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퐁슬한 구름을 손에 꼭 쥐고 아래를 내려다보며 온갖 상상을 해본다. 이제 나이도 다 찼으니까 어려서 안 된다는 거절은 못 들을 것 같으니 시도라도 해볼까? 일어나 옷을 한 번 털어내는 시늉을 하더니 경쾌한 발걸음으로 숲 사이를 유유히 지나간다. 그러다 꽤나 큰 나무 기둥에 붙어있는 포스터가 눈에 들어온다. ' 이홍빈, 포상금 오천만원 ' 언뜻 학교에서 배운 것 같았다. 이 곳에서 인간계로 허락없이 도주할 경우 이렇게 현상수배범이 된다는 것을. 내가 생각하기에는 이렇게 해봤자 돈에 눈이 먼 미친놈이 아니고서야 자진해서 인간계를 내려가 잡을 사람은 없다고 본다. 포스터 속에 있는 그림 같은 사람의 형상에 감탄을 하고 다시금 발을 부지런히 옮겼다. 얼마 안 되고 숲을 완전히 빠져나오나 드러나는 이 마을은 이 세상의 중심, 즉 쉘터라고 불리우는 곳이다. 인간계에서는 아마 서울특별시라고 하는 곳과 비슷하다고 한다. 아마... 수도라고 했던 것 같다. 졸업한지 얼마 안 됐는데. 벌써 다 잊어버린 것만 같아 뒷머리를 긁적이고 다시 주위를 두리번거리자 눈에 띄는 사람의 이름을 반갑게 부르며 따라갔다. " 식이 형! " " 어, 상혁이구나 " 부모님의 일을 도와 물건을 옮기는 중이였는지 품에는 커다란 상자를 두 개나 안고 있었다. 제가 이름을 부르자 환히 웃으며 잠시 짐들을 내려놓았다. " 형! 그.. 비서 형 어디있어요? " " 아마 본부에 있을걸? " 고마워요! 생긋 웃으며 손을 흔드는데 영락없는 아이의 모습이다. 형이 알려준대로 본부로 갔다. 학교에서 배운, 얼마 없는 지식을 끌어모아 설명을 하자면 이 곳은 인간계와 별다를게 없는 곳이라고 한다. 자꾸 인간계와 비교하는건 인간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흔히들 천사가 산다고 생각하는 천계이다. 천계에 사니까 천사는 맞겠지만 우리는 날개가 없다. 대신 능력이 있다. 태어나면서 정해지는 능력. 나타나기도 하고, 나타나지 않기도 하며, 없는 집안에서 돌연적으로 나오기도, 갑자기 물림의 대가 끊기기도 한다. 능력은 만 19세가 되는 해에 성인식을 거치고 테스트를 통해 알 수 있다. 얼마 전의 성인식으로 커터라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공격성이 다분해서 왠만하면 쓰지 않는다. 하지만 전쟁 같은 때에는 아마 대열의 맨 앞에서 진두지휘를 하겠지. 어쩌면 당연하겠다. 능력이 10퍼센트의 확률을 자랑하는 공격 계열이라는 이유만으로 곧바로 천계의 군대인 아미에 소속되며 캡틴이 되었다. 그렇게 먼 길을 가 커다란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깔끔한 정장 차림을 한 사람들은 고개숙여 인사를 한다. 평소엔 이렇지만 직업 군인들이라고 한다. 엘리베이터에 탑승해 상위층 버튼을 누르고 기다리는데 누군가 어깨를 치는 느낌에 짜증낼 준비를 하고 뒤돌았다가 환히 웃었다. " 아 형, 아프잖아 " " 이거 가지고 엄살 부리기는, 야. 너 한 번에 그렇게 승급해도 돼? " " 누구처럼 게으르지만 않으면 돼 " " 나 찔리라는 소리 같은데? " 넉살 좋게 농담들을 주고 받는 이 사람은 이재환. 제가 많이 따르기도하고, 그만큼 잘 해주는 형이다. 아마 보고를 하러가는 모양이다. 능력에 아주 잘 맞는 직업으로 승승장구를 하는 중이다. 같은 층으로 가는 듯 둘이 같은 엘리베이터를 탑승한 후에 30층을 누르자 재환이 형은 버튼에 손을 대지 않았다. 그 안에서 조차도 서로 장난을 치다가 문이 열리고 같은 방문 앞에 서서 노크를 했다. ' 네, 들어오세요 ' 미성의 목소리에 제가 문을 벌컥 열며 반갑게 그의 이름을 불렀다. " 택운이 형! " 그대로 쪼르르 달려가 안아버리자 징그럽다며 쳐냈다. 지켜만 보던 재환이 형은 서류철을 형의 책상에 올려놓고 목례를 한 후 저에게 눈인사를 보내고 유유히 나갔다. " 형아, 형 " " 왜, 한상혁 " " 나 인간계 내려가볼래! " " 미쳤구나? " 이 형은 킹핀의 비서이다. 라고 하지만 사실상 가장 친하게 지내오며 많은 부탁을 들어주는 듬직한 형이다. 가끔 애같이 칭얼거리기도 하지만 말이다. 제가 장난을 걸며 까불 때에는 물을 잔뜩 먹여주기도 하는 착한 형이다. 하하. 제 부탁해 식겁하며 서류를 쳐다보는 눈을 제 얼굴에 고정시켰다. 전부터 밑밥을 던지다가 직접적으로 들으니 진짜냐는 얼굴로 눈을 크게 키우며 물어왔다. 둘이 한참을 갈래, 안 돼를 주고 받으며 말싸움을 하다가 진지하게 얼굴을 들이밀며 한마디를 내뱉었다. " 갈래 " 굳은 택운이 형의 얼굴이 잠시 머뭇거리다가 횡설수설 서류를 정리해서 한 쪽에 쌓아두고 조심히 따라오라는 말을 듣고 소리를 지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무언의 세리머니를 하는 순간에 멀리 가있는 형의 뒤에 대고 같이 가요! 하며 총총히 걸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