던 것도 잠시, 열린 문틈 사이로 언제나처럼 환한 미소와 함께 나를 반기는 그의 얼굴이 보였다.
“빨리 왔네? 늦을 것 같다더니.”
“생각보다 안 막히더라고. 뭐 만들고 있었어?”
“새로운 거 도전해 보려다가 그건 관뒀구, 무난하게 파스타 했는데 괜찮지?”
“당연히 괜찮지. 뭐 도와줄 건 없고?”
“손님인데 그냥 있어. 어차피 다 해가.”
착하고 다정한 남자친구. 그는 말 그대로 착하고 다정한 남자친구였다. 착한 척을 해온 게 아니라 정말 착한 천성을 타고난 사람이었고, 그가 맡은 천사 역은 단순한 역할이 아닌 그의 진짜 모습이었다. 식탁에 앉아 앞치마를 맨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자니 눈물이 핑 돌았다. 그는 내가 지켜내야 할 사랑스런 천사였다.
“다 됐다. 비주얼은 좀 별로일 수 있는데, 맛은 괜찮을 거야.”
“비주얼도 좋은데 왜. 고마워. 잘 먹을게.”
“어! 이거 내가 예쁘다고 했던 원피스 맞지? 불편해서 두 번은 못 입겠다고 했었잖아.”
“좀 불편하긴 한데, 지금이 아니면 못 입을 것 같기도 하고, 여기 오는 게 오랜만이기도 하고, 또…….”
“또?”
“네가 좋아할 것 같아서. 너 이렇게 웃는 거 보려고.”
“너 진짜 무슨 일 없는 거 맞아? 오늘 되게 이상한데. 일단 아침에 전화 건 것부터가 엄청.”
“나 원래 이러거든? 밥이나 먹어.”
“흐흫. 알겠어.”
평소보다 말 몇 마디를 더 건네고, 옷차림에 조금 신경 쓴 것뿐인데 이렇게나 좋아해 주는 그 앞에서 나는 씁쓸한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를 좋아하기 시작한 이후로는 간절히 바라고 꿈꿔왔던 연애였지만, 막상 연애가 시작되니 처음의 설렘은 점점 줄어 가고 익숙함과 편안함만이 늘어가던 날들의 연속이었다. 가장 소중한 사람을 옆에 두고도 그 소중함을 알지 못했던 나는 결국 그를 잃은 뒤에야 나의 하루에서 그가 차지하고 있던 부분이 얼마나 컸는지를 깨닫게 된 것이다.
그가 만든 파스타는 맛있었다. 분명 맛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내가 그 안에 담긴 정성과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인지에 대한 답이 내려지지 않아 포크를 들고선 한참을 멍하니 앉아있어야 했다. 그런 나를 말 없이 바라보고 있던 그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왜 그래. 맛이 없어?”
“아니.”
“너 나한테 할 얘기 있지.”
“응.”
“뭔데? 말해봐.”
“…….”
“응?”
“……미안해.”
“…….”
“미안해, 재환아.”
힘없이 포크를 쥐고 있던 오른손 위로 눈물 한 방울이 떨어졌다. 손등에 차가운 눈물이 닿은 뒤에야 내가 울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내 앞에 앉아있던 나의 천사는 별안간 자리에서 일어나 울음보를 터뜨리고 만 나를 꼭 안아 주었다. 그는 갑자기 왜 우냐는 질문도, 뭐가 그렇게 미안하냐는 질문도 하지 않았다. 마치 모든 걸 다 알고 있는 사람처럼, 자신에 품에 안겨 아이처럼 훌쩍이는 나를 토닥일 뿐이었다.
“괜찮아. 나 여기 있잖아. 어디 안 가.”
“……응?”
“네가 무슨 짓을 해도 나 안 떠나니까 울지 말라고. 뚝 해, 뚝”
내가 미래에서 우리의 이별을 경험했다는 이야기도, 그게 전부 내 탓인 것 같아 너무나 미안하다는 이야기도 하지 않았지만, 그는 이상하리만큼 모든 걸 알고 있는 것처럼 행동했다. 혹시나 그도 과거로 시간을 되돌리는 말도 안 되는 경험을 해 보았을까 싶어 나에게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솔직하게 털어놓기로 했다. 간신히 되돌린 시간 앞에서 다시금 이별을 떠올리는 건 끔찍한 일이었지만, 같은 이별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이 또한 꼭 필요한 과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재환아, 내가 지금부터 하는 말들이 진짜 이상하게 들릴 거야. 나도 이게 말이 안 된다는 걸 아는데, 그래도 너한테 비밀을 만들긴 싫어서 말하는 거니까 진지하게 들어 줘야 해.”
“알았어. 뭔데?”
“내가 우리의 미래를 봤어. 우리 요즘 자주 싸웠었잖아. 내가 맨날 시답잖은 것들로 징징대고 그래서…….”
“다 그럴만해서 싸운 거지. 너 시답잖은 일로 서운해한 적 없었어, 여주야.”
“아니야. 안 싸울 수도 있는 일들로 너무 자주 싸웠어. 암튼 그렇게 자주 싸우다가 우리가……”
“헤어졌어?”
“응. 우리가 헤어졌어.”
어느 누가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우리가 헤어졌다는 이야기를 쉽게 내뱉을 수 있을까. 그에게 우리가 이별하던 날의 기억을 더듬어 이야기하는 건 정말이지 이상한 일이었다. 미래를 보았다는 둥 그 미래에서 우리가 헤어졌다는 둥, 말 그대로 이상한 이야기를 늘어놓는 나를 바라보는 그의 표정은 뭐랄까, 흥미로워 보였다. 헤어진 이후 우리의 관계가 어떻게 변해갈지가 궁금하다는 듯이. 냉랭하지 않은 그의 반응 덕에 미안함을 감추지 못하고 내내 버벅거리던 나는 조금이나마 수월하게 말을 이어갈 수 있었다.
“그 이후로 내가 후회를 진짜 많이 했어. 2주 가까이 매 순간순간을 후회했거든. 내가 그날 너한테 상처를 너무 많이 줬어. 막 하지 말았어야 하는 말들도 하고 그랬어.”
“나빴네.”
“맞아. 나 완전 나빴어. 근데 우리가 헤어진 지 딱 보름째 되는 날-”
“눈을 떴는데 그날로 돌아가 있었지? 우리가 헤어지던 그 날로.”
“……어떻게 알았어?”
“나도 그랬으니까.”
뭔가 이상하다 싶긴 해도 진짜였을 줄은 몰랐는데. 그는 자신도 나와 같은 경험을 했다고 했다. 그 또한 우리가 헤어지던 그 날로 돌아온 경험을 했노라고. 과거로 돌아온 이 상황이 우리가 함께 공유하고 있는 일이라고는 하지만, 이것이 상식적으로 흔히 있는 일은 아닌 것 같았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그리고 우리는 그토록 바라던 새로운 결말을 맞이할 수 있을까.
“……그랬구나.”
“그리고 여주야, 나는 사실 이번이 처음도 아니야. 우리가 싸웠던 꽤 많은 날의 시간을 되돌렸었어.”
“정말……? 언제부터 그랬어?”
“몇 달 전쯤에 우리가 처음 싸운 날 있잖아, 그날 내가 너한테 너무 답답하게 군 것 같아서 밤새 자책하고 후회했었거든. 그때 처음으로 과거로 돌아가는 경험을 했었고, 그 뒤로도 몇 번이나 우리가 싸웠던 그 순간으로 돌아간 적이 있었어.”
“…….”
“미리 말 안 한 건 미안해. 워낙 믿기 힘든 일들이었으니까…….”
“아니야. 말을 했더라도 내가 쉽게 믿지 못했을 거야.”
심지어 시간을 되돌려 우리가 싸우던 과거로 돌아온 적이 처음이 아니다…… 라. 그 말을 들은 직후엔 조금의 배신감이 들기도 했지만, 나는 이내 그에게 서운함보다는 미안함을 느껴야만 했다. 과거로 돌아왔다는 건 우리가 싸우던 그 순간을 뼈저리게 후회했다는 것이고, 그건 시간을 돌리지 못했던 나보다 그가 우리의 관계에 있어 더 많은 신경을 기울이고 있었다는 걸 증명하는 셈이었으니까.
“재환아, 나 뭐 하나만 물어봐도 돼?”
“당연하지.”
“그럼 그럴 때마다 넌 어떻게 했어? 늘 우리의 미래를 바꿨어? 싸우지 않는 쪽으로?”
“그러려고 노력했지만 같은 이유로 싸움을 반복되던 날들이 태반이었어. 네가 우리가 싸웠던 기억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일 거야.”
“바꿀 수 없는 미래가 있다는 걸 알면서도 왜 시간을 되돌리려 했던 거야? 미래가 바뀌지 않는다면 너만 두 배로 힘들어지는 일이잖아.”
“그래도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다 해보고 싶었어. 너를 속상하게 한 나의 행동들은 전부 고쳐보려 했고, 나의 침묵이 너를 화나게 했다면, 또 다른 과거에서는 하고 싶었던 말들을 전부 해보기도 했어. 그게 효과를 볼 거란 확신은 없었지만, 시간을 돌릴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그 기회를 버리고 싶지는 않았어.”
어쩌면 아무런 소득도 없이 같은 상처를 두 번씩이나 반복해 받을지도 모르는 상황이지만, 최선을 다하기 위해서 기꺼이 과거로의 시간여행을 택했다는 그의 이야기를 들으니 떠오르는 그의 말들이 있었다.
― 여전히 너를 사랑한다고 말하면 넌 또 내가 착한 척을 한다고 할 거고, 나도 같이 화를 내 버리면 서로 감정만 더 상할 게 뻔한데 내가 여기서 무슨 말을 하길 바라.
― 네가 왜 화를 내는지도 알고, 가만히 듣고만 있는 내가 얼마나 미울지도 이제는 좀 알겠어. 근데 난 이게 최선이야. 그래서 난 우리가 너무 다른 게 문제인 것 같다는 말밖에 할 수가 없어.
그가 뱉었던 말들이 떠오르는 순간, 나는 또다시 할 말을 잃고 말았다. 그 누구도 최선을 다했다는 말을 쉽게 내뱉진 못할 것이다. 첫째로, 어떤 일에 최선을 다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며, 둘째로 스스로가 그 일에 최선을 다했다는 확신을 가지기란 더더욱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우리의 이별 앞에서 최선을 다했다는 이야기를 망설임 없이 뱉어냈다. 그리고 난 이제야 그가 한 말의 의미들을 완벽히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근데 그렇다면 재환아, 우리가 오늘로 시간을 되돌렸지만 똑같은 미래가 반복될 수도 있다는 소리네? 변하지 않는 미래가 있다는 것 말이야…….”
“그건 나 혼자만 과거로 돌아왔으니까 그랬던 거지. 이번엔 너도 같이 왔잖아. 네가 먼저 나한테 전화를 걸어줬고, 내가 좋아하는 옷까지 이렇게 꺼내 입고선 우리 집까지 이렇게 와줬잖아.”
“아…….”
“지금껏 내가 돌아갔던 많은 날과는 다르게, 이번에는 나의 일방적인 노력이 아니잖아. 내가 우리의 이별을 되돌리고 싶어 하는 만큼 너도 함께 애쓰고 있으니 바뀌겠지. 전처럼 내가 우리의 이별을 이야기하지 않을 테니까.”
“나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물어도 돼?”
“편하게 물어봐.”
“이번엔 나도 과거로 돌아왔으니 미래가 바뀔 수 있다고 쳐. 근데 너는 내가 이렇게 시간을 돌릴 거라는 사실을 몰랐을 거 아니야. 싸우던 날로 돌아가서 같은 상처를 또 받는 건 괜찮다고 해도 이별은 차원이 다른 문제인데, 넌 우리가 헤어질 거란 사실을 알면서도 어떻게 시간을 돌릴 생각을 했어? 네가 최선을 다했든 그렇지 않았든 간에 결국 이별을 막지 못하게 된다면 그 모든 게 무의미해지는 거잖아.”
“그게 왜 무의미해져, 여주야.”
나의 질문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가 말을 이어 나갔다. 무의미해지지 않는다니? 상처 외엔 아무 것도 남기지 않는 것이 이별인데. 적어도 내가 아는 이별은 그런 것인데.
“끝이 있다고 해서 그동안의 과정이 의미를 잃어버리는 건 아니잖아. 우리가 또다시 헤어진다고 해도 함께했던 모든 시간이 없어지지는 않아. 오히려 좋았던 기억, 또는 아쉬웠던 기억이 되어 오래오래 남겠지. 그 기억들을 아름답게 추억하기 위해서는 이번에도 반드시 시간을 되돌렸어야만 했어. 원래는 늦어도 이틀이면 전으로 돌아갈 수 있었는데, 이번엔 열흘이 넘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길래 정말 끝인가 싶었지.”
“그래도 결국 이렇게 다시 돌아왔네.”
“그러게. 널 다시 볼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 여주야.”
처음엔 의아했지만, 결국엔 그가 전부 옳았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사랑은 특정한 감정을 일컫는 말이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에게 관심이 생기고, 그 마음이 점점 커지고, 인연이 닿아 연애라는 것을 시작해 서로를 더욱 깊이 알아가는 일련의 과정을 가리키는 단어가 바로 ‘사랑’이지 않을까. 따라서 그가 이야기한 대로 사랑의 유한성은 전혀 중요하지 않은 게 되는 것이다. 그저 서로가 함께하는 모든 하루에 최선을 다하는 것만이 사랑을 더욱 단단하게 만드니까 말이다.
문득 세상에 이런 마법 같은 경험을 한 연인들이 얼마나 될까 하는 궁금증이 들었다. 그중 시간을 되돌려 그들의 다툼을, 심지어는 이별까지 막아 낸 연인의 수는 얼마나 될까. 엎질러진 물은 다시 주워 담을 수 없다는데, 우리는 무려 이미 일어나 버린 이별을 되돌려 서로를 서로의 일상에 다시 담아내는 일을 경험했다. 그가 나의 곁에 너무나도 당연하게 존재하던 시간에는 알지 못했지만, 홧김에 그를 모두 쏟아 버린 뒤에야 그가 너무도 큰 부피로 나의 인생을 채워내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만큼 앞으로의 나는 지금의 마음을 잊지 않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사랑은 그 시작도, 마지막도 중요하지만 그 사이를 연결하는 순간순간의 과정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이제는 알고 있으므로.
그리하여 나는 그가 담긴 오늘 하루를 최선을 다해 살아보려 한다. 더 이상 마음을 아끼는 어리석은 일 따위는 하지 않고, 당장 그에게 가서 너와 함께하는 모든 순간이 나에겐 꿈만 같노라고, 언젠가 끝날 꿈이라는 것임을 알면서도 영원히 깨고 싶지 않은 예쁘고 포근한 꿈과 같노라고 말해줘야지. 이제는 어쩌면 사랑에 끝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우리의 관계를 더욱 아름답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까지 든다. 대부분의 관계에는 끝이 있고, 아무에게나 찾아오지 않는 '영원'이라는 특수성을 꿈꾸며 매 순간에 최선을 다하는 사랑이야말로 진정한 빛을 발하기 때문에. 사랑하는 나의 사람과 함께하는 하루가 이렇게 저물어간다.
Epilogue /
“재환아.”
“응?”
“지금은 이렇게 헤어지기 전으로 돌아왔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영원할 거란 보장이 없잖아. 언젠가 우리가 또 크게 다툴 수도 있는 거고. 그런 날이 오면 어떡하지?”
“뭘 어떡해. 어쩔 수 없는 거지.”
“넌 우리가 헤어져도 상관없어?”
“상관있지. 시간을 돌려도 바꿀 수 없는 이별이 찾아온다면 많이 힘들겠지.”
“그런데 왜 그렇게 말을 쉽게 해.”
“따지고 보면 이별 없는 관계는 없잖아. 연인 관계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관계에 있어서 말이야. 우리가 바꿀 수 없는 이별이라면 받아들여야지.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니까.”
“……듣고 보니 그렇네.”
“그래도 그때가 돼서 지금 이 순간을 떠올렸을 때, 적어도 후회나 아쉬움이 남지는 않도록 최선을 다해야지. 그때 참 행복했었지, 싶은 생각이 들 수 있도록.”
“그래도 지금 이 순간을 희미하게 추억할 만큼 아주 먼 미래가 와도 우리가 함께였으면 좋겠다. 이거 너무 큰 욕심인가?”
“응. 욕심이야. 욕심이긴 한데, 완전 당연한 욕심.”
“너도 그래?”
“그것뿐인가. 난 우리가 영원했으면 좋겠는데?”
“김재환 욕심쟁이네.”
“그럼 그냥 욕심쟁이하고 너랑 영원히 함께할래.”
“그래.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 될 때까지 욕심쟁이로 살자.”
“잠깐만. 이거 프로포즈야, 여주야?”
“음…… 그렇다고 치지 뭐!”
돌릴 수 있다면 그 순간으로
잘못된 이 이별을 막을 수 있게
그 시간을 지워 날 떠난 그 하루를
- 김재환, 안녕하세요 中
💙본문을 통해 하고 싶었던 이야기🖤 |
저의 글을 독자님들께 보여드리는 일은 언제나 긴장되지만, 그 글에 제 가치관이 녹아 있는 경우에는 긴장이 배가 되는 것 같아요. 저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독자님들께서는 공감하며 읽으시지 않을까 하는 설렘도 있지만, 혹여나 제 연애관이 글과 잘 어우러지지 않아 오히려 글을 읽는 데 방해가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서기 때문이에요. 지난 '사랑을 닮은 너에게' 연재 시에 그런 생각이 많이 들었던 것 같아요. 댓글에서 독자님들과 사랑이라는 감정, 또 연애라는 경험에 대한 의견을 주고 받았던 기억이 저에겐 참 특별했는데, 이번에도 독자님들과 저의 생각을 공유하고 싶어서 다소 재미는 없지만(ㅎㅎ...) 사랑에 대한 제 생각을 담은 글로 찾아 뵙게 되었어요. 개인적으로는 제목 위에 달아 놓은 짧은 도입부의 문장들이 마음에 들어요. 모두들 끝이 있는 사랑에 목숨이라도 걸 듯이 달려드는 이유가 궁금했거든요. 저에게도 존재했던 그런 경험들이 어떻게 가능했던 것일지를 알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저는 그 물음의 답을 뜻밖에도 워너원에게서(기승전 우리원,,) 찾게 되었어요. 글잡에 이런 주제를 가진 글을 써 봐야겠다고 결심한 것도 그 떄문이었거든요. 어쩌면 도입부의 문장들은 제가 워너원에게, 또 그들을 함께 응원했던 독자님들께 하고 싶은 이야기일지도 모르겠어요. 지루할지도 모를 글이 될지도 모르겠지만, 일단 제 이야기를 이어가 볼게요:) 워너원을 사랑했던, 그리고 지금도 그들을 아름답게 추억하는 우리 모두에게 마지막 콘서트는 참 아픈 기억일 거예요. 열한 명의 소년들이 길다면 길고, 짧았다면 한없이 짧았던 여정을 마치고선 한 명씩 마지막 인사를 건네며 무대 뒤로 사라지는 장면은 너무나도 잔인하고 아팠어요. 한 명 한 명의 멘트들이 저에게 고스란히 전해져 마음을 아리게 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 아마 충격적이었다고 표현하는 게 맞는 것 같은 - 멘트는 우진이의 것이었어요. '끝이 있다는 걸 알면서 우리는 뭐가 그렇게 좋고 뭐가 그렇게 행복해서 여기까지 달려왔을까'하는 이야기였죠. 제가 그 현장에 있지는 못했지만, 모니터 속에서 그 말을 힘겹게 전하는 우진이에게 저도 모르게 대답을 했던 것 같아요. 끝이 있다고 해서 그동안의 시간이, 추억이, 기억이 사라지는 건 아니라고요. 함께한 2년 반 가량의 시간 동안 우리는 누구보다 뜨거웠고 반짝였으며, 넘치게 행복했으니까요. 누군가는 다 의미없는 짓이라며 비웃을지도 모를 덕질 덕분에 전 늘상 궁금해했던 질문에 대한 답을 얻게 되었어요. 본문에서 말한 것처럼, 사랑은 시작과 끝이 정해지지 않은 하나의 과정 자체라는 생각이 계속해서 드는 요즘이에요. 개인적으로는 시작과 끝이 불분명한 것이 사랑이라고 생각하지만, 어쩔 수 없는 끝이 존재한다고 하면 그것마저 사랑하는 게 진정한 사랑의 본질이 아닐까 생각해요. 뜬금없지만 이런 저의 생각을 편하게 털어놓을 수 있는 공간이 있어 참 다행이라는 생각도 드네요. 갑자기 이렇게 진지하게 제 사랑관(?)을 털어 놓아서 당황하실지도 모르겠지만 제가 여태껏 독자님들 앞에서 주저리주저리 제 이야기를 한 게 한두 번은 아니기에ㅋㅋㅋㅋㅋㅋ 아직도 저와 함께 해주고 계신 독자님들이라면 이해해 주실 거라 믿어요! 아무튼, 벌써 아침 저녁으로 쌀쌀한 바람이 불어오는 계절이 왔어요. 언제나 건강 조심하시고, 매 순간 행복할 순 없다고 해도 많은 순간들에 행복을 느끼셨으면 좋겠습니다. 부족한 글 읽어 주셔서 고마워요. 사랑합니다. 많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