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경찰서 가겠습니다."
"장기용."
"교수님이 한버리 핸드폰 갤러리 좀 직접 확인해보세요. 얼마나 추잡한 사람인지 한 번에 알 수 있을 테니까요."
"…그게 무슨 소리야."
장기용은 교수님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한버리는 장기용을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모두 그 둘을 보면 수근거린다.
"분명히 한버리가 장기용한테 뭔 짓을 했을 거야. 그래서 때렸겠지??"
제발 그랬음 좋겠단 생각 보다는. 당연히 그럴 거라는 생각을 하며,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교수님이 한버리의 핸드폰을 가져가려고 하자, 한버리는 안 된다며 소리친다.
교수님은 당황한 듯 한버리를 바라보다가도 곧 강제로 핸드폰을 가져가 갤러리를 확인하더니 표정이 굳혀진다.
모두가 궁금하다는 듯 귀를 기울여보지만 들릴리가 없다.
다음 날.. 학교로 가는 버스를 탔는데.. 너무 조용했다. 눈치가 보일 만큼 너무 조용해서 나는 내 대각선에 앉은 장기용을 힐끔 보았다.
무슨 일 있었냐고 물어보고 싶은데 되게 애매하네.. 어제 그렇게 싸우고나서 어떡해야 하는 거야..
"신경쓰이면 그냥 물어봐. 싸운 거랑, 걱정은 별게 아니냐.."
"……"
"……?"
"허흣.. 못하겠어.. 뭔가 쪽팔리기도 하고.."
"어휴.. 걱정하는데 쪽팔린 게 어딨냐."
장기용은 김석진 오빠와 같이 앉아서 한 번도 웃지 않았다. 평소라면 친구들에게 매일 웃어주던 녀석이 저렇게 무표정이라니..
진짜 무슨 일이었길래.. 이 정도로...
차에서 내리자마자 고생했다는 교수님의 말을 듣고서 모두 해산인 분위기였다.
아.. 장기용한테 말 걸어야 되는데.. 김석진과 같이 등을 돌리는 장기용에 나도 모르게 멈칫하고서 가만히 있자, 가영이가 말한다.
"야 얼른 가. 뭐해??"
"…아니."
"아씨.. 김석진오빠!!"
가영이가 석진오빠를 불렀고, 석진오빠가 왜- 하며 가영이에게 다가온다. 그리고 그 옆에 서있던 장기용은 나를 바라본다.
"기용오빠랑 점심 먹으려고 했어요?"
"엉."
"나랑 먹어요."
"왜??????????????????????????????????????? 너 나 좋아해?"
"진짜 이번년도 들어서서 제일 웃긴 말이네.. 좋아하긴 뭘 좋아해요. 그냥 같이 먹자면 먹으면 되지!"
"갑자기 먹자고 하면 내가 당황ㅅ.."
"갑시다! 야 ! 고운! 나 간다."
가영이가 석진오빠의 팔을 잡고 질질 끌고가면, 석진오빠가 나와 장기용에게 설렁설렁 손을 흔들며 사라진다.
키가 꽤 큰 장기용이 나를 내려다보았고, 나는 그런 장기용을 올려다보며 말한다.
"아는 척도 안 하냐 닌."
"너도 아는 척 안 했잖아."
"내가 안 해서, 너도 안 하냐?"
"아니 그건 아니고."
"…밥 같이 먹으러 가."
"……"
"개셰키야."
"참나."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너와 같이 발을 맞춰 걷는데. 말을 걸까 말까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역시나.. 아무렇지 않네..
배고프지도 않은 상태에서 장기용이랑 같이 밥을 먹게 되었다,
주변에 여자들은 장기용을 대놓고 쳐다보기 바쁘고, 나는 그런 사람들을 힐끔 보다가 장기용을 본다.
"장기용."
"……?'
"인기 많아서 부럽네."
"갑자기 그런 얘기는 왜 하냐."
"그냥 맨날 나갈 때마다 여자들이 쳐다봐서 좋겠다고."
"…먹기나 해라. 얼굴을 부어서 호빵맨이냐."
"시팔아."
"ㅋㅋㅋㅋㅋ."
"근데.."
어제 얘기를 꺼내려고 했는데 뭔가 말을 안 해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래도 내가 여자친구니까.. 말은 해주겠지?
"어제 한버리랑 어떤 문제로 싸운 거야?"
"아.."
"……"
"그냥.. 말다툼이 있었는데.."
"……"
거짓말이다.
나한테 거짓말을 하네.
"너 말다툼 한다고 누구 때릴 사람 아니잖아. 술 마시고도 얌전한 사람이 누굴 때린다니까 안 믿겨지는데 난."
"글쎄.. 걔가 기분 나쁘게 했어."
"…얘기 해주기 쪽팔려서 그러는 거야?"
"아니 그런 건 아닌데."
"그럼. 개새캬."
"그냥 얘기 하기 싫어."
치.. 콧방귀를 뀌고선 다른 곳을 보았다. 나한테 얘기 하기 싫은 것도 있냐..
맨날 뭔 일 나면 사소한 거라도 서로 얘기하기 바빴는데. 오늘만은 아닌 네가 너무 낯설기도 하고.
"생각할 수록 빡치네."
욕 하고 싶다.ㅎㅎ
"아니 내 남친이 누구랑 싸워서 경찰서까지 갈 뻔했다는데! 이유는 알아야 될 거 아니야! 진짜 짜증나네."
"……"
"진짜 말 안 해?"
"고운."
"뭐씨."
"내가 걱정이 돼서 화가 난 거야.. 궁금한데 안 알려줘서 화가 난 거야?"
"…굳이 그게 궁금해?"
"응."
"걱정이 되는데."
"……."
"말을 안 해주니까 짜증이 나는 거지."
"…오."
"뭔 오야."
"관심 1도 없어보이는 애가 걱정 된다고 하니까 좀 감동 받아서."
"…그럼 알려줘 십탱아."
"십탱은 귀엽잖아."
"십새야."
"그건 좀 쎈데."
"아 몰라! 안 알려줄 거면 말던가! 아우 답답해"
그거 고갤 끄덕이며 아무 말도 안 하는 네가 밉다.
서운하다.
그렇게 장기용이랑 그냥 밥만 먹고 헤어졌다.
집에 가자마자 베개에 얼굴을 쳐박고 으애에에에겍! 하자 강아지가 나를 이상하게 바라보고 그냥 방에서 나가버린다.
아니.. 아니!
"아니이이!!! 왜 싸웠는지! 어쩌다 그랬는지!! 요점만 말해주는 것도 힘든 거야?? 아니 왜?????????????????????
이럴 거면 왜 사겨?? 나 여친 맞아??????????? 아니.. 왜 사겨는 취소..."
서운해서 미칠 것 같단 말이야. 18.
한 9시쯤 되었을까.. 심심해서 컴퓨터로 게임이나 하고있는데 장기용에게서 전화가 왔다.
"뭐씨."
- 넌 왜 전화 받을 때마다 화내냐?
"내가 언제이씨."
- 지금도 화내는데
"아니 뭐하다가 이제 전화하냐 죽을라고."
- 애들이랑 술 마시고 이제 막 들어왔어.
"술 마셨냐?"
- 응. 보고싶어서 전화했어. 나 너네 집 앞으로 가도 되냐.
"미친놈.. 술 마셔놓고 뭘 와."
- 그래. 그럼 내일 보자.
"……."
- 일단 카톡할게.
"야야야."
- 왜.
"내가 글로 갈게."
내 말에 장기용은 한참 대답이 없다가 무심한 말투로 말한다.
- 그러던지.
대학교 근처에 자취방이 있는지라.. 대학생들이 취해서 돌아다니고 난리가 아니다.
저 멀리 장기용이 손을 흔들길래 같이 흔들어줬더니, 장기용이 두 팔을 벌린다.
뭐 어쩌라고- 내 표정을 읽은 장기용이 풉- 웃는다.
그 품에 쏙~ 안길 거라는 생각은 접어라.. 오글거리게 시팔 무슨!!....
"……."
"왜 쪼개.....?"
"왜? 웃으면 안 돼?"
"쪼개지 마."
"……."
"술 많이 마셨어?"
"…조금?"
술을 잘 안마시는 장기용이기에.. 이런 모습이 어색했다.
취해서 베시시 웃는 장기용이 너무 잘생겨서 헉- 하고 뒷걸음질을 치자, 장기용이 픽- 웃으며.. 가자며 내게 어깨동무를 한다.
많이 취한 거 보고싶은데.. 언제쯤 볼 수 있을까.
방에 들어와서 침대에 앉아 장기용을 보니, 장기용이 방금 막 씻고 나와서 나를 보며 말한다.
"왜 째려봐."
"내가 언제."
"너 나 볼 때마다 째려봐. 몰라?"
"…지랄."
"화도 많고, 짜증도 많고.. 욕도 많고."
"뒤질라고."
"여봐."
장기용이 대충 드라이기로 머리를 말리고선 내 옆에 털썩 앉길래, 장기용을 올려다보았다.
뭐야 씻고 나오는 건 또 처음 봐서 섹시하고 난리네.
"뭘 봐?"
"니가 봤잖아."
"아 그러네."
"한버리랑 싸운 거."
"……."
"말 안 해줬다고 서운해 하지 말았음 좋겠는데. 힘들겠지?"
"당연한 소리를 하고 있냐."
"한버리가 여자애들 다리 사진을 찍어서 간직하고 있더라고. 그중에 하나가 너였고."
"……?"
"네가 많이 서운해하는 것 같아서.. 그리고 이 일로 싸우기도 싫어서. 그냥 말해주는 거야. 말해주기 싫었는데."
"……."
"우연히 핸드폰 보고있는 한버리를 봤고.. 그 사진이 하필 네 사진이었던 거야. 그래서 화가나서 그냥 때려버렸어."
"변태새끼! 내가 가서 확 고추 잘라버릴까!!!!!!!!!!!!!!!!!!!"
"……"
"감히 허락도 없이 내 예쁜 다리를 찍어, 뒤질라고 진짜. 개빡치네."
"???.."
"뭘 아니란 듯이 쳐다봐 뒤질라고?"
"아니..."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왜 웃어 장기용."
"하.. 진짜 못 산다 너 때문에."
"왜 등신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왜 쳐웃냐고!!!"
아니라면서 손을 젓는데 그게 귀여워서 나도 웃음이 나와버렸다.
좀 심각한 일이긴 한데도.. 별 거 아닌 일이라는 듯 서로 웃는 것도 꽤 웃겼다. 별 거 아닌 척 하는 거겠지만.
"야 고운."
"왜."
"자고 가라."
"뭐????????????????????????????????????????"
진짜 너무 뜬금없어서 눈이 튀어나올 것 같은 표정으로 장기용을 보고있으니, 장기용이 무심하게 말한다.
"자고 가라고."
"왜?"
"뭘 왜야. 같이 자고싶으니까."
"코오~ 하고 자는 거..? 아아.. 난 또 진짜 아오 깜짝ㅇ.."
"그 자는 거 말고 다른 거라도 잘 거야? 나랑?"
"뭐?"
"나랑 잘 거냐고."
"아니.. 취했니?"
"안 취했는데."
"…아닌데 취했는데?"
"안 취했어. 취해서 저런 소리하게 미쳤냐."
"…아니 그건 그런데."
"나랑 자는 거 싫어?"
"……."
"내가 싫은 게 아니라, 아직 자는 게 부담스러운 거지?"
"아니.. 그.. 음.."
"그래 뭐 그럼.."
"그걸 왜 물어봐? 그냥 하면 되지 시팔아. 진짜 민망하게 누가 좋다고 말해 뒤질라고."
"그럼 너 나랑 자는 거다."
"말 좀 하지 말라고! 그냥 그런 건 분위기 타면서 하는 거지!"
"넌 분위기 타다가 기분 나쁘면 싸대기 때릴 것 같아서 그래."
"지랄."
갑자기 입을 맞추는 장기용에 솔직히 놀랬다. 이렇게 진하게 해본 적도 없었던 것 같은데 우리..
갑자기 이렇게 진도를 확 빼도 되는 걸까. 너무 밝기도 하고.. 민망하기도 하고...
옷 안으로 손을 넣어 내 허리를 매만지는 장기용에 나는 급히 입을 떼고선 말한다.
"잠깐."
"…왜."
"너무 밝아."
"끄면 되지."
"아. 잠깐!"
"왜."
"콘돔."
"……."
"없으면 다음 기회에."
"……."
왜..? 왜 집에 콘돔이 있는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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므흣.